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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가장 따뜻한 색, 블루 7

La vie(175.195) 2020.01.21 17:43:58
조회 985 추천 50 댓글 17


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6화 떠내려가서 념글 못갔는데 힐 부탁ㅜㅜ






지겹고 뻔한 말이지만, 시간은 참 빨랐다. 안나가 유학을 떠나 온지 벌써 4개월이 흘렀고, 여름 방학을 맞이해 곧 있을 안나의 생일에 맞춰 크리스토프가 파리로 놀러왔다. 떨어져 있는 동안 어색해져있던 둘이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그리고 지금, 불금을 맞이해 북적북적한 펍 한구석에 미묘한 기류를 풍기며 이방인 넷이 앉아있다. 이제 막 통성명을 마친 그들은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에게 술을 주문하고는 어색하게 눈빛을 교환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던 침묵을 깬 건 메가라였다.


“걱정이 많았겠어~ 요런 귀여운 여자 친구를 머나먼 타지에 홀로 떠나보냈으니.”


“그랬죠... 그래도 이렇게 엘사씨랑 메가라씨 같은 분들이 안나 옆에 있으니 안심이 되네요!”


크리스토프가 옆에 앉아 있던 안나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순간 엘사가 얼굴을 약간 찡그렸지만, 찰나의 순간이라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다.


“우릴 언제 봤다고~? 조심해요. 우리가 안나 물들여버릴지도 몰라.”


메가라의 농담 같은 진담 혹은 진담 같은 농담에 크리스토프는 그저 허허, 하고 사람 좋게 웃었다. 한 잔, 두 잔 비워져가는 술잔에 분위기가 풀어진 일행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사람만 빼고. 엘사는 그저 본인 앞에 놓여진 논알콜 모히또를 홀짝이며 이 상황을 관전하듯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나저나 엘사씨, 술 안 마시는 거 진짜 멋있네요. 그러니까 제 말은, 자기 관리하는 사람 멋있잖아요.”


붙임성이 좋은 크리스토프가 소외된 것처럼 조용히 있는 엘사가 신경 쓰였는지 엘사에게 괜히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게 엘사의 심기를 더 건드렸다. 자신의 민감한 과거사의 한 부분을 건드리는 발언을 해서가 아니라, 크리스토프의 말투가 안나의 것과 닮아서. 말투뿐만이 아니라 작은 행동 하나 하나 그리고 성격까지도 안나와 비슷했다. 오래만난 연인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원체 서로 닮은 사람이라 저렇게 만나 사랑할 수 있는 걸까.


“그냥 원래 술을 잘 못 마셔요. 그래도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요.”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엘사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크리스토프에게 웃어주었다. 자상한 듯 하지만 딱딱한 엘사의 답변에 크리스토프는 어색하게 웃음 짓다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언니, 많이 피곤해요? 오늘따라 더 말이 없네.”


크리스토프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안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냐. 그냥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안나에게 편하게 반말하는 엘사의 모습에서 둘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해졌는지 느껴졌다.


“흠...그럼 혹시... 크리스토프가 뭐 실수한거 있어요? 아님 내가?”


“뭐? 그런거 아냐.”


엘사가 흠칫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맞받아쳤다.


“그래요? 그럼, 제 남자 친구 어때요? 어떤 것 같아요?”


안나가 기대를 품은 채 엘사에게 질문했다. 짧지 않은 연애를 하면서 주변인들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준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떨린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부모님께 결혼을 허락받는 느낌이랄까. 안나는 엘사가 크리스토프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나가 눈을 빛내며 질문해오자 엘사는 짧은 시간에 머리를 굴리며 적당한 단어를 생각하려 애썼다. 그래도 안나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최대한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아.”


“그리고...?"


“금발이지.”


그렇게 머리를 굴리며 최대한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 낸 게 저거라니. 엘사는 자신의 형편없는 순발력에 절망했다.


“그게 뭐야~”


어느 정도 술에 취해서인지, 안나는 그저 엘사가 크리스토프와 아직 친하지 않아서 어색한가보다~ 하고 생각하며 웃어 넘겼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던 사이에 크리스토프가 돌아왔다.


“그나저나 내일 우리 귀염둥이 안나 생일이잖아? 둘이 뭐하면서 보내기로 했어?”


크리스토프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눈치 빠른 메가라가 화제를 전환시켰다.


“음, 안나 어학원도 다음 주부터 바캉스 기간이라고 해서, 같이 남부로 바다나 보러 갈까 했는데, 안나는 별로인가 봐요.”


“왜? 이번 기회에 남부도 한 번 가보면 얼마나 좋아? 니스나 마르세유! 얼마나 좋은데~”


“안나 여왕 가라사대, 이런 여름 바캉스 기간에 휴양지에 가봤자 사람만 바글거리고 고생만 할게 뻔하다고 그냥 파리에 있자네요.”


“잠깐, 뭐? 크리스토프!”


크리스토프가 비아냥대며 말했고, 안나는 그만하라는 듯 크리스토프를 언짢게 째려보며 신경질적으로 윽박질렀다.


“어우, 솔로들 앞에서 사랑싸움은 나중에 하지?”


술도 들어갔겠다, 점점 더 격해지는 둘의 언성에 메가라가 못 봐주겠다는 듯 중재에 나섰다.


엘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저 바보는 저런 걸로 서운해 하는 거야? 안나가 정말 그런 이유 때문에 가지 말자고 한 게 아닐 텐데.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앤데. 분명 다른 이유가 있겠지. 유학생이다 보니 여행 경비가 부담되는 것일 수도 있고. 위와 같은 상황은 실제로 유학생들 사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친구나 가족이 놀러 오면 그들은 함께 놀러 다니고 싶어 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유학생들에게는 사실 외식 한 번 하는 것도 부담이라, 이런 마찰은 흔했다. 물론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니 이렇게 깊게까지 헤아려주지 못 하는 게 보통이지만, 크리스토프의 섬세하지 못함에 엘사는 그가 더 못마땅했다.




*




그렇게 조금은 찝찝하게 넷의 첫 만남이 마무리되고, 가벼운 작별 인사를 한 후 둘씩 찢어졌다. 엘사는 기분 좋게 취해 비틀거리는 메가라를 부축하며 집으로 향했다.


“술 냄새. 왜 이렇게 많이 마신거야 평소엔 조절 잘하면서.”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오늘 너무 재밌었다. 그치? 둘이 어쩜 그럼 똑 닮았니?”


엘사는 메가라의 말에 인정하기 싫어 대꾸하지 않았다.


“넌 되게 불편해보이더라.”


“뭐?”


엘사가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속일 사람을 속여. 내 눈엔 다 보이거든.”


이번에도 역시 엘사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에 메가라가 도발하듯 빈정거렸다.


“야, 접어라 접어. 내가 보기에 안나 쟤는 그냥 찐 헤테로년이야.”


“네가 무슨 말하는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리고 말조심해. 년이라니.”


엘사가 발걸음을 멈추고 메가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님 말고~”


메가라는 엘사를 약 올리듯 이죽거리며 엘사가 부축하던 어깨를 내팽겨 치고는 쌩 하고 먼저 달려갔다. 남겨진 엘사는 그 자리에 서서 메가라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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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읽어줘서 고맙다 쥬미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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