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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가장 따뜻한 색, 블루 16

La vie(175.195) 2020.02.07 17:25:59
조회 692 추천 52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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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는 자신을 부르는 메가라를 뒤로 한 채 미친 듯이 달렸다. 한 번도 이렇게 전속력으로 뛰어본 적이 없어 그 어느 때 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제 몸이 마치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큰 행사가 있는 날에 대중교통이 제대로 운행되고 있을 리 없었다. 번화가에 다다르자 차도에도 인도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려 도무지 속력을 낼 수가 없었다.


엘사는 빼곡한 인파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무작정 달렸다. 그러다 여기저기 긁히고 넘어져 이미 팔다리는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제 몸에 생채기가 나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르고 엘사는 계속 달렸다.


이윽고 테러가 났다는 공원에 도착한 엘사는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와 흡사 전쟁터를 떠오르게 하는 현장에 더 겁이 났다. 눈으로는 재빠르게 안나를 찾았다. 밀려나오는 인파들에 역주행 하며 헤쳐 나가는 엘사를 보고 몇몇 사람이 제지하려 했지만, 엘사는 이를 무시하며 안나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열심히 사람들을 제치며 공원으로 들어오는 와중에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며 엘사는 점점 더 겁에 질렸다.


“안나!! 제발...제발...!”


엘사는 안나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미친 사람마냥 온 공원을 헤치고 다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 이제는 어느 정도 사람들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리저리 열심히 안나를 찾아 헤매던 엘사는 저 멀리 웅크리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붉은 머리, 그리고... 안나가 즐겨 입던 초록색 남방.


“안나!!!”


엘사는 몇 백번, 아니 셀 수 없을 만큼 불렀던 그 이름을 부르며 여자를 향해 달렸다.



*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비명소리에 공원은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질서 없이 서로를 밀치며 달려 나가기 시작했고, 안나와 라푼젤 역시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채로 인파에 떠밀려 가고 있었다.


모두가 혼란에 빠진 와중에 총성이 한 번 더 울리자 현장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가 되었다. 치열한 몸싸움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넘어졌고,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밟고 지나가며 이곳저곳에서 곡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재난 영화를 방불케 하는 광경에 안나는 다리가 후들거려 한걸음도 떼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무작정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까, 안나는 라푼젤이 옆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


“라푼젤!!”


안나는 자신이 뛰어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미친 듯이 라푼젤의 이름을 외쳐댔다. 그 순간, 수많은 인파 속에서 어린 아이가 넘어져있는 채로 몸을 둥글게 말고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안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 아이를 구해야해, 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안나는 반사적으로 뛰어들어 아이를 감싸 안았다. 겁에 질려 광기 어린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안나를 밟고 밀치며 지나갔다.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고통에 그냥 기절해버리고 싶었지만, 제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있는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나는 괜찮아, 괜찮아. 조금만 참아. 라고 속삭이며 아이를 달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소리와 함께 타이어가 마모되어 타는 냄새가 났고, 불빛이 번쩍이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마담, 괜찮습니까?”


이윽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며 바쁘면서도 어지러운 소리들이 들려왔고, 저 멀리서 총성이 한 번 더 들려왔다.


“저는 괜찮아요... 그것보다 이 아이 먼저...”


안나는 여태껏 제 품에 꽉 안고 있던 아이를 풀어 경찰관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말 할 수 없는 통증이 안나의 몸을 지배해왔다.


“...윽!”


안나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그래도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던 통증이 물 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곧 앰뷸런스가 올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


안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경찰관이 침착하게 말했다. 이제껏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붙잡고 있던 정신 줄이 곧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익숙하고도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나!!!”


안나는 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 환청이 들리는구나, 생각하던 참에 누군가 저를 끌어안는 것을 느꼈다. 곧 제 어깨가 축축이 젖어오는 것을 느끼며 몸을 살짝 떼고는 지금 제 몸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엘사...? 여긴 어떻게...”


안나가 꺼져가는 목소리로 낮게 읊조리자 엘사는 눈물범벅이 되어 엉망이 된 얼굴로 안나를 마주했다.


“안나, 괜찮아? 많이 다쳤어? 아니야 말하지 마. 이제 다 끝났어. 괜찮아. 조금만 참아.”


답지 않게 횡설수설하는 엘사를 보며 안나는 이 와중에 엘사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건가? 그치, 엘사는 언제나 나를 걱정해줬지...


“전 괜찮아요.”


안나는 엘사를 안심시키려 엘사의 어깨를 힘 있게 붙잡으며 말했다. 대충 눈으로 슥 훑은 엘사는 엉망이었다. 신발은 짝짝이에, 팔다리는 다 까져서 피는 철철 나고... 내가 걱정돼서 이렇게 자기 몸도 사리지 않고 무작정 뛰쳐나온 건가. 안나는 처음 보는 엘사의 흐트러진 모습에 괜히 미안함을 느꼈다.


“미안해요... 또 걱정만 끼쳤네.”


“아니야, 안나. 미안해. 내가 미안해...”


이 언니는 또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안나는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가는 와중에 보고 싶었던 엘사의 얼굴을 눈을 맞추며 끝까지 응시했다.


눈물로 젖은 엘사의 눈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곧 빠져들 것 같이 깊은 바다처럼 푸르게 빛나는 눈. 안나는 항상 엘사의 눈을 보며 아름답지만 차갑고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엘사의 눈빛은 그 어느 때 보다 뜨거웠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불꽃이 가장 높은 온도를 낼 때는 붉은 빛이 아닌 푸른 빛을 낸다고.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엘사의 눈이 그러하듯.



따뜻하다. 나를 바라보는 엘사의 눈빛이.



‘엘사도 나를 사랑해.’


안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 때문에 눈을 감으면서도 끝까지 엘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


이번 화에 이 픽에 꼭 쓰고 싶었던 문장을 드디어 쓰게 되었네!!

픽 제목도 영화에서 따온거긴 하지만 이번 화가 그래도 이 픽 제목의 뜻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회차이지 않을까 싶음ㅎㅎ

이번 화는 정말 내 필력에 한계를 최고치로 느끼게되는 회차였다...


오늘도 읽어줘서 고마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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