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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일과 즐거움 6-1화

믇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10 13: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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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6-1화

“이제 네 차례야 엘사. Truth or Dare*?” 안나가 베개를 가슴팍에 감싸 안았다.


* Truth or Dare 는 미국판 진실게임이다. 한국에서는 질문한 뒤에 벌칙을 수행할지 진실을 말할지 고를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진실 아니면 벌칙을 고른 후에 질문한다. 좀 더 리스크가 큰셈. 딱히 진실게임으로 번역하면 문맥이 안 맞아서, 이하 계속 원문으로 내버려둠.


둘은 라크로스 경기에서 10 대 5 승리를 거둔 뒤 자축하는 의미로 안나네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는 중이었다. 파자마 파티가 살짝 애 같은 느낌은 있었지만, 엘사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에, 그냥 하기로 했다. 그들은 경기를 뛰었을 때의 소비했던 에너지를 피자 두 판으로 채웠다. 그리고 안나네 집에 있던 수영장에 잠시 몸을 담갔다가, 거의 작은 소대를 먹을 수 있는 양의 쿠키를 구웠고, 이제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진실게임을 하고 있었다.


엘사는 게임 내내 진실을 고르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케첩을 병째로 먹는다는지, 오래된 어항을 머리에 쓰고 춤을 춘다든지, 그런 바보 같은 벌칙을 수행했다. 엘사는 안나의 입에서 나올 질문이 여고생의 클리셰같은 질문일 것을 알고 있었고, 그저 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몰랐다.


첫 경기가 있기 며칠 전에, 엘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안나에게 예쁘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런 것을 할 수 있는지 보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안나의 반응이 가장 궁금했다. 불행히도 안나는 그저 웃어넘겼다. 하지만 안나에게서 역겹다는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어떤 이상한 놈 둘이 접근했고, 그 중 하나가 엘사에게 관심을 보이자, 안나가 죽빵을 날려 쓰러뜨려 버렸다. 아무리 그 남자가 적절치 못한 식으로 관심을 보였어도, 자신의 절친에게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엘사는 알고 있었다.


안나는 그냥 순수하게 도와주려고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거기에 뭔가 다른 의도가 있거나.


엘사는 이제 완벽한 기회가 오면 무조건 고백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들의 우정이 무너져도 말이다. 빨간머리 여자애를 향한 엘사의 마음은 첫날 영어 시간 이후로 계속 커져만 갔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들은 그녀를 두렵게 했다. 그녀가 하고 싶은 말들은 언제든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Dare.” 엘사가 여섯 번째 쯤 대답한 것 같았다. 아직도 그 완벽한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안나가 고개를 뒤로 넘기며 짜증 냈다. “엘사 진짜 이러기야. 지금까지 계속 벌칙만 골랐잖아.”


엘사가 으쓱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난 벌칙 하는 거 두렵지 않아.”


“그래그래, 그래서 오늘도 기회가 나올 때마다 수비수하고 일대일 한 거겠지. 오늘 나 경기장에서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 안나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바로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보였고, 엘사는 안나의 눈빛에서 머리 굴리는 것이 보였다. “알겠어. 그럼 벌칙으로… 질문에 답해.”


“그게 뭐야!” 엘사가 좀 빠르게 말했다. “그렇게 질문에 대답하게 하는 게 어딨어! 규칙대로 해야지.” 엘사는 안나가 운동장 위에서도 얼마나 얍삽한지 잊었다.


“그럼, 내가 내일 진실게임협회에 가서 공식적으로 사과할게.” 안나가 두 손을 들었다. 그녀는 자리를 옮겨 엘사 옆으로 다가온 후, 무릎에 있던 베개에 손을 올렸다. “아니면 네가 지금이라도 Truth 를 고르든가. 근데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네. 그래서… 질문 들을 준비는 됐어?”


엘사는 최대한 호흡을 가다듬었다. 둘은 지금까지 이렇게 가까웠던 적이 없었다. 교실에서는 책상 사이가 떨어져 있었고, 점심시간에는 항상 엘사가 안나를 마주 보고 앉았다. 한 번도 옆에 앉은 적은 없었다. 심지어 탈의실에조차도 둘 사이에 락커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둘을 갈라놓는 것은 없었고, 침대에 단둘이 있었다.


안나의 침대에.


엘사는 정상적인 인간처럼 호흡을 가는 것에 처참히 실패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준비됐어.”


“학교에 좋아하는 애 있어?” 마치 데일 밴드를 뜯어버리는 것 같았다.


엘사는 좀 뻔하게 한숨을 쉬었고,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엘사는 순간 심장이 두 배는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어, 있어.”


“그 여자애 이름 뭔데?”


설마… 설마… “방금 뭐라고, 안나?” 안나는 방금 그 질문을 너무 자연스럽게 해서 엘사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걔 이름 뭔데?”


엘사는 자신의 붉은 얼굴을 저 멀리서도 포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지금 1 센티 옆에 있는 안나는 바로 알겠지. 얘는 언제 이렇게 가까이 왔지?


안나의 이름이 엘사의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이었다. 항상 안나가 자신을 두근거리게 하듯 웃으며 밝게 그녀의 이름을 말할 준비가 돼 있었다. 이렇게 더운 곳에서 엘사는 진짜로 자신의 몸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엘사는 지금이 완벽에 가장 가까운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밥상을 다 차려졌고, 이제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엘사가 입을 열기 직전에, 그 기회는 날아가 버렸다. 안나는 뒤로 한 뼘 정도 물러갔지만, 엘사의 눈에는 몇 킬로미터는 뒤로 물러간 것 같았다. 안나는 기침 소린지 웃음소린지 분간되지 않는 소리를 내었다. “미안해… 질문이 한 개보다 많았네.”


“어, 어. 그래.” 엘사는 지금까지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실치 않았다.


한 1초 동안 안나는… 달라 보였다. 엘사의 눈에는 항상 자신감에 차있고, 밝고, 남을 배려하는 안나는 잠깐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그녀의 미소는 평소처럼 크거나 생기 넘치지 않았고, 뭔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안나는 여기 있었지만, 동시에 진짜 안나는 여기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자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1초가 늦었다.


안나가 허리를 펴고 베개를 하나 집은 뒤 가슴팍에 껴안았다. “그럼 내 차례지? 난 Truth.”


=================================================================


엘사가 핸드폰을 누르더니 책상에 올려두었다. “너한테 딱 10분 줄 거야.” 10분은 충분하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안나에게 주어질 만한 시간보다 훨씬 길었다. 그녀가 그때 그대로라면, 아마 바로 얼음이 될 것이다.


만약에 그때 그대로라면…


일단 지금까지는 엘사의 가정이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안나는 아직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몇 초가 지났고, 그 뒤로 한 3분이 지났다. 엘사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숨기기 위해 입 안을 깨물었다. 굳이 엘레베이터를 멈추게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냥 지금처럼 안나가 자신의 앞에 있는 상태에서 벌벌 떠는 것을 내려다보면 되는 것이었다.


엘사는 이 모든 것을 즐겼을 것이다. 엘사는 안나가 이렇게 슬퍼 보이지만 않았다면, 복수의 쾌감을 느끼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안나는 왜 이렇게 슬퍼 보였을까? 모든 것을 망치고 있었다. 그녀가 그냥 두려워하고, 짜증 냈으면 전부 다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청록색 눈빛은 엘사의 기쁨을 망친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다른 것도, 죄책감일까?


그리고 상황은 더 악화됐다.


안나는 입을 열고 자신을 바보처럼 보이게 하지 않았다. 계속 가까이 다가왔다. 더 가까이. 안나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엘사는 자신이 없어졌다. 둘 사이의 거리와 침묵이 엘사의 방패였다. 몇 년간 묵혀둔 감정들이 터져 나오는 것으로부터 막아주고 있었지만, 안나가 가까이 오면서 그 방패막을 부숴버리고 있었다. 둘은 지금 몇 년 전처럼 아주 가까웠다. 엘사는 지금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그 감정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엘사가 먼저 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안나가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엘사에게 팔을 감고 껴안았다.


“안나, 이게 지금 뭐---”


“미안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정말 잘못된 것이었지만 엘사는… 그저 내버려뒀다. 그녀의 손은 안나를 앞에 두고 어디에 가 있을지 몰랐지만, 그녀를 밀쳐내지는 않았다.


포옹이 계속될수록 엘사는 자신의 셔츠가 점점 젖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안나는 엘사의 블라우스에 대고 울고 있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됐다. 왜 이런 걸까?


시간이 멈추었고, 엘사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오래 이런 상태로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을 거스르는 이 공간 속에서 엘사는 부드러운 작은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정말 미안해. 엘사. 너무… 너무 미안해.” 안나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해서 미안해...”


그녀의 손이… 만약에 안나의 몸에 닿기라도 하면 끝이었다. 지금까지 엘사가 가지고 있던 주도권을 안나에게 주는 행위였다. 그렇지만 모든 고통, 후회, 분노도 같이 끝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개방하지 않았던 자신의 머릿속 한켠에서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엘사는 그럴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엘사는 자신에게 되뇌었다.



읽어줘서 고마워. 지적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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