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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청혼하러 가는 길(5)

ㅇㅇ(125.129) 2020.03.04 20:13:32
조회 783 추천 58 댓글 15

엘사 이 멍청이! 차라리 그냥 거기 두고 왔어야지!

엘사는 그 순간 안나를 밀어내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비틀대는 안나를 부축하며 한 걸음을 뗐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자신의 체력이 안 좋은 건지 안나의 체력이 좋은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안나가 제 목을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 통에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안나를 부축하고 있었다.


“헉, 헉..안나, 제발…”


“으응, 엘사..”


앞으로 가려는 엘사와는 반대로 안나는 점점 땅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안나의 팔이 엘사에게서 떨어지자 어깨 끈이 흘러내리면서 드레스가 살짝 내려갔다.

순간적으로 안나의 가슴 윗부분이 살짝 보이자 엘사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옷이 더 이상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안나를 끌어안았다.

안돼. 누가 보면 절대로 안 돼.

하지만 안나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결국 한참을 낑낑대던 끝에 엘사는 안나를 거의 끌고 오다시피 해서 겨우 연회장 앞까지 올 수 있었다.


“안나, 제발 정신차려요!”


“..응..정신 차렸..어요..”


안나의 입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몸은 아니었다.

엘사는 힘겹게 한 계단을 오르며 계속 안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나, 걸을 수 있겠어요? 곧 연회장이니까..”


“..으응…싫어..하지 마..”


“안나, 잠시..”


짝!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엘사는 자신의 얼굴이 큰 충격과 함께 돌아가는 걸 느꼈다.

그 반동으로 엘사는 뒤로 넘어지고 안나는 앞으로 쓰러졌다.

다행인 점은 자신이 넘어진 곳은 풀밭이었고, 쓰러지는 안나는 누군가 잡았다는 점이었다.


“감히 내 동생에게 무슨 짓이야!!”


“..?..”


“겁도 없이 내 동생을 건드려?!!”


엘사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뺨이 얼얼한 것과는 별개로 쓰러진 안나를 안고 있는 남자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속삭임, 멀리서 뛰어오고 있는 한스를 보며 최대한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경비병! 당장 저 자를 감옥에 가둬!!”


“엘사!! 폐하, 잠시만요!!”


순간 엘사를 잡으려는 경비병을 제지한 건 한스였다.

한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바닥에 넘어져 볼을 부여잡고 있는 엘사와 안나를 안고 있는 크리스토프. 여기 까지라면 크리스토프가 화를 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겠지만 결정적인 이유가 눈에 보였다. 정신을 잃고 온 몸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안나와 어딘지 모르게 살짝 벗겨져 있는 안나의 옷. 거기다 왜 인지 모르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땀에 젖어 있는 엘사.


한스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엘사를 바라보았다. 절대 엘사가 그랬을 리 없지만 상황은 엘사에게 좋지 못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을 한스도 알고있었지만 자기가 어떻게 해 볼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폐하, 뭔가 오해가..”


“오해?! 감히 공주를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아?!! 경비병!! 당장 감옥에 가둬!”


“폐하!”


“한스! 그대도 갇혀 있기 싫으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지금 최대한 참고 있는거니까.”


크리스토프의 낮은 음성에 한스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엘사는 혼란스러웠다. 공주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저 여자가 왕의 동생이라는 거야?

경비병들은 엘사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엘사를 끌고 가버렸고 크리스토프는 안나를 안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한스는 황급히 엘사를 따라갔다. 

지금 크리스토프에게 엘사의 결백을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들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엘사는 절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젠장, 엘사! 말을 해! 그래야 널 도와줄 수 있어!”


한스의 말은 쇠창살 너머에 있는 엘사에겐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엘사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스가 경비병에게 겨우 사정사정해 가진 잠깐의 만남이 곧 끝나가고 있었다.


“지금 이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알아? 자칫하면 서던과 전쟁을 해야 할 수도 있어!”


“…… .”


“엘사!!”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한스였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흥분했을 때는 상황이 심각하단 뜻이겠지.

엘사는 고개를 들어 한스를 바라보았다. 한스는 쇠창살 앞을 걸어 다니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엘사 스스로도 대체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제 우연히 만난 여인을 오늘 또 만났는데 알고 보니 공주였다, 술에 취해서 데리고 온 것뿐이다.

그런데 우연히 옷이 조금 벗겨졌다. 대체 이 말을 누가 믿어줄까?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래, 하지만 왕은 널 믿지 않아. 대체 왜 공주와 같이 있던 거야?”


“난 그 사람이 공주인지도 몰랐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공주인걸 몰라?”


“…… ”


한스의 책망에 엘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저녁 식사에도, 연회장에서 왕과 공주를 소개할 때도 가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하, 그래. 백 번 양보해서 공주라는 걸 몰랐다고 하자. 하지만 아무도 안 믿을 거야.”


엘사는 크게 한숨 쉬며 벽에 몸을 기댔다. 한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서던 왕궁에 머무르고 있는 이상, 왕과 공주를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안나를 부축해서 연회장까지 데려온 것이 전부였지만 상황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놔두고 오는 건데.

그냥 미친 여자가 아니라 하필 공주라니.


“엘사, 지금 상황이 안 좋아. 나는 너를 믿지만 왕이 너를 믿을지 모르겠다.”


“...정원에 앉아있다가 술에 취한 공주를 부축해서 온 게 다야.”


“왜 정원에 간 거야? 아니, 정원에 간 건 그렇다 치자. 공주가 술에 취했으면 누군가를 불렀어야지!”


“애초에 공주인지도 몰랐다니까. 게다가 먼저 다가온 건 그쪽이라고!”


“아니, 공주가 왜 너 한테..! 하아, 왕은 네 말을 믿지 않을 거야.”


“...공주가 깨어나서 증언을 하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술에 취해 있던 공주가 기억이 있을지 모르겠다.”


엘사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어쩌면 한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설령 자신이 아무 짓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공주가 주변의 말을 듣고 그런 일을 당했다고 믿어버리거나, 공주가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젊은 왕이 그대로 믿을 지도 의문이었다.


“우선 내일 공주와 왕을 만나보도록 할 게.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 .”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쩌면 아렌델에 병력을 요청해야 할 수도 있어.”


“..전쟁은 안 돼.”


“네가 원하지 않아도 하게 될 지도 몰라. 서던의 왕에게 현재 상황이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을 테니.”


“…… .”


“그가 그 정도로 계산적이진 않은 것 같지만..어쨌든 내가 내일 다시 만나 볼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간수가 이제 가야한다고 알려왔다.

한스는 엘사에게 오늘 밤만 참으라고 하고 감옥을 나섰다.

엘사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기 위해서 그토록 불편 했던걸까.

거기다 하필 그 여인이 이 나라의 공주였다니. 그것도 이제 막 성년이 된 공주.

순간 엘사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작은 상자.

한스가 아침에 준 상자였다. 


“하아..”


엘사는 상자를 열어 목걸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전해주지 못 할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일이 흘러갈 줄이야.

왜 하필 자신에게 왔을까? 왜 하필 공주여서는..

거기다 제대로 된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감옥에 있는 자신의 처지에 실소가 나왔다.

아니, 애초에 변명을 했더라도 왕이 믿어줬을까?

뼛속까지 시린 감옥에서 불현듯 생각난 안나의 온기에 엘사는 몸을 떨었다.

자신을 감쌌던 온기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엮이는게 아니었는데. 


모든 것이 최악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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