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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고어]Praying prey 49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22 22:25:06
조회 447 추천 55 댓글 11

1~45화 링크.


46~47화

48화








130.


안나 일행은 문 밖으로 나섰지만, 이미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부서진 창가로 총에 부착된 전술 조명들이 저택을 내부를 어지럽게 비추고 있었고, 겁이 없다고 생각되는 적들이 빠르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안나가 mp5로 먼저 제압하면 그만이지만, 숫자로 밀고 들어온다면 승산이 없었다. 안나에게 주어진 총과 총알은 한정되어 있었고, 챙겨야 할 사람들이 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다시 들어..."


안나는 일행에게 지시하려 했지만, 적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계단에서 적들 중 하나가 던진 핀 뽑힌 수류탄이 벽에 튕겨 3층 복도로 떨어졌다.


"모두 피해!"


안나는 소리질렀다. 겨우 몇 초 안에 터질 수류탄의 파편은 복도에 있는 모든 살덩이를 찢어발길 예정이었다. 모두가 방 안으로 대피할 수 없었다. 안나라면 가능하겠지만, 아이들은 대처 능력이 떨어졌고, 한나는 사람 하나를 데리고 있었다. 안나는 어떻게든 수류탄을 발로 차 계단 밖으로 굴려보내려 했지만, 안나와 수류탄 사이엔 거리가 있었다. 발로 차려고 하면 피할 수 없고, 차지 않는다고 뜻대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안나는 최대한 뒤의 일행들과 동선을 겹쳐 수류탄 파편을 막아보기로 했다. 안나는 죽겠지만, 적어도 뒤의 세 사람은 파편에 휘말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거라 안나는 생각했다. 조금만 버티면 메가라의 파견팀이 오겠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문득, 안나는 한스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기억했다. 어쩌면 안나는 이두나를 다시 만나길 원하고 있어서, 그로기 상태에 빠진 용기를 다시 끌어내 수류탄 앞에 선 것일 수도 있었다. 엘사가 치료한들, 멜리사가 치료한들 이두나가 깨지 못할 가능성은 절대적으로 컸다. 차라리 이렇게라도 이두나의 곁에 다가가는 것이 안나가 원하던 결말일 수도 있었다.





"안 돼!"




그 때, 안나의 이기적인 생각을 부정하듯, 안나의 앞으로 뛰쳐나간 검은 고양이가 있었다. 안나는 경악을 하면서 그것을 잡으려 했지만, 겨우 손가락 끝 몇 센티미터를 놔 두고 잡지 못해 흘려보냈다. 안나의 귓볼을 스치는, 마치 그 아이를 잡으려는 듯한 바람이 지나갔다. 멜리사가 안나의 앞으로 뛰어가더니, 간신히 얼음 벽 하나를 만들어 세웠다.


"어서 뒤로..."



멜리사가 고개를 돌려 안나에게 말했지만, 직후에 폭발이 있었다. 안나는 멜리사가 얼음 벽으로 폭발을 막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파편을 막아낼 수 있었다. 얼음벽은 파편들을 막은 뒤 얼음 조각이 되어 바닥에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하지만 안나는 그것에 내심 안심할 틈도 없이 충격으로 쓰러진 멜리사를 부축해 안아야 했다.



"멜리사, 괜찮....아."





안나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이, 그저 최악의 악몽이었다면 좋겠다고 느꼈다. 멜리사의 목에 박힌, 그 손가락 만한 파편 조각들이 그것이 꿈이 아니라고 안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대체 왜."


안나는 멜리사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그런 안나의 앞으로 한나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pp19를 들고 계단으로 뛰어가 적들에게 총을 쏘았다. 이윽고 한나의 총소리가 멎었다. 온 세상의 소리가 물에 젖은 듯 먹먹했다. 계단 밑에서 적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멜리."


멜리사는 기침을 하듯 피를 토해냈다. 마치 목이 가려운 듯 파편이 박힌 주위를 긁으려 했지만, 팔은 쉽게 들어올리지 못했다. 슈트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이거 꿈이지?"


안나는 맥없이 실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멜리사가 지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얼음 벽을 만들 때, 그래도 하나 정도는 더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 안나였지만, 그건 불행이었다. 멜리사는 얼음 벽을 만들 때, 윗부분에 능력을 집중시켰고, 정작 멜리사의 키에 해당하는 부분은 약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언....니이...."


멜리사가 겨우 안나를 불렀다.




"대체 왜! 왜 막은 거야, 왜!"




안나는 또 다시 울부짖었다.





"내가 막았다면 넌 살 수 있었어, 근데 왜 막은 거냐고!"




안나는 멜리사의 몸을 부여잡았다.



"내가 말했잖아, 엘사와 같이 웃고, 울어주라고. 근데 왜 지금...왜...."




안나의 눈물은 멜리사의 눈물에 섞여 흘러내렸다.



"언....니가..."




멜리사가 기침을 했고, 파우치에 멜리사의 피가 튀었다.



"날....받아줬잖아."



"말 하지마. 피 더 나오니까, 제발 말하지마..."


언니가 부탁할게. 안나는 멜리사의 볼에 이마를 부비며 안절부절거렸다.



"엘사, 엘사!"


안나는 멜리사를 안고, 이두나의 시체를 지나 누워있는 엘사에게 기어갔다.


"일어..일어나봐. 멜리사...멜리사 좀.."



엘사를 깨우려는 안나를 멜리사가 머리를 안나의 복부에 가볍게 받으며 제지했다.


"엘사...능력은.. 나한테...안돼.."



멜리사가 팔을 떨었다. 안나가 멜리사의 팔을 잡았지만, 그 떨림은 안나의 손힘으로도 제어할 수 없었다. 그 팔은 처음 멜리사를 와이어를 묶어 생긴 상처를 치료하려고 안나가 감아 묶은 붕대가 조금 풀려 있었다. 붕대의 틈 속으로 보인 멜리사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었다.



"이제...다 나을 줄 알았..데."



멜리사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져 예쁜 눈송이들이 떨어졌다. 멜리사가 여태까지 만들었던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눈송이들이, 가장 슬픈 순간에 만들어졌다.



"다시...다쳐버렸어. 미..안."


"미안하면 제발.... 떠나지마. 날 떠나지 말아줘. 제발...."


안나는 멜리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난 너희 없으면 안 돼. 그러니까 제발!"


안나가 소리쳤다. 안나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소리내어 비명을 지르듯 울었다.


"날 버리지 마!"



어린 시절 부모님과 이별한 슬픔, 엘사와 이별한 슬픔, 친구였던 뮬란을 잃은 슬픔, 그리고 다시 만난 어머니와의 이별, 그리고 멜리사와의 이별. 안나는 이제 더 버틸 수 없었다. 더 이상 죽음에서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왜...왜."



안나는 멜리사의 머리에 이마를 파묻었다. 멜리사의 피는 안나의 소매를 적셔 흘러내렸다. 멜리사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 안나의 코에 볼을 부비었다.


"따뜻..해."


안나는 더욱 소리내어 울었다. 누가 듣던 개의치 않고, 귀가 먹먹해지고, 목에서 피가 새어나올 정도로 크게 울었다.



"..언..니."


멜리사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져갔다. 안나는 멜리사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멜리사가 한 번 더 기침을 했고, 이번엔 피에 섞인 파편 가루가 바닥에 붉은 유화 물감처럼 흩뿌려졌다.



"이글루...멋졌지?"




그 한마디는 멜리사 아렌이, 안나 아렌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멜리사의 작은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떨림을 멈췄고, 두 눈은 반쯤 감겨 있어 아무도 없는 허공을 응시했다.


"응....그러니까."


멜리사는 안나의 대답을 듣을 수 없었다. 안나는 멜리사가 아직 의식이 남아있다고 착각했다.


"엘사하고 같이 캠핑 가자, 가서 즐겁게 놀아줄 테니까...."


안나는 멜리사의 이글루를 떠올렸다. 푸른 빛이 은은하게 도는, 멜리사가 처음 만들어낸 아름다운 조형물을 이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한 번만... 더 만들어줘."


멜리사의 대답은 없었다. 안나는 고개를 조금 들어, 멜리사를 내려다 보았다.






안나 브라이트는 자신이 안나 아렌임을 알았을 때, 한 아렌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두 아렌과 이별했다.
안나 아렌은 또 다시 슬픔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그토록 끝내고 싶어했던, 아렌의 마지막 밤이었다.










131.

'미친새끼들.'


수도 없이 많은 돼지와 인형을 죽여온 한나는 누군가를 해치는 것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그래서 한나는 거리낌 없이 아군이 될 뻔한 새로운 복면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그들이 던진 수류탄에 엘사와 같은 성을 가진 가족이 폭발에 휘말렸다. 엘사의 가족은 곧 안나의 가족이자, 한나의 가족이었다. 그것은 곧 한나의 일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비극을 마주한 안나 아렌을 보고, 한나는 저도 모르게 '씨발'이라는 단어를 배우고 말았다.




적들은 바람과 함께 튀어나온 한나 아렌을 보고 당황했고, 한나는 그들에게 틈을 주지 않고 기관단총의 방아쇠를 꾹 당겼다. 계단을 올라오는 적들 중 2명에게 30여발의 총알이 벌집처럼 박혔고, 두 적은 밑으로 굴러 떨어져 올라오는 적들에게 도미노처럼 엎어졌다. 한나는 곧바로 이고르에게 받았던 '마체테'라는 넓은 칼을 빼 계단에서 뛰어내렸다. 넘어지지 않게 바람으로 적당히 조절한 다음, 적들의 시체를 치우려는 남은 적들에게 도끼처럼 칼을 휘둘렀다.




팔이 잘리고, 폐가 뚫렸다. 피에 젖은 비명이 계단을 가득 메웠지만, 익히 들어왔던 돼지들의 단말마와 다를 게 없고, 그저 걷는 다리 수만 다를 뿐이라고 한나는 생각했다. 마지막이자 계단 첫 단에 머물러 있는 적이 총구를 한나에게 들자, 한나는 목을 베어냈던 시체의 몸통을 바람을 이용해 들어 적을 향해 던졌다. 극심한 피로가 찾아왔음을 느낌과 동시에, 머리 잃은 몸통은 그대로 남은 한 명의 적에게 부딪혔다. 적의 자세가 무너지자, 한나는 두 손으로 마체테를 잡고 적을 향해 던졌다. 무거운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마체테는 적의 눈을 뚫고 두개골을 박살냈다.



안나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적이 계단에 머리를 박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 한나는 순간 아득해진 정신을 부여잡지 못해 계단을 굴러떨어지듯 내려왔다. 어지러운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난 한나는 계단을 향해 몸을 돌렸다. 계단 곳곳에 크고 작은 육편이 널브러져 있었다. 인형을 죽였을 때를, 한나는 다시 떠올렸다. 상황은 같았지만, 죽이기 위한 증오에서 지키기 위한 증오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한나는 거의 사라질 것 같은 의식을 붙잡고, 내려왔던 하얀 계단에서 붉은 계단으로 천천히, 한 걸음씩 올라갔다. 한 계단 씩 오를 때마다, 슬픔에 찬 비명과 속삭임이 들렸다. 가까워질 수록, 한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한나는 그 비극을 보고 왔고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걸음은 더욱 느려질 뿐이었다. 한나가 마지막 계단을 올라 3층 복도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곳에는 멜리사를 끌어 안고 비명과 울부짖음 사이에서 소리를 지르는 안나가 있었다. 한나는 안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내 안나의 앞에 멈춰선 한나는, 주먹을 쥐지 않고 그대로 안나 앞에 앉아, 안나를 끌어 안았다.


"멜리사아아....이두나아아....."


안나는 한나의 두터운 방탄복에 얼굴을 파묻었다. 울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한나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그저 안나 아렌의 등을 토닥이고, 딱딱하게 굳은  멜리사의 손을 잡을 뿐이었다. 부서진 창가 밖으로 어두운 밤과, 작은 별, 그리고 기울어진 반달이 보였다. 다시금 조용해진 세상 속에서 안나의 울음과, 한나의 한숨이 섞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울다 지친 안나는 한나의 품에서 잠이 들 듯 의식을 잃었다. 이제 깨어 있는 사람은 한나밖에 없었다. 한나는 품에 안은 안나, 그리고 안나의 품에 안긴 멜리사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쓰러져 있는 이두나의 시체와 엘사를 바라보았다. 한나의 귓가에 적막한 바람이 묻었다. 한나는 바람 한 줄기를 손가락으로 끌어 혼절한 안나의 이마에 쓸어내렸다. 안나의 이마에 맺혀진 땀이라도 식혀주며, 이렇게라도 안나의 깎여진 마음을 쓰다듬고 싶었다.




저 멀리서, 또 다시 차량의 소리가 들려왔다. 한나는 안나를 복도에 조심스럽게 눕혀 놓은 다음,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한나는 적들의 시체에서 총 한 자루와, 머리에 박혀 있는 마체테를 뽑아 들었다. 어느덧 한나는 식은 피들이 잔뜩 묻어있는 2층의 복도를 스쳐 지나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왔다. 현관에 두 시체가 쓰러져 있었고, 현관 너머에도 두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적들이 타고 온 두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한나를 비추고 있었다.



한나가 들은 건 이들의 소리가 아니었다. 가까운 차량의 뒤쪽의 어둠 속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아주 희미하게 모래 밟는 소리가 들렸다. 한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 적들의 움직임을 들으려 했지만 조금씩 눈 앞이 흐려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체력에 한계가 찾아온 것처럼, 한나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바람을 만들어 적들을 넘어뜨리고, 총을 쏴 죽이려는 한나의 잘 짜여진 계획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주먹으로 귀를 맞은 것처럼 들려오는 모든 소리들이 조금씩 먹먹해졌다.





"안...돼는데...."




한나는 고개를 들었다. 흐릿했지만, 한나는 눈 앞에 있는 무장한 사람들이 한나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검고 작은 구멍들에서 나온 금속 조각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의 머리를 관통할 예정이었다. 한나는 체념하듯 고개를 천천히 내렸다. 그런 한나에게 총을 조준한 자들 중 한 명이 조용히 주먹을 치켜 들었다.











그 장면은 한나가 의식을 가졌을 때 마지막으로 목격한, 아렌의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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