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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청혼하러 가는 길(24)

ㅇㅇ(222.110) 2020.04.04 13:05:35
조회 650 추천 47 댓글 14


안나는 엘사를 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애원에 가까운 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엘사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고 있는 느낌이었다. 

고통스러워 하는 그 얼굴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안아주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저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엘사를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 때문에 잡는다면 엘사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들을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함께 할 수 없었다. 

루나드나 한스가 뭐라고 했든지 간에 상관없었다. 서던에서 엘사가 왕이 되어 야만 하는 이유를 알려줬을 때 생각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엘사를 잡진 않겠다고. 엘사에게 왕위와 부모님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안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엘사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졌다.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가 순간 안나의 마음을 흔들었지만 안나는 주먹을 꽉 쥐며 엘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엘사, 내게 말 했었죠. 당신은 꼭 왕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안나, 그건..”


“그때 당신이 내게 어떤 심정으로 말했었는지 내가 전부를 알 수는 없을거에요. 하지만..”


“…… .”


“그 이유 때문이라도 난 당신 곁에 있을 수 없어요.”


“무슨 말이에요?...”


“고작 나 때문에 당신이 가진 모든 걸 포기하지 말아요.”


“..안나?..”


“엘사, 나는 알아요. 당신에게 부모님과 왕위가 어떤 의미인지 내가 아는데..”


“…… .”


“내가...내가 어떻게 당신 곁에 있을 수 있겠어요? 나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버리라구요? 아니요, 엘사. 난 못해요.”


“안나, 나는..”


“절대..그런 말은 못 해요. 아니, 안 해요. 어떻게 그래요? 제발 나 때문에 왕위를 포기한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안나!”


“내 욕심 때문에 당신의 고통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어요. 엘사, 당신이 말했었죠?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설령 당신이 날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해도 난 행복하지 않을 거에요.”


“…….”


“당신의 마음을 아는데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요..”


“..안나.”


“..당신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이에요..”


그 순간 안나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은 엘사의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마치 자신의 세계가 서서히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불현듯 아렌델로 떠나기 직전 서던에서 한스와 나눴던 말이 엘사의 목을 옥죄어 오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네가 공주를 떠나게 만들거야.’


한스의 말 대로 엘사는 안나를 떠났었다. 엘사가 갖고 있는 의무, 죄책감 혹은 압박감이 안나의 곁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지금, 안나가 엘사의 곁을 떠나고 싶어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이유가 엘사 자신이었고. 

서로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상처가 될 까봐 떠나려 하고 있었다. 마치 두 선이 서로 교차했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안나는 자신과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안나의 어깨를 보며 엘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당신 곁에 있길 원하고 당신은 그것 때문에 날 떠나려 하는구나.


“안나.”


“…… .”


“나 좀 봐요.”


엘사는 안나의 얼굴을 보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안나는 그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안나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반쯤 숙여진 고개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충분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미안해요. 계속 당신을 울려서.”


“…… .”


“안나. 내가 당신에게 그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당신에게 솔직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당신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엘사는 안나에게 한발자국 다가섰다. 안나는 엘사에게서 도망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엘사는 안나의 손목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안나가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을 때 어두운 방 안에서 빛나는 푸른 눈동자가 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모든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난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하고 있으면 행복했어요.”


“…….”


“당신이 날 행복하게 만들었어요. 당신이 내 행복이에요.”


“…… .”


“그러니까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당신도 나와 있으면 행복했어요?”


“...엘사, 나는..”


“대답해줘요.”


안나는 자신을 몰아붙이는 엘사의 질문에 그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만약 그렇다고 대답했으면 주체할 수 없는 이 감정이 봇물 터지는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엘사는 안나의 침묵만으로도 충분했는지 안나의 허리를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안나.”


“…….”


“당신은 더 욕심 부려도 돼요. 그럴 자격 있어요.”


“..엘사?”


“미안해요. 못 놔줘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엘사는 안나의 얼굴을 잡고 입을 맞췄다. 엘사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하는 안나의 노력이 무색할만큼 엘사와의 입맞춤은 너무나 달콤했다. 

부드러운 입술과 조금씩 뜨거워지는 몸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아..엘사..”


달뜬 숨을 몰아쉬며 엘사를 보니 이성이 반쯤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뒷걸음치던 안나의 뒤에는 이제 침대 뿐이었다. 

결국 침대 위로 넘어진 안나를 보며 엘사는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놔주지 않겠다고. 엘사는 가볍게 안나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작게 속삭였다.


“난 당신을 원해요. 그러니 당신도..”


“..읏..”


“날 원한다고 해요.”


엘사는 천천히 안나의 턱선을 따라 입을 맞추며 한 손으로는 안나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안나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엘사를 밀어낼 수 없었다. 

오히려 원하는 걸로 따지자면 안나가 엘사를 훨씬 더 원하고 있었다. 엘사가 떠난 뒤로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엘사에게 안나는 행복이었듯이 안나에게 엘사는 전부였다.

안나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며 결국 엘사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엘사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당신을 원해요.


그 순간 밤하늘 같은 푸른 눈과 마법의 숲 같은 녹색 눈이 서로 섞여 들었다. 

아렌델에서의 새벽, 두 사람이 그토록 원하던 순간이었다.














한스는 아침 일찍부터 루나드가 자신을 부른 것이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분명 엘사를 부를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신과는 이미 끝난 일이라고 여겼다. 한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루나드 앞에 앉자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 뜨면서 한스를 바라보았다.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불렀다.”


“예, 폐하.”


한스는 루나드의 말을 기다렸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가 화가 났다거나 불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전날 그가 안나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몰라도 자신과는 더 이상 상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안나도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고 말했고 그도 더 이상 일에 연관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 와서 루나드가 자신에게 할 말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안나 공주에게 청혼하길 원하느냐?”


“예?”


“공주를 원하는지 물었다.”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안나 공주는 제가 아닌 엘사를 좋아합니다.”


“네가 원하면 너와 안나 공주의 결혼을 서던에 제안해보마.”


“폐하?”


“아쉽지만 정치란게 한 때의 감정으로 하는게 아니라서 말이다.”


루나드의 말은 한스를 당혹스럽게 하기 좋았다. 한스는 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분명 안나가 자신에게 감정이 없는 것도 알고, 엘사와 안나가 서로 좋아하는 것도 아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루나드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정치적인 이유라고 해도 한스에게 선택지를 주는 것은 루나드에게 이득 될 것이 없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네가 그 동안 엘사의 곁에서 해온 일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 두지.”


“폐하, 전 보상을 바라고 지금까지 있던 게 아닙니다.”


“한스. 너는 나를 냉정한 사람으로 생각할지 몰라도 난 꽤 감정적인 사람이다. 내가 엘사만 걱정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구나. 나는 엘사도, 너도 상처받는 걸 원치 않는다.”


“…… .”


“그래서 이번엔 네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호의라고 생각해라.”


“..?..”


“나는 너에게 열쇠를 쥐어 줬다. 그러니 문을 열지 말지는 네가 선택하도록.”


루나드는 무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 속은 그도 편치만은 않았다. 엘사와 한스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분명 안나 공주는 엘사나 한스에게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다만 엘사는 차기 왕이 될 사람이었고 왕비의 자리는 아렌델에 더 많은 이득을 줄 수 있는 가문이나 나라의 사람이 와야 했다. 한번 뿐인 기회였기 때문에 별 다른 이득도 없는 서던의 공주와 엘사를 결혼시킬 수는 없었다.

이것이 그가 왕으로서 내린 결정이었다. 망설임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한스에게 말을 꺼낸 이 순간에도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그는 아렌델의 왕으로서 엘사와 한스 모두를 위해 옳은 결정을 내린 거라고 스스로 믿고 있을 뿐이었다.


루나드의 말에 한스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처음으로 루나드가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루나드는 진심인 것 같았지만 한스에게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스에게 처음으로 루나드가 내민 손이었다. 항상 버림받을까 두려워했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내민 손.

그 손을 잡아야 할지는 이제 온전히 한스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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