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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청혼하러 가는 길(31)

ㅇㅇ(222.110) 2020.04.16 21:51:29
조회 533 추천 51 댓글 16


“뭔가 실망한 표정인데?”


안나의 방문 앞에는 크리스토프가 서 있었다. 크리스토프의 말에 안나는 아니라며 손을 저었지만 씁쓸한 표정까지는 감출 수 없었다. 

잠시 엘사라고 기대했던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그럴리가 없을 텐데.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의자에 앉았다. 안나가 그에게 무슨 일로 왔는지 묻자 그는 웃으며 조그마한 꾸러미를 안나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요새 네가 힘이 없는 것 같아서 준비했어.”


안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꾸러미를 풀어보자 안에는 초콜릿이 가득했다.

순간 안나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자 크리스토프는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힘들 때는 단 것을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지니까.”


“고마워.”


안나는 웃으며 꾸러미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내 입에 넣었다. 달콤하면서 조금은 쌉쌀한 맛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완벽한 초콜릿이었다. 

너무 달지도 않고 모든 맛이 다 어우러지는 초콜릿.

잠시나마나 안나가 행복한 표정을 짓자 크리스토프는 만족한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고작 이런 것 뿐이라 미안했지만 안나의 얼굴을 보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실 혹시라도 초콜릿 작전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지하게 엘사를 납치하는 것에 대해 안나에게 물어볼 참이었다. 

안나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면서 화를 냈겠지만 그는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었다.


“일은 좀 어때?”


“으음, 그래도 밀린 것들은 거의 정리된 것 같아.”


“다행이네...음, 저기 안나.”


“응?”


크리스토프는 잠시 뜸을 들이며 안나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그가 여기 온 것은 단순히 초콜릿을 전해주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안나는 그런 크리스토프의 태도에 뭔가 수상하다는 듯 눈을 게슴츠레 뜨며 그에게 물었다.


“지금 나한테 부탁할거 있지?”


“하하하, 눈치는 참 빠르네. 부탁은 아니고..”


“그럼?”


“사실 너한테 혼담이 들어왔어.”


“뭐?..”


크리스토프의 말에 안나의 눈이 커졌다. 한눈에 봐도 그 혼담이 어디서 들어온 것인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혹시 아렌델은 아닌지 하는 기대감. 

그런 안나를 본 크리스토프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하는 그 마음을 크리스토프가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안나가 기다리는 곳은 아니었다.


“여기서 동쪽에 있는 왕국의 왕자야.”


“…….”


그 말에 안나는 온 몸에 힘이 빠진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안나에겐 엘사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크리스토프는 애써 웃으며 그는 꽤 잘생긴 미남이고 성격도 좋다고 했다. 안나의 성년식에도 왔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안나는 하나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손만 꼼지락 대며 대답대신 침묵을 지켰다.

크리스토프는 예상했다는 듯 짧은 한숨과 함께 안나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동생을 지켜보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건 강요는 아니야. 혹시라도..네가 관심이 있다면..”


“…….”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잖아..”


“..고마워. 그렇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아.”


“안나, 한번 생각이라도 해봐.”


크리스토프는 안나가 안타까운 듯 다시 권유했지만 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안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아마 자신을 생각해서 말을 꺼낸 것이었겠지만 안나에겐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자신은 엘사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렇기 떄문에 엘사여야 했다.

설령 평생을 기다림 속에 살아가야 한다 해도 엘사를 기다리는 것이라면 기꺼이 기다리겠다고 생각했다.

안나는 떨어지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크리스토프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그만 가줄래? 일이 아직 남아서..”


크리스토프는 그런 안나를 보며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조금은 울먹이는 목소리에 알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한 말을 꺼낸 것 같아 미안했다.


“그래, 그냥 해본 말이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는 마.”


그는 이해한다는 듯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방을 떠났다. 크리스토프가 떠나자 마자 안나는 어깨를 감싸 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엘사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사랑해요, 안나.’


그 말이 유일한 안나의 버팀목이었다. 분명 엘사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엘사가 자신을 잊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날마다 혹시 오늘은 소식이 올까 하는 마음에 기대를 하고 실망하길 반복하면서 안나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애달파졌다. 

무엇보다 엘사도 자신과 같은 마음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안나를 두렵게 했다.

조금씩 떨리는 몸이 이미 안나가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서웠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그저 거짓말처럼 끝나게 될 까봐.

안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엘사가 그리웠다. 아니, 엘사가 필요했다.












집무실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루나드와 엘사, 한스가 앉아있었지만 아무도 먼저 대화를 꺼내진 않았다. 엘사는 조심스럽게 루나드를 바라보았다. 

며칠만에 보는 루나드는 무표정으로 앞에 놓여있는 찻잔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한스가 툭 하고 탁자 밑으로 엘사의 발을 차며 눈빛을 보냈다.

먼저 얘기를 꺼내라는 신호.

엘사는 도저히 말을 먼저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만약 루나드가 끝까지 마음을 안 바꾼다면?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도 없었다.


“대화는 눈빛이 아니라 말로 하는거다.”


엘사와 한스의 심상치 않은 시선들을 느꼈는지 정적을 깨고 루나드가 말했다.

그의 말에 엘사와 한스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오늘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루나드는 의자 옆에 있는 작은 탁자에서 종이를 꺼내 보였다. 내용은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왕실 인장이 찍힌 것으로 보아 왕명을 적은 것이 분명했다. 

루나드는 엘사에게 종이를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이게 내 대답이다.”


“네?..”


엘사는 루나드에게서 서류를 건내 받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 순간 한스는 서류를 읽는 엘사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엘사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루나드에게 직접 물었다.


“저게 무슨 서류입니까?”


“청혼서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엘사는 종이를 내려놓고 루나드를 바라보았다. 한스도 어지간히 놀랐는지 루나드와 엘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루나드는 그런 둘의 시선을 무시한 채 찻잔에 있던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지..진심..이십니까?”


엘사는 마른 침을 삼키며 말을 더듬고 있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청혼서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진짜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진심인지는 모르겠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결정을 번복해야 하나 고민이 들 정도니까.”


“폐하!”


“하하하, 농담이다.”


“노..농담이라도 그런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이걸로 조금은 너와 네 부모에게 속죄할 수 있겠지.”


마지막 말은 루나드 혼자 중얼거린 말에 가까웠다. 엘사가 무슨 말인지 되물었으나 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엘사는 마른 침을 삼키며 루나드를 보다 다시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엔 정확하게 루나드의 서명과 왕실 인장이 찍혀있었다.


‘아렌델의 공주 엘사 아렌델은 서던의 안나 공주님의 자애로움과 현명함을 익히 들었습니다. 이에 안나 공주님께 감히 청혼하는 바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청하니 부디 위대한 서던의 왕과 현명한 공주께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시길 바랍니다.’

-엘사 아렌델 / 루나드 아렌델-


미사여구가 붙은 문장은 부끄러운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공식적인 문서였다. 공식적인 문서는 예법과 절차에 따라야 했다. 

엘사는 마른 침을 삼키며 다시 청혼서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엘사의 서명란은 아직 비어 있었다. 루나드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손녀에게 펜을 건네며 말했다.


“네 서명도 있어야 할 테니..”


엘사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잡아 자신의 서명을 넣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긴장한 탓인지 자꾸 손이 엇나가는 것 같았다. 

겨우 서명을 끝낸 엘사가 상기된 표정으로 루나드를 바라보았다.


루나드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엘사의 표정을 보고 자신의 결정이 꽤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없이 고민한 끝에 그가 내린 결정은 엘사의 행복을 위해 안나와 맺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아렌델이 최우선이 아닌 결정을 내렸다. 

왕으로서는 해선 안될 일이었지만 루나드는 왕으로서의 의무보다 상처를 안고 살아갈 손녀가 자꾸 눈에 밟혔다. 


“혹시 서던에서 거절한다 해도 내 탓은 말아라. 그것까진 어쩔 수 없으니.”


“..감사합니다.”


“축하해, 엘사.”


엘사는 진심으로 루나드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한스는 조금은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엘사를 보며 지금이라도 루나드가 마음을 돌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갖게 될 테니 이제 자신이 떠나도 엘사는 괜찮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스, 너에게도 줄 것이 있다. 내 성의라고 생각해라.”


그때 뜻밖의 말에 한스는 루나드와 엘사를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엘사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루나드는 한스에게 또 다른 종이를 주며 말했다.


“크게 읽어봐라.”


한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루나드가 건네는 것을 받아들었다. 역시 이 종이에도 왕실 인장과 루나드의 서명이 있었다. 한스는 천천히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아렌델을 위하여 그간 해온 일에 대해 공로를 인정하는 바, 한스에게 아렌델이라는 성을 내리고 남작의 작위를 내린다.’

- 루나드 아렌델-


한스의 동공이 커지며 마치 지금 자신이 읽은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는 루나드를 바라보았다. 한스는 고개를 저으며 루나드에게 외쳤다.


“폐하, 저..저는...이걸 받을 수 없습니다.”


“받기 싫다는 소리냐?”


“저는..!..”


한스는 마지막 말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마지막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엘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왕족이면서 왕족이 아니었다. 

반은 왕족의 피가 흐르지만 사생아였기 때문에 그를 진짜 왕족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아렌델에서 사생아는 성을 가질 수 없었다.

루나드가 그 모든 예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한스에게 성과 작위를 내린다는 것은 실로 굉장한 일이었다. 엘사는 안타깝다는 듯 한스를 바라보았다. 

루나드는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러냐는 듯 한스 대신 말을 꺼냈다.


“네가 사생아라서?”


“폐하! 한스는..”


엘사는 한스 대신 대답하려 했으나 루나드의 손짓에 입을 다물었다. 루나드는 다리를 꼰 채로 한스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능글맞게 자신의 말을 받던 녀석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루나드게 그에게 성과 작위를 내린 이유는 꼭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아니었다. 그가 엘사의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이고 절대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엘사와 한스는 자신이 직접 기른 아이들이었다. 사실 그 동안 한스의 처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가만히 두었던 이유는 오직 엘사 때문이었다. 

물론 아렌델이라는 성을 내렸다고 해서 왕족 대우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루나드에게는 후계자인 엘사가 안정되는 것이 우선이었다. 

괜한 분란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엘사와 안나의 결혼을 허락한 상태에서 더 이상 한스에 대한 처우 개선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사실 예법이나 절차는 이미 안나와 엘사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이럴 때 아렌델이 왕권이 강력한게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다른 신하나 귀족들의 말을 듣긴 하지만 루나드의 말은 거의 절대적이었으니까.


“한스, 내가 말 하지 않았느냐? 나는 너도, 엘사도 상처받길 원하지 않는다고.”


“…….”


“그리고 이게 지금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인 것 같구나.”


그 순간 엘사는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한스의 어깨를 보았다. 너무나 작은 떨림이라 쉽게 알아차리긴 힘들었지만 그는 분명 울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연신 눈을 비비며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종이를 보았다. 말은 한 적은 없지만 그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사생아라는 딱지가 저 종이 한장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엘사는 말없이 한스의 옆으로 가 그 어깨를 두드리며 안아주었다.

한스와 엘사 사이에 긴 말은 필요치 않았다. 한스가 그랬던 것처럼 엘사도 그의 행복을 빌어줄 뿐이었다.










늦은 밤, 엘사는 루나드의 방문을 두드렸다. 서던으로 떠나기 전 그와 한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들어오라는 소리와 함께 엘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램프의 불빛이 은은하게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루나드는 책을 내려놓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냥, 감사하단 말을 다시 드리고 싶었어요.”


조금은 머뭇거리는 엘사의 모습에 루나드는 앉으라고 권한 뒤 책을 옆으로 치웠다. 엘사가 앉자 루나드는 새삼스럽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엘사는 공주로서 자신을 찾아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부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줬으면 좋겠구나.”


“네..”


엘사는 목을 쓸며 겨우 대답했다. 어째서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막상 그의 얼굴을 보니 생각했던 것들이 전부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손녀로서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엘사.”


“..?..”


“이건 왕이 아니라 할아버지로서 하는 말이니 잘 들어라.”


“…….”


“네가 서던의 공주과 결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갑자기 진지한 루나드의 목소리에 엘사는 마른 침을 삼키며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왕이 아닌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란 소리에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 앉는 것 같았다. 한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엘사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안나가 마음에 들지 않다는 소리는 하는건 아닐까?


“결혼을 하게 된다면 한 가지 충고하마. 네 아비에게도 해줬던 말이니 새겨 들어라.”


“..폐하?..”


“누가 잘못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만약 둘이 싸운다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먼저 빌어라.”


엘사는 놀란 표정으로 지금 자신이 제대로 알아들은게 맞는지 의심스러워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폐하께서 대체 뭐라고 하신 거야?


“아내는 보통 틀리는 법이 없지. 아마 네가 잘못한게 맞을 테니 명심하도록 해라.”


엘사가 벙찐 표정으로 눈만 깜박이며 루나드를 바라보자 그는 그 모습이 재밌던 모양이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손녀에게 이런 말을 해 줄 날이 올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결혼하는 날이 온다면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루나드 역시 자신의 아버지에게 들은 말이었다. 

오래 전부터 왕실에 대대로 내려오는 일종의 비밀이었다.


게다가 엘사의 저 표정은 자신이 아그나르에게 말했을 때와 아주 똑같은 표정이었다. 

아그나르도 루나드의 말을 잘 못 들은건 아닌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었다.

이걸 보니 피는 속일 수 없는 것 같았다. 루나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엘사를 향해 말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네게 줄 것이 있구나.”


“네?”


루나드는 몸을 기울여 옆에 있는 작은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조금은 낡은 보라색의 작은 상자였다. 하지만 테두리가 금실로 장식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상자였다. 

루나드는 엘사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엘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와 상자를 번갈아 보았다.


“열어봐라.”


엘사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반짝이는 반지가 있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반지에 화려하진 않았지만 아렌델 왕실 무늬가 우아하게 새겨져 있었다. 

가운데는 약간은 푸르스름한 빛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아렌델 왕비의 반지다. 왕비가 왕실 후계자와 결혼할 상대에게 주는게 정석이다만..”


“…….”


“이것으로 대신하도록 하자꾸나.”


조금은 씁쓸한듯한 루나드의 말에 엘사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엘사의 기억 속에서도 어렴풋이 이두나가 저 반지를 끼고 있는 기억이 있었다. 만약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이두나가 안나에게 직접 주었을 반지였다. 

엘사는 울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목이 맨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루나드는 그런 엘사를 이해한다는 듯 몸을 굽혀 굳어 있는 엘사의 손을 잡았다. 

 

사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따로 있었다. 오늘만큼은 솔직하게 엘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나뿐인 손녀에게 할아버지인 자신이 꼭 해주고 싶었던 말.


행복해야 한다, 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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