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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청혼하러 가는 길(32-1)

ㅇㅇ(222.110) 2020.04.17 23:42:15
조회 585 추천 4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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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하러 가는 길>




덜컹거리는 마차는 숲을 막 빠져나와 탁 트인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가고 있었다. 

마차는 짙은 청록색에 금장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아렌델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러져 있었다.

처음 서던에 갈 때와는 다른 마차였다. 그때는 단순히 성년식을 축하하기 위해 갔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공식적인 사절로 가는 중이었다. 

엘사와 한스가 탄 마차를 선두로 몇 대의 마차가 더 따라오는 중이었고 앞, 뒤로 경비병들이 함께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엘사와는 창 밖 너머 풍경을 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서던에 가면 안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고민이었다.

물론 전령이 하루 정도 먼저 출발하긴 했지만 그래도 갑작스러운 방문에 안나가 놀라진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리고 혹시 자신이 너무 늦게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만에 하나라도 안나의 마음이 바뀌었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기억나? 우리 처음 서던에 갈 때.”


정적을 깨는 한스의 말에 엘사는 고개를 돌려 한스를 바라보았다. 맞은 편에 앉은 한스는 재미있었던 추억이라는 듯 웃고 있었다. 


“그때 가기 싫다면서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


“그때도 네가 보모로 딸려왔고.”


“정말 힘든 임무였어.”


“이번에 네가 감옥에 가면 내가 빨리 풀려나도록 애써볼게.”


엘사의 말에 한스가 쿡쿡 웃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엘사도 그것이 싫진 않았는지 작게 웃었다. 한스의 말처럼 서던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었다. 

처음에 갈 때만 해도 정말 죽을 듯이 싫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가지 않았으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나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외국 공주의 성년식에서 자신의 상대를 만나 사랑에 빠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넘어 엘사는 안나에게 가고 있었다.


한스는 잠시 옛 생각에 잠긴 엘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렇게 행복해하는 엘사를 보니 그 동안 자신에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을 벌였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엘사.”


“응?”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엘사가 다시 한스를 바라보았다.

한스는 머리를 한번 쓸더니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당분간 여행을 갈까 해.”


“누가? 너?”


“응.”


“갑자기?”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거야.”


한스의 말에 엘사는 꽤 당황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엘사는 한스와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평생 옆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왔고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엘사는 말도 안 된다며 혹시 폐하의 제안이 부담스러워서 그런 것인지 물었지만 한스는 고개를 저었다.


“평생 떠난다는 게 아냐. 그냥 길게 여행을 다녀오는거지.”


“한스, 너..”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그리고 언젠가 내 경험이 너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


한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엘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스가 떠나는 이유 중에 자신과 안나가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이별은 아니겠지만 이런 식의 작별을 생각했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갈림길에 있는 거라고 생각해. 너는 너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고.”


“한스. 나는..”


“다음에는 더 행복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한스는 마치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한스의 모습에 엘사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갑자기 떠난다는 친구의 말은 엘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섭섭했지만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의 앞길을 막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한스가 엘사에게 힘이 되주었던 것처럼 엘사도 한스를 응원하고 싶었다. 엘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시 한스를 바라보았다. 


“..그래, 꼭 웃으면서 다시 만나.”


“그래.”


한스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였던 두 사람은 이제 맞잡은 손을 놓고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해 서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다른 방향으로 가야 했다. 다행이라면 엘사에겐 안나가 있었고 한스는 더 이상 사생아라는 낙인을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두 사람에게 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서로의 길을 응원해줄 뿐이었다.









긴 여정 끝에 서던에 도착한 엘사는 마차에서 내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드디어 안나를 볼 수 있었다. 그 사실이 엘사를 흥분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한스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하하, 지금 꼭 산책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아.”


“조용히 해.”


한스의 말에 엘사는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며 그의 팔을 쳤다.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엘사는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쿵쿵대며 뛰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고 긴장한 덕분인지 손에선 자꾸만 식은땀이 흘러 축축했다. 


“폐하와 공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때 시종이 이미 준비가 되었다는 듯 엘사와 한스를 안내했다. 먼저 도착한 전령이 엘사와 한스의 방문을 알렸을 터였다. 

하지만 전령에게도 청혼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니 아마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크리스토프와 안나도 모를 것 같았다. 

엘사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한스와 시종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긴 복도를 걸어갔다. 오랜만에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안나와 거닐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치 이곳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긴 복도를 지나니 커다란 홀이 나왔다. 그곳에는 크리스토프와 그토록 보고싶어 했던 안나가 있었다. 커다란 왕좌에 크리스토프 앉고, 그 옆 작은 의자에 안나가 앉아있었다. 엘사와 한스가 홀에 들어서자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토록 보고싶어 했던 백금발을 가진 여인이 자신의 눈 앞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크리스토프가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주자 안나는 그제야 눈치를 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시선은 엘사에게 고정한 채였다. 

애달픈 마음에 힘들었던 나날이 무색할 만큼 안나의 심장은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그 진동이 크리스토프에게 들릴 것만 같았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염려해주신 덕분입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좀 놀라긴 했습니다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크리스토프의 말에 애써 괜찮은 척을 했던 엘사는 후들거리는 발을 억지로 옮기며 앞으로 나왔다. 막상 말을 하려고 하니 입이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뒤에 서 있던 한스가 어깨를 두드리며 계속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엘사는 연신 마른 침을 삼키며 안나를 바라보았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안나가 자신의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상하게 모든 것이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마치 괜찮다는 듯 따듯하게 엘사를 바라보는 안나의 시선이 엘사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 같았다.

덕분에 엘사는 이제 괜찮다는 듯 가져온 종이를 시종에게 건넸다. 시종이 잰 걸음으로 크리스토프에게 갖다 주자 크리스토프는 무엇인지 엘사에게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청혼서입니다.”


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크리스토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나는 조금은 두려운 눈으로 엘사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인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눈으로 엘사를 바라보았다. 

크리스토프는 황급히 봉인된 것을 제거하고 청혼서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안나도 그의 옆에서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엘사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저 무표정으로 서 있는 엘사의 모습은 안나를 혼란스럽게 하기 충분했다.


“아..안나..”


떨리는 목소리로 크리스토프가 안나를 부르자 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건네는 종이를 넘겨받았다. 하지만 차마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엘사가 아니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안나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그 모습을 보던 엘사는 안나와 크리스토프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엘사 아렌델은 서던의 공주님께 감히 청혼하는 바입니다. 부디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과 동시에 안나의 눈이 떠졌다. 안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엘사를 바라보았다. 

엘사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안나가 청혼서를 읽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주었다.

안나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안에 쓰여 있는 내용을 읽었다.


‘아렌델의 공주 엘사 아렌델은 서던의 안나 공주님의 자애로움과 현명함을 익히 들었습니다. 이에 부족하지만 안나 공주님께 감히 청혼하는 바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청하니 부디 위대한 서던의 왕과 현명한 공주께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시길 바랍니다.’

-엘사 아렌델 / 루나드 아렌델-


루나드와 엘사의 서명과 함께 아렌델 왕실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것은 공식적인 서류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안나는 자신의 손에서 청혼서가 떨어지는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엘사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몸이 먼저 반응한 것 같았다. 황급히 계단을 내려가 엘사에게 안기는 순간 마치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 빛나는 것 같았다.

엘사는 자신을 향해 달려온 안나를 꼬옥 안아주며 작게 속삭였다.


“늦게 와서 미안해요.”


그 말에 안나는 터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니라며 연신 고개만 저었다. 엘사의 어깨가 축축하게 젖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쿵쿵대며 뛰는 안나의 심장의 고동이 엘사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나는 한편으로는 포기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눈에 보이는 것 없이 그저 믿음만으로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나는 엘사에게 안겨 있는 이 순간도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꿈..은 아니죠?..”


빨갛게 부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묻는 안나의 말에 엘사는 다정하게 눈물을 닦아주며 대답했다.


“꿈이 아니에요. 당신 앞에 이렇게 있잖아요.”


“지, 진짜 꿈 아닌거죠?..”


다시 되묻는 안나의 말에 엘사는 정말이라며 안나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렇게 자신에 품에서 우는 안나를 보니 너무 늦게 온 것만 같아 미안했다. 

자신이 고생한 것처럼 안나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사는 안나의 등을 다정하게 쓸어주면서 이젠 정말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속삭였다.


감격스러운 두 사람의 포옹에 크리스토프는 머리를 긁적이며 바닥에 있던 청혼서를 주웠다. 그간의 혼담에도 꿈쩍도 않던 안나가 엘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가 안기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안나에겐 엘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안나가 앓고 있던 마음의 병은 오직 엘사만이 고칠 수 있었다. 


그는 언젠가 동생이 결혼하게 되면 그 상대에게 자신과 안나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었다. 

하지만 저렇게 애타하는 동생을 보니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크리스토프는 오빠로서 안나의 행복을 빌어줘야 했다.


한스 역시 두 사람의 재회를 보면서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안나라면 자신이 엘사의 곁을 떠나도 그 누구보다 엘사를 잘 지탱해 줄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엘사, 엘사..”


“여기 있어요.”


안나는 정말 눈 앞에 있는 엘사가 진짜인지 확인하려는 듯 연신 엘사의 이름을 불러댔다. 

엘사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안나를 보며 미안한 마음에 그저 꽉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을 안나를 생각하니 조금 더 일찍 오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안나. 이제 어디 안 갈게요.”


엘사는 안나의 귓가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안나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안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엘사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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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려서 나눠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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