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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Praying prey 73~74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10 21: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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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요청글


1~72화







190.


힘차게 창문을 부수고 들어갔지만, 안에서 기다리는 건 2차 목표였던 서버실이 있었다. 전력이 돌아온 서버들은 저마다의 불빛을 깜빡거리며 생존을 알려댔다. 천장에 달린, 서버의 열기를 냉각시키기 위한 에어컨은 작동되지 않고 있었다. 데워진 공기는 세 사람이 들어온 깨진 창문을 통해 빠져나갔고, 방안은 이내 바깥과 다를바 없이 눈을 머금은 냉기가 밀려들었다.


[알파5, 여긴 폭스 3-6, 좌측 세번째 창가로 인원 보내. 인질 한명 구속 중이다.]


[알파 5, 윌코.]


통신을 마친 3-6가 캐러비너에 고정시킨 파우치에서 DSM을 꺼내 케이블을 연결해 서버에 접속시켰다. 잠시뒤 DSM의 스크린에 로딩 바가 뜨고 천천히 정보가 다운로드되기 시작했다. 안나와 3-5도 각자의 DSM을 꺼내 다른 서버 더미에 케이블을 연결해 정보를 다운로드했다.


[이건 잠깐 놔두도록 하지. 아직 잭팟이 남아있으니까 말이야.]


[이번에도 레펠입니까?]


의심에 차 묻는 3-5에게, 3-6는 그저 별 수 있겠냐는듯 어깨를 으쓱했다. 복도 밖의 총소리들은 상당히 줄어 있었다. 오른쪽 창가의 정리가 거의 끝났다는 신호였다.


[알파 5 팀이 진압용 방패를 가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안나가 말하자, 3-6 또한 그 사실을 기억했고, 캐리어의 무전 송신 버튼을 다시 눌렀다.


[알파 5, 진압용 방패는 유효한가?]


[그렇다, 3-6. 진압용 방패를 든 대원을 네 번째 방 앞으로 보내겠다.]


[고맙다. 알파 5.]


[노크 세 번이 신호다. 확인 바란다.]


잠시 뒤, 쿵쿵거리는 소리가 문 앞까지 가까워졌고, 이내 문을 두드리는 노크가 세 번 울렸다. 3-6가 노크를 세 번 울리는 것으로 답을 전했고, 문고리를 돌렸다. 하지만 문고리가 고장이 난 듯 열리지 않았고, 그는 캐리어에 고정된 K-툴(쇠지렛대)를 416과 교체해 문 틈에 비집어 넣어 비틀었다.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 부분이 뜯겨져 바닥을 뒹굴자, 옆에서 엄호하던 안나가 문의 부서진 부분을 잡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상체를 가리는 검은색 진압 방패를 든 알파 5의 팀원이 세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5-3입니다.]


[알겠다, 이동하지. 앞장서.]





3-6의 말에 5-3라 소개한 진압 대원은 천천히 방패를 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왼쪽의 마지막 방이 남아 있었다. 방패병이 있는 한 즉사의 위험은 피하겠으나, 아직 남아있는 방과 3층에서는 노랫소리가 죽지 않고 여실히 들려왔다. 네 사람이 마지막 문까지 왔을 때, 이미 오른쪽 문에서 왼쪽의 문을 겨누던 알파 5의 팀원이 자세를 바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총구를 돌렸다. 안나는 5-3의 뒤에서 하이포트 파지(총구를 180도 천장으로 들어 대기하는 파지법)를 취하고 있었다. 5-3가 한 손으로 브리칭 폭약을 문에 설치한 다음 뒤로 물러났고, 안나와 3-6, 3-5도 덩달아 뒤로 물러섰다.




5-3가 점화 스위치를 누르자, 폭발과 함께 문이 안으로 떨어져 나갔고, 안나는 그 틈을 노려 섬광탄에서 안전핀을 뽑아 방 안으로 굴려 넣었다. 팡파르 터지는 소리에 맞춰 5-3가 안으로 진입했고, 안나는 5-3의 어깨를 갑으며 한 손으로 416을 들어 따라 들어갔다. 시력을 되찾은 세 명의 적들이 방패를 향해 총을 난사했고, 안나는 침착하게 전자동으로 조정한 416으로 지향 사격을 가했다. 레이저 사이트로 어느 정도 조준을 가늠할 수 있었고, 세 명 중 한명의 적의 가슴과 어깨에 총알이 파고들었다. 5-3는 레이저 사이트를 장착한 P226으로 적을 조준해 사살했다. 남은 한 명의 적은, 안나의 5-3가 총구를 겨누기도 전에 들고 있던 AR를 바닥에 떨어뜨려 항복 의사를 표시했다.


[엎드려! 당장!]


5-3가 엎드리려는 적을 향해 조준했고, 안나가 다가가 적의 팔을 뒤로 당겨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


[프로스트, 여긴 3-6, 2층 정리 완료. 서버실에서 정보 추출 중이다.]


[수고했다. 3-6, 현재 케언스 진압 팀에서도 서버실을 찾아 추출 중이라고 보고되었다. 가능한 많은 자료들을 추출하도록.]


[알았다. 무선 종료.]


3-6가 통신을 종료했고, 세 사람은 5-3를 선두로 다시 복도로 나섰다. 복도에 나왔을 때, 오른쪽 문가엔 알파 5의 팀원들이 대기중이었다. 시선을 조금씩 옮기자, 안나가 서 있는 바닥에는 파란색, 서버실의 문앞에는 하얀색, 그리고 1층의 계단 쪽에는 보라색 G라이트가 발화된채 바닥에 놓여 있었다. 뒤이어 올라온 찰리 1의 팀원들은 크로스백을 챙겨들고 헬멧에 부착된 전등 중에서 화이트 라이트를 작동시켜 서버실로 들어갔다. SSE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안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5-3의 헬멧 뒤에 붙어있는 IR 패치를 바라보았다.


[이제 한 층 남았군.]





3-6가 나지막이 말하며 안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안나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는 의사를 전했다. 5-3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안나와 3-6는 계단의 코너를 꺾기전에 미리 위로 총구를 겨눠 엄호했다. 등산을 하듯 거친 숨이 고막을 적셔 흘러내렸고, 그들의 걸음은 악어의 걸음처럼 천천히, 그러나 육중했다. 안나는 터질듯이 튀어오르는 심장과 관자놀이를 진정하려 애썼다. 이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방 중 하나에는 한스가 들어있을 것이다.






과연 그를 보고서, 안나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작전 내내 안나를 기만한 데다가, 입에 담지도 못할 영상을 빌미로 사장의 암살을 주도했으며, 끝내 두 동생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원인을 준 미치광이를, 안나는 그저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안나의 목적과 CIA의 목적은 교집합이 있었기에 작전으로 승화될 수 있었고, 본래 집합의 의도는 포함시킬 수 없었다. 차라리 주먹으로 몇 대만 팰 수 있다면, 그걸 지켜보는 모든 이에게 나름의 울분을 해소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나는 한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상상을 머릿속에서 지운 다음, 레이저의 끝을 응시하며 계단을 모두 올랐다. 3층에는 2층과 달리 방문이 좌우로 두 개씩 달려 있었다. 확인해야할 횟수는 덜으면서도, 방 하나하나의 넓이는 2층보다 사뭇 다를 것이었기에, 안나는 남은 섬광탄의 개수를 확인했다. 섬광탄 파우치 두 개가 만져졌다. 협공을 한다면 한 쪽 방은 폭스 팀이 맡을 것이므로, 넉넉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안나는 416의 탄창을 뽑아 재장전하면서 3-6의 명령을 기다렸다. 안나의 기준으론 굼떠 보여도, 결국 이 작전에선 안나의 상관이기 때문이었다.


[찰리 1, 알파 5와 협동해 왼쪽 방에 진입하도록. 3-1, 5-3와 진입해. 엄호하겠다.]




3-6가 무전을 보냈고, 5-3는 다시 한 번 오른쪽 첫 번째 방문 앞에 비스듬히 서서 문을 살짝 열었다. 안나는 열려진 틈새로 핀을 뽑은 수류탄을 던져 넣고 고개를 돌렸다. 팡 소리에 맞춰 5-3의 방패는 문을 거칠게 열어제껴 들어갔다. 5-3는 방의 왼쪽으로 들어가 적들을 P226으로 지향사격을 가해 적의 복부와 어깨에 명중시켜 쓰러뜨렸고, 안나는 바로 오른쪽 가까이에서 휘둘러지는 칼을 총몸으로 막은 뒤, 개머리판으로 근접전을 시도한 사내의 얼굴을 후려쳤다. 사내가 넘어지면서 칼이 바닥에 나뒹굴었고, 안나는 아직 적 한명이 남아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울프독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겨우 잡은 그 사내는, 불행하게도 울프독의 뒤에서 들어오는 3-6의 사격에 오른쪽 눈과 뇌가 터지는 걸 무기력하게 당해야만 했다.


[조심해.]




안나는 고개를 까딱거린 다음,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사내의 팔을 거칠게 잡아 케이블 타이를 묶었다.


"한스, 어디있어?"


"++++ ++++ + ++++ ++++!"


안나의 물음에 오줌을 지린 사내는 필사적으로 안나에게 대답을 했지만, 안나가 알지 못하는 언어들이었다.


[페르시아어군. 바로 옆 방에 있다는데.]


3-6가 사내의 말을 안나에게 통역해 주었다. 드디어 코 앞까지 다다랐다. 안나는 저도 모르게 이란계 암살자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고는 416을 고쳐 잡았다.


[3-5, 여기 인질 하나. 2층으로 데리고 가.]


그 때, 방 밖에서 소음기에 걸린 총성이 연달아 들렸다. 왼쪽의 상황을 정리한 듯 알파 5의 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방문 앞에서 3-6에게 오케이 사인을 내보였다. 그리고 3-5가 방안으로 들어와 오줌이 뚝뚝 흐르는 카키색 방한바지를 입은 이란인을 데리고 나갔다.


[이제 종착역이군. 이동하지.]


안나는 3-6의 말을 들으며 먼저 방을 나선 5-3의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문을 채 나서기 전, 안나는 3-6에게 어깨를 잡혔다.



[여기까지 잘 따라왔지만, 절대 잭팟을 죽여선 안 돼. 그자는 우리 기관에 중요한 정보를 넘길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알겠어요.]


[절대, 절대 금물이야.]


안나는 어깨를 잡은 3-6의 손을 탁탁 두드리고 천천히 방을 걸어나왔다. 기적같이도, 고막을 후벼파던 노랫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제 남은 방은 단 한 개 뿐이었다. 안나는 숨을 죽이며 416을 멘 다음, MEU를 들어 약실에 탄환이 들어있는지 확인했다. 들어있음을 확인한 안나는 한 손으로 허공을 겨누고, 남은 한 손은 5-3의 어깨를 짚었다.


[진입해.]


안나가 그토록 고대하던 명령어가 떨어졌고, 5-3가 문을 열었다. 경칩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일론 실이 끊어지는 청아한 소리가 들렸다. 안나와 5-3는 본능적으로 뒤로 넘어지듯 물러났고, 문이 조각나 부서질 만큼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안나는 5-3의 위에 거의 깔려있다시피 했고, 다행히 파편의 대부분을 5-3의 방패가 막아주었다.


[3-1, 괜찮나?]


두 사람의 움직임에 빠르게 후퇴해 폭발에 휘말리지 않은 3-6가 안나에게 무전을 보냈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걸을 수 있겠나?]


안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3-6를 향해 고개를 돌려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런 다음 안나의 몸에서 일어난 5-3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지만, 5-3는 허공에 욕을 뇌까리며 방패를 고쳐잡을 뿐이었다. 어쩌면 안나보다 분노에 찬 눈 앞의 방패병이 한스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쪼개버릴지도 모른다고 안나는 생각했다. 5-3가 조금 빠른 걸음으로 방패를 들고 문 안으로 들어갔고, 안나와 3-6도 뒤따라 진입했다. 방 안에는 박제화된 코요테, 토끼, 사슴들의 파편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부비트랩의 여파로 스크린이 모두 갈라진 벽걸이 TV가 한쪽 벽을 장식했다. 그리고 반대편의 끝에는 밑부분이 막힌 우드 텍스쳐로 코팅된 철제 테이블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잭팟이 보이지 않습니다.]


5-3가 잠시 방패를 내렸고, 안나도 MEU를 로우래디(총구를 45도 밑으로 내리는 파지) 파지로 유지시킨 채 대원 외의 인기척을 잡으려고 눈과 귀를 활짝 열었다. 그 때, 섬광탄이 아닌 진짜 팡파르의 소리가 테이블 밑에서 울려퍼졌고, 안나와 5-3, 3-6는 곧바로 총구를 테이블로 향했다.


"뭐야, 왜 아무도 환영을 안해주는 거야?"


느긋한 목소리, 그리고 안나가 끔찍이도 혐오하게 된 목소리와 함께 테이블 밑에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킨 흰색 정장을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스..."


"웨스터가드. 그리고 당신은 날... 당텍이라고 알고 있었고. 날 잡으러 왔나?"


한스는 마치 연극을 하는 주연 배우처럼 과장되면서도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그를 겨누고 있는 세 사람에게 다가왔다.


"한스, 손 들고 어서 투항해."


3-6가 한스에게 낮게 읊조렸다. 한스는 순순히 두 팔을 들었고, 안나는 그의 뒤로 돌아가 두 팔을 잡고, 마지막 남은 케이블 타이를 그의 양 손목을 묶었다.


"아, 아오. 너무 세게 묶은 것 같은데."


"아가리 다물어, 넌 나 혼자 있었으면 진작 죽여버렸을 거니까."


"오, 진짜요? 날? 하긴, 당신이라면 죽일 것 같긴 하네. 잠깐만, 잠깐만. 전화가 온 것 같은데. 타이좀 잠깐 풀어주겠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3-1, 잠깐 풀어줘. 정말 전화가 온 것 같으니까.]


한스에게 올 전화라면 단 하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허가 여부에 관한 전화일 것이었다. 안나는 슬쩍 그의 정장 주머니를 내려다보았고, 수신 전화 스크린이 그의 주머니를 뚫고 어렴풋이 보여지는 것을 확인했다. 잡느냐, 여기서 놓을 수 밖에 없느냐갸 관건이었다. 이미 한스를 목도한다는 요건은 갖추었지만, 제인이 말을 해줄지 의문이었다. 복잡해진 미래들로 이루어진 생각들을 품으면서, 안나는 트루돈 나이프로 한스의 케이블 타이를 끊었다.


"참으로 고맙네."



한스가 비아냥거리면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귓가에 가져갔다. 안나는 두 눈을 감으며 이마를 짚고 화를 삭히려 했고, 그런 안나를 3-6가 어깨를 두드리며 잘 참았다는 듯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그의 입가와 턱을 지배한 수염이 마치 산타할아버지처럼 안나를 안심시키려 했고, 안나는 멜리사에게 일전에 했던 산타 할아버지 농담을 떠올렸다. 그러자 더 서글퍼지는 것 같았다.


"아, 랜스 의원님. 네, 하하.. 그래서 그 결과가..."


한스는 스피커 모드로 설정하지 않은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방 안에 들어온 팀원들은 은연중에 한스의 얼굴에 깃들어 있는 표정을 읽으려 슬금슬금 곁눈질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 순간이었지만, 한스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잠깐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짧은 통화를 마친 한스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체념한 듯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을 떨궜다. 한스는 안나에게 양 주먹을 모아 내밀었다.


"날 잡아서 기분이 좋을 것 같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한 내막을 파악할 순 없지만, 한스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 심사가 불발된 모양이었다. 안나는 평정을 유지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지쳐 가빠진 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안나를 대신해 3-5가 케이블 타이로 한스의 손을 묶어 3-6 앞으로 한스를 내세웠다.


"날 어디로 데려갈 셈이죠?"


"그건 네가 알 필요 없지. 우린 그저 장기말이거든."


3-6는 어깨를 으스대며 한스에게 조롱하듯 실소를 보냈다. 한스는 그의 조소에 신경을 쓰지 않고 안나만을 응시했다.



[프로스트, 여긴 폭스 3-6, 잭팟 회수 성공했다. 현재 SSE 중이며 다수의 사상자 발생, 블랙호크 헬기 네 대를 요청하는 바다.]


[알겠다 3-6, 도착하려면 30분 정도 걸릴거다. 부상자를 데려갈 500MD 한 대를 급파했으니 양해 바란다.]


[입감.]


무전을 마친 3-6가 타이를 끌며 한스를 데리고 나갔고, 3-5가 수고했다는 듯 안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뒤를 따랐다. 5-3까지 방을 나섰을 때, 안나는 다리가 풀린 채로 주저앉고 말았다.


'다 끝났어. 다...'



아직 임무가 모두 마쳐진 것은 아니었다. 최소 수십 테라바이트를 감당할 서버실에서의 SSE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셰필드가에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기밀 유지를 위해 걸 수도 없었다. 안나는 별장에 진입했을 때와 똑같이, 캐리어에서 바디캠을 분리한 다음, 카메라의 렌즈를 얼굴로 돌렸고, 워머를 내렸다. 잠깐이겠지만, 안나의 얼굴이 메가라의 랩톱에 송출되어 셰필드가의 사람들이 확인할 것이다.


"해냈어."


안나는 자신이 렌즈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다.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이 땀이라면, 안나는 웃고 있을 것이고, 눈물이라면 울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스를 잡았다는 그 고양감은 그 간단한 사고마저 제대로 내릴 수 없게 만들었고, 안나는 끝내 자신의 표정을 알아낼 수 없었다.













191.


"와...."


랩톱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한나는, 끝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안나는 난간에 진입했을 때와 똑같이 바디캠을 떼어 얼굴을 비춰주었다. 그 때는 불안정하게 셰필드가의 사람들을 안정시키기 위한 웃음이었다면, 한스를 잡은 지금은 확신에 찬 기쁨으로 물든 눈물을 바디캠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해냈어.}


울먹이는 안나의 목소리에, 겨우내 울음을 그쳤던 한나와 이두나의 눈가엔 눈물이 다시금 돌기 시작했다.


"봤죠! 안나라면 해낼 줄 알았다니까요!"


오로라가 기뻐하며 말했다.


"이런 기쁜 순간에는 뭐라도 먹어야죠! 한나, 초코우유 마시겠어요? 제인은요? 싸장님!"


"저도 같은걸로 부탁해요, 오로라."


제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로라가 신이나서 "설탕도 넣어야지!"라 외치며 부엌으로 사라졌다.


"제인, 이제 확인했죠? 언니가 직접 가서, 한스를 잡았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이건 저랑 안나 씨와의 약속이라서 지금 당장 말해야 할 조건은 없어보이네요."


제인은 시큰둥하게 말했지만, 입가엔 옅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죽이진 못해도, 잡힌 이상 한스가 남은 평생동안 제인을 추적할 일은 없을 것이다. 설령 찾으려 해도 이미 여유가 생긴 이상 신분을 바꿔 잠적할 수도 있다.


"그럼, 안나가 왔을 때 직접 얘기해주세요."



이두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제인에게 말했다. 긴장이 풀리고, 딸이 안전하게 임무를 완수한 기쁨이 피로로 승화된 탓이었다. 한나의 팔을 베고 천장을 바라보는 이두나를, 그의 새 딸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다.


"이제 다 끝났겠죠?"


"그래야지. 이제...안나를 기다려보자꾸나. 그 아이가 오면, 엘사를 찾아가야겠지. 한나, 같이 가겠니?"


이두나가 고개를 한나에게 돌리며 물었다. 대답이랄 것도 없었다. 한나는 이두나의 벌어진 팔에 목을 감으며 품에 안겼다.


"당연하죠. 누구 딸인데..."


이두나는 해맑게 웃어보이는 그녀의 하얀 딸의 풀어진 머리칼을, 실을 헤아리는 것처럼 천천히 쓸어내렸다. 다정한 두 모녀의 행복을, 제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편으론 저 행복이 오랫동안 지속되길 속으로 기도하면서 제인은 랩톱을 덮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제인의 앞날을 방해할 걸림돌이 완전히 제거되었기 때문이었다.




















192.


몇 안되는 인질을 2층의 왼쪽 첫 번째 방에 인솔한 뒤, 3-6는 3-5와 안나를 두 손이 결박된 한스와 함께 오른쪽 두 번째 방으로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세 번째 방과 붙어 있는 벽의 일부가 폭발의 여파로 부서져 나가 찬바람이 쉭쉭거리며 혓바닥 낼름거렸다. 3-5는 문가에, 안나는 첫 번째 방과 맞닿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래서, 헬기가 올 때까지 안나 당신과 같이 있어야 한다?"


"누군 좋아서 그런 줄 아나보네."


나무의자에 강제로 앉혀진 한스를 안나는 MEU의 슬라이드를 엄지로 살살 문지르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3호 개체는 잘 살아있어?"


"누구, 한나?"


"대체 누가 지은거야."


한스는 통화 때를 제외하곤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마치 이 상황도 연극의 일부인 것처럼 그는 즐기고 있었다. 안나는 풀어졌던 긴장을 다시 할 수밖에 없었고, 3-6는 1층의 상황을 수습하러 3-5를 안나의 옆에 두고 내려간 뒤였다.


"그 애 능력은 뭐였어? 우리 연구원이 자세하게 말하지 않아서 말이야. 궁금하거든!"


안나는 한스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기로 했다. 몇 분 뒤면 안나는 블랙호크 헬기에 몸을 싣고 세이프하우스로 날아가 재정비를 한다음, 제인에게서 엘사의 정보를 얻어내기만 하면 되었다. 한스에게 완전한 복수를 하지 않았음에도, 안나는 한스보다 우위에 서 있었다.


"뭐야, 무시하는 거야? 정말 재미없는 여자네. 내가 당신 언니 되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 수도 있는데."


"그거? 필요 없어. 제인이 알려주기로 했거든."


안나가 단칼에 한스의 유혹을 거절했고, 한스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제인은 죽었다고 보고받았는데."


"보고가 잘못된 모양이야. 제인이 셰필드가로 찾아왔거든. 무슨 보고인지 몰라도 네 킬러들이 쑥맥인 모양인가봐? 제인은 자기 대역을 5명 만들어 놓았다고 했거든."


한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잡혀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호탕하게 웃었고, 그의 웃음은 곧 방안을 휘젓다 부서진 벽 틈새로 빠져나갔다. 안나는 숨이 넘어갈 듯한 그의 까마귀같은 웃음에 불길함을 느꼈다.


"5번 째 제인을 죽였을 때 보고를 받았는데, 아쉽네."


다행이 안나의 예상은 빗나갔지만, 불안함을 잠재우진 못했다. 여전히 한스는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뭘 믿고 그렇게 웃는 거야?"


보다못한 3-5가 짜증이 섞인 말투로 한스에게 물었다. 그는 P226를 들고 장착된 소음기를 매만지고 있던 중이었다.


"나? 거기 당신, 이름이 뭐야? 아, 알려주면 안 돼지? 그냥 편하게 알렉스라고 부를게. 알렉스, 난 이틀 전까지만 해도 부를 거머쥔 대기업 회장이었어. 그런데 겨우 이틀이 지나고 난 기업 비밀이 들통난 채로 국제수배를 당한 마약사범과 인체실험 주도자로 낙인이 찍혔고, 마지막 구명조끼였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은 인맥으로 넘기는 것도 실패했고."



확실히 아이러니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지난 이틀은 심각한 비대칭으로 이루어진 곡선과도 같았다. 한스에게 있어서 비극이라면 비극이었고, 헛웃음이 얼굴에 얼룩지는 것 또한 당연했다.



"그리고 가장 상황이 반전되었다고 생각되는게 뭔 줄 알아?"


한스는 턱끝으로 안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에, 내가 블루라운드로 위장해서 들어갔을 때, 저 여자가 나를 향해 빈 권총을 겨눴는데, 지금은 장전된 권총을 못 겨누고 있잖아!"


안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참기로 했다. 자신의 부와 권력도 미치지 않는 이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발악 뿐이었다.


"그리고 저기, 안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말만 듣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알렉스. 내기할까? 저 여자가 내 말을 듣는다에 20달러 걸지."


한스는 3-5에게 비아냥거리면서 안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안나는 눈을 감기로 했다. 헤드셋은 사람의 말을 방음하는 기능이 없었기에, 그저 모기가 귓가를 성가시게 맴도는 것이라고 상상하기로 했다.


"이봐, 안나! 혹시 1층에 있던 아이들과 어른들 못 봤어?"


"그건 왜 물어?"


"궁금하지도 않아? 나 혼자 은신하면 되는데, 굳이 여기까지 다른 사람을 데려왔을지 생각해보지도 않았어?"


"보나마나 네 엿같은 이상성욕을 충족시키려고 데려왔겠지. 씨발 좆같은 새끼야."


안나는 이두나를 떠올리며 한스에게 욕을 퍼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1층에서 사망했다던 인질들의 존재 의의에 대해 궁금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래? 혹시 알아? 네 언니란 사람이 거기에 섞여있을지?"


"거짓말하지마."



"지금까지 날 계속 믿고 따라왔는데, 이제 못 믿겠지? 그래, 믿기 싫으면 믿지 마. 어차피 난 잃을 것도 없는데. 알렉스, 내 비밀 금고 위치라도 알려줄까? 어차피 난 필요없을 것 같은데."


안나는 한스의 턱을 움켜쥐었다. 한스의 조잘거리는 입이 굳어졌고, 그의 눈에는 기쁨이 어려 있었다.


"다른 말 하지마. 그 사람들은 왜 데리고 왔어."


"어차피 못 믿을 건데, 그래도 궁금해? 아니, 나 한 번만 더 믿어보라니까? 어?"


싸이코패스, 안나는 눈앞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이 역겨운 남자를 한 단어로 정의시켰다. 그에 대한 명백한 분노가 불타올랐지만, 불 위로 피어나는 연기에선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 만약에, 1층의 폭발에 휘말린 사람들 중에, 엘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신이 안나의 확신을 안개처럼 스며들었다. 안나는 턱에서 손을 놓고 MEU를 홀스터에 넣었다.


"알렉스, 얘 잘 지켜보고 있어요. 확인하고 올 테니까."


안나는 3-5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문 밖으로 뛰쳐 나갔다. 안나가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방 안에선 그 소리가 점차 죽어갔다.



"봤지? 안나가 널 알렉스라고 부른 거. 콜사인으로 불러도 될 것을. 20달러 언제 줄래?"


자신을 쳐다보며 으스대는 한스에게서 시선을 거둔 3-5는, 자신이 입막음용 천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192.



계단을 내려가자, 잿더미와 불씨가 남아있는 1층이 안나를 반겼고, 찰리 1의 팀원들이 시체들을 담은 바디백을 500MD가 착륙해 있는 강가를 향해 운반하고 있었다. 안나는 비척거리며 별장을 나와 강가에 나열되어 있는 바디백의 열에 다가갔다. 총 6개의 바디백, 그리고 뒤에서 운반되는 2개의 바디백을 합치면 8개의 인질이 폭발에 희생되었다는 뜻이었다. 안나는 4초간 숨을 들이쉬고, 4초간 숨을 내쉬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이봐 3-1, 지금 뭐하는 건가? 잭팟은?"


강가의 바위에서 몸을 기대어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고 있던 3-6가 바디백 앞에서 몸을 숙인 안나를 향해 외쳤다.


"알렉....아니, 3-5에게 맡기고 왔어요.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그래요."


"다 타버린 시체들한테서 뭘 찾으려고 하나. 네 가족들은 모두 영국에 가 있을 텐데?"


3-6는 안나의 자세한 사정까지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기에, 안나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다 있지만, 잠깐만 시간을 줘요."


안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바디백의 지퍼를 당기며 말했다. 매캐한 냄새가 안나의 콧속으로 파고들었고, 안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바디백을 들췄다. 엘사라고 생각할 만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모두 말라비틀어진 고목처럼 타버렸기에, 그나마 추측할 수 있었던 머리카락의 색깔마저 흔적도 없이 잿더미가 되어 별장의 1층에 흩어져 있을 것이었다.


"3-6, 이 시체들 말이예요. 사인이 분사(불타 죽음)예요?"


"1층에 쓰인 스피커 IED들에서 네이팜의 흔적이 발견되었어. 신원 파악도 불가능할 정도로, 모두 불타버렸지. 궁금증이 해결됬나?"


안나는 바디백의 지퍼를 다시 올려 잠궜다. 한스는 안나를 농락한 것이었다. 안나는 분을 삭이면서 MEU를 홀스터 째로 3-6에게 내밀었다.


"잠깐만 가지고 있어요."


"왜 그런가?"


"이걸 가지고 있으면 당장 잭팟 목에 쑤셔박을 거 같아서 그래요. SSE 끝나면 데리고 내려오면 돼죠?"


"그렇지. 416은 계속 가지고 있어. 잭팟이 무슨 일을 벌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을 향해 뛰어갔다. 계단을 단숨에 올라가 한스가 있는 방으로 넘어지다시피 들어온 안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실실 웃는 한스의 모습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걸 믿었어?"


"이 씨발 진짜..."


안나가 주먹을 쥐고 한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고, 3-5가 안나의 어깨를 잡아 제지했다.


"조금만 참아요."


"어떻게 참아요."


"3-1, 지금 많이 화가 나는 건 아는데, 격하게 반응하면 우리만 피곤해져요. 그냥 냅두자고요."


3-5는 안나와 같은 지친 눈을 하고 있었다. 안나가 나간 사이에도 한스는 3-5에게 시시콜콜한 대화를 시도했을 것이 분명했다. 안나는 3-5의 눈을 보아서라도 한 번만 더 참기로 했다. 다음엔 어떤 후폭풍이 벌어져도, 한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기로 안나는 다짐했다.


"그래, 그렇게 잘 참아야 울프독이지. 아, 말해줄게. 저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한스는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마치 성악을 하기 전 워밍업을 하려는 듯이, 그는 여전히 배우처럼 행동했다.


"개체들이었어. 네가 데리고 있던 개체보다 열성이어도, 나름 능력을 어느정도 통제할 수준을 갖추고 있었거든. 어른 시체는 확인했어? 그 사람이 개체들을 통제하고 있었고, 별 일 없었지. CIA만 개체들을 원하는건 아니란건 잘 알지?"


"그게 무슨소리야."


"휴민트도 안해? 아, 제발. 울프독, 여기까지 와서 날 실망시키는거야?"


"마지막이다. 딴소리 하지말고 어서 말해."


"국방부, 이 나라 국방부가 개체들을 원하고 있지.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거절된다면 저 개체들을 넘기는 조건으로 내 신원을 모두 지워버리려고 했어. 그런데...너희들 덕분에 모두 죽어버렸네."


"우리가 아니야. 네가 죽인거지."


한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IED 말한거야? 그 스피커엔 이 별장 인원의 생체 정보를 인식하는 시스템이 별도로 저장되어 있어. 중국 친구들이 손봐줬거든. 그래서 별장 내 인원이 가까이에 있어도 그 스피커는 터지지 않아. 오히려 스피커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지. 아마 너희들이 안왔다면...안 죽어도 되었을 거야."


"우리한테 죄를 씌우려는가본데..."


한스는 안나의 말을 무시하며 킥킥거리며 웃었다.


"나한테 씌인 죄가 뭐가 있지? 마약? 인체 실험? 이봐 안나, 웃긴 사실 몇 개 더 알려줄까? 날 잡는다고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는 마약 경로가 무너질 것 같아? 내가 장담하건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거다. 단순히 한 카르텔을 와해시켰다고 해도 어느새 다른 카르텔이 잔존 세력을 흡수하겠지.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야. 이건 너도 알고 있지 않나?"


한스는 안나에게 물었다. 모른다고 하면 위선이었다. 안나 또한 멕시코-미국 국경에서 마약의 박멸이 아닌, 마약의 감축을 위해 상부의 지령을 받아 카르텔들의 간부들을 암살해 내전을 부추긴 적이 있었다. 단순하게 두 카르텔 간의 내전이 아닌, 다수의 카르텔을 끌어들여 최소 수준으로 마약을 감축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그 보상은 얼음물 트라우마였다.


"그리고 왜 인체 실험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닐 텐데, 중국은 위구르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하지, 우리가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그리고 장기까지 뽑아내서 판다는 말도 있어. 왜 이런 사건들은 잡지 않는 거지? 너희들은 정의도 가려가면서 추구하나?"


한스의 말은 미국의 역린을 건드는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맞는 말이었다. 세계의 경찰이라고 불리어도, 할 수 있거나 없는 일들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 간격에서는 위선이란 말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터였다. 국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명백한 위선이었다.


"또 하나, 어차피 내가 인터폴에게 잡힌다 해도 너희들은 충분히 날 잡을 수 있었을 거야. 저 아이들도 멀쩡히 살았을 테고."


"그건 너 때문에..."


"나를 이유로 변명하는 건 이제 그만두지 그래? 까고 말해볼까? 결국 날 잡는 작전은 단순하게 대의가 아니라 네 소의적인 명분으로 이루어진 거 아니야? 네 언니 찾으려고 무리하게 진입했다가 도리어 죄없는 사람들은 불타 죽어버렸는데?"


안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한스의 가시돋친 말은 안나의 역린을 긁기 시작했다.


"네가 선인 것 같아? 아니....세상이 규정한 악당을 잡으니까 영웅이 된 것 같지? 근데... 한번 쯤 돌아봐. 네가 걸어온 길이 과연 선이었는지, 악이었는지. 내가 볼 땐 너나 나나 다를 바 없어. 결국 무고한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혔으니까."


한스는 목이 말랐는지 말을 마치고 켁켁대며 기침을 했고, 3-5가 작은 수통을 열어 한스의 입에 가져갔다. 한스는 성수를 대하는 것처럼 목울대를 씰룩거리며 물을 받아마셨다.


"하아, 하고 싶은 말 다하니까 속이 시원하네. 대체 여기서 언제 나가는 거야? 아직도 헬기는 멀었나? 저 헬기 소린 또 뭐고."


한스는 계속 귓가를 맴돌던 500MD의 로터소리를 신경쓰고 있었다. 더 이상의 도주에 별 미련이 없어보이는 그는, 그저 이 곳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을 머리에 담아두고 있었다.



"아직 멀었어. 네 서버에서 SSE를 하고 있으니까."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서버실 증축하려고 나름 돈을 썼으니까. 아마 못해도 수 시간은 걸릴 거야. 너희들이 원할 정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스는 구속된 손을 억지로 꼼지락거리며 정장의 소매를 걷으려 했다. 하지만 좀처럼 되지 않자, 보다 못한 3-5가 소매를 대신 걷어주었다.


"오, 고마워. 시간을 확인하고 싶었거든."


한스의 왼쪽 손목에 채여진 손목시계는 어디서나 볼 법한 수수한 스테인리스제 시계였다. 시계는 이제 막 12시 22분을 지나고 있었다.


"시계를 봐서 뭐하게?"


안나가 한스에게 물었다.



"봐야 할 이유는 아주 다양해. 단순히 확인을 하고 싶은 것부터 시작해서 너희들이 작전에 임한 시간까지 알고 싶어지니까. 하지만... 잠깐, 너희들 혹시 이 별장 수색을 확실히 한 거 맞지?"


"그건 왜 물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래도 이 게임은 내가 이긴 것일 수도 있겠네."


수색? 안나는 더 이상 한스의 말을 믿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뒤였다. 더 수색을 해도 나올 건 없을 것이었다. 몇분 전, 한스는 엘사를 빌미로 안나를 속인 적이 있었기에, 더 이상의 속임수는 통하지 않으리란 것도 스스로가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엘사 외의 다른 변수가 이 별장에 존재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었기에, 안나는 3-6에게 무전을 치기로 했다.



[3-6, 여긴 3-1, 별장 안에 수색할 포인트가 있어보입니다. 출처는 잭팟의 진술입니다.]



[여긴 3-6, 3-1, 이미 별장은 반쯤 부서졌는데 확인할 포인트가 있나? 잭팟에게 자세하게 물어내 알아내 보도록.]



어쩌면 새로운 서버실이거나, 보이지 않는 공간에 있을 개체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나는 무전기를 끄지 않고 켜두기로 했다.



"굳이 나한테 질문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질문을 안해도 된다는 게?"



"몇 초 뒤엔 알게 되겠지. 안나,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할게. 만일 살아나거든, 뉴스 잘 지켜봐. 날 잡은 대가가 무엇인지 곧 알게 될 거야."






안나는 한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안나라는 이름의 기둥을 앞에 두고 무대 위 예행연습을 하는 광대처럼, 그는 안나를 향해 익살스럽게 웃었다. 약간은 소름끼치는 한스의 조소를 뒤로 하고, 안나는 블랙호크 헬기가 도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창가로 걸어갔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섬광을 동반한 폭발이 일어났고, 안나는 폭발의 충격에 떠밀려 이미 깨어진 창문의 밖으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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