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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청혼하러 가는 길 (외전)-결혼식(2)

ㅇㅇ(222.110) 2020.05.19 23:45:24
조회 522 추천 58 댓글 12

마지막 날인만큼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노을지는 저녁이었다. 이미 정원에는 화려한 장식들과 결혼식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준비가 끝나 있었다. 주인공인 안나와 엘사만 방 안에 갇혀 있다시피 했는데 아무래도 결혼식 전날이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점검할 것들이 많았다. 시종들과 손님들이 끊임없이 각 방으로 찾아왔고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안나는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팔을 벌리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결정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었고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았다. 저녁 시간을 훌쩍 지나 있었지만 입맛조차 없었다.

만약 결혼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줄 알았으면 아마 엘사에게 좀 더 신중하게 정하자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엘사..”


조용히 불러본 엘사의 이름은 방 안을 떠돌다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엘사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일지 궁금했다. 안나는 무거운 몸을 억지로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은 저녁 시간, 어쩌면 이 순간이 안나에게 허락된 마지막 시간일지도 몰랐다. 

안나는 문을 살짝 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녁은 쉬고 싶다는 안나의 말에 다들 떠난 지 오래였다.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나는 엘사의 방을 향해 뛰고 있었다.










엘사는 긴 소파에 앉아 겨우 한숨을 돌렸다. 결혼은 두 번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일주일 동안 결혼할 상대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아렌델의 전통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만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각자의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엘사 역시 사정은 안나와 비슷했다. 손님들을 맞이하고,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과 일들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루나드를 도와 아렌델에서 일을 할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이었다.

엘사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셔츠의 단추를 살짝 풀었다. 겨우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똑똑.


그 순간 엘사는 문을 두드리는 저 소리가 제발 환청이길 간절히 바랐다. 일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엘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미 잠든 척을 할까? 아니면 그냥 문을 열까?

엘사가 고민하는 사이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엘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 문고리를 잡았다.


엘사.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문 너머의 음성에 엘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얼마 만에 듣는 목소리인지 몰랐다. 그토록 듣고 싶고 그리워했던 목소리.


“아직 안 자는거 알아요. 문 안 열어 줄거죠?”


“…….”


그 순간 엘사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안나가 문 너머에 있다. 

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전통을 어기는 일이 되고 만약 루나드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무슨 잔소리가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엘사는 입술을 깨물며 문 여는 것을 주저했다. 하지만 마치 안나는 이미 엘사가 무엇을 할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걱정말라고 말했다. 

순간 옷이 스치는 소리가 나면서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엘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귀를 문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왔어요. 만나지 말라고 했지 얘기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작게 웃는 소리에 엘사는 안나가 문 앞에 앉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서야 엘사도 긴장을 풀고 안나를 따라 문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앉았다. 엘사가 앉는 소리에 안나는 만족했다는 듯 문을 톡톡 두드렸다.


“미안해요.”


마침내 들리는 엘사의 목소리에 안나는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당신이 결혼식에 신경 많이 쓴 거 알고 있어요. 나보다도 더.”


“아무것도 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알아요.”


“..고마워요, 안나.”


엘사는 온 마음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 

당신은 언제나 내가 필요할 때 항상 내 곁에 와주는구나.

엘사는 눈을 감고 안나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따뜻한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내가 더 고맙죠.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뭐가요?”


“당신하고 내가 남인게. 내일부터 우린 부부잖아요.”


엘사는 안나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결혼식 준비에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던 사실.

엘사와 안나는 내일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 말은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는 소리였고 서로의 반려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새삼스러우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실에 엘사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엘사?”


“..응, 여기 있어요.”


“뭐에요, 말 좀 해요! 나만 말하니까 이상하잖아요.”


장난기가 가득한 안나의 말에 엘사는 차마 목이 메어 말을 못하겠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엘사를 눈치챘다는 듯 안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잠이 안 와서 왔어요. 생각이 너무 많았거든요.”


“설마 이제 와서 결혼을 무른다는 건 아니죠?”


“음, 대답하지 않을게요.”


큭큭거리며 작게 웃는 안나의 웃음소리에 엘사는 미소를 지으며 목을 쓸었다. 엘사는 안나의 말을 곱씹으며 부부가 되기 전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기까지 온 안나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안나.”


“응?”


“고마워요. 내게 와 줘서.”


“..뭐에요, 부끄럽게..나야 말로 고마워요. 날 붙잡아줘서.”


“지금보다 많이 어렵고 싸울 때도 많겠지만..”


“..?..”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할게요. 항상 웃게 해준다고는 못 하겠지만 절대로 손을 놓지 않을게요, 안나.”


“엘사..”


“사랑해요.”


엘사의 마지막 말에 한참의 정적이 흘렀다. 엘사는 불안한 눈으로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자신의 마지막 말이 부담이 되었거나 싫었던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 한참의 정적을 깨고 안나의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당신..나 울리는거 진짜 잘 하는거 알아요?”


“..안나..”


“나도 사랑해요, 엘사.”


그 말에 엘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거짓말처럼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울먹이고 있는 안나가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엘사는 자신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결혼식이라는 생각에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엘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안나에게 다가갔다.


“엘ㅅ..”


엘사의 이름을 미처 다 부르기도 전에 안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서로의 심장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엘사는 안나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니.


“미안해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


“보고 싶었어요.”


“..엘사.”


엘사가 안나의 얼굴을 보기위해 잠시 떨어진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의 말캉한 입술이 서로에게 닿았다. 진득하게 얽히는 입술과 혀 사이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아, 엘사.”


“..안나..”


“이러면 안 되는거 아니었어요?”


“내가 왕이 되면 이걸 제일 먼저 없앨거에요.”


엘사의 말에 안나가 큭큭 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엘사는 다정하게 안나를 부축해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 동안 잘 참아왔으니 하루 일찍 안나를 만난다고 해서 티가 날 것 같지 않았다.

설령 들킨다 해도 결혼식을 무를 수는 없을테니.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이내 문은 굳게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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