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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ㅇ] 아폴론 안나와 아르테미스 엘사 12화앱에서 작성

엘산나픽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23 23: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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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 안나와 아르테미스 엘사 모음글


이전편 (11화)









​** 중간에 "++" 로 끊은 부분부터 다음 "++"까지는 ㅅㅇ 입니다. ㅅㅇ씬이 싫으신 분은 넘어가주세요.​







12.








올림푸스 산의 중심에 위치한 제우스의 신전을 중심으로 안나와 엘사의 신전은 정반대에 위치해있어. 동시에 바로 지척에 위치해있지. 서로의 뒤를 쫓는 태양과 달의 관계처럼 멀면서 동시에 가까웠지.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엘사와 안나에게 서로의 신전은 멀기만 했어. 마치 가장 가까이에 있다가 멀어져 버린 그들의 관계를 상징하듯이 말이야. 아무리 엘사의 신전이 있는 곳을 보아도 안나의 눈에는 끝없이 펼쳐진 구름만 가득할 뿐이었지.


그렇기에 신전을 나서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엘사의 신전을 보았을 때, 안나는 발걸음을 멈춘 채로 달빛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아름다운 신전을 눈에 가득 담았어. 이 거리가 다시는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뭐해? 들어와”


엘산나를 안은 채로 고개만 살짝 돌린 엘사가 우뚝 서 있는 안나에게 재촉하고는 먼저 신전으로 쏙 들어가버렸어.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는 엘산나를 재우는 것이 먼저였기에 엘사는 감상에 잠긴 안나를 이해할 겨를이 없었지. 안나는 옷자락을 살짝 움켜쥐고, 설렘 가득한 얼굴로 엘사의 신전을 들어섰어. 그리고 안나를 맞은 건, 엘사의 신전에 거주하고 있는 엘사의 님프 신도들이었어.


평소에는 도도하고 콧대 높으며 사납기로 유명한 아르테미스의 님프 신도들이-물론 신전을 찾아오는 신들에게는 조심스럽게 굴지만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 눈에는 영혼이 없는 것이 보였지-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한 채로 나사가 하나 빠진 자들처럼 주접을 떨어대고 있었어. 몸을 배배꼬면서 꿈속에 있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꺅꺅대는 신도들 사이로 엘사는 부담스러워하거나 꾸짖지 않고 엘산나를 품에 안은 채로 묘하게 뿌듯한 표정을 지었어. 엘산나도 자신을 둘러싼 님프들의 소란에 놀라기보다는 익숙한 듯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다가 하품을 할 뿐이었어.

하품하는 엘산나를 본 님프들이 발갛게 물든 뺨을 손으로 가리며 자지러지게 좋아했어. 너무 사랑스러우며, 아르테미스 님의 어린 시절을 엿보는 것 같아 행복하다며 좋아하는 신도들 사이로 안나가 성큼 들어갔어. 그제야 안나의 존재를 눈치챈 신도들이 특유의 영혼 없는 겸손함으로 물러나 “태양의 신 아폴론님을 뵙습니다.”라고 정중하고 담백하게 인사를 올렸지.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눈은 흘긋흘긋 엘산나를 향했어. 엘사가 그들을 손짓으로 물리고 안나에게 따라오라고 고갯짓을 했어.


달의 표면을 걷는 것처럼 은은한 백금색의 복도를 걷는 두 여신의 발걸음 소리가 겹쳤어. 엘사의 옆에 바싹 붙은 채로 품에 안겨있는 엘산나의 작고 통통한 손을 만지작거리며 안나는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복도를 두리번거렸어. 그러다 문득 새어 나오는 웃음을 피식 흘렸어.


"엘산나는 나중에 유난인 언니들이 많아서 고생하겠네."
"유난…?"
"나쁘다는 건 아니야. 엘산나에게 손끝 하나 건드리는 날에는 그 유명한 아르테미스의 신도들이 사냥감을 사냥하듯이 그자를 그리스 끝까지 쫓아가 세포 단위로 갈가리 찢어버리고 불태워버리려 들 테니까."


아르테미스의 아름다운 광신도들. 엘사의 심기를 거스른 이들을 무자비하게 사냥하여 엘사를 위해 공물로 바치곤 하는 엘사의 신도들의 맹목적인 충성은 올림푸스 산의 꼭대기에 있는 신들의 광장에서도 유명한 일이었어. 그만큼 광적인 애정을 품는 이들이 엘산나를 저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야. 그들에 대한 안나의 평가(부담스럽다, 광기, 무섭다)와는 별개로 엘산나는 그리스에서 가장 맹목적이고 행동력 있는 집단을 등 뒤에 업게 된 거야. 안나로서는 나쁘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어. 사랑하는 이를 위한 안전망은 부족한 것보다 넘치게 준비하는 것이 좋으니까.

가볍게 내뱉은 안나의 말을 엘사는 조용하게 곱씹는 듯했어. 부드러운 최고급 동물 가죽 털로 만들어진 요람에 이제는 완전히 잠들어버린 엘산나를 눕힌 엘사는 고요한 목소리로 안나의 말을 수긍했어.


"그렇지. 하지만 그들이 나설 일은 없을 거야."
"응?"
"태양의 아래에서는 네가 달빛 아래에서는 내가 이 아이가 손끝 하나 다치지 않도록 보호할 테니."


엘사의 손이 부드럽게 엘산나의 뺨을 쓸었어. 사랑스러운 얼굴로 잠에 빠진 엘산나를 담은 푸른 눈동자는 너무나도 다정했지만, 그 눈 깊은 곳에는 차디찬 얼음의 칼날이 번뜩이고 있었어. 실체 없는 적을 응시하는 듯이 부드럽지만 무섭게 빛나는 그 눈동자를 본 안나는 당황스럽게 웃었어.


"하긴, 태양의 신의 딸이자 달의 신의 조카인 엘산나를 감히 누가 건드리겠어? 괜한 말을 했다. 응."
"…그렇지."


누군가를 향해 뾰족하게 날이 서 있던 엘사의 적의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어. 고이 잠든 엘산나의 위로 이불을 조심스럽게 덮어주는 엘사를 보며 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 적의의 대상이 안나가 아니라 해도 날카롭게 벼려진 엘사의 모습은, 그때 안나를 증오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엘사가 떠오르게 해서 안나를 두렵게 만들었어.

엘산나에대한 애정이 그 증오 위에 쌓여, 잠시 엘사는 안나에 대한 증오는 덮어두고 있지만 언제든지 엘사의 안에 밖힌 그 증오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안나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어. 그렇기에 안나는 최대한 엘사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어. 엘사가 자신을 향한 증오를 되새길만한 사소한 계기도 생기지 않기를 바랐어.


엘사의 푸른 눈동자가 잠시 안나를 담았어. 선명했던 증오가 사라진 그녀의 눈에서, 안나는 그 옛날 함께 시련을 헤쳐나가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어. 엘사가 안나를 완전히 신용하던, 안나에게 자신의 옆을 완전히 내어주던 그때를.


"네가 엘산나의 엄마이고"


엘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어. 엘산나를 위해서라면, 모든 진실을 덮고 스스로마저 속이기로 했건만, 엘산나가 자신의 딸이라는 확신을 한 상태에서 그 말을 내뱉는 것을 쉬운 일은 아니었어, 하지만 이내 엘사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


"내가 엘산나의 이모인 이상."


그 누구도, 설령 제우스도 함부로 엘산나를 건드릴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엘산나가 안전하다면 엄마라 불리고 싶다는 자신의 욕심은 뒤로할 수 있어. 엘사는 자신의 손가락에 닿아오는 엘산나의 백금발을 조심스럽게 쓸며 아릿한 통증을 삼켰어.








+







안나는 엘산나의 요람의 앞에 앉아서 색색거리는 엘산나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주위를 둘러봤어. 엘사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무슨 일이 없었는지를 확인하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고, 덕분에 안나는 마음 놓고 엘사의 방을 구경할 수 있었어. 안나의 방은 온갖 번쩍거리는 장식품들이 가득한 반면 엘사의 방은 소박하고 깔끔했어. 가구들은 모두 흰색계통으로 통일되어있었고, 거울은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단순한 은색의 틀로 되어있었지. 안나의 방의 거울이 금색에 온갖 안나를 상징하는 각인이 새겨져 있는 것과는 대비되었어.

그렇다고 방에 미적 감각이 없는 건 아니었어. 오히려 한쪽 벽의 반을 차지하는 유리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방안의 조명들, 그리고 단정하고 우아한 가구들의 매력이 극대화되도록 세밀하게 계산되어 배치된 가구들은 그 존재만으로 완전한 듯했어. 가구의 배치만으로 공간이 가지는 고아한 아름다움은 마치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달과 같았어. 그게 엘사다워서 안나는 그곳에 자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움을 느꼈어.

안나는 엘산나가 여전히 잘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엘사의 침대로 걸어가 몸을 뉘였어. 부드러운 감촉이 안나의 몸을 감싸 안고 엘사의 향기가 안나의 몸을 뒤덮고, 안나는 눈을 감고 한껏 행복한 미소를 지어. 그리고 나른함에 휩싸인 안나는 저도 모르게 그대로 무의식의 저편으로 빠져들었어.


그리고 안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침대 위에서 잠들었던 안나의 위에는 엘사의 이불이 덮어져 있었어. 상체를 일으킨 안나의 눈에 요람의 앞에 서서 잠에서 깬 엘산나와 눈사람 모양 인형을 흔들며 놀아주고 있는 엘사가 들어왔어. 잠에서 깨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장면에 안나는 조심스럽게 숨을 삼켰어. 엘사가 엘산나와 함께 있는 장면은 언제나 안나를 벅차게 만들어.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영원히 바라보고 있고 싶을 정도로.


안나의 기척을 느낀 엘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안나를 바라봤어. 푸른 눈이 안나를 담고, 조금 놀란 얼굴이 되어 천천히 눈을 깜빡였어. 여전히 안나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엘사를 바라보고 있었어.


"...너 울어?"
"응? 나? 어…어라?"


안나는 엘사의 말에 허둥지둥 손을 얼굴로 가져갔어. 손끝에 촉촉한 물기가 느껴졌지. 안나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어.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안나는 당황한 얼굴로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어. 엘사가 그런 안나에게 다가와 말없이 손수건을 내밀었어.


"내가 왜 이러지…?"
"...안좋은 꿈이라도 꿨어? 몸도 땀투성이네."
"아냐. 오히려…"


엄청 좋은 꿈을 꿨는데, 안나는 무심코 대답하다가 얼굴을 붉혔어. 확 붉어지는 안나의 얼굴에 엘사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하는 것을 보며 안나는 고개를 떨궈. 안나를 사로잡은 감성이 사라지고 꿈에 대해서 떠오르자 엘사를 보기가 힘들어진 탓이야. 안나는 억눌린 소리를 내며 연신 부채질을 했고, 그런 안나를 빤히 바라보던 엘사가 몸을 돌려 요람 앞으로 돌아가 엘산나를 끌어안았어.


"엘산나도 씻어야 하니까, 욕탕에나 가자."








++










포도주의 향기가 깊게 배어든 엘사의 숨결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온 힘을 다해 담아낸 최고급 포도주의 향기보다도 더욱 달콤하고 아찔한 향을 머금고 있었다. 안나의 입안에 그 달콤함이 끈덕지게 남았다. 끝없는 갈증에 안나의 입이 계속해서 말랐다. 안나는 온몸을 사로잡은 열락에 정신없이 신음을 흘리면서도 그 숨결을 계속 찾았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땀에 젖은 피부가 서로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면서 나는 끈적한 소리, 안나의 비부를 가득 채운 엘사의 손가락이 거칠게 움직이면서 나는 질척한 물소리, 뒤엉킨 그들의 몸의 중심이 빠르고 규칙적으로 이동하면서 침대가 흔들리며 나는 뭉툭한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몇 번째인지 모를 절정에 이르면서 안나가 내는 날카로운 교성이 그 소리를 삼켜내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이 엘사의 등을 긁고, 엘사의 악다문 입술 사이로 억눌린 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온몸의 신경을 불꽃처럼 불태운 절정이 끝나고, 그 여파로 몽롱한 눈으로 늘어진 안나의 위로 엘사의 몸이 무너져내린다.


"흐…하…아흑…."


안나의 부풀어 오른 다리 사이가 쓰릴 정도로 희롱하던 엘사의 긴 손가락이 안나의 안에서 빠져나가고 안나는 움찔하며 오랜 정사에 쉬어버린 목을 긁는 듯한 힘겨운 신음을 흘렸다. 서로를 탐하고 갈구하는 외설적인 소리가 가득했던 방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거친 행위의 영향으로 헐떡이는 서로의 낮은 숨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포도주의 취기와 열기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어지러웠다. 안나의 위에 쓰러진 엘사의 뜨거운 몸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더니 침대등받이를 붙잡고 상체를 일으켰다. 빈틈없이 안나를 데우던 체온이 떠나가자 안나는 견딜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안나는 엘사의 등허리를 손으로 누르며 그녀를 붙잡았다.


움직임이 막힌 엘사가 안나를 내려보았다. 엘사는 땀으로 젖어있어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에 안나의 붉게 달아오르고 눈물 젖은 얼굴이 비쳤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이 꿈이라면, 절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설령 이 모든 것이 꿈의 신 모르페우스가 안나를 농락하기 위해서일지라도. 안나는 영원히 그의 무의식의 왕국에 잠긴 채로 짙은 쾌락 속에 흩어지고 싶었다. 현실에서 엘사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면, 영원토록 미움받을 수밖에 없다면, 이대로 이 슬프고도 행복한 꿈속에서 숨이 멎고 싶었다.


“엘사,”


안나가 엘사의 등허리를 붙든 손에 힘을 주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마치 안나가 엘사에게 준 상처를 상징하는 것처럼 엘사의 심장의 바로 위의 새하얀 피부에 나 있는 붉은 상처를 안나는 조심스럽게 혀를 내밀어 애무했다. 엘사의 근육이 움찔하고 떨리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안나, 그만…” 엘사가 낮게 속삭였다. 안나는 입술을 떼고 엘사의 얼굴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혼란으로 물든 엘사의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안나는 속삭였다.


“싫어, 떨어지지 마. 계속, 계속 나를 사랑해줘…응? 제발”
“안나, 너…”
“제발 언니,”


꿈속에서라도 좋으니, 날 사랑해줘. 붉게 달아오른 입술이 벌어지고 뜨거운 숨이 또다시 뒤섞인다. 바로 코앞에서 보이는 안나의 술에 취한 얼굴을 내려다보는 엘사의 푸른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그리고 감긴 안나의 눈꺼풀 위로 방울진 눈물이 떨어진다.








++







똑…

안나는 눈꺼풀을 적시는 물방울에 눈을 번쩍 떴어. 그리고 반대편에 앉아서, 살짝 고개를 틀은 채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엘사를 바라보았지. 엘산나를 씻기기 위해서 함께 욕탕에 들어왔지만, 엘산나는 욕탕에 들어오기 전에는 싱글벙글하더니 따듯한 물에 닿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듯이 울어대기 시작했어. 씻기 싫다는 명백한 의사 표현에 난감해진 엘사와 안나가 아무리 달래보아도 엘산나는 볼을 부풀리며 씩씩대었어. 엘사와 안나를 향한 배신감까지 느껴지는 그 표정에 둘은 엘산나를 데리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것은 일단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 결국 엘산나의 울음소리에 도움이 필요한지를 물어보려 왔던 여신도에게 엘사는 엘산나를 맡겼고, 넓은 욕탕에는 엘사와 안나 둘만이 남았어.


벗은 몸으로 달라붙어 있던 둘은 엘산나가 사라지자 점점 멀찍이 떨어져 어느새 넓은 욕탕의 반대편에 앉아있었어. 물소리와 서로의 숨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둘은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고, 안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해서 곁눈질하고 마는 자신에 아예 눈을 감아버렸어. 그러다 문득 욕실의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안나의 눈꺼풀을 두드림과 동시에 안나는 한 가지를 번득 떠올렸어.


엘사의 방에서 꾼 꿈.

안나는 그 꿈이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부끄러운 꿈일 뿐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안나의 눈이 엘사의 가슴을 향했어.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한 새하얀 피부의 엘사의 몸에 낯익으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붉은 균열이 있었어. 마치 날카로운 것에 파헤쳐진 듯한…. 안나는 물에서 벌떡 일어나 엘사에게 다가갔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엘사가 고개를 돌려 안나를 보았을 때, 안나는 이미 엘사의 코앞에 와있었어. 자신의 가슴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안나의 녹색의 눈동자를 본 엘사가 당황스럽게 가슴을 가리려고 했지만, 안나의 손이 더 빨랐어. 엘사의 팔목을 붙잡고, 안나가 엘사의 가슴 위의 상처를 손으로 더듬었어.


“뭐하는 거야?”
“엘사, 이 상처… 언제부터 있었어?”
“뭐?”
“이 상처 말이야. 분명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없었는데…”


오리온과의 연애 소식을 듣고 흥분해서 엘사를 찾아갔던 샘에서 보았을 때는 분명 엘사의 몸에는 이런 상처가 없었어. 언제 이 상처가 생겼고, 왜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안나는 이 상처가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어. 그런데 안나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꿈속에서의 엘사의 가슴에 이 상처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지. 단순한 꿈이라면 없었어야 하는 게 맞는 데 말이야. 그게… 단순한 꿈이 맞나? 꿈이 아니라면? 꿈이 아닌 기억이라면…?


“엘사 혹시 우리…”


안나는 쿵쿵 요란하게 울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어. 우리, 언제 한 적 있어…? 안나가 물으려는 순간, 제삼자의 목소리가 안나의 질문을 삼켜버렸어.


“아르테미스! 잠깐 들어갈게요!”


전령의 신 헤르메스였어. 엘사는 깜짝 놀라 안나를 물속에 처박아 버렸고 갑작스럽게 물에 담겨진 안나는 버둥거렸지만 이내 자신의 어깨를 강하게 누르는 엘사의 손에 얌전해졌어. 헤르메스가 욕탕에 들어오고, 엘사가 그를 향해 수건을 던졌어. 정확히 그의 얼굴을 덮은 수건에 헤르메스가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췄어.


“감히 내가 목욕을 하는 데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화살받이가 되고 싶어?”
“아니, 봐주세요. 급하게 전할 소식이 있어서 발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니고 있다고요. 아버지가 반드시 직접 전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수건 치우기만 해봐. 두 눈에 화살을 꽂아서 제우스 앞에 던져버린 후에, 직접 전해 받을 소식을 전해 들을 테니까. 그러면 다시는 제우스 핑계로 네 사심을 채울 수 없게 되겠지.”


헤르메스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었어. 엘사는 얌전하게 물속에 숨어있는 안나를 뒤로하고 가운을 두르고 헤르메스를 욕탕에서 끌고 나왔어. 이곳저곳 정보를 수집하고 다니며 제우스의 충실한 전령 역할을 하는 헤르메스를 엘사는 언제나 경계하고 싫어했지만, 이번만큼은 안나의 다음 말을 끊어준 그의 방해가 내심 반가웠어. 물론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엘사는 욕탕에서 어느 정도 떨어지고 나서 그의 얼굴에서 수건을 치웠어. 헤르메스는 싸늘한 엘사의 시선에 몸을 움츠리고 속으로 ‘이 자매들은 나를 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일까.’라고 중얼거렸지. 엘사는 헤르메스에게 어서 할 일을 하고 가라는 듯이 고갯짓을 했어. 헤르메스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어 엘사에게 건넸어.


“아폴론 딸의 탄생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리니 꼭 참석하라는 제우스의 편지에요.”
“…연회라고? 안나에게는 그런 소리 못들었는 데.”
“안ㄴ-아니 아폴론도 모를 거예요. 제우스가 주최하는 거거든요. 아폴론에게 가는 편지도 여기 있어요.”


헤르메스가 품에서 다른 편지를 하나 꺼내 들어 흔들었어. 아폴론에게 먼저 의사를 묻는 게 먼저인 게 아니냐, 라는 당연한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제우스가 제멋대로인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기에 헤르메스에게 따져봤자 엘사가 얻을 수 있는 건 없었지. 엘사는 그저 못마땅하게 혀를 찰 뿐이었어


“그런데 아폴론은 어디 있어요? 아폴론 신전에서는 아르테미스랑 같이 여기로 왔다고 했는 데….”
“안나는 좀 전에 돌아갔어. 길이 엇갈렸나 보네.”
“이런, 하여튼 꼭 오세요. 아무리 연회를 싫어한다고 해도 이번에는 꼭 참석하라고 당부하셨어요.”


헤르메스는 아폴론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시 품속에 넣으면서 말했어. 엘사는 손에 들린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헤르메스에게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래”라고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어. 헤르메스는 정말 바쁘기는 바쁜지, 대답을 듣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몸을 돌려 바람처럼 사라졌어.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잠시 기다린 엘사는 편지를 툭툭 뺨에 두드리며 몸을 돌려 다시 욕탕에 들어갔어.


욕탕에서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가운을 챙겨입은 안나가 엘사를 응시하고 있었지.


“들었지? 어서 신전에 가봐.”
“오늘 신전에서 재워주는 거 아녔어?”
“다시 오면 되잖아. 헤르메스가 괜히 이상한 소리 떠들어대는 것보다는 이게 나아.”


안나의 불만 어린 얼굴이 조금 풀어지고 목욕탕을 나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어. 뒤따라 온 엘사가 손에 들린 편지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다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어.


“엘산나의 탄생 축하 연회, 어떻게 생각해?”
“응?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엘산나가 신이라는 소식을 들었나 보지. 그런 거에 관심이 많으시잖아. 훌륭한 혈통을 퍼트리고 어쩌고… 또 그 말을 한바탕 늘어놓으면서 으쓱이려는 거겠지.”


안나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어. 엘사 역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불길했지. 그리고 무엇보다 엘사는 안나가 모르는 예언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까, 제우스가 안나의 생각대로 그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모두를 불러모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엘사는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는 날이 오다니 싶어서 허탈하게 웃었어. 연회에 관해서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엘사의 모습에 안나는 옷을 마저 다 입고 난 후에 물었어.


“연회 열지 말라고 할까? 아무리 막무가내라도 내가 싫다고 하면 강행하지는 않으실 거야.”
“아냐. 참석해야지. 할아버지가 손녀의 탄생을 축하해준다는 데, 말릴 필요가 어디 있어?”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수는 없어. 오히려 엘사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어. 이번 기회에 그의 의심을 완전히 종식하는 것도 좋겠지.


엘산나는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올림푸스의 12 주신 앞에서 공표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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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일기_새벽 광기의 시간


글을 쓰는 데 “엘사의 방은 참 엘사답구나” 라는 생각을 안나가 하는 장면을 쓰면서 흐뭇해하다가 불연듯 케잌픽이 내 머릿속으로 난입했다. 진짜로 [난입했다]. 갑자기 엘사를 갈구하며 울던 안나가 엘사의 흔적으로 절정에 이르는 그 악명높은(??) 포크씬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재생되기 시작하고 나쥬미의 뇌와 손가락은 정지하고 말았다.

갑자기 그게 왜… 여기서 왜 떠올라?

하지만 떠오른 순간 이미 늦어있었다. 내 머릿속은 케이크 픽의 포크씬에 영감(혹은 신내림)을 받아 엘사를 떠오르게 하는 엘사의 방을 보면서 충만했던 감정이 끈적해지고 서서히 해피타임으로 빠져들고 마는 안나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엘사의 향기가 가득해… 아 엘사, 엘산나가 바로 근처에서 자고 있고 엘사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안나가 숨죽여 신음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떠오르며 ‘다음 상황은 이거야!’라고 주장한다.

안돼, 갑자기 해피타임이라니…!! 아니라고, 글 분위기랑 안 맞는다고 젠장…!! 애써 생각을 밀어내는 데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상황이 딱 들어 맞잖아. 애타는 짝사랑의 대상인 엘사의 방에 안나는 처음으로 들어가 본 거라고, 거기다가 안나는 엘사한테 정신이 팔려서 사람을 만나고 다니던 것도 끊은 상태잖아. 즉 자각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욕구불만의 상태이다 이거지… 여기서는 이러면 안 돼, 안돼하면서도 해피타임을 가져야 한다. 때마침 다음씬, 아니 다 다음 신이 목욕 신이잖아? 딱이야] 그럴듯하---------------------닥쳐어어어어어어어!!!!

케잌픽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이제는 완전하게 가라앉았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후폭풍이 올지는 상상도 못 했다. 이 와중에 외전으로라도 쓸까 하면서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는 내가… 밉다. 지금 당장은 해피타임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오늘 새벽에 다 쓰고 업로드하려했는 데 실패다. 오늘은 포기하고 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하자. 그때도 똑같은 생각이라면… ㅠ 어쩌지 ㅠ



작가의 일기_=광기의 새벽이 지나고



타협했다. 이르지만 안나가 엘사와의 첫날밤에 대해서 떠올리는 것으로. 갓블레스유 케잌픽…! 이 글을 쓰면서 초반부 찌통에 불안해하는 쥬미들에게 육아파트에 들어서면 분명 달달해 질것이라고 장담했고 (애초에 달달 가벼운 육아물을 목표로 쓴 글…). 그 약속을 위해 다가오는 육아파트를 대비하고자 달달한 엘산나 팬픽으로 당분을 충전하기로 마음 먹고 난 후에 고민 끝에 자주 언급되어 이름이 익숙하고 케이크라는 달콤한 이름을 가진 케잌픽을 선택해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당시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주 좋은 글이지만 달콤하기보다는 매콤해서, 당분 충전은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 정말로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가 아니겠는가? (대체 뭐라는 거야?)


ㅎㅎㅎㅎㅎ 중간에 끼지만 이것도 ㅅㅇ는 ㅅㅇ 인거지?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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