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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Say You Love Me 14

험버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26 21: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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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링크(1~13)








“어디야?”


“어, 학교요?”


“언제 끝나?”


“끝.. 났는데요.”


“정문 앞에서 기다려.”


“왜요?”


“데리러 갈게. 밥 안 먹었지?”


안나는 눈을 깜박였다. 데리러 온다고? 그래, 뭐.. 근데 이 여자, 뭔가 중요한 걸 무시하고 있는 듯한데...


“우리 끝난 거 맞-”



전화가 끊겼다. 안나는 휴대폰의 화면을 멀뚱히 바라봤다. 


전날 멱살 잡고 화내던 엘사를 피해 달아난 탓에 제대로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안나는 그냥 그렇게 끝난 걸로 알았다. 그대로 튀어 택시를 잡았는데도 엘사는 씩씩거리며 소리만 지를 뿐 쫓아오지도 않았고 심지어 연락도 없었다. 그건 알았다는 뜻 아냐? 하긴, 헤어지잔 말에 싫다 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예상외로 길길이 날뛰긴 했지만 제가 그만 만나자는데 별수 있겠나 싶었다. 매달린 애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엘사까지 그럴 줄은 정말 몰랐지만, 어쨌든 안나에겐 나름대로 익숙한 일이었다. 매달리는 거야 지들 마음이지만 내 맘이 떴다는데 혼자 연애를 어떻게 하겠어. 상대가 받아들이든 말든 안나가 그리 말하는 순간 그 관계는 절대 연인 사이로선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좀 전의 통화로 엘사의 태도를 가만 씹어보자니 어쩐지 이별 선언 자체를 개무시하는 것 같았다. 이별에 관해선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안나였으나 상대가 아예 못 들은 척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같이 밥 먹고 노는 거야 전 남친들하고 어울리는 거 생각하면 딱히 불편할 일도 아니다마는, 그들은 적어도 연인 관계가 끝났다는 상황쯤은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헤어진 사람과 친구 먹기가 취미인 안나는 난생처음으로 이 사람을 다시 만나도 되는지 하는 작은 고민에 빠졌다.



“누구야?”


안나와 함께 길을 걷던 필립이 물었다.


“어- 그, 있어.”


“뭐가 끝났는데?”


“그런 게 있어..”



안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대답했다. 다시 얘기를 해봐야 하나? 또 멱살 잡을 것 같은데. 안나에게 있어서 이별의 산전수전이란 대체로 상대가 질질 짜거나 너 없으면 나 죽는다며 날뛰는 정도의 일로, 대부분이 격렬하긴 했으나 안나를 향해 물리적으로 다가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짜고짜 멱살부터 잡고 개무시를 하다니, 하여튼 엘사는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과 뭐가 달라도 다르긴 했다. 이왕 다를 거 이번엔 진정한 사랑이었으면 좀 좋아? 안나는 서늘해진 제 목덜미를 손으로 슬쩍 감쌌다. 어쩌겠어. 무서워도 알아듣게 말은 해봐야지.



“나 이쪽으로 갈게. 누구 만나기로 해서.”


“데려다 줄게.”



필립이 생각도 않고 바로 말하자 안나는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전 남친 만나지 말라던 엘사의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안 그러는 게 좋을 텐데.”



하지만 곧장 생각을 바꿨다. 헤어졌는데 뭐 어때? 가는 길 심심하잖아.



“..아니다, 같이 가자.”


요전날 엘사가 뚜껑 열리면 장난 아니게 무섭다는 걸 봐놓고서도 안일한 마음으로 필립을 끌고 간 안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정을 후회했다. 교문에 기대서서 필립과 시시덕거리던 안나는 저 멀리서부터 시끄럽게 클락션을 울리며 돌진해오는 엘사의 차를 보고 숨이 멎을 뻔했다. 아, 엿 됐다. 재주도 좋지. 엘사는 아직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는데 단단히 빡쳤음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교문을 바로 앞에 두고서야 끼익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멈춰선 차를 보고 안나와 필립은 움찔 움츠러들었다. 차 문이 열릴 때 문 사이로 어쩐지 검은 안개가 뭉게뭉게 새어나오는 것 같은 환각까지 본 안나는 정말이지 아찔해졌다.


“어? 꽃 가게 누-”


그 무시무시한 차 문을 열고 내린 사람이 뜻밖에 아는 얼굴인 게 반가웠는지 필립은 눈치도 없이 환히 웃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건 엘사한텐 그저 개소리였나 보다. 엘사는 싱글벙글 웃으며 아는 체하는 필립에게 성큼 다가가더니 다짜고짜 정강이를 걷어찼다.


“악!”



필립이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은 정강이를 가리기 위해 허리를 숙이자 엘사는 불쑥 손을 내밀어 필립의 멱살을 잡았다. 정확하게 멱살을 향해 날아간 손이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옷깃을 말아 쥐고는 필립을 일으켜 세웠다. 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이제 보니 멱살 잡기가 특기인가? 제 친구이자 전 남친이 전 여친에게 후드려 맞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지만 새로 알게 된 엘사의 특기를 보며 전에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보자니 진즉 멱살 잡혀 얻어맞지 않은 게 참 신기하고 다행인 일이란 생각만 들었다. 지금 저 손에 잡힌 게 자신이 아닌 것이 정말 다행이란 생각도. 안나는 히익 소리를 내며 한 발짝 물러났다.



“왜- 왜 이래요? 안나! 이 누나 왜 이래?”



필립은 한 발짝 물러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안나와 금방이라도 제 얼굴에 주먹 몇 방 날려줄 것 같은 엘사를 정신없이 번갈아 보며 다급히 말했다. 엘사는 그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야, 너 쟤 아직도 좋아해?”


“네, 네?”



필립이 안나를 바라보며 정신없이 눈을 깜박였다. 이게무슨일이야도와줘안나- 슬금슬금 그들과의 거리를 넓히고 있던 안나는 필립을 향해 얼굴을 잔뜩 구기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허공을 쥐어뜯듯 손가락을 거칠게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했다.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알아서 빠져나와 보라는 걸 안나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었으나 필립에겐 그저 괴상한 표정 짓기 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절망한 필립이 울상을 지었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엘사는 필립을 쥐어 잡은 손을 휙 밀쳤다가 재빨리 끌어당겼다. 필립의 머리가 거세게 흔들렸다.



“쟤 좋아하냐고!!”


“아, 아니요! 안 좋아해요! 시-싫어해요!”


“근데 왜 자꾸 얼쩡거려? 어??”


“안 그럴게요! 안 그래!”



엘사는 겁에 질려 애원하는 필립을 한참 노려보더니 필립의 멱살을 내던지듯 놔줬다. 엉덩방아 찧기 직전까지 휘청거리던 필립은 엘사와 안나를 잠시 멀뚱히 바라봤다. 엘사가 그런 필립을 향해 위협하듯 발을 구르자 필립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났다. 멀찍이 서 있던 안나는 그제야 필립의 뒤통수를 향해 외쳤다.



“필립!!! 미안해-! 내일 말해 줄게!”


“내일 또 만나려고? 그럼 쟨 죽어.”



엘사가 안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안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후다닥 뒷걸음질을 쳤다.



“어쭈? 이리 안 와?”


“때- 때릴 거잖아요.”


“내가 무슨 깡패니? 안 때릴 테니까 이리와.”


“방금 전까지 애를 그렇게 잡고 있던 사람 말을 어떻게 믿어요?”


“그러게 누가 같이 다니래? 쟤네 안 만난다고 나랑 약속했잖아.”


“우리 이제 헤어졌으니까 상관없잖아요?”


“역시 좀 때려야겠다.”


엘사가 씩씩거리며 다가오자 안나는 꺅 소리를 질렀다.


“진짜 왜 이래요!?”


“너야말로 왜 그래? 진짜 짜증나.”


“우리 얘기 좀 해요.”


“가까이 와야 얘기를 하든 말든 하지! 이리 와.”


“안 때린다고 약속하면요.”


엘사는 말을 멈추고 잠시 눈을 굴렸다. 진짜 때랄 생각이었나? 안나는 엘사가 저를 때릴지 말지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섬뜩했다.



“안 때려.”



한참을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엘사는 표정을 풀더니 선심 쓴다는 말투로 말했다. 안나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저를 쏘아보자 엘사는 한숨을 내쉬며 양손바닥을 펴 보였다.



“진짜 안 때릴게. 네 말대로 얘기 좀 하자. 네 맘대로 끝내자고 해놓고 그냥 도망가버리면 난 뭐가 돼? 제대로 대화는 해봐야 할 거 아니야.”



참나, 누구 때문에 그렇게 도망갔는데. 제대로 된 대화가 고팠으면 그날 바로 전화라도 했었어야지! 안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참았다. 안나가 계속 다가오길 망설이고 있자 엘사는 부드럽게 손짓을 했다. 어색하긴 했지만 살짝 미소까지 지었다. 그래도 무서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질러놓은 일은 해결해야 했다. 안나는 엘사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안나는 엘사가 이해할 법한 이별의 이유를 댈 수가 없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사랑이 아니었고 그래서 헤어지자는 건데, 전 날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봤자 또다시 멱살 잡힐 게 뻔한 일 아닌가? 그래도 진짜 그게 다인 걸 어째? 이해해 줄 때까지 저 말을 줄줄 외고 몇 대 맞아주는 수밖엔 없나 보다. 끔찍할 게 뻔한 미래를 보면서도 그 미래를 향해 스스로 발을 뻗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나는 이 전까진 결코 알지 못했다. 그래도 안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헤어지긴 해야 했다. 그리고 얼른 다시 진정한 사랑 찾기에 몰두해야 했다. 참된 사랑과 함께할 환상적인 섹스가 안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




쭈뼛대며 엘사에게 다가간 안나가 겨우 입을 열자 엘사는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며 안나의 말을 잘랐다.



“나 배고파. 뭐 좀 먹자.”


“네?”


“먹고 싶은 거 있어? 저번에 네가 맛있다고 했던데, 거기 갈까?”


“아니, 잠깐만요. 일단 얘기부터-”


“아- 배고파서 안 들려.” 엘사는 양쪽 귀를 막고 와랄랄라 얄미운 소리를 내더니 제 차의 조수석 문을 열며 안나를 바라봤다. “일단 타.”



​*



​안나는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엘사를 따라 걸었다. 배고프다더니 이게 지금 뭐하는 거야? 엘사는 정처 없이 차를 몰다 괜찮다 싶은 가게가 보이면 막무가내로 안나를 끌고 들어갔다. 그러고선 안나 취향도 아닌 옷과 신발 등을 한 아름 사서 안겨줬다. 필요 없다는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필요 없어? 벌써 샀는데 어떡해. 버리고 가든가. 엘사는 그렇게 말하며 쓸데없는 소비의 결실을 바닥에 내려두고 가게를 나섰다. 안나는 그걸 그대로 버리고 가면서까지 필요 없다는 말을 고집할 만큼 간이 크진 않았다. 미쳤나? 이게 다 얼만데. 그렇게 엘사를 따라다니며 바닥에 늘어진 쇼핑백을 주워들기를 네댓 번 쯤 반복하자 안나는 엘사의 지갑 사정에 의문이 들었다. 그간 여느 사람들보다 넉넉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좀 이상했다. 계획 없는 소비와 거리를 두고 살았던 안나는 엘사가 아무렇게나 집어서 사준 벨트의 가격을 보고 눈을 뒤집었다. 이딴 괴상한 벨트가 내 두 달 치 식비랑 맞먹는다고? 나름 장사가 잘되는 편이긴 한데, 이렇게 막 쓰고 다닐 정도로 벌이가 되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멋지고 어른스럽다고만 생각했던 엘사의 씀씀이가 이제야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꽃집으로 이렇게까지 잘 벌 것 같진 않은데..



“지갑도 하나 살까? 네 지갑 너무 못 생겼더라.”




엘사가 제 뒤를 쫓아오는 안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안나는 그대로 멈춰 서서 양손 가득 쥐고 있던 쇼핑백을 내려놓았다. 이제 정말 그만 받아야겠다 싶었다.




“저기, 엘사.”



“응?”



“우리 그만 만나기로 한 건 알죠?”



“몰라. 아직 얘기 안 했잖아.”



“어제 다 했잖아요.”



“너 혼자 떠든 거? 기억 안 나.”



아, 속 터져. 차라리 계속 만나면 안 되냐고 울고불고 매달리는 게 낫지 대놓고 뻔뻔하게 무시하면 어떻게 해야 해?



​“친구로는 만날 수 있는데요, 친구 사이에 이런 거 받긴 좀 그래요.”



“누가 네 친군데? 웃기지 마.”



​“계속 귀 막고 무시할 거예요? 나 무섭다던 사람 맞아?”




엘사는 얼굴을 찌푸리고 안나를 바라봤다.




“기다려 봐. 이따 얘기해.”




그니까, 대체 언제?! 엘사는 얼빠진 안나를 뒤로 한 채 다음 타켓으로 삼을 가게를 다시 물색하기 시작했고 안나는 더 이상 엘사의 선물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도 양손의 빈자리도 없었다. 일단 먹고 얘기하자는 말을 의식한 탓인지 배까지 심하게 고파왔다.



“배고프다면서요? 밥 안 먹어요?”



“기다리라고 했지? 네 행색이 너무 남루해서 눈물 난단 말이야. 울면서 밥 먹을 순 없잖아.”




안나는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참자, 참아. 안 참는다고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성질대로 달려들어 봤자 이상하게 힘 넘치는 저 손에 다시 멱살이나 잡히겠지. 안나는 중요한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불만을 에두르기로 했다.




“가게는 어쩌고 왔어요? 맨날 지각에 땡땡이만 치는 것 같아.”


“내가 사장인데 알게 뭐야.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가만 보면 진짜 이상해. 꽃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가게 일도 관심 없는데 돈은 펑펑 써대고. 가만 놔둬도 그렇게 돈이 잘 벌려요?”


“꽃집 하면서 버는 푼돈으론 이렇게 못 살아.” 길을 걷다 멈춰선 엘사는 쇼윈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야. 조만간 때려치울 거야.”


“네?” 의외의 말을 들은 안나는 작게 놀랐다. 엘사가 꽃에 대해 아는 건 쥐뿔도 없긴 했지만 어쩐지 꽃 가게 사장이 아닌 모습으론 상상 되질 않았다. 뭘로 상상하든 안 어울렸다. “그럼 뭐 하게요?”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일 안 하고 싶어.”


“아무것도 안 하고 어떻게 살아요?”


“아무것도 안하진 않지. 밥도 먹고 쇼핑도 할 건데?”


“그게 아무것도 안 하는 거잖아요.”


“그럼 안 돼? 우리 아빠 돈 많아.”




엘사는 마네킹에 걸쳐진 옷을 턱으로 가리키더니 가게 문을 열었다. 황당한 대화에 정신이 팔려있던 안나는 이제 그만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엘사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난 딱히 낭비하면서 살지도 않고. 얼마나 많은 진 잘 몰라도 적당히 쓰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될걸.”



“이게 낭비가 아니에요?”




안나가 쥐고 있던 쇼핑백들을 번쩍 들어 보이며 말했다. 엘사는 작게 얼굴을 찌푸렸다.




“이깟 거 얼마나 한다고.”



​할 말을 잃은 안나는 입을 다물었다. 대체 무슨 복을 받아서 그런 집 자식으로 태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잘 살긴 하나보다. 찢어지게 가난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주는 대로 냉큼 받아 써버릴 만큼 집안 사정이 넉넉한 건 또 아님을 아는 탓에 부모님의 도움을 마다하며 학비와 생활비 대부분을 알아서 처리해 온 안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최근 안나의 지갑은 비다 못해 말라 비틀어가는 중이었다. 오빠인 한스에게 빌붙어 어찌어찌 버티긴 했지만 안나도 사람이었고 양심이 있었다. 안나는 엘사와 만나는 동안 미뤄온 일거리 찾기를 시작해야만 했다.



“난 일해야 하는데..” 안나는 옷걸이에 걸려있던 옷의 가격표를 슬쩍 보며 말했다. 미친. 한 달 치 생활비. “앞으로 비는 시간엔 아르바이트할 거예요.”


“아르바이트?” 엘사는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네가 일을 왜 해? 아직 학생이잖아.”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어요? 돈 필요해서 하죠.”


“돈이 없어?”



악의없는 궁금증만을 띄운 엘사의 표정을 보고 근본적인 것부터 설명해야 할 것만 같은 답답함을 느낀 안나는 귀찮은 물음이 이어질 것이 뻔한 대화를 이어 나가는 대신 입을 오물거리며 대답했다.



“...없어요.”


“얼마나 필요한데?”



? 이 여자가 지금 뭐래? 안나는 제가 생각한 뜻으로 물은 게 아니길 바라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돈 준다는 소리 할 거면 이번엔 내가 멱살 잡을 거야.”


“왜? 필요하다며.”


“제가 그쪽 돈을 왜 받아요? 이상하잖아요.”


“사주는 건 다 받아놓고 이상한 걸 따지네.”


“이거랑 그거랑 같아요? 이것도 자기 맘대로 사준 거면서!”


“돈도 내 맘대로 줄 테니까 받아. 계좌 안 보내면 우편함에 현금으로 쑤셔 박아 둘 거야.”


“절대 안 받아! 다 버릴 거예요!” 



버리겠다는 옷은 주워왔어도 돈까진 아니지! 무슨 기준으로 그리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안나도 그 정도 자존심은 있었다. 얼굴을 잔뜩 구기고 고개를 젓던 안나는 문득 든 생각에 눈썹을 씰룩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얌전히 헤어져 주면 받고요.”




엘사는 멀뚱히 눈을 깜박였다.





".. 아.. 안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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