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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2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6.12 00: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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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하루, 기계처럼 움직이는 몸, 그리고 시작되는 업무라는 이름의 허드렛일, 이 굴레는 바뀌는 법이 없었다.


야! 쓰레기! 이것도 치워!


어쩔 때는 청소를,


야! 쓰레기! 이것도 옮겨!


어쩔 때는 운송을,


야, 쓰레기! 내가 이거 빨아오라고 했잖아!


어쩔 때는 심지어 세탁까지 맡겨지기도 했다.


웬만한 잡일이란 잡일은 전부 자신과 데이지의 몫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부르면,


“야! 쓰레기!”


“네네!”


자기 일을 하고 있던, 아니면 다른 사람이 시킨 일을 하고 있던, 뭘 하고 있던지 간에 빠르게 달려가야만 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멍청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하나하나 신경 쓸 겨를조차도 없다. 모서리에 쿵, 벽에 쿵. 그러면서도 간신히 사람에게 부딪히는 걸 피한다. 왜냐고? 박아 보면 알 것이다.


“헉, 헉… 부르셨나요?”


“치워.”


역시나, 또 다른 허드렛일이다. 참자, 참아. 고개를 푹 숙여서 입술을 꾹 깨문 얼굴을 숨긴다. 바닥에 와르르 쏟아진 쓰레기 더미와 그 옆에서 굴러다니는 쓰레기통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담소를 나누는 동안, 자신은 쭈그려 앉아 쓰레기를 줍는다.


문득 첫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별 볼일 없는 미천한 자신에게 발신된 채용 통지서, 방방 뛰어다니며 소리 지르는 자신, 그리고 첫 출근.


입술을 깨문 이빨 사이로 새빨간 선혈이 흐른다. 또다시 분노가,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무력감이 차오른다.


“야, 빨리빨리 안 해?”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힐 틈도 없이 독촉이 날아온다. 주변에서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이 깔깔 웃는 소리가 들린다. 보나 마나 자신을 보고 비웃는 소리일 터였다. 아냐, 어쩌면 그냥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게 아닐까?


“다… 했어요.”


“그래? 그럼 가봐.”


휴. 불행 중 다행히도 별 트집 없이 끝났다. 옷에 쌓인 먼지를 탈탈 털며 자리로 돌아간다.


“야, 먼지 날리잖아!”


… 괜한 설레발이었구나. 또다시 고개를 푹 숙여가며 사과를 하고 나서야 터덜터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야야, 저기 거지 지나간다!”


“칠칠맞지 못하게 피나 흘리고 다니고, 쯧쯧… 출근할 때 거울도 안 보나?”


“그러게 저런 근본 없는 놈들은 뽑으면 안 됐다니까, 쯧. 아무리 상부 명령이라 해도 그렇지, 왜 이상한 전형을 만들어서…”


또다시, 푹 숙인 고개 사이로 얼굴을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숨긴다. 주먹 쥔 손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면 그렇지.


자리로 돌아와서 품 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초콜릿을 꺼냈다. 저번 봉급을 받았을 때 왕창 쌓아 두었던 초콜릿은 어느새 단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구해야 될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먹어버린다고?


아니야, 지금 당장 안 먹으면 미쳐버리겠는걸?


마음속에서 두 갈래가 서로 계속 다투었다. 점차 과열되어서 머리가 터져 버리기 직전, 결국 꾹 눈을 감고 초콜릿을 반으로 쪼갰다. 한쪽은 소중하게 감싸서 품 속에, 다른 한쪽은 입 속에 넣었다. 휴, 그나마 살 것 같다. 달콤함과 은은한 씁쓸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한 숨 돌리고 주변을 돌아보자, 옆자리에서 밝은 얼굴로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는 금발 여성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던지 간에 싱긋 웃어주던 그 미소를 지으며, 수척한 몸으로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내심 저런 미소가 부러웠던 걸까, 웃어보기 위해 입술을 쭉 내민다. 하지만 데이지의 그 미소와는 전혀 달랐다. 인위적인 느낌이 풀풀 풍겼다. 손으로 입을 쭉 당겨서 미소를 만들어 보아도 허탈함만 가득할 뿐이었다.


“안나, 뭐 해?”


“아, 데이지.”


어느새 정리를 마치고 온 데이지는 역시나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냥… 일.”


그나마 어제 뭐라도 챙겨 준 덕인지 데이지는 어제보다 훨씬 밝은 모습이었다. 고작 그 정도 먹었다고 삐쩍 말라붙은 몸이 다시 균형을 찾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모습이었다. 다행이네. 내심 안도하며 품 속에서 손때가 잔뜩 낀 수첩을 꺼내 들었다. 난잡하게 적혀 있던 모든 것을 직직 긋고 그 위에 크게 적기 시작했다.


초콜릿 살 카페 찾기


빨리 찾아야 하는데… 펜 등으로 머리를 박박 긁었다. 엊그제 밤새도록 찾아 돌아다녔을 때는 나오지도 않던 가게가 지금 찾는다고 나올까? 그놈의 마약법인지 뭔지, 애꿎은 사람들 말고 진짜 마약쟁이들을 잡아가라고.


“맞아, 안나. 너 초콜릿 좋아하지 않아?”


“응? 응, 없어서 못 살지. 왜?”


옆에서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던 데이지가 말을 걸었다.


“다름이 아니라... 저기 로열 가에 생긴 곳 가봤어?”


“로열 가? 우리 사는 11지구 말하는 거지? 집 바로 옆이네. 근데 뭐가 생겨?”


“카페!”


눈이 번쩍 떠졌다.


“언제 생겼어?”


“글쎄, 며칠 안된 것 같은데? 아, 그리고 말이야...”


11지구, 로열 가. 머릿속에 똑똑히 각인시켰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달려야겠다.


“야! 잡초!”


저 멀리서 불청객이 데이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이지는 아쉬운 듯 말을 늘이다가 다시 싱긋 웃었다.


“쩝, 가봐야겠다. 맞아, 안나. 그러고 보니 너 오늘 외근 아니었어?”


그 말을 끝으로 데이지는 불청객에게 달려갔다.


외근? 황급히 수첩을 꺼냈다. 직직 그어진 선 아래에 자그마하게 적힌 글씨가 보였다.


크로커스력 572년 5월 28일 - 심판부에서 정기검증 받을 것


두 눈이 크게 떠진다. 지금 시간이 몇 시지? 허공에 수 놓인 홀로그램이 오후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심판부까지 가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터였다. 터덜터덜 짐을 챙기고 사무실을 나선다.




[5급 시민, 개인국 여행허가과 소속 안나 도 (Anna Doe) - 외근 확인되었습니다. 이동 캡슐의 사용은 불허되었습니다.]


젠장, 나도 캡슐 좀 쓰게 해 주지. 빌딩의 게이트를 지나자 그 사이로 아무 감정 없는 기계음이 들려온다. 괜스레 다른 사람이 들었을까 걱정돼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인다. 분명 처음 입사했을 때는 당당했었는데,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을까. 세상이 너무나 막막했다.


건물을 나서자마자 하늘을 가득 메운 마천루, 그리고 그 마천루의 허리춤에서 붕붕 날아다니는 비행선들이 주는 위압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내리자, 자신이 걸어 다닐 길바닥에는 사람 한 명 없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보자, 심판부… 2지구에 있었지? 그나마 가까웠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11지구를 가로질러서 걸어가면 시간 내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텅 빈 대로를 지나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마천루 사이로 쥐구멍처럼 나 있는 길을 지나자 터널이, 그리고 또 다른 게이트가 나왔다. 반대편에서 넘어오는 자들을 감시하는 경비병들이 게이트 양편에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인간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눈들의 이목을 끌며 게이트에 들어섰다.


[5급 시민, 안나 도 (Anna Doe), 리치먼드 가 2번지 거주민, 이동 허가됨.]


게이트를 가로막던 차단막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쉰다. 반대편에서 밀려들어오는 곰팡이 냄새와 알싸한 냄새를 비롯한 형용할 수 없는 향이 잔뜩 풍겼다. 손으로 휘휘 저어가며 반대편으로 나오자 익숙한 그 풍경이 보였다.


검게 물든 구름 사이로 끝없이 퍼붓는 빗방울, 그 사이로 내리치는 천둥번개. 허공에 잔뜩 매달린 전선과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들, 더 이상 볼 수 없는 태양을 추억하듯이 번쩍이는 네온사인. 유일하게 바뀌는 것은 그 밑에서 드러누워 있는 사람의 얼굴뿐이었다. 보나 마나 한방 빨았네. 인상을 찌푸리고 애써 무시하며 길을 걸었다.


온 김에 데이지가 말해 준 곳이 어딘지나 한번 봐 볼까? 마침 심판부를 가려면 로열 가를 거쳐 가야 하는 참이었다. 도로포장은 커녕 평탄하지도 않은 도로를 걸어 나갔다. 옆으로 가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다양한 가게 사이로 자신이 자주 다니던 카페들만 철창을 내린 채 폐업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망할. 부르튼 입술이 다시금 따끔따끔했다.


로열 가, 로열 가… 아, 여기다.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한산한 거리였다. 쏟아져 내리는 비 때문일까, 11지구의 어디서나 항상 울려 퍼지던 선전 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카페… 아토할란?”


이름에는 카페가 들어가 있었으나, 무언가 이질감이 들었다. 창문은 전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겉모습도 요즘 시대와는 맞지 않는, 그러니까 자료로나 볼 수 있을듯 싶은 모습이었다. 마치 귀족들의 놀이터에나 있을 법한 그런 생김새였다.


저녁부터 영업 시작!

주인 백-


그리고 문에는 정갈하다 못해 고풍스럽기까지 한 유려한 필체로 적힌 문장이 걸려 있었다. 혹시나 이 카페가 귀족들의 사교장이 아닐까? 괜히 초콜릿 좀 얻어보겠다고 들쑤셨다가 몸에 바람구멍 하나 나지 않을까? 데이지 이년, 설마 거짓말한 건 아니겠지?


이러나저러나 위치를 알았으니 데이지에게 물어보고 퇴근 후 다시 와서 확인하면 되는 일이었다. 당장은 눈 앞의 일이 최우선이었다.




[정지.]


아무런 감정도 없는 기계음이 명령한다. 커다란 카메라가 달린 드론이 날아와 자신을 찍어간다.


[두 팔을 벌리시오.]


긴 봉이 튀어나와 위에서부터 몸을 스캔한다.


[위험 물질 없음. 방문 목적을 말하시오.]


"정기검증을 위한 심판부 방문."


[5급 시민, 통제부 개인국 여행허가과 소속 안나 도 (Anna Doe) - 확인 완료. 2지구 진입 허가.]


굳게 닫혀 있던 철창이 올라가고 그 사이로 들어간다. 앞에서는 날카로운 감시의 눈빛이, 뒤에서는 부러움과 질투의 눈빛이 쏟아졌다. 뒤의 철창이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환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심판부 건물 앞에 도착하자 또 다른 게이트가 반겨주었다.


[5급 시민, 통제부 개인국 여행허가과 소속 안나 도 (Anna Doe) - 입장하십시오.]

속으로 침을 꿀꺽 삼킨다. 매달 있는 일이지만 긴장이 되지 않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안나 양 되십니까?”


“아… 예!”


훤칠하게 생긴 적발의 여성 보좌관이 자신을 안내했다. 심판부의 중간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추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보좌관은 자신을 문 앞에 덩그러니 두고 돌아가 버렸다. 후, 숨을 크게 들이쉰다. 긴장하지 마, 안나. 달마다 하던 거잖아. 굳게 닫힌 문을 손으로 밀었다.


“어서 오시게, 오는 데에 불편함은 없었나?”


방 안에는 한 남성이 정갈하게 앉아 있었다. 그 남성의 앞에는 자신의 인적사항이 적힌 정보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네.”


“모든 질문에 대해 네, 아니오로 답하게. 자, 자네 이름이- 안나 도, 맞나?”


“네.”


“5급 시민?”


“네.”


“통제부 개인국 여행허가과 소속?”


“네.”


남성의 표정이 이해하기 힘든 방향으로 변해갔다.




20/81


뇌절 ON

엘사는 다음 편에서야 나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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