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픽] 결혼 계약서(7)

ㅇㅇ(222.110) 2020.06.28 20:24:36
조회 761 추천 74 댓글 14



“그만 좀 찾으라구! 나 오는 쉬는 날인데!”


안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소파에 누웠다. 한 시간 마다 날라오는 업무 메일과 자신을 찾는 팀원들의 문자에 출근하는 날보다 더 바쁜 느낌이었다. 회사에 있을 때는 그렇게 찾지도 않으면서 꼭 자신이 쉬는 날에만 찾는 회사 사람들이 야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오늘은 크리스토프도 출장으로 연락 두절이었다. 안나를 찾는 사람은 오직 회사 사람들 뿐이었다.


그때 또다시 도착한 문자에 안나는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 사람이 누구이건 간에 오늘은 자신을 더 이상 찾지 말라고 한마디 할 생각이었다.


보낸이: 엘사 블랙우드

저녁은 내가 만들게요. 퇴근하고 장보고 갈 테니 기다려요.


그 순간 힘이 빠지면서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안나의 표정은 이미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미소에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안나는 소파에 누워 엘사에게 뭐라고 답장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알겠다고 하면 너무 단답이고, 그렇다고 다른 말을 하자니 좀 이상하고..

핸드폰을 붙들고 한참을 고민하던 안나는 결국 별 다른 말을 찾지 못한 채 엘사에게 답장을 보냈다.


받는이: 엘사 블랙우드

기대하고 있을게요.


엘사 성격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쨌든 저녁은 엘사가 만들어준다고 했으니. 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놓여있는 노트북을 열었다.

이제는 회사 사람들에게 답장해줄 차례였다.


그때 핸드폰이 깜박이면서 새로운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안나는 핸드폰을 확인하자 마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재미없게 문자를 보낸 엘사도, 거기에 기분이 좋아진 자신도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엘사는 안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보낸이: 엘사 블랙우드

네.











안경을 잠시 벗고 눈 주변을 꾹꾹 눌렀다. 요새 들어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 것 같았다.

앞에 놓여있는 물을 한 모금 마신 엘사는 다시 안경을 고쳐 쓰곤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은 일이 많은 편이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오늘 저녁엔 다른 회사와 미팅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저녁을 같이 먹자는 안나의 말에 엘사는 미팅을 나중으로 미루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한 일도 미팅을 미루는 일이었다.

우선 순위로 따진다면 회사 일이 먼저였지만 안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게다가 자신을 위해 아침을 차려준 것이 고맙기도 했고.

엘사는 최대한 모든 일을 빨리 끝내려고 노력중이었다. 퇴근하고 마트에 들려 장까지 보려면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다. 거기에 저녁 메뉴도 생각해야 했고.


“후우..”


결국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젠 뭐가 우선인지 알 수도 없었다.

저녁 메뉴를 고르는게 우선일까, 회사 서류를 처리하는 것이 우선일까. 엘사의 눈은 서류를 보고 있었지만 머리속은 이미 저녁메뉴로 가득했다.

엘사가 만들 줄 아는 음식이 몇 개 없기도 했지만 안나의 입맛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애초에 안나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고.

만들기 쉬우면서 그나마 있어 보이는 음식을 고민하다 볶음밥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이기도 하고 무난한 요리였다.


똑똑.


그때 방문을 두드리며 한스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서류 뭉치가 한아름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보자 마자 엘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앞에 놓여있던 서류에 거칠게 서명을 하고 한스에게 건네주었다.

뒷장을 미처 읽진 못했지만 어차피 자신이 담당해야 할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제대로 읽어보고 주시는거죠?”


“일을 줄여줄거 아니면 빨리 나가요.”


“일단 회의 보고서 정리 해놨습니다. 읽어 보시고 문제 있으면 알려주세요.”


“...네.”


“그리고 미팅은 다음 주로 다시 잡아 놨습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가정에 충실하신 모습을 보니 보기 좋네요.”


“그만 나가줄래요?”


“저는 또 두 분 사이가 안 좋은 줄 알았죠.”


“…….”


“메뉴는 정하셨나요? 원하시면 제가 몇 가지 조언을..”


“제발 꺼져요.”


짜증이 섞인 엘사의 목소리에 한스는 작게 웃으며 방을 나갔다.

엘사는 인상을 쓰며 다시 서류더미로 고개를 돌렸다.

한스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긴 했지만 저 능글맞은 인상을 보니 오히려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 같았다.

엘사는 저녁 약속에 대한 생각을 지우며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다간 저녁은 커녕 회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어느새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안나는 기지개를 켜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래도 오전만 좀 바빴을 뿐, 오후는 대체적으로 한가한 편이었다.

이제 남은 일이라곤 엘사와 함께 저녁을 먹는 일이었다.

엘사에게 연락해보려던 차에 안나의 핸드폰이 깜박거리며 알림이 울렸다.


보낸이: 엘사 블랙우드

미안해요, 일이 좀 늦게 끝나서요. 지금 가고 있는데 배고프면 먼저 먹어요.


문자를 확인한 안나는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럴까봐 오늘 아침부터 약속을 잡았던 건데. 차라리 미리 연락을 해주지. 거기다 뭐? 배고프면 먼저 먹으라구?


안나는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던져두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자신이 왜 이런지 스스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분명 엘사가 잘못한 일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빠질 일은 아니었다.

사실 엘사와의 저녁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기대치가 컸던 탓일까? 안나는 가슴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것 마냥 답답한 기분에 부엌으로 가 찬물을 마셨다.

엘사의 문자에 자신이 기분이 이렇게 오락가락 하는 것을 보니 자신이 미쳤거나 아니면 오늘 단 것을 먹지 않아서 예민해진 게 분명했다.

안나는 식탁에 놓여있던 초콜릿을 하나 까서 입에 넣었다. 달콤한 초콜릿이 입안에 가득 퍼졌지만 안나의 기분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엘사가 오면 한마디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안나는 거실로 돌아가 노트북을 열었다.











엘사가 퇴근해서 장을 보고 돌아왔을 때는 저녁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안나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채로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던 중이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엘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둘러서 뛰어온 온 모양이었다.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엘사는 미안하다면서 옷도 제대로 벗지 않고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일이 늦게 끝난 것은 순전히 자신의 불찰이었다.

애초에 갑자기 일정을 바꾼 것이 잘못이었지만 엘사는 금방 끝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조금은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서둘러 들어오는 엘사의 모습에 안나는 섭섭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풀어지는 것 같았다.


오늘 많이 바쁘긴 했나보네.


비록 조금 늦었을지 몰라도 엘사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 같았다.

물론 엘사가 일부러 늦을 사람은 아니었지만 막상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귀여운 것 같았다. 안나는 안경을 벗고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다.

엘사는 양 손에 들려 있던 봉지와 서류가방을 식탁에 올려놓고 손을 씻으려 싱크대로 향했다. 그 순간 안나가 엘사의 팔을 잡았다.


“엘사.”


“..?..”


“나 어디 안 가니까 씻고 옷 갈아입고 와요. 저녁 조금 늦게 먹는다고 큰일 안 나니까.”


“아니에요, 나 때문에 기다렸을텐데..”


“그러니까 빨리 씻고 와요. 나 더 배고파지기 전에.”


“저녁 먹고 씻을게요. 괜찮아요.”


“당신 진짜 고집불통인거 알아요?”


“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네요.”


“잔말 말고 빨리 씻고 나와요. 그렇게 안 하면 당신이랑 저녁 안 먹어요.”


“네?”


엘사는 벙찐 표정으로 안나를 바라봤다. 안나는 대답대신 몸을 돌려 다시 거실로 향했다.

엘사가 안나를 불렀으나 안나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손에 들려 있던 안경을 다시 쓰고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안나의 협박 아닌 협박에 엘사는 없던 두통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안나는 꼼짝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엘사는 결국 졌다는 듯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금방 씻고 나올게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결국 엘사는 식탁에 올려져 있던 가방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안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치 엘사의 항복선언을 받아낸 것 같았다. 희미하게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안나는 노트북을 덮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찬찬히 엘사가 사온 재료들을 살펴봤다. 요리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재료들을 보니 엘사가 뭘 만들려고 했는지 짐작이 가는 것 같았다.


‘이 참에 나한테 많이 미안해야 할 거예요, 엘사.’


안나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재료들을 씻고 다듬기 시작했다.

엘사에게 섭섭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마음고생 한 만큼 엘사도 조금 힘들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주방에는 금방 맛있는 냄새가 가득 퍼졌다.





추천 비추천

74

고정닉 14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공지 음란성 게시물 등록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163] 운영자 14.08.29 167262 509
공지 설국열차 갤러리 이용 안내 [2861] 운영자 13.07.31 439696 286
1123714 ai힘을 빌리면 개쩌는 픽썰 쪄지냐 [1] ㅇㅇ(223.38) 11:41 5 0
1123713 이 음란한 갤 [1] ㅇㅇ(223.38) 11:39 7 0
1123712 안녕 털복숭이들 [1] ㅇㅇ(112.157) 11:26 6 0
1123711 청정한 헬요일 ㅇㅇ(223.62) 00:18 11 0
1123709 뒤조심)아 되게 충격적인 짤 봫는데 얘기할데가 여기밖에 없어 [7] ㅇㅇ(110.47) 06.09 66 0
1123708 디시 이미지 왜 깨져... ㅇㅇ(223.62) 06.09 11 0
1123707 누가먼저 보내나 시합! [1] ㅇㅇ(223.62) 06.09 25 0
1123706 일편단심 안개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25 0
1123705 넘쳐나는 go간 [1] ㅇㅇ(223.62) 06.09 30 0
1123704 축 늘어진 흰 옷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아기 [1] ㅇㅇ(223.62) 06.09 24 0
1123703 설갤 단점 ㅇㅇ(223.33) 06.09 16 0
1123702 설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22 0
1123701 그런가 [2] 설갤러(118.43) 06.09 16 0
1123700 아니 69라고 설갤러(118.43) 06.09 14 0
1123699 크 69가 와버렸다!!!! 설갤러(118.43) 06.09 14 0
1123698 엘산나를 만난게 행운이야 [5] ㅇㅇ(223.62) 06.08 32 0
1123697 배거파 [1] ㅇㅇ(110.47) 06.08 18 0
1123696 오늘막글 ㅇㅇ(223.62) 06.08 15 0
1123695 어 내일이 69잔아 ㅇㅇ(223.62) 06.08 14 0
1123694 쥬미 영화 보러옴 ㅇㅇ(211.234) 06.08 17 0
1123693 안탄절 지나면 엘탄절도 금방 ㅇㅇ(223.62) 06.08 16 0
1123692 모험가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20 0
1123691 싯발 언제 비 그친거냐 [1] ㅇㅇ(223.62) 06.08 20 0
1123690 수상하게 칼을 잘쓰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1 0
1123689 뭐지? 결혼식인가? [5] ㅇㅇ(211.234) 06.08 56 5
1123688 정령을 잡아다 예쁘게 묶어 공물로 바치기 ㅇㅇ(223.62) 06.08 22 0
1123687 혐퀘후식사 [2] ㅇㅇ(211.234) 06.08 19 0
1123686 오늘은 자동으로 실내활동 [1] ㅇㅇ(223.62) 06.08 19 0
1123685 자연스레 깊어가는 둘의 관계 ㅇㅇ(223.62) 06.08 21 0
1123684 아찜글 ㅇㅇ(211.234) 06.08 15 0
1123683 새벽글 [1] ㅇㅇ(115.138) 06.08 17 0
1123682 다다음주가 안탄절이네 곧 [2] PeopleOfArendell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3 1
1123681 안나가 엘사를 [1] ㅇㅇ(223.62) 06.07 31 0
1123680 엘산나의 금요일 ㅇㅇ(223.33) 06.07 16 0
1123679 여전히 존버중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26 0
1123678 안나vs안나는 기존쎄 대결일듯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35 0
1123677 애틋하게 뺨쓰담 ㅇㅇ(223.62) 06.07 21 0
1123676 눈 깜짝할 새 킹요일 ㅇㅇ(223.62) 06.07 21 0
1123675 원하는 초능력을 얻는 대신 댓글이 부작용을 정해줌 [18] ㅇㅇ(115.138) 06.07 86 0
1123674 크으 모닝갤먹 [1] ㅇㅇ(223.62) 06.07 23 0
1123673 [그림] 원치 않은 신앙 [10] 애호박쥬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105 10
1123672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창작물 [6] 케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112 11
1123671 세명이서 서로 아래 핥으려면 원을 그려야하냐 [3] ㅇㅇ(223.62) 06.06 53 0
1123670 프로즌 ost는 언제 들어도 좋아 [2] 설갤러(118.43) 06.06 24 0
1123669 크읏 이러다 울룩불룩 설줌이 돼버렷 [1] ㅇㅇ(223.62) 06.06 28 0
1123668 엘사만 만나면 움츠라드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36 0
1123667 태어날 때 부터 얀데레 엘사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48 0
1123666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3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