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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8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11 00:07:44
조회 472 추천 27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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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엘사는 말을 쉬이 꺼내지 못했다. 찻잔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커피가 멈추고 나서도 여전히 엘사는 입을 열지 못했다. 


  “...”


  찻잔을 조심스럽게 들어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엘사는 방금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픈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 미안해요…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었나요?”


  “그,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다는 것 까지요.”


  “아, 그래요. 여동생과 저는 서로가 없이는 못 사는 사이었어요. 물론 중간중간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동생은 저를 위하는 마음을 저 버린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 잘못으로, 제 멍청함으로 인해서 모든 일을 망쳐버리고 말았어요.”


  “...”


  “그렇게 동생은 저를 떠나 버리고 말았어요. 동생이 원하던 것은 그저 같이 있어 달라는 부탁 하나, 딱 하나뿐이었는데...”


  “...”


  엘사는 후회 섞인 한탄을 내뱉으며 아련한 눈빛으로 벽 한 구석에 걸린 꽃 그림을 바라보았다. 화사한 노란색이 화폭에 가득 담긴 그림이었다. 


  “미안해요,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아니에요, 안나. 괜찮아요...”


  애써 자신을 안심시키면서도 엘사는 여전히 여러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듯싶었다. 그녀가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동안 찻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 였지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지금껏 보아 왔던 엘사의 미소 아래에 얼마나 깊은 슬픔이 잠겨 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엘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자신을 자책했다. 


  아오, 멍청아, 이 분위기 어떻게 할래?


  “어, 음, 엘사?”


  “... 네?”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왜, 요즘은 지위만 있으면 죽은 사람도 다시 살려내잖아요!”


  그거 참 좋은 위로네, 멍청아. 


  살짝 내려가 있던 엘사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고마워요, 안나. 사실 이 카페도 동생을 위해서 차린 거예요. 저도 그랬었지만, 동생이 초콜릿을 엄청 좋아했었거든요.”


  “초콜릿을요?”


  “네, 초콜릿이요. 히, 제조 허가증 발급받느라 고생 엄청 했어요. 아무튼, 언젠가 동생을 다시 만나게 되면 이 카페에서 같이 오순도순 초콜릿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게 꿈이었거든요.”


  “...”


  “고마워요. 안나가 카페에 와준 덕분에 오랜만에 웃어볼 수 있었어요.”


  “어… 아니에요.”


  “그런 김에 안나 이야기도 좀 해 줘요! 헤에, 너무 궁금해요.”


  엘사는 다시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드리우며 말했다.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온 엘사를 보게 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엘사가 말한 것처럼 저도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듣고 싶어요?”


  “안나가 불편하지만 않는다면요.”


  “뭐, 저도 그렇게 좋은 형편은 아니었어요. 어느 한 밤, 갓난아기였던 저는 고아원 앞에 덩그러니 버려졌어요. 그리고 세 살 때, 제가 무언가를 인식하기 시작한 때부터 저는 고아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지 간에 아득바득 해야만 했어요.”


  “고, 고아원이요!?”


  엘사는 깜짝 놀라며 외쳤다. 작게 쓴웃음을 짓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고아원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어요. 고작 두 해가 지나고 나서, 그러니까 다섯 살 때 고아원에서 나오게 되었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 고아원에 불이 났어요.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 방화 장치도 부실했고, 꼭두새벽이라 전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죠. 미처 대피를 하지도 못하고, 소방 안드로이드들이 오기도 전에 전부 죽어버리고 말았어요. 유일하게 살아남은 저는 저주받은 아이라고 손가락질당하며 이곳저곳 떠돌게 되었지요.”


  “세상에…”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세상에 던져진 아이가 할 수 있던 건 허드렛일뿐이었어요. 뭐, 그것조차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굶는 날이 태반이었지요. 그러다가 지나가던 사람에게 빌고 빌어서 간신히 한 끼를 얻어먹으면 그 날은 꿈만 같은 날이 되었죠.”


  “제, 제국의 지원이 있지 않았어요? 법령이, 아니, 황제령이 있었을 텐데…!”


  “황제령요? 하하… “


  헛웃음이 절로 실실 새어 나왔다. 


  “돈을 주면 뭐해요, 중간에서 전부 떼먹고 실제로 받게 되는 건 얼마 되지도 않는데.”


  “가로… 챈다고요?”


  “그런데도 노망이 나버린 건지, 황제라는 작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요! 아니, 천년 넘게 황제 자리에 있으면 다인가? 관리직에 있는 새끼들이 자기 배만 불리고, 정작 필요한 사람은 아무것도 못 받는데…”


  홧김에 찻잔을 들어 커피를 한 번에 들이마셨다. 얼음을 넣은 것처럼 차갑게 식은 커피가 속을 식혀주었다. 


  “후, 아무튼 열세 살이 되던 해에 겨우 사정사정해서 집을 지원받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열여섯 때 특수 전형으로 통제부에 채용되었고요.”


  “...”


  “그 이후로는 그냥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아오고 있어요. 매일같이 출근해서 청소만 하고, 욕만 먹고, 실제로 참여하는 건 하나도 없지만요. 어때요, 재미없죠?”


  “...”


  말을 마치고 엘사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엘사?”


  엘사의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해지고, 몸은 마치 얼어붙기라도 한 듯이 굳어 있었다. 


  “엘사, 괜찮아요?”


  으악, 차가워!


  손을 뻗어 엘사의 손목을 덥석 잡자 냉기가 손에 한가득 퍼졌다. 놀라며 손을 펄쩍 떼자 엘사는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안나! 괜찮아요!?”


  “괜, 괜찮아요.”


  엘사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선 씁쓸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세상에, 그 정도로 비리가 만연한 줄은 몰랐어요…”


  “어떻게든 발버둥을 쳐 봐도, 결국 바뀌는 것은 없더라고요. 그거 아세요? 남들은 다 가진 혈연도, 친구도 하나 없이 홀로 살아가다 보니, 요즘은 매일같이 머릿속에 한 질문이 떠올라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이 테이블 위에 힘없이 떨어졌다. 허공에 힘없이 놓인 손이 파르르 떨렸다. 


  “난 왜 살아갈까?”


  “...”


  “무언가를 해 보려고 발버둥을 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제게 절망을 속삭여요. 이대로 계속 살아봐야 평생토록 희망 없이 고통만 받을 텐데, 왜 살아가야 할까요?”


  “... 안나.”


  “날이 저물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침대에 몸을 던지며 생각해요. 내일은 있을까? 아니, 내일은 올까? 이대로 잠에 빠져서 깨어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편하지 않을까?”


  “안나.”


  “매번 속으로 우는 것도 이젠 지쳤…?”


  엘사는 카운터에서 나와 자신의 옆 의자에 몸을 걸터앉았다. 엘사는 손을 들어 자신의 두 손에 깍지를 끼었다. 


  “이게 무슨…?”


  “안나, 나를 봐요.”


  고개를 들어 엘사를 보았다. 그 무엇보다 순수한 푸른 눈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엘사와 눈을 맞추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저는 언제나 안나 곁에 있을 거예요.”


  엘사의 말을 듣자,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안나에게 불행이 닥치면, 저를 떠올려 줘요. 언제나 여기에 있으면서, 안나의 보금자리가 되어 줄게요.”


  “...”


  “장담컨데, 안나에게도 꼭 빛이 찾아올 거에요.”


  엘사는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을 품에 꼭 안아주었다. 따스한 온기가 자신의 두 뺨에 전해지자, 방금까지만 해도 온 몸을 짓누르던 우울함이 사르르 사라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오늘도 염치없게 엘사에게 받기만 했네요, 미안해요...”


  “안나!”


  엘사는 입을 다물고 볼을 잔뜩 부풀렸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농담이에요, 내일 또 올게요.”


  “조심히 돌아가요, 안나.”


  엘사는 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뒤로 하고 어두컴컴한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매번 똑같이 걷는 길이지만, 오늘만큼은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수 분을 걷고, 거의 집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어라?”


  하늘을 바라보니, 어두컴컴한 하늘 사이로 새하얀 눈송이들이 내리고 있었다. 


  눈도 참 오랜만이네. 


  한 송이씩 피어내리던 눈송이들은 어느새 검은 하늘을 뒤덮어 새하얗게 만들었다. 펑펑 내리기 시작한 눈은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가 벽에 가방을 휙 던지고 정장을 아무 곳에다 너저분하게 던진 다음 침대에 몸을 뉘었다. 


  끼약-!


  “...?”


  가방이 벽에 부딪힐 때,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인가 싶어 무시했다. 눈을 감자, 어둠이 다시 찾아왔다. 매일 밤마다 자신을 괴롭히던 그 어둠이었다. 


  “... 엘사.”


  엘사의 이름을 나지막이 말하자마자, 어둠은 어딘가를 향해 사라지고 엘사의 모습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항상 욱신거리던 손목도 오늘만큼은 아무런 통증도, 고통도 없었다. 


  “고마워요.”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엘사 덕분에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편하게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 그리고 잠에 깊이 빠져든 탓에, 방 한 구석에 놓인 가방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 7화에 오류 있었습니다 ㅜㅜ

부장이 아니라 과장이에요!



28/81


떡밥은 계속된다!

궁금하거나 질문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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