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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공주와 해적 29화 - 어색한 상황

ㅂ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21 18:06:51
조회 290 추천 18 댓글 13

링크 모음: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nowpiercer2013&no=928443



29화 - 어색한 상황



살면서 정치적인 위기도 겪어봤고, 나름 산전수전 다 치뤄본 멜리사지만, 지금 이 순간처럼 손에 얼굴을 파묻고 싶었던 적은 정말 드물었다. 안나가 어릴 적에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 거냐고 물어본 이후로 처음이려나? 엘사 이 여자, 아무리 뱃사람이라지만 하나뿐인 여동생의 정조 교육에 조금 더 신경 쓰는 게 맞지 않을까, 임마?!


아니, 침착하자.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긴 해도, 한나는 어엿한 스무 살 성인이다. 몇 세대 이전까지만 해도 스무 살이면 이미 결혼해서 애도 하나둘 있을 나이다. 본인과의 나이차가 조금 있어서 좀 많이 귀여워하느라 종종 까먹는 사실이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한나의 입에서 여자의 매력을 운운하는 말이 나올 줄이야.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멜리사의 침묵을 오해했는지, 침대에 다소곳이 앉은 한나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 방금 한 말은 잊어주세요. 소심하고 음침하고 맨날 몸이나 아픈 내가 무슨……”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누가 들어도 심각한 자기비하에 멜리사의 표정이 팍 썩어들어갔다. 안나도 자존감이 상당히 낮은 아이였지만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본인이겠지만) 이 녀석은 훨씬 더하잖아?


하아……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한나, 내 말 똑바로 듣거라.”


“…… .”


낙담과 부끄러움이 절묘하게 뒤섞인 표정이 엄청 귀여워서 입가가 실실 풀어지는 걸 막기 위해 애를 쓰는 멜리사였다. 나원참…….


내가 너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왜 취하려 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느냐? 일단 한가지는 확실히 해두마: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너를 안고 싶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다.”


폭탄 발언에 눈이 휘둥그래지는 한나. 그렇게 놀랍나? 아니 뭐, 내가 생각해도 파격적인 발언이긴 하지만, 사실인걸 어떡하냐? 나도 성적으로는 20년 넘게 강제 금욕해온 혈기 왕성한 성인 여자거든? 이렇게 귀여운 애랑 같이 지내다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 그럼 왜……”


어지간히 당황한건지 목소리까지 떨리는 한나. , 이것까지는 얘기해주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는 한숨과 함께 멜리사가 입을 열었다:


너처럼 총명한 아이가 왜 이런 면에선 둔한 건지…… 내가 너를 안지 않은 것은, 오로지 네 언니의 낯을 생각해서다. 이제 납득이 되느냐?”


엘사 언니를……?”


잠깐의 어리둥절한 모습 뒤에 핫 하고 얼굴이 다시 빨개지며 고개를 숙이는 한나. 그래, 진짜 거기까진 생각이 못 미친 거구나, 귀여운 녀석.


그래, 여왕인 자신이 원한다면 이 소녀를 얼마든지 탐할 수 있었도, 실제로 그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나는 엘사 드레이크의 여동생이기도 했다; 차마 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동생을 취하기에는 멜리사도 양심이 있었다. 아마 자신이 여왕의 권력을 이용해 동생을 농락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엘사와는 앞으로 웬만해선 긍정적인 관계를 쌓아가고 싶었다. 굳이 안나를 그녀 곁에 붙여준 이유가 뭐겠는가…….. 물론 그 아이가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게 가장 크긴 하지만.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 여자 앞에선 흠이 될 만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오해가 풀렸느냐?”


“………… .”


멜리사의 말에 아직도 빨개진 얼굴을 끄덕이는 한나. 이거참, 본의 아니게 굉장히 민망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가…… 이 아이도 내심 기대하고 있던 건가……


이런, 네 언니가 돌아오면 자신이 없는 새 이렇게 된 걸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구만.”


실없는 감상을 흘리는 멜리사였지만, 생각보다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한나였다.


“…… 혹시라도 언니가 반대한다면, 제가 어떻게든 말해볼게요.”


뜻밖의 대답에 진심으로 놀란 멜리사때문에 표정에도 살짝이나마 드러났다. 아니, 그 정도야? 자신을 생각해서 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니 당황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몽글해졌다. 살면서 이렇게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애정을 받아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 있긴 있었지…… 내가 스스로 밀어내고 말았지만. 안나, 지금끔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혹시 엘사 드레이크와는 어떤 관계를 형성했을까?

 


***

 


으으, 랩스, 나 떨려……”


아니, 도대체 뭐가요? 누가 들으면 저승사자라도 만나러 가는 줄 알겠어요.”


평소답지 않게 선실에 콕 틀어박혀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방 안을 서성이는 안나를 보며 관자놀이를 부여쥐던 라푼젤이 물었다. 평소에는 사람을 못 만나서 안달인 공주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다.


차라리 그게 낫겠다! 저승사자한테는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없잖아………”


공주님, 그 논리가 얼마나 파탄나있는지를 굳이 제 입으로 말씀드려야 하나요?”


아무리 친구 같은 안나라 해도 평소같으면 엄연히 공주이자 상전인 그녀에게 이런 막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지금 상황은 솔직히 좀 충격 요법이 필요하긴 하다. 미안해요, 안나.


그치만, 엘사의 부모님이라고?! 나랑 엘사는 어찌됐던 지금 사귀는 거잖아! 아니, 이제 사귄지 며칠밖에 안됐다고! 근데 벌써부터 부모님을 만난다니, 이거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냐……?”


여왕님…… 동생 분의 연애 관념이 이와 같답니다. 그러게 조금은 둘이서 이런 거로 얘기해보시지 그러셨어요.


하늘을 우러르며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애꿏은 멜리사를 탓해보는 라푼젤. 하지만 어쩌랴, 지금 안나 곁에는 자기뿐이다. 거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엘사가 안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상, 자신은 어디까지나 지지하기로 맹세했으니까.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실 것 없잖아요, 공주님. 그냥 인사에요, 인사.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그렇게 불편하게 여기시면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세요?”


라푼젤의 말에 핫 하고 얼굴이 상기되는 안나. 좀 정신을 차리신 건가, 아니면 또 옆길로 새신 건가?


결혼…… 나와 엘사가, 결혼……”


아아…… 어째서 이런 때에는 항상 슬픈 예감 쪽이 들어맞는 거냐고……


또다시 하늘을 우러르는 라푼젤이었지만, 그 시야 한쪽 구석에서 볼을 붉히며 상상의 나래로 떠난 안나의 모습에 입근육이 아파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아렌델에 있을 적, 하나뿐인 언니에게 외면받고 외롭게 성장하신 공주님이다; 이렇게까지 밝게 자라주신 건 분명 안나의 천성이 그런 것이겠지만, 어쨌든 공주로서의 신분도 그렇고 주변 상황도 그렇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기 어려운 나날들을 보내왔었다. 그랬던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상상하며 저렇게 기쁨에 젖어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그녀의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공주님, 안에 계십니까?”


그 때, 선실 밖에서 카산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스 윈드의 선원들 대부분은 (물론 엘사를 빼면) 안나와 마치 친구처럼 허물없는 사이로 지내는 가운데, 유독 그녀만 그녀를 깍듯이 윗사람 대접하고 있었다. , 애초에 그녀와 라푼젤이 친해진 계기도 서로의 주군을 존중해주는 상대에 대한 호감이 크게 작용했지.


, 캐스! 들어와요!”


물론 탈권위의 선구자이신 우리 공주님께선 그런 거 없이 그런 그녀도 편하게 대하지만 말이지.


플린은 어때?”


라푼젤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하는 캐스였다; 둘은 원래부터 동료 사이었지만, 그 관계는 악우에 가까웠다고 들었다. 최근에는 사이에 라푼젤이 끼어서 좀 나아진 거 같기는 하지만…….


, 목줄 묶인 멍멍이처럼 답답해하고 있지 뭐. 마음은 이미 다 나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싶은데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러고보니 플린을 베었던 티치의 칼에는, 상처 회복을 지연시키는 독이 발려 있었다고 들었다. 우와, 이미 죽긴 했지만 지독한 작자다…… 엘사와는 다른 의미로 극단적인 해적이라고 해야 할까.


무슨 일이에요, 캐스? 혹시 다 왔나요?”


그새 다시 긴장의 빛을 띤 안나가 묻자 의미심장하게 웃는 카산드라.


곧 도착할겁니다. 한번 나와서 함께 보시죠…… 한번쯤은 눈에 담을 만한 풍경이니까요.”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나누며 함께 갑판으로 나오는 두 사람을, 이미 뱃머리에 서있던 엘사가 웃으며 맞이했다:


공주님, 저 앞을 봐주시겠어요?”


엘사의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을 내다본 안나와 라푼젤의 숨이 동시에 멎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장엄하게 모습을 드러낸 섬의 모습은, 크기는 작을지언정 마치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영험한 기운을 풍기는 듯했다. 마치 엘사 자신과도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섬…… 실로 그녀에게 어울리는 근거지였다.


아름다워……”


중얼거리는 안나의 말이 기뻤는지, 이어지는 엘사의 목소리가 아주 살짝 들뜬 듯했다:


누추한 곳이지만, 어서 오세요…… 우리들의 안식처, ‘고요한 숲노덜드라에.”



- 작가의 변 - 


엘사! 브라보! 정령님의 방치 속에서 우리 흰둥이가 이렇게 요오망하게 자랐답니다! 앞으로 더 그렇게 멜리사의 뒷목을 잡게 해보란 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멜리사가 한나를 좋아하면서도 선을 안넘고 참은 건 엘사의 눈치를 봐서라는 거지 ㅋㅋㅋ 나중에 돌아오면 당당히 교제를 허락받고 할 거 다 하겠다는 발상 넘나 커여운 것 ㅋㅋㅋㅋ 알게 모르게 엘사가 궬백 커플한테 미친 영향이 크다니까? 물론 안나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아무튼, 담화에선 드디어 노덜드라에 도착한 엘산나 이야기! 내일 올라갈지는 모르겠다만, 힘낼게요.....ㅠ 일단 예고나 봅시다.


- 30화 예고: 귀환 - 



오오, 마침 마을 사람들이 나오고 있네?”


...


, 뭐해? 빨리 패비 영감이랑 옐레나 할망구한테 알려!”


...


당연하지; 저 사람들…… 아니, 우리 모두에게 있어 엘사는 구세주나 마찬가지니까.”


...


사이 좋아보이는데…… 오오오, 드디어 엘사한테도 봄이 온 건가!”


...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후.... 쓴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30화일까..... 이놈도 50장을 넘어가는 장편이 될 각이구나.... ㅋㅋ.... 건필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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