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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내 룸메이트가 이렇게 귀여울 리 없어 10

엘산나비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25 0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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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이대로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쪽팔려! 자존심 상해!’





이왕 이렇게 된 거 도서관에서 밤이나 샐까? 아니야, 멀쩡한 기숙사 놔두고 내가 왜? 안나는 기숙사 건물 앞에서 몇십 분째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잘 들어갔냐?]





밤늦게 다 큰 처자를 홀로 내쫓은 게 마음에 걸렸는지, 매정한 동기가 웬일로 친히 메시지까지 보내 왔다.





[ㅗ]





0.1초 만에 답장을 보낸 안나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방문 앞에 다다르자 왠지 모르게 다시 쭈굴쭈굴해진 안나는 문고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렇게 망부석처럼 서 있기를 몇여 분, 방문 너머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들려왔다. 꽤 크게 들리는 걸 보아하니 이 문 바로 너머에 엘사가 있는 것 같았다.





“여보세요, 네, 엄마.”





설마 울고 있었나? 엘사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엿듣는 건 나쁜 짓이란 걸 알지만, 안나는 저도 모르게 문에 귀를 갖다 대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네, 네… 저도 알고 있어요.”





자세히는 들리지 않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꽤나 짜증스럽고 날카롭다. 반면에 엘사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처럼 텅 빈 목소리로 대꾸했다.





“알고 있다구요, 저도 곧 있으면 졸업이에요. 언제까지 이렇게 사사건건…!”





갑자기 뭔가 욱하고 터져 나온 듯, 엘사의 언성이 높아졌다. 안나는 깜짝 놀라며 문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자석처럼 찰싹 붙는다.





“하… 죄송해요. 그냥…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더욱 거세진 수화기 너머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안나의 고막까지 타고 들어와 귀를 따갑게 할 정도였다. 이제 엘사는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기계처럼 네, 네, 하며 짧은 대답만 내뱉었다.





전화는 곧 끊어졌고, 침묵이 흘렀다. 타이밍 한 번 죽여주네. 오늘은 그냥 밖에서 밤새야겠다. 안나가 문에서 귀를 떼며 뒤돌아서려는 찰나, 뭔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안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이 문을 열고 선배를 위로해 줘야 하나? 나 위로 같은 거 잘 못 하는데… 내 위로 따위 필요 없을 수도 있고… 또 선 넘는다고 뭐라 하면 어떡하냐고...’





안나가 고민하는 사이에 흐느끼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아… 모르겠다. 문에 등을 기대며 털썩 주저앉은 안나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선배… 거기 있어요?”





안나가 한 마디 건네자마자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엘사는 순간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자리를 뜨려 했지만, 몇 시간 동안 몸에서 수분을 빼낸 탓에 기운이 없어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기로 한다.





“어… 일단 죄송해요.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음…”





콩, 건너편 엘사도 문에 등을 기댔는지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엘사의 존재를 느낀 안나는 괜히 긴장하며 잠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야 알겠어요. 그동안 선배가 신경 쓰였던 이유.”





스윽, 엘사의 머리칼이 방문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신경 쓰였거든요. 선배가. 처음엔 그냥… 예뻐서 그런 건가? 했는데…”





아, 이 말을 해도 되려나, 기분 나쁘지 않을까? 안나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나랑 비슷하다고 느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선배랑 저요, 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끌렸던 것 같아.”





방문 너머에서 잠자코 안나의 독백을 듣고 있던 엘사는 흠칫 놀랐다. 자신이 안나의 눈을 보고 자신의 것과 닮았다고 느낀 것처럼, 안나는 저보다 훨씬도 전에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니.





“우리 엄마도 보통은 아니거든요.”





안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시대의 신여성이랄까, 진짜 멋진 분이세요. 본인의 삶을 최우선시하는, 응, 완전 마이 웨이! 그래서 아빠랑도 그렇게 빨리 이혼했나 봐요. 제가 한 10살 때였나, 어리다면 어리지만 그래도 알 건 아는 나이였죠. 누구랑 같이 살고 싶냐고 부모님이 저한테 물었을 때, 어린 마음에 그래도 같은 성별인 엄마가 더 좋았는지 망설임 없이 엄마랑 살고 싶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읽었죠, ‘이제 좀 자유로워졌나 싶었더니 짐짝이 따라왔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엄마의 표정을. 그래서 다짐했어요. 절대 엄마한테 짐이 되지 않겠다고. 덕분에 일찍 철이 들었나 봐요. 엄마의 케어 없이도 혼자 학교를 다니고, 숙제를 하고, 진로를 결정하고.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했어요. 베스트 프랜드라고 할 만한 중, 고등학교 동창도 없을 만큼, 공부만 했죠. 엄마는 그런 저를 대견해 했어요. 저는 그게 엄청나게 뿌듯했고요.”





홀로 중얼중얼 거리던 안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 꽤 긴 침묵이 지속되자, 계속 듣고 있다는 듯 엘사가 인기척을 내온다. 이에 안나는 다시금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면서 엄마는… 남자 친구도 많이 사귀었는데, 지금 본가에 같이 살고 있는 아빠도 그중 하나예요. 좋은 분이긴 한데… 그래도 불편한 건 있더라고요.”





흐, 안나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튼! 엄마는 ‘안나의 엄마’가 아닌 본인 그 자체로서의 삶을 즐길 줄 아는 분이세요. 멋있죠? 저는 멋있다고 생각해요. 나도 닮고 싶을 만큼. 근데… 어느날 갑자기 의문이 들더라고요. 나는 ‘엄마의 딸’이 아닌 나 그 자체로서 살고 있나? 절대 아니었죠. 그래서 저도 변하기로 했어요. 대학에 입학하면서, 성인이 되면서. 이제 진정한 내가 되자! 하고.”





안나는 후련하다는 듯이 후우- 하고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짠! 지금의 안나가 있게 된 거죠. 솔직히 처음엔 좀 마음이 불편했어요. 괜히 나쁜 아이가 되는 것 같고.”





항상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안나의 말에 엘사는 자라면서 지겹도록 들어왔던 말을 떠올렸다.





“당연히 엄마랑 마찰도 있긴 했지만요. 얌전하던 딸이 하루아침에 망나니가 되어버렸으니! 흐흐, 그래도, 전 후회 안 해요. 이제야 비로소 진짜 내가 된 것 같거든요. 자유! 레리꼬!”





레리꼬~ 레리꼬~ 안나는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옆방 사람이 견디다 못했는지 방문을 벌컥 열고 조용히 좀 하라는 듯, 안나에게 매서운 눈빛을 쏘아댔다. 안나는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제발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뉘앙스로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했다. 다행히도 옆방 사람은 눈만 흘겨대며 좁아지는 문 틈새로 조용히 사라졌다.





휴- 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 해야겠는 걸. 클로징 멘트를 뱉을 차례였다.





“음, 그러니까, ‘3살’이나 어린 후배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건방지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선배도 선배만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선배답게, 있는 그대로! 제가 선배의 모든 사정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냥 느껴지니까요. 선배도 나랑 비슷한 사람이란 게. 그리고 선배랑 같이 살다 보니까, 겉보기랑은 달리 선배는 엄청 따뜻하고 섬세하고…ㄱ…”





귀엽다는 말은 하면 안되겠지?





“ㄱ…골져스(gorgeous) 하고!!”





푸흐, 엘사의 간지러운 웃음소리가 문 틈새로 새어 나왔다. 안나는 그제야 안도감을 느끼며 웅크려 있던 자세를 풀어 다리를 쭉 뻗었다.





“너… 좀 더 혼나야겠어.”





“?!”





엘사가 자신의 말에 대꾸해줄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던 안나는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몸을 들썩였다.





“집에서도 그러니? 어머니랑 싸우면 막 집 나가고. 시간도 늦었는데, 위험하게…”





평소같았으면 꼰대의 잔소리 처럼 느껴졌을 엘사의 말이, 지금 이 순간 안나에게는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거… 고쳐.”





“이것 봐. 선배는 따뜻하다니까요.”





헤헤헤, 안나가 바보 같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건너편에서 자신과 같은 표정으로 문을 사이에 두고 등을 맞대고 있을 엘사를 상상하며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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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읽어줘서 고맙다 설줌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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