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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Stolen Ice 38-2 (해커엘사, 사기꾼안나)

설공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09 14:56:20
조회 345 추천 33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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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화: 38-1


오랜만이야. 늦어서 미안ㅠ

원래 38-1이랑 38-2는 하나이기 때문에 흐름을 위해 38-1을 다시 읽고 38-2를 읽는 것을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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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리조트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레스토랑, 엘리시움의 벽 가 테이블에 앉았다. 상시로 준비되어 있는 와인 리스트와 은은하게 밝혀진 촛불, 멀리서 잔잔하고 감미롭게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와 주름진 구석 하나 안보이는 깔끔한 식탁보. 제인은 은식기들을 슬쩍보더니 그대로 자리를 피해 움츠려 들었지만 안나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두고는(에티켓은 개나 줘버리라지!) 제인이 잡아주기를 기다렸다. 제인이 자신의 것을 올려 이윽고 제 자리를 잡자, 모든 것이 완벽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안나가 입을 열었다. “네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먼저 시작해도 될까. 부탁해. 그러지 않으면 다 까먹을 것 같아. 말 하는 거에 있어선 네가 훨씬 낫잖아.”

“난 잘 모르겠는데.”

“놀리지마. 너도 잘 알잖아.” 제인은 단호하면서도 놀리듯이 말했다. 금발은 마음을 다지듯이 강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오기 전에 빨리 털어놓아야 되기도 하구.”

“바이올리니스트를 고용했다고!?”


제인은 입술을 앙 다물었고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반대쪽 손으로 웃음을 가렸다. “미안,”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말했다.


“너 정말. 망할 ‘바이올리니스트가 오기 전에’래. 널 어쩜 좋니?” 안나는 흐뭇하게 물었다.

“아가씨들, 특별히 필요하신 게 있으실까요?” 소믈리에가 우아하게 와인리스트를 건내며 물어보았다. “레드 보르도 까베르네 프랑과 이태리 메를로를 추천드리고 있습니다.”


안나는 리스트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보르도 샤토 오-브리옹도 있을까요?” 그녀가 물었다.

오! 위, 마드모아젤.”

“글라스 한 잔 부탁할게요.” 안나가 말했다.

“그리고 마드모아젤, 당신은요?”

“저는 괜찮아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신사는 사라졌다.

“불편해?” 안나가 물었다.

“뭐가?”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이렇게 마실거냐고 물어보는 거. 많이 힘들어?”

“식은 죽 먹기까진 아니지만 나 때문에 네가 참아야 하는 것도 싫어.” 제인이 말했다.

“미안해, 뭐라고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우리 서로 사과하는 거 이제 그만하자,” 제인이 이었다. “최근 들어서 우리 서로 너무…불안정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냥 다…드러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런 것도 한걸음 나아간다는 것일지도 몰라…A,” 제인은 말하며 안나의 손등을 엄지로 쓸었다. 그 손짓은 과거의 상처와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걱정 하나하나를 치유하는 것 같았다. 안나는 미소 지었고, 열 띤 허벅지와 클러치의 두꺼운 가죽으로부터 반지와 함께 오는 많은 약속들에 대해 신경이 쏠렸다.


소믈리에는 우아하게 무언으로 레드 와인 한 잔을 두고는 빠르게 사라져갔다.


“A…”

“기다려줘, 제인, 네가 시작하기 전에 네가 알아야할 게 있어, 내 이름은—”

“아니, 너야말로 기다려,” 제인은 고집하며 다른쪽 손을 들어올렸다. “나를 끝까지 믿지 않았던 네 절반, A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난 네가 알아주길 원해. 내가 누구와…함께하고 싶은 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걸.”


네 평생을 걸쳐 전부?


안나는 감히 희망을 품어버렸다.


“난 누군가와…무엇을 같이 하기에 어려운 사람이야. 그건 장애가 있어서라기보단 나 자신 때문이기도 했고, 내 행동들은 전부…내 힘에 기반해서 하는 것들이 많지,” 제인은 속삭였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난 내 힘과 부정적인 영향에만 신경 썼고, 그것만이 중요했어. 나를 살게 해 준 능력이지만 동시에 나를 죽이고 있었어. 내가 누구던지 간에. 그 능력은 내가 우정 같은 평범함을 초월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더욱이 교제라는 사치를 누릴 자격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고립되었고, 스스로 고립시켰지…널 만나기 전까지.”


제인은 마젠타 빛을 띠는 자신의 입술을 적셨다. 긴장에 깨물지 않으려 입술 끝에 힘이 걸려있었다. 안나는 금발의 여자가 온갖 자제력을 발휘해 긴장감에 무심코 머리를 쓸어올리려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보였다. 자칫하다간 머리가 흩트러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넌 내가 여태껏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이상한 사람이었어. 전에도 그 섬뜩한 맨션에 세운 밴 안에서 말했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일한 적이 있었어. 넌 마치—무언가의 덩어리 같았어. 그게 불인지 에너지인지 햇살인지 번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그저 너무 밝아서, 널 바라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어. 네게 사로잡힌 내 모습이 거슬렸고, 비이성적이게도 짜증났어. 한 눈에 반한 것도 이끌림도 아닌데, 네가 내 안에서 폭발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하나의 충동처럼 설명할 수 없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어. 마치 내가 널 알아야만 할 것 같이 다급한 무언가가 있었어.”


“A, 이게 내 마지막이야. 난 자기자신에게 단 한번도 ‘원하는 것’을 허락한 적 없었는데, 이젠 원하는 것 그 이상이 되어 버렸어. 이전까지 생각해왔던 자기자신에겐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욕구, 욕망, 갈망. 성욕이 아니라 그저…채우고 싶은 작은 소망이야. 응답 받지 못한 기도는 얼마나 많고, 또 성취되는 꿈들은 얼마나 있을까?” 제인의 시선이 은식기를 탐구하듯 내려앉으면서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나를 사랑한다니.” 제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대체 어느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원한다고 말해줄까? 자칫하다간 생명도 앗아갈 수 있는 이상한 사회부적응자 같은 나를….실제로 사람을 죽인 적도 있는 날.” 제인은 잠시간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너를 만날 거라 상상도 못했지만, 네가 나타나주기를 평생을 기다려 온 것 같아.”


안나는 이제 울고 있었다. 소리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콧선을 따라 내려갔다. 그녀는 제인이 멈춰주기를 바랐다. 왜냐면 자신도 같은 말을 제인에게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번도 누군가가 자신을 원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기에, 얻을 수 없었던 타인의 주목을 갈구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제인의 존재에 대한 고백에 비한다면, 자신이 겪은 결핍은 너무나도 사소한 것이었다. 어떻게 제인이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밀어내고, 더 나은 선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세워진 비뚤어진 이상에 희생하였는지.


망할 순교자 같으니라고. 전기 검에 자신을 희생하고 말이야.


“울지마, 자기야.” 제인은 안나의 손을 놓고는 검지 마디 끝으로 눈물 한 방울을 쓸어냈다.


“기뻐서 우는 거야,” 안나는 훌쩍이며, 마스카라가 울먹이는 너구리로 보이지 않길 빌었다. 그녀는 검지로 눈 아래를 닦아내고는 연신 눈을 깜빡였다.


“알아,” 작게 속삭인 제인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네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지 알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직접 듣고 싶어.”


제인의 동그랗고 흰 얼굴 위에 낙천적인 표정을 띄우며 눈웃음을 지었다. “A,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말은, 지난 몇 주간 계속 네게 얘기해주고 싶었던 말이야—"


안나는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내가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제인은 멈칫하더니, 그녀의 표정이 야구배트에 맞은 스크린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우르술라?!”

뭐 이 씨발?


“잠깐 뭐?” 안나가 내뱉었다.

“한스야!” 제인이 탄식했다.

“아니 씨발, 뭐라구?!”

“뒤돌아보지마,” 제인은 다급하게 속삭였다. “그냥…하지마. 바에 있어, 사람들이 잔뜩. 한스가 말하고 있어.”


안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무릎 위의 냅킨을 있는 힘껏 쥐어 비싼 천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자기의 결정적인 순간을 어떻게 감히 한스따위가 망쳐놓을 수 있는지.


“이제 봐도 돼?” 그녀가 물었다.


“조심해.”


안나는 귀걸이를 만지작대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산소탱크에 마스크를 낀 우르술라 캐롤이 한결같이 파리하고 잔혹한 모습으로 한스의 곁에 있었다. 그들은 아르마니부터 중고까지 다양한 수트의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다. 남들 앞에서 가식 떨고 있는 거겠지만, 그들의 얼굴은 번들거렸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유지하며 다른 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망할.


“저 사람들이 선수들이야,” 안나는 추론했다.

“이거 환영회 같은 거야?”

“아닌 거 같은데….” 안나가 말했다. “예전에 몇 번 이런 거 참여한 적 있어. 아마 한스는 게임 전에 미리 내기거리를 설명해서 사람들이 충분히 숙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 같아.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전날에 친목을 다지거나 하지 않아. 이런 딜은 당일치기가 많아, 더군다나 이런 카지노는. 한스가 주변에 없으면 카드판에 끼어들어가려고 했는데, 우르술라도 게임에 참가하는 거라면…”


안나는 허망하게 제인을 바라보았다. 둘만의 특별한 밤이 방금 어뢰에 격침당하고, 총격에, 패대기쳐서 집어삼켜지다 못해, 단지 마지막에 리틀보이(역주: Little Boy, 핵폭탄의 종류.)를 그 위에 조용히 떨구기 위해 내뱉어진 꼬락서니였다. 로맨스? 후회의 버섯구름에 가깝겠지.


“제인, 아까 하려던 말 말인데—”


금발은 그저 고개를 가로젓고는 바 반대편의 도박판을 향해 끄덕였다.


안나는 졌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정을 더 앞당긴 것이겠지. 저번에 우리가 맨해튼에 침범했던 것 때문일 거야.” 안나는 설명했다. 그녀가 다시 한스 일행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지니, 때마침 우르술라가 한스의 귀에 거칠게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 틈으로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아. 저 여자는 내 얼굴을 알아.” 안나가 말했다. 그녀는 다시 금발과 시선을 맞추었다. “제인, 우리 오늘 밤에 계획한 게 많다는 걸 알지만, 행동을 옮겨야 될 것 같아. 난 우르술라랑 같이 게임에 낄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뒤에서 모니터링을 할 수 있을 거야. 모든 게 한스가 테이블에 앉을지 말지에 달려 있어. 전에도 말했지만, 이런 판에 몇 번 참석했었지만, 한스는 한 번도 플레이하는 적이 없어. 그가 참석하지만 않는다면, 네가 대신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넌 저 테이블에서—"


“난 못해. 온라인 포커를 두 번 해보고는 바로 가로세로 퍼즐로 바꿨어. 존나 못했거든.” 제인은 주장했다. “거기다 봐, 한스가 방에 남아 있으면 어떡해?”


“리스트에 H가 있었긴 했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니셜이 전부 플레이어들이라는 얘기는 없었잖아. 그냥 초대받은 사람의 명단일 뿐이지. 내 생각엔 우리가 본 이니셜들은 저 사람들일 것 같아. 우르술라 캐롤이 C. 그럼 우리에게 남은 건 A, B와 D가 있고 한스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H도 있을지 모르지. 저기에 한스와 우르술라를 빼면 세 명이 있으니, 그게 전부 일 수도 있어.”


“저 중에 아는 사람 있어?”


“아니, 잘 모르겠어.” 안나는 목을 길게 빼며 웅얼거렸다.


“그래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제인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스 주변의 무리가 점점 옅어졌고, 그는 레스토랑 뒷편의 룸으로 우르술라를 안내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한테서 B4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면, 아무래도 우리…미뤄야 할 것 같아. 이보다 더 끔찍한 밤이 될 순 없겠지.”


안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100불짜리 글라스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생각했던 것보다 드라이했고,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약간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오만이 이런 맛일지도 몰라. 소금물 한 바가지 들어오기 전까진.


“블론디(Blondie)?”


안나는 제인의 얼굴이 얼어붙으며, 표정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중립이든 정체든 로봇이든 리부트든 뭐든 간에 그 특유의 무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안나는 저 얼굴을 정말 오랜만에 보았다. 정말 정말로 오래만에 본 것이다. 얼음여왕이 돌아와 있었다.


“블론디, 너니?” 어둔 피부와 검은 눈동자의 잘생긴 남자가 한스의 올스타 도박판 무리에서 걸어나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알라딘,” 제인은 무미건조하게 응했다.


안나는 자신들의 테이블 옆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기꾼으로서의 능력을 총동원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의 얼굴에 마시던 와인을 뱉고 의식불명이 될 때까지 흠씬 두들겨 패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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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어가나 싶으면 훼방꾼이 나타나는 건 업계의 약속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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