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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공주와 해적 44화 - 땅 밑에서

ㅂ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14 09:36:18
조회 186 추천 17 댓글 10

링크 모음: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nowpiercer2013&no=928443



44화 - 땅 밑에서



, 저 새끼가……?!”

수십 쌍의 경악으로 물든 눈이 일제히 한스에게 꽂혔다. 엘사가 그들에게 문제의 배반한 정보원의 정체가 사실 남부 제도의 왕자라는 것만 얘기했고, 그녀를 구할 당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만 얼핏 보았기 때문에 그를 제대로 보는 건 모두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아마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거다: 해적인 자신들이 봐도, 저 곱상하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사람이 그들 모두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이라는 게 믿기 힘들겠지.


어쩌긴요?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왔죠. 말석이라 해도 남부 제도의 왕자인데, 아렌델 같은 소국의 경비병이 감히 저를 어떻게 막겠습니까?”


실로 상큼한 얼굴로 굉장히 오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한스.


“……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저를 찾아온 이유가 뭐죠?”


엘사의 질문은 중의적이었다; 찾아왔다는 것은 지금을 말하는 거기도 하고, 애초에 자신의 정보원을 자처하며 고국의 정보를 팔아넘기면서까지 그녀의 신뢰를 사려 한 것도 포함이었다. 물론 한스가 그 이중적 의미를 못 알아먹을 위인도 아니었고.


“…… 솔직히 말해, 저도 이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기왕이면 좀 더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가 지속되길 바랬거든요.”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실제로 한스의 배반 이전까지 둘은 나름 이상적인 비즈니스 관계였다; 한스가 물어다 준 정보 덕분에 엘사는 남부 제도 및 위즐튼과의 전투를 좀 더 수월히 치를 수 있었고, 그 틈을 타 한스는 엘사에게 고전하는 자신의 경쟁자들을 누르고 왕국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그럼 언제까지 지속할 생각이었나요? 당신의 열두 형들이 모두 로니와 루디처럼 됐을 때?”


그에게 휘말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엘사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그래, 경쟁자들 중 상당수는 한스 자신의 형제들이었다. 로니와 루디처럼 아예 사망한 이들은 없어도, 엘사의 활약으로 인해 그들 중 몇몇은 이미 명예를 잃고 위신에 심각한 손해를 입었다.


후후, 설마요; 죽이지 않고도 사람들 몰락시키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답니다. 엘사의 수완 덕분에 그게 더 수월해진거지만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굉장히 나쁜 말을 해대는 한스. 역시 이 두 사람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관계인가보다……


단지 그걸 위해 수년을 그렇게 집요하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엘사를 보는 한스의 미소가 한층 더 넓어졌다.


엘사에 비하면 저의 집념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죠; 저야 형제들에게 괴롭힘당했을 뿐이지만, 당신은 나라를 통째로 잃지 않았습니까? 그 증오와 복수심은 분명 당신의 양분이 되었겠죠…… 그에 따라 제 양분이 되기도 했고요.”


이 자식, 우리 선장한테 그따위로 얘기하지 마! 네놈이 뭘 안다고!”


느닷없이 감옥 안쪽에서 거센 고함이 터져나와 움찔하는 엘사; 소리친 장본인이 크리스토프라 더더욱 그랬다.


, 아까는 진정하라며……”


뒤에서 플린이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엘사의 귀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스는 그녀의 동기가 분노라고 생각했지만…… 방금 크리스토프는 물론이고, 안나도 그 말을 부정해주었다; 그녀는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가라앉았다; 아무리 앞에서 잘난 체해도, 이 사람은 그녀를 잘 모른다.


그래서…… 결국 당신이 이루려고 하는 건 뭡니까. 무엇이 그렇게 간절하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엘사의 질문에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한쪽 눈썹을 올리는 한스.


당신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리 없을텐데요. 고통 속에서 자라온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고통을 주변으로 퍼트리는 일뿐이지요. 마치 제가 지금의 당신들에게 그랬듯이 말입니다.”


“…………….!!!”


상상 이상으로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할 말을 잃은 엘사와 선원들. 뭐야 그게, 결국 자기가 어릴 적부터 괴롭힘당했으니까 그만큼 남들을 괴롭히겠단 소리잖아? 어떻게 그런 끔찍한 말을 저렇게 태연하게 할 수 있는거지?


마귀 같은 새끼……”


평소에 냉정침착한 카산드라마저도 저건 아니었는지 조용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후후, 온 바다를 휩쓸고 다닌 해적들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 그렇게 눈에 띄게 날뛰었으니 이렇게 교수대 신세가 된 거겠지만 – “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한스가 지껄이며 철창 쪽으로 다가오는 순간


이 개자식이-----!!!!”


퍼억------!


크리스토프!”


놀란 엘사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크리스토프의 주먹이 철창 틈으로 빠져나와 정통으로 한스의 턱에 올려박혔다. 느닷없는 공격에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코에서 선혈이 터져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이런…… 제 명줄을 앞당기는 어리석은 부하를 두었군요, 엘사. 지금까지 쌓인 죄목만으로도 사형감인데, 거기에 남부 제도의 왕자에게 상해를 입힌 죄까지 추가된다면……”


내가 죽어도 그 잘난 턱주가리는 부숴버리고 죽는다, 이 새끼야! 다시 들이대봐!”


참아, 임마! 더 하라고 일부러 도발하는 거 안보여?!”


당장 철창을 부수고 나올 기세로 날뛰는 크리스토프를 동료들이 뜯어말리는 사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그 섬뜩한 미소를 버리지 않는 한스를 바라보는 엘사. 분명 그라면 저 부상조차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겠지.


. 그럼…… 앞으로 볼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더 다채로운 절망의 색채를 보여줄까……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엘사.”


그 말과 함께 산뜻하게 발길을 돌려 감옥을 떠나는 한스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엘사.


“…… 보여줄 것 같냐고요, 악마 같은 인간.”


드물게 넘쳐흐르는 반골 정신으로 중얼거리는 엘사였지만, 아무래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 사람의 탈을 쓴 괴물에게만큼은 절대로 그녀의 절망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지만…… 역시 그러지 않을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걱정되는 건…… 마침내 심판의 날이 다가왔을 때, 과연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절망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을까였다.

 


***

 


“…………….. 으윽.”


허리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눈을 뜬 한나. 살면서 잠자리가 편했던 적이 별로 없긴 하지만, 역시 며칠 연속으로 맨바닥에서 이불만 덮고 자는 건 좀 아니었다…… 게다가 돌바닥이잖아, 여기.


처음 이곳 비밀기지에서 지내게 되고 며칠이 흘렀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렌델 성 지하 깊숙이 자리한 이곳에서 있다 보면 시간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지금쯤 멜리사는 뭘 하고 있을까? 떠나기 전에 한나에게 말한 대로, 그녀의 책임을 다했을까? 엘사는…… 우리 언니는, 그리고 동료들은, 모두 어떻게 됐을까?


생각이 그 쪽으로 빠질 때마다 밖으로 나가 상황을 살피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솟았지만, 아직은 안된다. 아직 비축된 식량도 넉넉했고, 괜히 나갔다가 들켜서 좋을 것도 없다.


……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엘사와 동료들이 어떻게 되었고 어디 있을지에 대해서는 짐작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가 여기서 작업 중인 이유 중 하나가 그거기도 하고.


“…… 다시 시작할까.”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며 테이블에 벌려놓은 재료들을 정리하는 한나.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그 안에 최대한 많은 화약을 만들어놔야 한다. 그래야……


부스럭


“………………!!!!”


동굴 형태의 기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소리에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는 한나. 설마 누가 들어왔나?! 자신이 아는 한, 이 곳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멜리사와 한나 자신, 그리고……


한나! 한나…… 여기 있는 거지? 있으면 대답 좀 해줘…..!”


…… 멀리서 자신을 애타게 부르짖는 목소리의 주인공, 안나 공주뿐이니까.



- 작가의 변 - 


이전에 말했지만 이 픽에서 한스의 컨셉은 '인면수심'임.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고 항상 웃는 상인 주제에 하는 짓은 싸이코패스 그 자체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엘사한테 남부 제도의 정보를 팔아넘긴 이유도 그렇게 해서 자기를 괴롭힌 형제들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자기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였지. 그러다 적절한 타이밍에 토사구팽한거고. 미친놈 그 자체.

크5가 통스 턱주가리 날리는 장면은 원작의 오마주. 원래 프1 소설판에는 짱나가 죽빵 날리기 전에 크5가 한대 팼다고 하네. 가끔은 크5도 쓸모있는 일을 한답니다.

소제목 '땅 밑에서'는 엘사가 갇힌 지하 감옥, 그리고 한나가 숨어든 비밀 기지를 동시에 의미하지. 감옥에서 통스가 멘탈 공격하는 건 충분히 봤으니까, 이제 한나가 저 밑에서 뭘 하는지를 봐야겠지? 다음화를 기대하세요...


- 45화 예고: 더 망가지기 전에... - 



…… 너는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내가 좀 촉이 좋거든.”


...


근데…… 이걸 다 동료들에게 전해준다고 했었죠. 지금 감옥에 있는데, 어떻게……?”


...


그치만…… 겨우 내려놓은 마음인데…… 다시 보게 되면 내 마음이 망가질 것 같아요……”



이야, 내일이면 45화네....? 근데 한참 남았네? 미치겠다 ㅋㅋㅋㅋ 아무튼 건필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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