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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자취방의 시계는 돌아갔다. 불청객이 신경 쓰여서 결국 윤종과 코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밤을 보냈다. 새벽까지 소울키와 레인의 이야기가 이어졌고 소울키가 지구로 건너온 모든 시간을 통틀어도 오늘만큼 말을 많이 한 적은 없다고 코치는 생각했다. 그리고 늦은 새벽에 윤종과 코치는 결국 뻗어버렸다. 누구 때문에 문이 박살난터라 쌀쌀한 밤바람이 그냥 들어오고 있었다. 소울키가 서툰 손놀림으로 두 사람에게 이불을 덮어줬다.
“소울키, 아까도 그렇고 정말 테란 같다.”
소울키의 행동이 재밌었는지 레인이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김민철도 그렇고, 테란은 약해서 일일이 돌봐줘야 하거든.”
“언제는 테란들 돌봐준 것처럼 말하네. 소울키 손에 죽은 테란이 몇인데.”
“여기서 난 김민철이니까.”
“히히, 재밌다.”
“......”
“이렇게 사는 거 보니까 나도 여기서 살아보고 싶어지잖아. 전쟁도 없고, 좀 심심하긴 해도 괜찮네.”
“끔찍한 소리하지 마. 그리고 정윤종은 멀쩡하다고.”
그러자 레인은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윤종을 돌아봤다. 그 위험한 눈빛에 소울키는 순간 주먹을 날릴 뻔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이 오고 있었다.
레인은 아침까지 얻어먹고 (다행스럽게도 소울키와 달리 레인의 먹는 양은 보통 지구인과 비슷했다.) 자취방에서 계속 뒹굴거렸다. 간만의 휴식을 즐기는 건 소울키가 아니라 레인 같았다. 그런 레인을 보며 소울키와 윤종, 코치는 시간만 잴 뿐이었다. 24시간이 되자마자 저 불청객을 바로 내쫓으리라. 부서진 현관문손잡이와 복도바닥 수리비는 나중에 돌아가면 광물과 베스핀가스로 받으리라 소울키는 다짐했다.
“최소 24시간이랬지 딱 24시간이랬나. 나 여기 좀만 더 있다가 갈래.”
24시간이 되어 레인을 내쫓으려 하자 뻔뻔하게 하는 소리였다.
“지금 장난? 당장 꺼져.”
“내 맘이다 뭐!”
“올 땐 네 맘대로였겠지만 갈 땐 아니란다.”
소울키가 붉은 눈을 치켜뜨며 으르렁거려서 윤종과 코치를 긴장시키고 있을 때였다.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흐음, 문이 열려있네요?”
하면서 방으로 들어오는 이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유진?”
“...에스오에스?”
윤종과 레인이 동시에 말했다.
“찾아오느라 힘들었네요~”
나긋나긋 말하면서 활짝 웃는 이의 입안에는 금니가 안 보였으니 정답은 에스오에스였다. 레인은 재빨리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했으나 에스오에스가 더 빨랐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순식간에 제 옆으로 온 에스오에스를 보고 윤종은 식겁했다.
“아무래도 여기 눌러앉을 것 같아서 데리러왔네요.”
“아.. 하하하... 누, 누가 계속 있는대? 이제 가, 가려고 했거든?”
“그렇게 금방이라도 탈주할 폼으로 말하면 설득력이 없잖아요~”
양손으로 창틀을 붙든 채 그렇게 말했으니 에스오에스의 손은 당연히 레인의 목덜미를 놓을 줄 몰랐다. 에스오에스는 그대로 레인을 확 잡아당겼다.
“자세한 건 돌아가서 레인에게 물어보겠지만, 별 일 없이 잘 지내는 거 같네요 소울키.”
“조금만 더 신세질게 에스오에스.”
“소울키도 어서 돌아와요~ 그럼 이만~”
그러곤 레인을 질질 끌고가는 에스오에스였다. 나한테도 여기서 계속 머물 권리가 있잖아! 지구의 평화를 파괴할 권리는 없죠. 아니야 아니라구! 이런 게 어딨어! 레인, 제발 좀 닥쳐요. 그런 대화를 메아리처럼 남기며 두 프로토스는 사라졌다. 16강전 날 유진에게 끌려가던 제 모습이 저랬을까 윤종은 생각했다.
“이렇게 지구의 평화는 지켜진 걸까?”
“그런 거.. 같네요...”
“코치, 정윤종, 둘 다 고생 많았어..”
괜찮다고 대답하는 윤종이나 코치나 하루만에 수 년은 늙은 것 같았다. 어째 본의아니게 주변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것 같아 소울키는 좀 미안해졌다. 소울키는 괜히 창밖을 쳐다봤다. 새삼스럽게, 지구의 하늘은 파란 게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면 이런 하늘도 다시 못 보겠지.
“드디어 터졌네.”
여느날처럼 연습하고 있는 소울키 옆에서 폰을 쳐다보고 있던 코치가 갑자기 말했다. 마침 게임이 끝난 소울키는 의아해하며 코치를 쳐다봤다. 코치의 표정이 매우 심각했다.
“승부조작... 드디어 터졌어요.”
“누군데?”
“프라임 감독 박외식이랑 최병현, 최종혁. 이렇게 셋... 인데 어차피 모르잖아요 소울키님은.”
“프라임이라면 김명식이 전에 있었던 팀 아닌가? 그건 알아.”
“명식이는 속이 다 시원하다고 좋아하네요. 한동안 또 경기 좀 이상하게 했다하면 주작이네 소리 듣겠지만요. 그래도 이번에는 협회에서 일처리를 잘 한 거 같긴 해요.”
“원래 탄환을 도려내면 상처가 남지. 저그야 금방 상처가 아물지만 테란은 아니고.”
소울키는 어떤 현상을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곤 하는데 가끔은 그게 정확할 때가 있다고 코치는 생각했다.
“여튼 김명식은 축하해줘야겠군. 그러니까 고기를 먹자.”
“...왜 그렇게 이어지는 거죠?”
“고기는 소고기로.”
“그러니까 왜........”
코치의 물음을 소울키는 모른 척했다. 어쨌든 소울키님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시니... 코치는 TCM 회식이라며 명식을 불렀다. 스2판은 지금 초상집 분위기인데 무슨 회식이냐며 명식이 의아해했지만 소울키가 그랬던 것처럼 코치도 모른 척했다.
그렇게 그날 저녁, 간만에 셋이 뭉쳤을 때 소울키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낯익은 냄새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왜 갑자기 나는지 이해가 안 가는 냄새이기도 했다. 김형사가 집에 찾아온 날 맡았던 약물 냄새였다. 코치와 둘이 있을 때는 나지 않았으니... 소울키는 명식을 빤히 쳐다봤다. 소울키와 눈이 마주친 명식은 흠칫했다.
“자자, 어서 들어가자!”
아무것도 모르는 코치가 둘의 등을 떠밀었다. 일단 먹고 보자 소울키는 생각했다. 지금은 다른 것보다도 고기가 최우선인 소울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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