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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물감, 색소 이야기

dcinsk(99.43) 2020.08.05 17:00:01
조회 2913 추천 30 댓글 18

미리 말하지만 본인은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미니어처 또는 프라모델 경험이 풍부한 것도 아님. 일단 내가 쓰는 색상표는 크게 두개인데.. 하나는 다음임: (원본: http://realcolorwheel.com/colorwhee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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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번째, RCW 색상표를 보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색상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음. 가장 바깥쪽에 있는 얇은 칸은 그 바로 안쪽 칸에 흰색을 섞은 색임. 바깥쪽에서 두번째 색상이 가장 채도(크로마?)가 높은 색임. 나머지 안쪽의 색상들은 고채도 색상에 검은색 또는 보색을 섞어서 채도를 낮춰 어둡게 만든 색들임. 채도(chroma 또는 saturation)가 뭐냐고 묻는다면, 다른 색이나 흰색/검정색이 섞이지 않은, 색의 순수한 정도라고 보면 됨. RCW 색상표에서 가장 바깥쪽 바로 안쪽의 색을 보면 이해가 될 거임. 앞으로 편의상 이 색들을 고채도 색이라고 부르겠음.

- 앞 색상표에서 약 3칸 이상 떨어진 두 개의 고채도 색깔을 선택, 두 색의 중간에 위치한 고채도 색깔을 섞어서 만들자라는 생각은 과감히 포기하기 바람.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님. 해봤자 안됨.
-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한 색깔에서 흰색 또는 검은색 (또는 해당 색깔의 보색)을 섞어서 좀 더 어둡게 만들거나 밝게 만드는 거임. 예를 들어 고채도 4번색(오렌지)에 약간의 검은 색이나 22번 (파랑) 색을 섞어서 갈색을 만들 수 있음.
- 조금 더 나아가면 매우 가까운 색은 조색으로 만들 수 있음. 1번과 3번을 섞어서 (아주 약간 채도가 떨어지는) 2번 색을 만든다거나..

조색을 처음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본인이 알고 있는 이론과 현실이 달라서 당황하는게 정상임.
- 파란색과 노란색을 섞었는데 이쁜(채도가 높은) 녹색이 나오는게 아니라 조금 지저분한 (어두운) 녹색이 나옴
- 빨간색과 노란색을 섞었는데 주황색이 아닌 황토색이 나옴
- 파란색과 빨간색을 섞었는데 상당히 어두운 보라색이 나옴.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조색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조색을 통해 고채도 색상을 얻겠다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임. 왜 말이 안되는지 설명하면..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모델) 페인트는 순수한 색이 아님. 여러 색소가 섞여 있는게 대부분인데, 눈으로 보면 레몬에 가까운 노란색이지만 실제론 노랑 색소 + 녹색 색소일 수 있음. 또, 눈으로 보면 빨간 색이지만 실제론 빨간 색소 + 보라 색소일 수 있음. 이 두 페인트를 섞으면, 노란 색소 + 빨간 색소 + 녹색 색소 + 보라 색소가 되는 거임. 빨간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주황색이지만, 여기에 일부 녹색과 보라가 섞여 있고, 녹색과 보라를 섞으면 파란색이 되고, 파란색은 주황색의 보색이므로 주황색이 어둡게 되는 것임. 그림으로 표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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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모델용 페인트의 경우, 색소 성분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임. 따라서 몇가지 색이 섞여 있는지 알 방법이 없음. 물론 모델용이 미술용보다 나은 점도 많음. 플라스틱/금속에 더 잘 발린다던가, 색깔에 상관없이 (대부분) 균일한 (광택, 마르는 시간 등) 성질을 지닌다던가.. 하지만 색소 성분을 모르기에 조색이 더 어려운 감이 있음. 다양한 색을 많이 팔아야 하고, 언제든지 저렴한 색소로 교체하기 위한 회사 입장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음.

이거 말고도, 색상에 따라 고채도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도 문제가 됨. 간단히 말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색소 중에 가장 밝은 오렌지 색만큼의 채도를 가진 보라색은 존재하지 않음. 일반적으로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파란색 색소가 채도가 높고, 녹색과 보라색은 그만큼 채도가 되지 않음. 이것도 조색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긴 함. 관심있으면 여기 색소표를 참고: https://www.handprint.com/HP/WCL/cwheel06.pdf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이는 색소의 물리적 또는 화학적 성질에 관한 것임. 색소에 따라 섞였을 때 원래의 색을 쉽게 잃어버리는 색소가 있는 반면, 다른 색소를 잡아먹는? 색소가 있음. 예를 들어 모델용 힌색 페인트는 대부분 티타늄 화이트란 색소를 쓰는데, 얘는 다른 색소를 잡아먹는 강한 색소임. 미술쪽에서는 이를 tint strength가 강하다고 표현함. 이게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음. 예를 들어 빨간색에 티타늄 화이트를 조금만 섞어도 바로 핑크색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말함. 반대로 티타늄 화이트에 오렌지 색을 조금씩 넣어서 살구색(구 살색)을 만드는 것은 쉬움. 왜냐하면 실수로 오렌지를 조금 많이 넣었다고 하더라도 티타늄 화이트의 흰색 성향이 강해서 쉽게 다른 색으로 변하지 않기 때문임. 파란색에 tint strength가 강한 놈 중에 탈로 블루(pthalo blue)가 있음.

흰색 색소 중에 징크 화이트(zinc white)는 티타늄 화이트랑 다르게 원래 색을 쉽게 잃어버리는 색임. 따라서 원래 색을 아주 약간만 밝게 바꾸고 싶다면 징크 화이트를 쓰면 좋음. 실수로 조금 많이 넣더라도 색의 변화가 별로 심하지 않기에 안심할 수 있음.

또 다른 문제로 색소의 불투명성/투명성이 있음. 대부분 모델러들이 노란색은 고르게 칠하기 힘들다는 평이 있는데, 그게 다 모델 페인트의 노란 색소가 투명하기 때문임. 그걸 커퍼하기 위해 불투명성이 강한 티타늄 화이트를 섞긴 하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음. 일반적으로 투명한 색소를 불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불투명성이 높은 흰색 색소나 검은 색소를 섞는데, 그러면 노란색 채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임.

최근에 개발된 색소의 경우 대부분 탄소를 바탕으로 한 색이며, 단가가 낮고, tint strength가 강하며 투명성이 높다고 함. 이는 조색에 유리하지만 고채도 색상을 불투명하게 플라스틱이나 금속 위에 바르기에는 힘듬. 몇가지 방법이 있는데.

- 흰색 프라이밍 후, 모델용 노란색을 몇번이고 덧대어 칠하기.
- 미술용 아크릴 구아슈의 경우 모델용 페인트보다 불투명성이 높은게 많음. 노란색의 경우에도 조금 더 성능이 좋았음 (참고: Liquitex Acrylic Gouache)
- 흰색 프라이머에 노란색을 섞어서 칠하고, 이후 모델용 노란색으로 덧대어 칠하기
- 황토색의 경우 불투명한게 많음. 미술용 옐로우 오우커(Yellow Ocher)라든가.. 이걸 베이스로 칠하고 노란색으로 덧대어 칠하기

(참고: 에어브러시, 에나멜 페인트, 락커 페인트는 경험이 없어서 전혀 모름)

불투명성이 높은 노란색이 있긴 있음.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인데, 카드뮴 옐로우(cadmium yellow)라고.. 이름을 들으면 눈치챘겠지만, 중금속 독성이 있는 색소이며, 가격이 비쌈. 내가 아는 아크릴 물감 중에 카드뮴을 쓰는 제품을 본 적이 없음. 아크릴 물감 홍보가 대부분 환경 친화, 무독성을 추구하기에.. 오일(유화 물감) 쪽에는 있는데, 다시 말하지만 비쌈. 다른 색에 비해 2-4배 비싼 것이 정상임. 카드뮴 옐로우라고 써 져 있고, 다른 색 물감과 가격이 같다면 가짜임. 카드뮴 옐로우 색상을 인공적으로 만든 물감의 경우, 가격이 저렴하지만 불투명성이 높지 않으니 주의 바람. 보통 이런 물감 이름에는 hue가 들어감. "Cadmium Yellow Hue" 이런 식으로.. 모델러라면 어차피 노란 색을 가지고 있을 테니. 미술용 "Cadmium Yellow Hue"를 살 필요는 없다고 봄. 오일 물감에서 비탄소 금속계열 (철 성분 제외)들이 대부분 속성이 비싸고, 불투명하고, 잘 발리고, 독성이 있고, 다른 색과 섞였을 때 (최근에 개발된 색소에 비해) 색이 깔끔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음. 아래 그림을 보면 전통적인 카드뮴 레드와 최근 색소인 나프탈 레드를 흰색과 섞었을 때 차이를 보여주고 있음. 대충 봐도 조색할 경우, 최근 색소가 훨씬 더 채도가 높은 것을 알 수 있음. 다만 모델에 칠했을 때 카드뮴 색상에 비해 불투명도가 낮고 균일하게 안 칠해진다는 게 문제임. 모델용 페인트만 쓸 거라면 그냥 넘기셈. 어차피 전통적인 중금속 색소들은 비싸서, 모델용 페인트에 들어 있을 가능성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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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발리는 색상이 있을 지언정, 거의 대부분 모델용 페인트는 불투명 속성임. 미술용 아크릴 물감도 불투명 속성이 높음. 투명한 속성을 지닌 것들은 대부분 모델용 "셰이드" 또는 "워시"가 있고, .. 미술용으론 아크릴 잉크가 있음. 다시 노란색을 예로 들면, 오크같이 녹색 피부의 하이라이트로 노란색을 많이 쓰는데, 보통 이런 식일 것임.

- 전체를 녹색으로 칠한 다음에 노란 페인트를 희석하여 여러번 발라서 하이라이트를 한다. 글레이징(glazing)
- 녹색이 마르기 전에 노란색을 칠한다. 웻 블랜딩(wet blending). 칠하는 경계가 직선에 가까울 수록 성공 확율이 높은데.. 어려워서.. 별로 추천하지 않음.
- 녹색 페인트를 묻힌 붓 끝에 노란색(또는 흰색)을 조금만 묻힌 후 칠한다. loaded brush 테크닉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름. 이때 끝 부분에 묻히는 하이라이트 색은 점도가 높은 아크릴 페인트가 효과적임.

난 위 방법들 거의 안 씀. 특히 첫번째 글레이징 방식. 실력이 모자라서 인지, 이 방식으론 깔끔하게 안나오더라고. 방식 자체가 여러 층을 발라 색상을 변경하는 것인데, 희석한들 원래 불투명한 물감으론 지저분한 물때? 또는 커피 자국이 안생기게 하는 방법을.. 못 찾겠어. 포기했음. 대신 투명한 색을 찾아서 해봤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음. 일단 내가 쓰는 방식은 미술용 투명 아크릴 잉크를 쓰는 것임. 쓰는 방식은 아주 쉬움

- 전체를 녹색으로 칠한 다음에 노란 잉크를 (약간의 희석이 필요할 수도) 레이어링 하듯이 하이라이트할 영역에 칠한다. 끝


방법은 위 노란 페인트 희석해서 바르는 것이나 거의 같은데.. 원래 투명한 성질이라 얼룩이 생기지 않음. 다른 예로는, 녹색 피부 홈에 어둡게 워시를 칠할 경우, 투명한 빨간 아크릴 잉크를 쓰기도 함. 빨간색이 녹색의 보색이라서.. 어두운 효과가 나옴. 물론 작정하고 어두운 색을 바를 수도 있지만. 약간 빨간 끼가 보이면서 어두운게 더 깊이 있게 보이는 것 같음. 아.. 한가지 단점이 있는데. 대부분 아크릴 잉크는 광택이 좀 있음. 어차피 다 칠한 다음 맷(matte) 바니시로 광택을 죽이기 때문에, 내 경우엔 별 문제가 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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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로 가지 않더라도 아크릴 페인트에 징크 화이트, 믹싱(mixing) 화이트가 있다면 시도해보기 바람. 모델용에도 징크 화이트를 쓴 페인트가 있는지는 모름. 징크 화이트는 반투명해서 하이라이트 부분에 글레이징으로 올릴때 그라데이션 효과 주기가 더 수월함. 예를 들어 울트라마린 (파란색 베이스) 장갑에 희석한 징크 화이트를 얇게 도포하면, 깔끔하게 효과를 얻을 수 있음. 대신 흰색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가장 밝은 부분에는 티타늄 화이트 흰색 (대부분 모델용 흰색)을 조금 찍어야 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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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에서 왼쪽부터, 암스테르담 아크릴 잉크 Primary Yellow, 암스테르담 아크릴 잉크 Primary Magenta, 리퀴텍스 아크릴 구아슈 Primary Yellow, 골덴 Fluid 아크릴 Zinc White, 리퀴텍스 헤비 아크릴 티타늄 화이트, 코브라 (물 희석 가능) 유성 물감 카드뮴 옐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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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부 미술가들은 색상 수를 일부러 제한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 원색 사용을 추천하지 않는데.. 내 짧은 소견으로는, 우리와 약간 맞지 않는 점이 있음. 조색을 통해 다양한 색과 깊이감을 줄 수 있고, 너무 많은 색을 쓰면 난잡해 보인다 등은 미술계나 우리쪽이나 별 차이가 없긴 한데.. 원색 사용에 대해서는 좀 입장이 다름. 왜냐하면 미술계에서 그리는 것들은 대부분 자연 환경 또는 생물이기 때문에, 원색을 표현할 일이 별로 없음. 당장 밖에 나가서, 자연 환경을 보면 순수한 파랑 또는 노란색은 존재하지 않음. 따라서 어느 정도 조색을 통해 채도를 낮춰서 그리는게 대부분인데, 우리가 칠하는 모델들은 판타지 세계라서, 채도 높은 울트라마린 (워해머 울트라마린이 아니라, 파란 색소 이름임) 등을 바로 쓸 일이 많기 때문임. 또는 용암 표현으로 채도 높은 노란 색소를 직접 쓴다거나..

생각나는 데로 갈겨쓴 거라 글이 중구난방인 건 이해하기 바람. 요약하면:

- 조색을 통해 다른 고채도 색상을 얻는 건 포기하는게 편함.
- 조색을 통해 채도가 낮은 색상을 얻는 것은 가능함.
- 관심 있으면, 투명한 미술용 아크릴 잉크를 글레이징(glazing)에 활용하는 것도 좋음
- 관심 있으면, 단일 색소를 사용한 미술용 아크릴 (특히: zinc white) 물감도 써 보길 바람.
- 더욱 관심 있으면, 오일 페인트도 써 보기 바람. (가능하면 불투명 물감 위주, 같은 색상이면 비싼 색소가 낫다등등.. 생각할 게 아크릴보다 더 많음, 나중에 시간나면 다뤄볼까 함)
- 다른 성질 (잉크/오일 등)의 물감이 아닌 이상, 색상 기준으로 10-20개 사이면 충분함. 더 살 필요 없음. 괜히 돈 낭비하지 말고, 어차피 판타지 모델 위주인데, 밀리터리처럼 고증에 신경쓸 필요도 없고.. 나중에 후회함.

-----

아래 질문에 투명/불투명 차이에 대한 게 있어서.. 아래 사진을 보면 검은 색종이에 칠한 것인데, 위는 바예호 레몬 그린을 붓으로 찍고 물을 약간 섞어서 왼쪽으로 선을 그은 것이며, 아래는 프라이머리 옐로우 아크릴 잉크를 찍어서 그은 것임. 위는 불투명이며 아래는 투명인데 차이를 보기 바람. 위는 물이 섞였을때 연해지긴 하지만 약간 얼룩진? 느낌이며, 아래는 진한 노란색인데도 밑 검은색이 비추어서 노란 느낌이 별로 안듬. 오히려 연두색으로 보임. 덧칠을 계속 할 경우 노란색이 더 강해지긴 하지만, 얼룩진 느낌이 없음.

눈치챘겠지만, 아크릴 페인트 (모델 도료 포함)로 칠할 경우, 밑색을 100% 가리는게 가능함. 다만 밑색을 어느 정도 가지고 올라오게 칠하기가 좀 어려움. 잉크의 경우 밑색은 100% 가리는게 거의 불가능. 대신 밑색을 가지고 조금씩 변화를 주기에 더 편함. (아 물론 투명한 잉크에 해당하는 말임. 잉크도 불투명한 색상이 있으며, 이 경우 일반 아크릴 페인트와 색 성질은 거의 비슷함. 다만 잉크는 점도가 낮아서 물처럼 흐른다는 것이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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