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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비판적, 혹은 비관적 스노비즘과 소설 '던전 디펜스'모바일에서 작성

ㅇㅇ(39.7) 2015.11.13 10:00:04
조회 1265 추천 24 댓글 10

  감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스노비즘과 스놉의 의미에 대해 분명히 해두고 싶다. 당연한 이야기를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스놉은 결코 단순한 속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 \'속물\'을 스놉의 역어로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번역 상의 오류다.

  스놉은 19세기 이후로 수없이 많은 의미 상의 굴곡을 겪은 단어다. 그럼에도 이 단어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가짜\'가 가장 적절해 보인다. 이는 미학 용어인 키치(Kitsch)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고급품을 가장한 저속품. 흔히 하는 비유를 들자면 중세의 성 모양을 한 러브호텔이다. 진정성을 결여한 채 \'그럴듯한 삶\'만을 기도하는 삶의 태도다. 자신의 투쟁적 주체성을 정립하기 위하여, 실존하지 않는 적대적 타자를 상정하고 삶을 전쟁터로 변화시켜버리는 자세다.

  그런데 진정성의 결여가 곧 스노비즘으로 이어진다면,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민족, 역사, 공동체와 같은 모든 대타자와의 투쟁 가능성이 소멸해버린 지금, 진정성은 부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모든 \'진정성\' 담론은 급속하게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따라서 현대의 모든 삶은 곧 스놉이 되어버리고야 만다. 지난 수십 년 간 문화 전체가 키치에 종속되어 버렸듯, 우리의 삶은 스놉으로 치환되어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현황, 즉 삶 자체가 스놉으로 변질되어버린 현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어디서나 들려온다. 그러나 키치를 증오하고 스노비즘을 부정하는 이들이, 정작 가장 스노비즘에 근접해 있는 예를 우리는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기실 지금과 같은 탈-진정성의 시대에 스노비즘의 부정은 불가능하다. 스놉을 단지 부정하기만 하는 것은, 그러므로 역-스놉이라고 하는 시대착오적 엘리트주의며 또하나의 스노비즘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두되는 삶의 자세가 바로 비관적, 혹은 비판적 스노비즘이다. 비판적 스놉은 자신이 스놉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외친다. 우리 모두가 스놉이라고. 그들에게는 스놉이라는 존재 양식에 대한 자각이 오히려 삶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된다. 비판적 스놉은 욕망에 충실한, 경제적인 논리에 충실한 우리의 삶과, 우리를 스놉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증오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간다. 그들은 스노비즘에서 출발해 어떤 도달할 수 없는 진정성에 이르기를 애타게 갈구한다.

  소설 던전디펜스는 이와 같은 비판적 스놉의 자세에 근접해 있는 작품이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힌 것과 같이, 던전 디펜스는 하나의 키치다. 이 키치한 소설은 극히 나쁜 종류의 취향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작가는 키치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팔리기 위해 쓴\' 이 욕망의 덩어리나 다름없는 소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비판의 여지를 남겨둔다. 스스로 이 소설을 \'팔리기 위해 쓴\' 소설이라 규정함으로써, 키치에 대한 냉소를 드러낸다.


  내용상으로 본다면 던전 디펜스는 극히 불온한 소설이다. 소설 속의 서술자-작가는 이상을 가차없이 비웃는다.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을 마구잡이로 짓밟아버린다. 마왕을 무찌르고 평화를 되찾자는 풋내기 모험가를 주변 인물들이 비웃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상을 비웃기 위해 극단적으로 희화화된 한 편의 콩트다. 소설은 파멸을 예찬한다. 단탈리안의 투쟁, 즉 세상의 거대한 악에 대한 투쟁은 결국 그 스스로의 파멸을 향해 달려간다. 악. 삶의 근본적인 기능이나 다름없는 이 악을, 삶의 착취를 어떻게든 이겨내려 투쟁하는 동안 단탈리안 본인은 또 하나의 악이 되어 버린다.

  소설은 맑시즘이라는 이상 역시나 비웃는다. 사회학과 학생이 여러 연설문들을 얼기설기 기워서 만들어낸 연설문에 아무렇게나 휩쓸리는 대중들에게는 어떤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 단탈리안 본인부터가 자기 연설의 내용을 전혀 믿지 않는다. 그는 브루노 평원의 연설을 오히려 단순한 선동의 도구로 생각할 따름이다. 맑시즘이라는 거대 담론은 지극히 선동적이며, 그렇기에 너절하고 저열한 욕망의 발현에 불과하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소설은 모든 이상에 대해 냉소한다.

  이와 같은 냉소는 우리 시대의 비극에 대한 현시이며, 천박하기 그지 없는 시대정신에 대한 환멸이다. 소설은 삶의 파멸적이고 착취적인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 보임과 동시에, 그러한 속성에 대해 어느 누구도 비판하지 못하는 스노비즘의 시대를 격렬하게 묘사해낸다. 이전까지 인간을 동물과 구별해줬던 어떤 초월성에 대한 추구가 모조리 사그라들어버리고, 인간이 동물로 전락해버린(혹은 원래부터 동물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이 시대의 현실을, 한 편의 소설으로써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던전 디펜스라고 하는 작품을 이 이상으로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비판적 스노비즘은 물론 의미 있는 자세다. 어떤 가식적인 역-스놉의 자세보다도 더욱 진정성에 근접한 자세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진정성의 문제를 추구해온 사람들은 있다. 단순히 우리 모두가 스놉이라고 하는 솔직하지만 좌절적인 메아리에서 우리는 어떤 건설적인 비전을 일구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시대의 문제는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터이다. 모든 진정성의 의미를 해체해 버리는 것만으로 소설이 그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시대의 문제 앞에서 너무나 쉽게 굴복하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출처: 판타지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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