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예르모델토로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엄청난 신앙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화의 시작부터 엔딩크레딧까지 무자비하게 이어지는 고딕의 향연이 눈을 즐겁게한다

장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해져 가는 현대영화계에서

확실한 '풍'을 갖고 장르의 규격을 정확하게 지켜내는 감독은 몇 없다

헬보이 시절부터 길예르모델토르는 그러한 장르의 규격을 아주 정확하게 준수하는 감독이었고

이번에 선보인 크림슨피크에서도 고딕호러라 명명된 장르의 틀을 아주 정확히 짜맞춘다

고딕 호러가 갖추어야 할 요건과 전통 같은 것들을 빠짐 없이 두루 갖춘 크림슨 피크는

어느순간부터 슬래셔 무비나 오컬트에 권좌를 빼앗긴 고딕호러 , 정통 호러, 클래식 호러의 재림이라 봐도 무방하다.

비록 영화속에서 우리가 고딕호러를 떠올리면 연상해낼 수 있는 괴물과 초자연적인 존재들로부터의 공포는 부족한 편이고

결국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 이라는식의 애매모호한 주제의식을 지니고 있지만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왜냐면 그러한 뻔한 내러티브를 뛰어 넘을 정도의 미학적인 고딕풍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에

고전 고딕 호러들은 실제로 영화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클래식'한 면이 있어 더더욱 고딕풍의 느낌이 도드라졌다면

크림슨 피크는 지금 당장 개봉한 따끈따끈한 고딕 호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가 무척 오래되어 기품있는 느낌이 든다.

실례로 최근에 개봉되었던

다크 섀도우 , 드라큘라 , 우먼 인 블랙 의 경우

고딕호러의 일부 혹은 어떤 특징과 유형만을 가져다가 만들어져 다소 실망스러웠다면

크림슨 피크는 고딕호러의 교과서적인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다. 그게 영화의 진부한 이야기와 다소 비약적인 전개를 납득하게끔 할 정도로 아름답다.

크림슨 피크의 또 다른 매력은 고증과 소품사용에 있는데

아주 가차 없는 시대상의 고증이 배우들의 현대식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다소 반감시키긴 했으나 실제 그 시대의 인물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치밀하다.

발명이 성행했던 시기를 감안하여 등장한 여러 발명품들이라던가 축음기. 초기의 자동차나 녹음기 같은 것들이 빈틈 없이 등장한다.

스토리가 진부하다는 것과 별다른 스릴러가 없다는 점이 영화의 단점으로 거론될 수 있으나

영화의 장르가 고딕 호러, 고딕 멜로인 만큼 그러한 단점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미 클래식의 대열에 오른 시기의 영화만이 크림슨피크와 비교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다. 

우리가 <장화 홍련> 을 빨아제꼇을 때에도 스토리가 뻔하다는 이유로 영화를 욕하지는 않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