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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곤의 선물 보기 전 참고하면 좋을 신화, 역사들

ㅇㅇ(125.176) 2014.09.22 23:33:57
조회 1936 추천 34 댓글 7

자첫전에 연출님 인터뷰하고 예전에 봤던 횽이 알고가면 좋을거라고 했던 이야기들 모아봤어

나처럼 아직 자첫 안한 횽들도 한번씩 읽고가면 도움될듯~

중간에 중요할 것 같은 부분들만 긁어왔는데 링크 클릭하며 전문으로 넘어가

그렇게 길지 않으니까 다 읽고가면 더 좋을듯!

만약에 이 글이 길어서 부담스러운 횽들은 이납횽이 올려준 글을 읽고 가면 좋을 것 같아~ 정리 아주 잘 되어 있더라



 

페르세우스


페르세우스가 장성하자 폴뤼덱테스는, 예부터 그 섬을 위협하는 무서운 괴물 메두사를 퇴치해 줄 것을 요구했다. 메두사는 원래, 머리채가 특히 곱기로 소문난 아름다운 처녀였었다. 그런데 이 메두사가 감히 아테나 여신과 그 아름다움을 겨루려 한 것이 그만 아테나를 몹시 노하게 했다. 아테나는 메두사의 아름다움을 거두고 그 머리채를 올올이 쉭쉭 소리를 내는 뱀으로 만들어 버렸다. 메두사는 이렇게 해서 잔인한 괴물이 되었는데, 사람이든 짐승이든 한 번 보기만 해도 모두 돌이 되어 버릴 만큼 그 얼굴이 그렇게 무시무시했다.

메두사가 사는 동굴 근처에는 석상이 즐비했는데 이 모두가 그 얼굴을 보고 돌이 된 인간들의 석상이었다. 페르세우스는 아테나와 헤르메스의 총애를 받던 처지라 아테나로부터는 방패를, 헤르메스로부터는 신기만 하면 마음먹은 대로 날 수 있는 비행화(飛行靴)를 빌 수 있었다.

페르세우스는 이런 비기(秘器)로 무장하고 메두사가 잠자고 있는 동굴로 숨어들었다. 그리고는 그 얼굴을 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빛나는 방패에 비치는 메두사의 모습을 겨냥하여 목을 잘라 버렸다. 페르세우스는 이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나에게 바쳤다.

아테나는 이것을 자기 아이기스 방패 한가운데에다 붙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메두사의 정복자 페르세우스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2009.6.19, 창해)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32868&cid=41869&categoryId=41869)


클리타임 네스트라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와 레다의 딸로 트로이 전쟁의 원흉(...) 헬레네와 쌍둥이 자매이기도 하다. 헬레네만큼은 못해도 상당한 미인으로 알려져있다. 일반적으로 헬레네는 제우스와 레다 사이의 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틴다레오스와 레다의 딸인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탄탈로스와 결혼하였으나 아가멤논이 탄탈로스를 죽이게 되어 아가멤논의 부인이 된다.


트로이 전쟁 때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의 분노로 인해 출항을 못하게 되자 신탁은 아가멤논의 딸들 중 가장 아름다운 딸을 산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나왔고 이에 아가멤논이 장녀 이피게네이아를 아킬레우스에게 시집보내겠다는 구실로 데리고 나와 산제물로 바쳐버렸다.[1] 이 사실을 알고 격분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에 대한 원한을 깊이 품게 된다. 그러던 중 아이기스토스와 만나 정을 통하게 되고 아가멤논 왕에게 억울하게 아들을 잃은 나우폴리아스 형제의 부추김으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 왕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아가멤논은 카산드라를 데리고 미케네로 돌아온다.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에게 부인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예언했지만 아가멤논은 이를 무시한다.[2][3]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의 개선을 축하하는 성대한 잔치를 베푸는 한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소매와 발목이 봉해진 새 옷을 바친다. 아가멤논이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바친 새 옷을 입다가 버둥대는 사이 아이기스토스가 아가멤논을 살해했다. 또는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목욕하고 있던 아가멤논을 도끼로 쳐죽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후 아이기스토스는 미케네의 왕이 되었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그와의 사이에서 알레테스와 에리고네를 낳았다. 그러나 7년 후 아가멤논의 아들인 오레스테스가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죽이라는 신탁을 받고 미케네로 건너와 누나인 엘렉트라와 함께 힘을 합쳐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해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뿐 아니라 그리스 3대 비극작가에 의해서도 전부 다루어졌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스 3부작,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엘렉트라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오디세이아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비중이 매우 낮은 반면 위의 비극에서는 상당히 지적이고 능동적인 팜므파탈로 그려진다.

(http://mirror.enha.kr/wiki/클리타임네스트라)



올리버 크롬웰

크롬웰은 1628년 헌팅던(Huntingdon)에서 하원의 의원이 되었으나, 찰스 1세(Charles I, 재위 1625~1649)는 이듬해 의회를 해산하여 그 뒤 11년 동안 소집하지 않았다. 1631년 크롬웰은 소유한 땅을 처분한 뒤 세인트 아이브스(St Ives)로 이사하였다가, 다시 엘리(Ely)로 옮겼다. 이 시기에 크롬웰은 찰스 1세의 세금 및 부과금, 종교 정책에 비판 의식을 지닌 청교도(淸敎徒)들과 폭넓게 교류하였다. 

1640년, 찰스 1세가 스코틀랜드와의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다시 의회를 소집하자, 크롬웰은 단기의회(Short Parliament), 장기의회(Long Parliament)에서 케임브리지(Cambridge)를 대표하는 의원으로 활동했다. 1642년 의회파와 왕당파 사이에 영국내전(English Civil Wars)이 일어나자, 크롬웰은 고향인 헌팅던에서 기병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10월 에지힐(Edgehill) 전투에 참여해 전공을 세워 군사 지도자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규율을 갖춘 기병연대를 편성하여 훈련시켰으며, 그의 부대는 여러 전투에서 뛰어난 전과(戰果)를 거두었다. 1643년 7월 게인즈버러(Gainsborough) 전투, 1644년 마스턴무어(Marston Moor) 전투 등에서 승리하면서 그의 기병대는 철기대(鐵騎隊, Ironsides)라는 명성을 얻었다. 1645년 의회파는 그의 부대를 본떠 신형군(New Model Army)을 편성했으며, 크롬웰은 이를 이끌고 네이즈비(Naseby)와 랭포트(Langport)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1646년 찰스1세가 머무르고 있던 옥스퍼드(Oxford)를 포위 공격하여, 마침내 1647년 1월 찰스 1세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1648년 의회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틈을 타서 찰스 1세가 아일오브와이트(Isle of Wight)로 탈주하면서 제2차 내전이 일어났다. 크롬웰은 웨일스(Wales)로 원정하여 왕당파의 봉기를 진압하였고, 잉글랜드로 침입해 오던 스코틀랜드(Scotland)군을 프레스턴(Preston)에서 격파하였다. 1649년 1월 30일 의회파는 찰스 1세를 처형하고 귀족원을 폐지하여 공화국(Commonwealth of England)을 세웠다.

공화국에서 크롬웰은 국무회의(Council of State) 의장이 되었고, 성인 남자의 보통선거권, 의석의 재분배, 법률상의 완전한 평등 등을 요구한 수평파(Leveler)를 탄압하였다. 그리고 1649~1651년에 왕당파의 중심지인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정벌에 나섰다.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찰스 2세(Charles II, 재위 1660~1685)를 새로운 왕으로 인정하고 있었는데, 크롬웰은 1650년 9월 던바(Dunbar)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을 물리쳤고, 1651년에는 잉글랜드로 공격해오는 찰스 2세(Charles II)를 우스터(Worcester)에서 물리쳤다. 결국 1651년 10월 찰스 2세가 프랑스로 탈출하면서 10년 동안 계속된 영국내전(English Civil Wars)은 끝맺게 되었다. 

1651년 크롬웰은 네덜란드 중계무역상의 활동을 제한하는 항해조례(Navigation Acts)를 제정해 네덜란드와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의회에 대한 군대의 불만이 높아지자 1653년 4월 의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7월 4일 자신이 지명한 사람들로 의회(Barebone's Parliament)를 구성했다. 하지만 12월 지명의회마저 해산시키고, 통치장전(Instrument of Government)을 제정하여 호국경(Protectorate) 정치를 시작하였다. 1653년 12월 16일 크롬웰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 세 나라를 통치하는 호국경(Lord Protector)의 자리에 올랐다. 

호국경이 된 크롬웰은 1654년 9월 의회를 소집하였으나 1655년 1월 해산하였고, 1656년 9월에 소집된 의회도 1658년 2월에 다시 해산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법률 개혁과 교육 진흥 등의 사회 개혁을 추진했다. 유대인의 입국을 허용했으며, 라틴어 교육을 담당하는 중등학교 육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1655년 왕당파의 반란이 다시 일어나자, 전국을 10여개의 군사구역으로 나누어 군정장관을 배치하는 등 군정(軍政)을 강화하였다. 크롬웰은 1658년 병으로 런던(London)의 화이트홀(Whitehall)에서 죽었으며,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Westminster Abbey)에 묻혔다. 그가 죽은 뒤에 아들인 리처드 크롬웰(Richard Cromwell, 1626~1712)이 호국경이 되었으나, 멍크(George Monck, 1608~1670)에 의해 1660년 왕정이 복고해 찰스 2세가 즉위하였다. 왕정 복고 후에 크롬웰의 무덤은 파헤쳐졌으며, 그의 시신도 내걸려졌다. 

크롬웰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려 나타나는데, 일부 학자들은 그가 내전 이후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는 데 기여했으며, 통치장전(Instrument of Government)을 제정하여 입헌주의 정치의 발전에도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시민혁명의 가치를 훼손한 군사독재자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수평파의 공화주의적 요구를 억압하고, 호국경에 올라 의회를 해산하여 공화국을 약화시켰으며, 결국 왕정 복고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올리버 크롬웰 [Oliver Cromwell]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51154&cid=40942&categoryId=33449)



성상파괴운동


로마교회와 비잔틴교회는 '성상(聖像) 사용' 문제를 놓고도 대립했다. 그것은 8세기에 비잔틴제국의 일부 황제들이 십자고상 등 예배에서 사용해온 '성상'을 금지한 반면, 교황청은 성상의 사용을 주장하면서 생긴 문제였다. 로마교회와는 달리 황제가 교회의 수장인 황제교황주의체제–유스티니니아누스대제 때 이루어진 제도다–로 발전한 비잔틴제국에서는 황제와 교회가 대립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황제는 성직자를 견제하고 교회에 대한 간섭의 기회로 삼기 위해 성상사용을 금지하는 이른바 성상파괴(Iconoclast)운동을 일으켰다.

심각한 저항에도 비잔틴의 레오 3세(717~741)는 725년에 성상숭배금지령을 내린다. 그에게는 교회나 수도원이 성상사용금지에 반발할 경우, 그것을 구실로 그들 소유의 땅을 몰수해서 국가재정을 확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서유럽의 경우에도 교회는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것에 더해 면세와 면역의 특권을 누렸기 때문에 국가재정에 악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카놋사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때로는 군주에게 도전했지만, 비잔틴제국에서도 교회나 수도원은 면세 특권을 누리면서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레오 3세의 성상숭배금지에는 교회와 성직자를 견제하고 황제숭배를 강화하려는 의도 외에도 이슬람제국과 벌이는 사상전에서 우위에 서려는 의도도 작용했다. 비잔틴제국을 군사적으로 괴롭혀온 이슬람제국은 성상사용을 들어 기독교를 우상숭배종교라고 비난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718년에 비잔티움을 겨냥하고 침공해온 이슬람 해군을 격퇴시킨 전투에서 레오 3세를 도운 소(小)아시아 지역의 농민도 성상숭배를 우상숭배로 여겨 반대했다. 물론 교황청은 비잔티움교회의 성직자들과 함께 성상사용금지에 강경하게 맞섰다. 로마교회에서는 성상사용이 오래된 관행이었을 뿐 아니라 교리적으로도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성상에는 숭배를, 신에게는 예배를' 해야 하는 것으로 해왔다.

레오 3세의 조처에 저항한 교황청 인사들은 그리스도를 형상으로 묘사할 수 없다는 주장은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강림했다는 것을 의문시하는 불경스런 생각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성상파괴를 지상의 모든 물질은 본질적으로 사악하다는 동방적 사고방식–성아우구스티누스가 이미 옳지 않은 사상으로 규정했다–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성상사용금지는 곧 교리에 큰 혼란을 초래하는 일이었다. 사실 성상은 교회의 재정적 수입에는 물론 전도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야만적 이교도인 게르만족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킬 때에 형상물인 성상은 큰 도움을 주었다. 보통의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일차적 신뢰감을 갖게 되는 것 아닌가.

787년에 해제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내린 성상 파괴령은 로마와 비잔티움 사이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황은 잦은 교리 분쟁에도 황제를 군주로 인정하고 예의로 대했다. 그러나 성상파괴운동은 교황과 황제의 관계를 적대 관계로 만들어버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상파괴운동 (초기 기독교 이야기, 2007.3.30, ㈜살림출판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86978&cid=50762&categoryId=50775)


이레네 


이레네는 아테네 출신으로 집안과 조상에 대하여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코프로니무스 황제가 발탁하여 궁정으로 데려와 769년 자신의 아들인 레오와 결혼시켰다. 레오 4세가 제위에 올랐을 때 그녀는 남편을 통해서만 국정에 개입했고 별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나 레오가 점점 건강이 나빠지자 그녀는 조금씩 영향력을 키웠으며 780년 남편이 죽자 10살짜리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를 대신하여 제국을 통치하는 섭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로서 최초로 제위에 올랐고 성상옹호론자였으므로 성상파괴주의자들이 많은 아나톨리아의 군대는 폭동을 일으키고 레오의 동생을 황제로 추대했다. 반란은 곧 진압되었지만 이레네는 이를 기회로 군대 내의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그러나 이 숙청의 결과 군대는 약해졌고 황제에 대한 충성심도 사라졌다. 시칠리아 총독이 독립을 선언하고 제국에서 떨어져 나갔다가 결국 무슬림에게 정복되었고 782년 이슬람의 10만 대군이 쳐들어오자 값비싼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다. 그리스에서는 슬라브족에게 승리하였다.

이레네는 아테네 출신답게 적극적으로 성상을 존중하는 입장이었다. 자신의 권력기반이 안정화 되자 그녀는 자신의 신념대로 교회정책을 밀고 나갔다. 784년 성상파괴론자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물러나자 자신의 심복을 그 자리에 임명하였고 로마 교회와의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교황 하드리아노 1세와의 서신교환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고 786년 로마와 동방의 교구들이 모여 공의회를 열었다. 그러나 성상파괴론자들이 이 공의회를 군대를 동원하여 해산시켰다. 이레네는 이듬해 9월 니케아에서 다시 공의회를 열었는데 이것이 제2차 니케아 공의회로 세계공의회로서는 일곱 번째 공의회가 된다. 이 공의회에서는 성상파괴론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성상을 단순한 흠모의 대상에서 경배하는 대상으로 끌어올렸다.


이레네의 섭정기간 동안 콘스탄티누스 6세는 어머니의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이레네는 아들이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섭정을 계속하고 권력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아들 황제의 이름 앞에 놓는 법령을 반포하여 아들의 반감을 샀다. 성상파괴론자들은 콘스탄티누스를 중심으로 뭉쳐서 이레네에 대한 반란을 꾀했으나 이레네에게 발각되었고 이레네는 콘스탄티누스를 투옥하고 군대 전체가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하게 했다.

그러나 성상파괴론자가 많았던 소아시아의 군대는 이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격하여 감옥에 있는 콘스탄티누스를 풀어주고 이레네를 황궁에 감금시켰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잇달은 대외정책의 실패로 인기를 잃었고 792년에 이레네는 다시 복위되었다. 복위된 이후 이레네는 끊임없이 아들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797년 봄 콘스탄티누스가 사라센 원정을 떠날 때 이레네는 계략을 세워 사라센군이 철군했다고 황제를 속여 군대를 철수하게 했는데 이로써 황제는 겁쟁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해 6월에 이레네는 황제를 체포하려 했으나 실패하였고 황제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간신히 건너 도망쳤다. 그러나 이레네는 결국 아들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붙잡아 오는 데 성공하고 8월 15일 오후 3시 황궁에서 아들 콘스탄티누스의 두 눈알을 뽑아버렸다. 콘스탄티누스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많지만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눈을 뽑아버려서 곧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따르면 이러한 비정한 행위에 신이 분노하여 17일 동안 하늘이 어두워졌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가 후계자 없이 폐위되자 이레네는 단독 통치자가 되어 제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주요 자문관인 두 환관이 서로 다투었고 굴욕적인 대외정책과 아들의 잔인한 살해로 그녀는 백성들의 인기를 잃었다. 세금을 대폭 감면하여 인기를 얻으려했지만 그마져도 실패했다.

한편 서방에서는 800년 성탄절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레오 3세 프랑크 왕국 샤를마뉴에게 제관을 수여하고 ‘로마의 황제’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부터 교황은 비잔티움 제국을 대신할 세력으로 아리우스파가 아닌 정통 가톨릭으로 개종한 프랑크 왕국과 가까이 지냈고 샤를의 아버지 피핀 롬바르드족을 몰아내고 교황에게 영토를 기증하여 그 관계가 더욱 깊어졌다. 그러던 차에 교황 레오 3세가 로마에서 정적들에게 피습까지 당하고 권력이 불안해지자 프랑크 왕국의 샤를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샤를은 이 로마로 와서 교황을 도와주고 제관을 받은 것이다. 교황은 아들까지 죽인 여제(女帝) 이레네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고 교황의 입장에서 보면 황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황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중세의 가장 큰 사기문서인 〈콘스탄티누스의 기증〉(교황청이 만든 조작문서)을 근거로 세우고 교황이 새로운 황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로써 비잔티움 제국과 비잔티움 황제는 ‘로마 권력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권위와 ‘제1의 기독교 제국’이라는 권위에 손상을 입었다.

제위에 오른 샤를은 서방 뿐만 아니라 동방 제국의 황제까지 되려는 의도에서 비잔티움의 여제 이레네에게 청혼하였다. 제국 내에서 자심의 지위가 점점 약해지고 있던 이레네는 이를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비잔티움의 시민들은 글자도 모르는 프랑크족 야만인에게 영광스러운 비잔티움 제국의 제위를 수여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레네에 대한 반감은 점점 노골적이 되었고 802년 10월 황궁에서 고위 관리들의 반란이 일어나 이레네는 제위에서 쫓겨나고 레스보스 섬으로 유배되었다. 이레네는 유배지에서 이듬해 죽었다.


(http://ko.wikipedia.org/wiki/이레네)





아테나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의 신이라고 하면, 아테나 외에도 군신(軍神) 아레스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의 성격은 정반대다.

아레스는 상대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테나는 자기편을 보호하면서 정확하게 지침을 내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느쪽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둘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테나는 전쟁의 신이었지만 전쟁을 싫어했다. 그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갑옷과 창도 평상시에는 제우스에게 맡겨두었다가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때 돌려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전쟁터에 나가면 용감한 전사로 돌변해 거침없이 싸웠다. 적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자기편에게는 신뢰받는 전사였던 것이다.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이념을 지녔던 그녀는 단지 용맹스럽기만 한 아레스보다는 인간들에게 더욱 사랑받았다.

실제로 아테나는 인간들에게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는 적절한 조언과 도움을 주었으며, 죄인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주었다. 신과 인간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가능한 한 인간 쪽에 서서 중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테나는 인간에게 호의적인 여신이었지만, 가끔은 크게 분노할 때도 있었다. 이때 그녀에게 무례하게 대하면 어떤 인간이라도 큰벌을 받았다.

 

-글이 길어서 이 뒤로 자꾸 잘리네. 밑에 링크 클릭해서 읽어보길 추천. 평화의 여신으로 불리는 아테나의 이중적인 부분까지 나와있어

[네이버 지식백과] 아테나 [Athena] -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신 (여신, 2002.6.10, 도서출판 들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68718&cid=41874&categoryId=4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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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6796 뒤늦게 이번주 갤라됴 듣고있는데 아나언니 연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 [5] ㅇㅇ(119.192) 14.09.30 239 0
1036795 지킬 중블 5열 vs 오른쪽사블 2열 [9] ㅇㅇ(211.209) 14.09.30 708 0
1036793 ㅍㅅㄱㅁㅇ엄막심 옥이히 신댄이면 [11] ㅇㅇ(117.111) 14.09.30 546 0
1036792 ㅃㄱㅁㅇ)공원 ㅅㅌㄹㄱ에서 [1] ㅇㅇ(113.130) 14.09.30 214 0
1036791 두결한장 2층에 카메라놓고간 횽~ [4] ㅇㅇ(175.223) 14.09.30 494 5
1036790 비스티오슷))굿바이개츠비 듣는데 [4] ㅇㅇ(211.178) 14.09.30 351 0
1036789 근데 14만원이면.. 내 반 개월 생활비인데.. [1] ㅇㅇ(218.238) 14.09.30 406 0
1036788 ㅃㅃ))) 비스티 오슷 받았는데 뙇!! [3] ㅇㅇ(223.62) 14.09.30 350 0
1036785 머글은 어차피 7만원짜리 조뒥도 [1] ㅇㅇ(110.70) 14.09.30 361 2
1036784 오늘 갤최고 핫가이들ㅋㅋ [1] ㅇㅇ(118.44) 14.09.30 211 0
1036782 ㅃㄱ) 이번 조지킬은 현매가 답인듯 [3] ㅇㅇ(115.126) 14.09.30 738 0
1036781 머글은 한 번보고 말꺼니까 14만원이건 15만원이건 신경 안쓰지.. [13] ㅇㅇ(175.193) 14.09.30 906 0
1036780 에블바뤼 원츠 꿀자리 [2] ㅇㅇ(118.34) 14.09.30 103 0
1036779 ㅈㄴ넓고 아름다운데 짜증남 ㅆㅂㅋㅋ ㅇㅇ(118.44) 14.09.30 218 0
1036778 ㅇㄷㄱㅁㅇ ) 10월 5일 구텐버그 낮 1열 한장 [3] ㅇㅇ(121.181) 14.09.30 312 0
1036777 ㅃㅃ)레베카 머글반응 좋은게.. [4] ㅇㅇ(110.70) 14.09.30 504 0
1036776 오늘 런촤는 슈페리어하지 못해써 [14] ㅇㅇ(203.226) 14.09.30 557 0
1036774 140929 꽉심덕 난 그런 사랑을 원해 + 사의 찬미 [22] ㅇㅇ(220.80) 14.09.30 2168 43
1036773 투명인간 본 개로리 있니? [4] ㅇㅇ(121.140) 14.09.30 222 0
1036770 머글들은 요번 지킬 비싸다고 안하던데 [25] ㅇㅇ(39.7) 14.09.30 930 1
1036768 핸드폰 뒤지다갘ㅋㅋㅋㅋㅋ아방..어벙.. [11] ㅇㅇ(119.194) 14.09.30 1338 24
1036767 ㅃ 연뮤덕에게 최고의 악담 [18] ㅇㅇ(110.70) 14.09.30 1541 1
1036766 대구 고고고쇼) 아침에 올린거 화면 다 깨졌길래 다시 올림 [4] ㅇㅇ(121.181) 14.09.30 398 3
1036765 ㅃㅃ 레베카 낼 보러 가는 횽들 있니? [12] ㅇㅇ(203.226) 14.09.30 379 0
1036764 글루미ㅃ 애잔했다고는 하지만 [15] ㅇㅇ(123.109) 14.09.30 886 0
1036763 레베카ㅃㄱ 잭이 댄버스한테 하는 말이(스포) [1] ㅇㅇ(223.33) 14.09.30 221 0
1036762 ㅃ 댓글보고 레베카 상플ㅋㅋㅋ류막심신댄옥이히 [5] ㅇㅇ(223.62) 14.09.30 506 5
1036761 ㅈㄹㅈㅁㅁㅇ) 불쾌 쩌리 중에 쩌리들 [14] ㅇㅇ(223.62) 14.09.30 746 0
1036760 쓸ㅃㅃ 런뉴 자첫이었는데 뉴기 원래 계약서 때 [23] ㅇㅇ(223.62) 14.09.30 779 0
1036759 쓸끝 오늘 뉴기 아픈가? [11] ㅇㅇ(211.36) 14.09.30 729 0
1036757 레베카 vs 카르멘 vs 엘리자벳 취향 111112222233333 [5] ㅇㅇ(221.147) 14.09.30 448 1
1036756 프라이드 인터. ㅇㅇ(175.223) 14.09.30 297 0
1036755 ㅃ) 고민혁 왜케 속삭여ㅋㅋㅋ [3] ㅇㅇ(61.254) 14.09.30 329 0
1036754 제일 노래가 별로인 헤뒥의 오슷이 나오네 [12] ㅇㅇ(39.7) 14.09.30 782 1
1036753 ㅈㅁㄱㅁㅇ 비씨라운지도 노리는 사람많겠지 [7] ㅇㅇ(223.62) 14.09.30 392 0
1036752 지금 존나 명존쎄 하고싶은게 조지킬 실결질문ㅋㅋㅠㅠ [3] ㅇㅇ(118.44) 14.09.30 830 2
1036751 ㅃㄱㅁㅇ 레베카 상플왤케웃겈ㅋㅋㅋㅋㅋㅋㅋ [6] ㅇㅇ(223.62) 14.09.30 255 1
1036750 티켓팅보다 취재예가 더 심장떨리는듯ㅋㅋㅋㅋ [1] ㅇㅇ(119.195) 14.09.30 27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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