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하자면 윤호진이 예술가적 자의식에 취해 기존 뮤지컬의 관습을 해체하고 텍스트중심의 뮤지컬을 만들었음. 근데 그게 신선함보다는 불편함과 어색함으로 다가오는 게 문제야. 흥미롭기보다는 지리하고, 무엇보다 머리와 몸이 거기에 익숙하지가 않으니 견디기가 힘들더라.

거기다가 이 작품은 계급적인 의식이 강할뿐더러 인간의 본성(물적욕구, 성적욕망, 명예) 대한 원작의 문제의식도 가볍지 않게 다룬것 같긴 해.
근데 예술은 그걸 어떻게 표현하는지 하는 방법론이 중요하잖아? 보이첵은 그걸 담는 그릇이 어울리지 않아서 이 참사가 일어난 듯 싶어

넘버자체는 나쁘지 않은 건 같아. 카타르시스를 주는 고음넘버는 의도적으로 배제된 것 같고, 쓸쓸하고 황폐한 느낌을 주는 넘버들은 극 분위기에 잘 맞아.

근데 무엇보다 극장이 극과 안 맞아. 이야기의 밀도가 높은 작품이고 외적인 것보다 인간의 내면으로 파고 드는 작품인데, 극장은 화려하고 세련된 LG이니 극이 신선해야 하는데 그러지못하고 붕 뜨는 느낌이었어. 저렴하다 못해 조악한 소품이나 세트의 의도는 알겠는데, 너무 신경안쓴 티가 나서 그것도 심각했어. 물론 그것들이 화려해도 극 분위기랑 안맞겠지만, 서커스씬과 좀비씬은 극에서 튈 뿐더러 너무 조악해서 한숨이 나오더라.

뮤지컬 자체가 그냥 너무 보편적으로 상업화되고 정형화 된 걸까... 아님 내가 거기에 익숙해진걸까?
윤호진은 작가의 정신으로 극을 만들었는데 그게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이었어야 맞지 싶다. 그냥 실패한 실험작으로 끝날 듯 함.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