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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ㄱㄱ 내가 히보 극불호였던 이유들

ㅇㅇ(58.231) 2019.10.24 08:01:44
조회 3925 추천 240 댓글 54

  첫 번째로는, 교사의 학생 성추행을 다루면서, 그 피해자인 학생들의 심리적인 면을 전혀 다루지 않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교사의 학생 성추행이 왜 위험하고, 모든 성폭력이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더더욱 엄격하게 금지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아예 은폐되고 있다는 거야.

 

  일단 헥터의 폭력에 의해 학생들이 겪는 심리적 혼란은 유일하게 한 대목이 데이킨이 말하는 "우리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걸까?"라는 딱 한 대사인데, 스쳐지나가는 이 대사 외에 이후에 아무런 언급도 없어. 그리고 학생들은 졸업한 후 커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으로 결말을 맞지.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우선 헥터가 학생들에게 가한 폭력의 상황적 심각성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 같아. 헥터가 학생들의 성기를 만지는 상황은,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 오토바이 위에서 이루어졌어. 빠르게 달리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학생들이 앉아 있는 걸 생각해보면, 뭐 오토바이에 아주 익숙해진 뒤라면 다리 힘으로 붙들고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 오토바이를 탔다면 그 상황에선 다리에 힘을 주고 앞에 앉은 운전자를 꽉 붙들고 꼼짝하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운전자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놀라지 않게 조근조근 말하는 것 외에는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만약 뒤로 뻗쳐오는 손을 "하지 마세요!"라고 쳐냈다가 사고라도 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만약 학생들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하더라도,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 오토바이 위에서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즉 헥터가 행한 폭력은, 학생들의 손발을 묶어놓고 도움을 요청할 외부 창구를 닫아놓은 후 학생에게 추행을 한 거야. 조금 더 나가면, 고속주행하는 오토바이라는 항거불능의 상황에서 추행을 했으니까 준강간(심신미약 혹은 항거불능인 사람에게 간음 혹은 추행)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 심각한 수준의 범죄이고.

 

  한국의 연구 결과이긴 하지만, 교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청소년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정신적 후유증을 보여.

 

  (1) 우울감.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느끼는데, 이는 보통 성폭력의 유형과는 무관하고 피해자 스스로가 느끼는 강도와 폭력의 빈도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고, 상담 등 적절한 치료로 이러한 감정으로부터 치유되지 못할 경우 수면 장애, 식사 장애, 만성 피로감, 자살 시도 등으로 악화될 수 있어.

 

  (2) 신체화. 폭력으로 인한 신체 피해 외에도, 원인 불명의 두통, 위장통에 시달리고 알 수 없는 근육통에 시달리게 됨. 이 신체화의 경우 피해자가 여성일 때 더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3) 불안, 공포감. 성폭력은 피해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신체를 통제할 권한을 박탈하는 폭력이야. 따라서 피해자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을 괴롭힐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성폭력의 빈도수가 일정 정도 이상으로 넘어갈 경우 불안과 공포감은 옅어지고 대신 무기력감으로 대체된다고 해.

 

  (4) 분노, 적대감. 성폭력 피해자는 일차적으로는 가해자에게 강한 분노와 적개심을 느끼는데, 우선 자신의 성폭력 피해에 대해 고발할 수 없는 사회적 편견에 의해 성폭력 피해자들은 그 풀 데 없는 분노와 적대감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려서 자해 행동이나 자살 시도 등을 하게 돼. 여기서 청소년 성폭력은 한 가지가 더 추가되는데, 만약 가해자가 교사를 비롯한 성인일 경우 권력적 하위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분노를 더더욱 가해자에게 표현하기 어려워할 뿐더러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자기 주변의 다른 성인들에게 분노를 돌리게 되면서 어른들 전체에 대한 반감을 갖게 돼.

 

  (5) 대인관계 기피. 성폭력 피해 청소년, 특히 보호자여야 할 성인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청소년은 타인에 대한 신뢰를 갖기 힘들게 되고, 누군가를 존경하는 감각을 가지기 힘들게 돼. 다른 사람이 먼저 접근하기 전까지 때까지 스스로 접근하기를 힘들어하면서(이 피해자들에게 타인의 접근이란 폭력적이고 침입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합의의 교환을 통한 자연스러운 접근을 상상하기 힘들어짐.) 누군가 먼저 접근해 오면 그 목적에 대해 의심하고 기피하게 되는데, 이러면서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게 됨은 물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라는 낙인을 내면화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 자신을 몰라준다는 환멸을 느끼게 돼. 결국 다른 사람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기가 힘들어지지.

 

  (6) 인지적 왜곡, 부인.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왜곡, 부인하거나 아예 기억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겪기도 해. 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잘못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르기도 하지. 특히 교사에게 피해를 당한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는 '교사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교사의 행위를 허락하는) 어떤 행위를 했기 때문에' 가해가 발생했다고 생각하게 돼. 사랑과 성폭력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아무리 앞에서 유도해도 선을 넘지 않는 게 사람의 도리인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이런 생각을 맞다고 인정함으로써 피해자는 '내가 피해자다'라는 충격적인 생각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거야. 앞에서 피해자가 여성일 때 신체화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했는데, 피해자가 남성일 경우에는 인지적 왜곡이 더 크게 나타난다고 해. 이건 남성이 성폭력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 인지적 왜곡은 피해자의 내면에 남은 상처는 전혀 치유하지 못하면서(심리 검사를 해보면 심리적 고통이 크게 상승해있음)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의 도움을 차단하게 만들지.

 

  그 외에도, 불안 장애나 성적 기능상의 문제(이 경우엔 두 가지 극단적인 형태가 나타나는데, 성적 행위에 대한 증오감을 보이거나 아예 무분별한 성관계 혹은 자위 행위에 탐닉하게 되는 등 자신의 성적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가 나타나고, 신경쇠약과 자기학대 등을 보이며 알코올을 비롯한 약물 중독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약해지기도 하지.

 

  그리고 이러한 피해의 강도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정서적 관계가 가까웠을수록 커지고, 부모자녀간 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이전에 정신병리적 문제가 있었을수록 커져. 그리고 연구에 따라 다른 의견이 다소 존재하나 피해자의 연령이 높을수록 증상의 심각도가 커진다고 해. 이 때 심각도는 피해 장소, 피해자의 성별, 피해 유형과 무관하다고 하는데, 특히 '피해 유형과 무관'하다는 걸 잘 새겨둬야 해. 여러 유형 중에서도 특별히 삽입 행위가 특별히 큰 피해를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대체로 모든 성폭력 유형, 성희롱과 스토킹, 불법촬영을 포함하는 성추행부터 준강간, 강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폭력은 비슷한 정도의 피해를 입힌다고 해.

 

  자, 이제 히스토리 보이즈로 돌아가서. 헥터와 학생들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헥터는 자유로운 수업방식으로 학생들과 장난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그리고 학생들은 대입준비반, 즉 성인이 되기 직전인 나이의 학생들이지. 따라서 우리는 헥터의 그 추악한 행위가 학생들에게 아주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남겼으리라고 당연하게 추측할 수 있어.

 

  그러나, 히스토리 보이즈는 학생들 내면의 고통은 어떤 식으로도 드러내지 않아. 학교를 졸업한 미래에, 정신질환에 걸렸다고 나오는 건 오직 포스너지. 물론 다른 학생들이 멀쩡하지 않았을 수 있어. 문제는 그걸 극은 보여주지 않아. 어떤 암시도 보여주지 않지. 만약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정신병리적 후유증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면, 관객이 극을 보고 학생들이 미래에 학창 시절에 있었던 폭력이 남긴 상처로 괴로워할 수 있음을, 거의 85%의 확률(청소년기의 성폭력 피해자 중 20% 정도는 아무런 정신적 피를 입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중 1/3은 당장은 증상이 없다가 수년 후에 훨씬 강력한 증상으로 다시 나타나고, 2/3 정도만 부모와의 건강한 유대관계 등으로 극복해내.)로 그러함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그나마 데이킨의 대사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상처가 있으리란 걸 짐작하게 하는데, 이 대사는 앞서 말했듯 그저 흘러가는 대사일 뿐더러, 만약에 내면의 심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이 한 줄 대사로 학생들에게 남았을 정신병리적 후유증 전체를 짐작케 하려 했다면 그건 그야말로 심각하고 중대한 기만일 수밖에 없어. 특히 마지막에, 미래에 학생들이 어떻게 됐는지 설명하는 장면에서 아무런 언급도 없고 멀끔하게 차려입은 헥터에게 따스한 조명이 내리비치는 장면을 생각한다면 말이야.

 

  지금까지 수많은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가려졌고 가해자의 사정, 가해자의 변명과 가해자가 이룬 업적의 아까움, 가해자의 심경만이 전해졌어. 사회는 항상 권력적 강자인 가해자의 말만을 들었지. 가해자의 진면모를 폭로한다고 해도 어쨌거나 결국 서사의 중심에 가해자를 세우면서 가해자의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모습을 샅샅이 살펴보게 해주는 문학과 비평, 언론 기사들을 얼마나 많이 접했던가를 생각하면, 학생들의 내면 심리를 전혀 묘사하지 않는 이 상황이 얼마나 유해한지 그리고 지금까지의 잘못된 흐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지 생각할 수밖에 없어.

 

  즉, 히스토리 보이즈는 성추행을 저지른 헥터라는 인물을 어떻게 평가할거냐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발달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을 책임져야 할 교사가 자신의 책임을 유기했을 때 그것이 어떻게 사회 구성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숨기고 있는 거야. 피해생존자들의 내면이 드러날 기회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내 생각에 이건 유피미즘이나 허정, 표리 같은 비평적으로 갈음 가능할 정도의 문제가 아니야. 은폐와 입막음의 문제이지.

 

   "넘겨줘라"는 뭘 넘겨줘라야... 생전에 행적 하나하나 까발려서 부관참시를 해도 모자랄 판에. 성폭력 없이 잘만 가르친 선생이 얼마나 많은데 넘겨주려면 그 사람들을 넘겨주지. 넘겨도 린톳 어윈만 넘겨줄 거고 헥터는 그냥 기록삭제형이야 그런 사람 난 모른다 알아서 찾든말든해라임.

 

 

  두 번째로는, 역사와 문학이라는 소위 '인문학'을 다루면서, 반성과 성찰의 한계가 너무 명확해.

 

  철학은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반성의 학문이지. 역사학은 인류가 지금껏 남긴 사료들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규명하는 학문인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이고 역사의 인과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야. 문학은 인간의 언어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표현하는 예술인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인간의 영혼과도 결부된 인간 언어의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주기 위해서, 즉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 헥터가 문학을 해독제, 단열재라고 표현하는 것도, 표현 불가능한 상황, 감정과 마주하기 전에 그 상황과 감정을 표현할 가능성을 쥐어주기 때문일 거야.

 

  다시 말해, 철학은 반성하기 위한 것이고, 역사는 어떤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며, 문학은 불가능성 이면의 가능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야.

 

  히스토리 보이즈에는 철학, 역사, 문학이 쉴틈없이 등장해. 영문학 시인들이 등장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수업 시간에 역사를 가지고 토론을 하며,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들은 역사철학이고, 뭐 비트겐슈타인이 등장하기도 하지.(저승에 있는 비트겐슈타인이 들었다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인용이긴 해도...) 그런데,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등장하는 인문학은 반성에도, 진실규명에도, 가능성의 발견에도 쓰이지 않아.(라고 하면 좀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

 

  사실 이건 극에서 어느정도 예고된 일이야. 휠체어에 앉은 어윈은 첫 등장에서 시민 자유의 축소를 자유의 확장으로 호도하는 기술을 전수하고 있고, 중간 중간 등장해서 '이상의 극치'같은 영양가 없는 자극적인 말만을 늘어놓는 교양예능 프로를 진행하고 있으니까. 어윈의 테크닉이라는 것도, 어느정도는 실제로 역사학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음과는 별개로 정말 역사를 다루는 테크닉이라기보단 옐로저널리즘(사실 난 극 중간에 자꾸 옐로저널리즘을 그냥 저널리즘이라고 하는 것도 별로야.)에 가깝지.

 

  그래서, 만약 헥터가 그냥 문학 선생님이고, 어윈이 옐로저널리즘을 무기로 내세우는 역사 선생님이고, 학생들이 위키백과처럼 쌓은 인문학 지식을 인용해가며 대입 시스템에 순응하는, 그리고 어윈은 스타 강사가 되는 흐름이었다면 인문학을 인문학답지 않게 다루는 세태의 허정, 표리에 대한 유피미즘일 수 있었겠지.

 

  만약 헥터가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었다면 말이야.

 

  인문학의 세례를 받고도 전문직으로 사회의 그저그런 구성원이 되어 별 특별할 것 없이 살아가는 학생들. 이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명예욕에 찬 교장과 어윈 때문이지. 사실 헥터의 인문학 교육이, 그의 폭력적 행위와는 별개로, 좀 미심쩍어 보이는 것도 있고. 어윈은 왜 시민들을 호도하는 일에 앞장서며 지식팔이 장사꾼이 되었을까?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테크닉'이라는 게 결국 깊이 같은 건 없는 그런 거니까. 허정과 표리로 가득한 극이라고 하지만, 히보라는 극은 미래 시점의 허정과 표리에 대해 그 원인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어.

 

  하지만, 왜 학생들은 성폭력 가해자인 헥터를 고발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애도할 정도로 좋아했는가, 왜 데이킨은 교장에게 가서 헥터를 변호했는가는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지.

 

  정말 그런가? 극 중간에 나오지 않나? '지식의 전수는 에로틱한 것'이라든가, '죽은 자들의 빵을 나누어먹는 동맹 의식'이라는 표현이 많은 것을 설명해주지 않나?

 

  플라톤의 '향연'에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플라토닉한 형태의 동성애가 널리 유행했음을 알 수 있어. 당시 그리스는 상고 시대의 지배자들이 철기 문명에 전멸하고 새로 일어난 문명이었고 종교 사제들의 권위가 급격히 약해지고 현자들, 즉 철학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시대였고 철학적 지식은 지금처럼 강단에서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제자에게 귀띔하듯 전달해주는 것이었지. 그리고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성 시민들을 소년 시절부터 모아놓고 군사 및 교양 교육을 시키면서, 남성 간의 접촉이 잦아짐으로 인해 동성애에 대해 상당히 관용적이었기 때문에, 철학자 스승과 제자는 종종 동성애적인 관계를 맺기도 했지. 플라톤의 '향연'에는 소크라테스가 나오고 소크라테스의 남성 애인과, 그를 질투하는 다른 남성이 나오기도 하고. 요컨대 철학 교육의 전통에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성애적 사랑이 항상 있어 왔어. 무엇보다 이런 학문의 전수는 기술적 지식이 아닌 지혜, 영혼의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라고 믿어졌기에, 학문의 전수를 위해선 스승과 제자의 영혼이 긴밀하게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겠지. 이러한 전통은 고대 그리스가 찬란하게 부활했던 르네상스에서 다시 이어졌고, 헥터 말하는 '지식의 전수란 에로틱한 것'이라는 말은 바로 이 때문에 나온 말일 거야. 그리고 그러한 지식의 전수로 한개의 클래스가 묶여있다는 의미에서 헥터는 '동맹 의식'이라는 말을 사용했겠지?

 

  만약 히스토리 보이즈의 배경이 근대적 교육제도 하에 설립된 학교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였다면, 헥터의 말은 그럭저럭 맞는 말이었을 거야.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들고 와서 근대의 학교는 정신병원, 교도소와 같은 미시권력의 구조를 갖는 처벌기구이며, 학생, 환자, 수감자들에게 근대국가의 제도에 순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히스토리 보이즈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고대 그리스처럼 지혜를 갈구해서 스스로 스승의 밑으로 모여든 참된 진리의 탐구자가 아니라 부모에 의해 밀어넣어졌고 사회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사회가 인정하는 출세를 위해 선생들로부터 교육 과정을 습득하도록, 본인의 원함과는 관계없이 강요받은 아이들이야.

 

  학교의 교실에 앉은 학생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구도자들만큼이나 스승의 수업 내용과 생활지도에 대하여 반기를 들 수 있을까? 무엇을 거부하고 무엇을 수용해야 하는지 다 배워서 정리한 뒤에 학교에 들어온 걸까? 아니오. 아니오.

 

  에로틱한 관계는 서로가 동등한 인간일 때 가능한 거야. 하지만 헥터의 학생들은 헥터에게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 처지이고, 헥터가 자신들을 때리더라도 외부에 알리지 않아야 하고(이 상황에서 학생들이 앞서 말한 '인지적 왜곡' 상태-아무렇지 않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은 상태-에 있음은 극에서도 드러나지.), 또 아무리 헥터가 자유분방하게 하려고 해도, 결국 학기말에 성적을 매기는 건 헥터야. 모두에게 A 학점을 준다? 그 순간 헥터가 수틀려서 낙제점을 주지 않을 거란 법적 보장이라도 있나? 결국 학생들이 누리는 자유분방함이란 것도 헥터에게 시혜적으로 베풂받은 자유분방함이지. 그리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자신들이 입시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미성년자와 성인 사이의 성적 교제가 엄격히 금지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인 거잖아. 우리 사회는 어떠한 나이를 기준으로 그 기준 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고 그를 위해 기준 위에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권한을 허용해 놓았어.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것, 자신이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야. 요컨대, 그건 대등한 두 사람의 감정 교류 속에서 피어나는 호감이 아니라, 법제도에 의해 발생하는 호감인 거지. 그리고 미성년자와 성인 사이에 성적 교제가 있을 경우, 성인은 너무 쉽게 이러한 권력적 상하 관계에 의한 호감을 인간적 호감으로 오도할 수 있고, 또 미성년자 스스로가 그렇게 판단 착오를 일으키고 있지 않다고 100% 장담할 수가 없어. 성인과 미성년자 사이에 사랑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이유로 미성년자와 성인 사이의 교제가 금지된 거지.

 

  학생과 교사는 더해. 지식의 전수는, 역사적으로 지식이 전수되온 방식때문에라도 전수하는 자와 전수받는 자 사이에 일정 정도 이상의 교감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 이런 교감이 없다면 그 가르침은 그냥 꼰대의 잡소리가 되어 흘러가겠지. 선생은 말하고, 학생들은 귀담아 듣는다. 그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는 있지만, 어쨌거나 학생들은 그 때 선생의 말을 자신 안에 일단 한 번은 받아들여야해. 즉 선생에게 감정적인 관심을 투여해야 하지. 이건 필수고 학생의 의무야. 학생들이 선택한 것도 자신의 권리를 발휘한 것도 아니라고.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것처럼 헥터의 행동을 최대한 좋은 쪽으로 해석해줄만한 충분한 정서적 친밀함을 가질 수밖에 없어. 왜 안 그렇겠어? 난해한 수업 방식도, 비속어 섞인 막말과 구타에도 '아 이건 교육의 일환이야.'하고 이해해왔으니까 말이야. '동맹 의식'이라고? 동맹 의식이 아니라 '속국 의식'에 가깝겠지.

 

  자 그럼 다시 돌아가서. 학생들은 왜 헥터의 가해를 고발하지 않고 오히려 헥터를 변호했을까? 지식의 전수란 원래 에로틱한 거라서? 아니오. 일단 헥터가 한 짓은 'Erotic something'이 아니라 'Sexual harassment'고... 헥터와 학생들이 동맹 의식으로 묶여 있어서? 아니오. 선생과 학생 사이의 권력 관계가 있는데, 보호자와 피보호자로 법제도가 강제하고 있고 사회 인식이 그런데 어떻게 동맹이 가능하겠어. 답은, 헥터가 학생들보다 권력적으로 상위에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근대적 권력의 특성, 주권자가 휘두르지 않아도 피지배자 스스로가 스스로를 검열하고 권력의 규칙에 따르게 만드는 그 특성으로 인해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헥터에게 종속되게 되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인지적 왜곡.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의 정신적 후유증 중 하나인 인지적 왜곡(꼭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발생하는 이 인지적 왜곡-나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때문에 피해자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많지)으로 인해 학생들은 헥터의 폭력 행위를 자신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으로 바라보기보단, 자신들이 견뎌낼 수 있도록 '저건 그냥 웃음거리'라는 식으로 바라보게 된 거지.

 

  실제로 성폭력의 가해자들은 권력 관계에서 권력적 열위에 있는 사람의 호의적 행동이나 인지적 왜곡에 의한 인과적으로 잘못된 발상을 이용해 상대방을 세뇌하고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인지 능력을 곡해하는 가스라이팅을 활용해 자신의 가해 사실을 무마하고 피해자가 피해 사실에 대한 일관되고 명확한 진술을 하지 못하도록 하곤 하잖아. 헥터가 포스너에게, 데이킨이 어윈에게 무언가를 질문하러 간 걸 두고 "포르노를 찍고 있군요."라고 말하는 것이나, 수업 시간에 사창가를 배경으로 한 대화가 진행되도록 허락함으로써 성착취에 대해 무감하게 만드는 상황에 아무런 메타적인 관점에서의 추가 교육이나 토론 시간 없이 노출시키는 것. 이런 일이 수업시간에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졌다면, 이것이 헥터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해, 성폭력을 별 거 아닌 것으로 얼버무려 생각하게 하려는 일종의 세뇌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까지도 모두 히스토리 보이즈가 말하는 허정이며 표리이고 유피미즘인가? 그렇다면 휠체어에 앉은 어윈의 강의 장면이 나온 이유는 전부 설명해놨으면서, 학생들이 '인문학의 세례'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단서들을 마련해놨으면서, 헥터의 강의 내용, 헥터의 인용문들에 대해서는 왜 이런 이중적인 시선을 견지하지 않지? 헥터가 학생에 대한 자신의 권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장면, 헥터의 교육이 학생들로 하여금 헥터의 성적 폭력에 무뎌지게 만들고 있다는 힌트는 어디에 있지?

 

  내가 첫번째로 말했던 학생들의 심리가 삭제된 부분은 극대본의 문제라면, 두번째의 경우는 난 연출의 문제라고 봤어. 왜냐하면, 첫번째 내용의 경우 극 대본에 아예 내용이 없는 것이지만, 두번째는 결국 장면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거든. 그런데 극을 보면 불어로 진행되는 수업 장면에는 아무런 힌트도 없고. 심지어 자막도 지웠더라. 차라리 자막을 넣었으면 고발하는 의도라고 선해해줄 수 있었을텐데. '포르노'를 언급하는 장면은 대사가 그냥 넘어갈 뿐더러, 선생과 학생 사이의 감정과 지켜야 할 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장면인 어윈과 헥터의 대화에서는 감정이 낭만적으로 흘러가도록, 마치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감정이 오르내리는 것처럼 말해지도록 놔두었지.

 

  특히 이 문제는, 지금까지 (어디든 안 그러겠냐만)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인문학 선생님'들이 지혜의 전수자의 탈을 쓰고 알맹이 없이 껍데기 조각같은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상처주고 갈라쳐왔는지 생각해보면, 절대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고 분명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책임지고 잘 다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그런데 히스토리 보이즈는, 글쎄, '인문학 선생님'에게 눈부신 조명을 쏘아주기 급급해. 그게 이 극이 메세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그러면 '이상의 극치'를 말하는 어윈과 녹음기를 들이민 포스너에겐 왜 그랬지? 이 극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허정이고 표리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꽤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어. 그러면서 헥터만큼은 거북살스러우리만치 제대로 짚지 않고 그냥 넘어가고 있지. 그리고 연출에 따라 아예 대본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는 연극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첫번째로 제기한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두번째로 말하는 이 문제에 한해서는 연출의 느슨함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겠다.

 

 

  세 번째로는, 이전에도 나왔던 문제제기인데, 극이 여성과 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이야. 정말 기만적이야.

 

  극 중 등장하는 여성은 린톳 선생님 한 명뿐이야. 물론 남녀공학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럴 거라면 린톳 선생님에게 좀 더 비중을 몰아줬어야 해. 혹은 인문학에서 여성의 위치성에 대해 좀 더 대사가 있었거나. 인문학은 아주 오랫동안 여성을 배제해왔어. 특히나 역사학에선, '역사관'이 중요해지고 중립적인 역사라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이 던져지면서 기존의 역사학이 남성중심의 시각에서 쓰여졌다는 것이 문제시되고 있지.

 

  문제는, 이 극에서 이 문제가 언급된다는 거야. 어떻게? 그냥 장면에 지나가는 대사로! 지식장사꾼이 된 어윈의 허정, 표리함을 지적하는 걸 보면, 이 극은 인문학에 관련도니 사람들의 허정과 표리를 유피미즘으로, 서사로서 보이고 있어. 하지만 여성에 대한 부분은 그정도의 노력을 전. 혀. 투자하지 않고 있지. 불어 회화를 하자고 하니까 사창가를 소환하는 학생들, 교장 비서이며 여성인 피오나를 정복 대상으로 보고 그를 정복하는 과정을 스포츠(정확히 말하면 전쟁이지만, 현대의 스포츠는 일종의 대리전 성격을 띄고 있으니까)로 소비하는 학생들, 린톳의 여성 면접관 이야기, 여성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에 코웃음을 치고 진지하게 듣지 않는 학생들. 이 극은 여성에 대해 어떤 표리도 허정도 보여주지 않고 있어. 그냥 꾸준히 바닥만 보여준다는 점에서 진실되고 일관적이지.

 

  더욱이 내가 기만적이라고 하는 부분은, 린톳이 이러한 문제점을 한 장면에 몰아서 까발린다는 거야. 여성 인물에게 서사를 주지 않고 기능적으로 사용된다는 걸 여성 인물 스스로에게 말하게 해. 그래서 그걸로 반성해서 어떤 서사를 부여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러고 끝이야. 다시 기능적인 인물로 돌아가. 마지막까지 나레이터로 알차게 써먹으면서. '여성을 기능적으로 사용한다고 말하는 기능만으로 여성을 사용하기'. 이 부분을 보면서 이건... 극이 대놓고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어. "여성 인물을 도구적으로 활용해서 빡치지? 나도 알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 그러고 전혀 바꾸지 않는 거야. "내가 나쁜 놈인데 그게 뭐?"라고 하는 감성이고 정당한 비판을 '나도 알아'라면서 입막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건데, 왜 갑자기 여성과 관련된 부분에서 이런 저열한 감성이 튀어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

 

  동성애자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야. 뭐, 동성애가 나올 때 조금 예측하긴 했는데, 상황파악 못하고 시나 읊는 헥터에게 교장이 하는 말, "플라톤, 미켈란젤로, 오스카 와일드... 동성애자들 다 집어치워!"라는 말. 사실 이건 꽤 자주 나오는 트릭이야. 성추행범이 동성애자일 때, 주변 인물이 그를 동성애 혐오에 기반해서 비난하게 함으로써 갑자기 동정과 연민거리를 달아주는 거. 그리고 볼 때마다 기분나빠.

 

  갑자기 등장한 교장의 동성애 혐오 발언은, 실제 사회 현실의 냉혹함에 비추어봤을 때 어쩔 수 없는 걸까? 근데 봐봐. 스크립스는 기독교인인데, 물론 상당히 진보적인 기독교인이라 그런 걸수도 있지만, 포스너의 동성애 성향이나 데이킨의 양성애 성향에 대해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아. 그런가 하면 린톳은 헥터의 아내에 대해 '남편이 뜨뜻미지근한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 아내들이 있다. 오히려 그래서 결혼한 여자들이 있다.'라면서, 헥터가 동성애자이면서 여성과 결혼한 것에 대해서 '궁예'까지 하며 딱히 문제삼지 않고 있어. 어윈도 린톳의 '비트겐슈타인이 이반이었나요?'라는 말에 대해 당황하는 것 외에는 자신의 정체성이나 데이킨과의 관계에 대해 딱히 어떤 고뇌를 하진 않고. 하나 더 있다면 포스너가 자기가 유대인이고 동성애자에 쉐필드에 살아서 큰일났다는 말 정도? 사실 그 때 어윈이 '네 정체성을 결정하기엔 넌 아직 어려'라고 말한 것도 동성애 혐오발언이긴 한데 이걸 극에서 알아채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으니까 넘어가고.

 

  요컨대, 극 중에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의 비율이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혐오로 인한 성소수자들의 고뇌는 극의 메인 소재가 아니야. 그런데 극에 동성애 혐오가 느닷없이 소환되는 때가 있지. 헥터가 교장으로부터 욕먹을 때.

 

  사실 하나 더 의심가는 장면이 있는데, 포스너는 졸업한 후 시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걸로 나와. 왜일까? 헥터의 가르침을 하나도 잊지 않고 심장으로 기억한 아이가 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을까? 물론 헥터의 가르침 자체가 좀 잘못되었을 수 있지만, 이 극에서는 딱히 헥터의 그 '인문학 세례'가 어떤 잘못이 있는지 꼬집지 못하고 있거든, 오히려 입시 교육에서 외면받은 따뜻하고 순수한 무엇으로 나오지. 그럼 대체 이 극에서 포스너의 정신 질환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건 무엇일까?

 

  설마, 포스너가 유대인이고 동성애자라서 그런 건가? 근데 난 이게 맞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어. 물론 정신 질환이란 게 꼭 이유가 있어야 생기는 건 아니지만, 이건 연극이잖아.

 

  그리고 애초에 포스너 캐릭터 자체가 좀... 북치는 소년 핫지 배우러 가서 헥터 손을 왜 잡아주게 만든 거야. 동성애자끼리면 뭐 성추행한 것도 다 이해가 된다는 거야 뭐야...

 

  음. 어쨌든 이렇게 보면 히스토리 보이즈는 동성애자가 살아가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극이란 것도 맞을지 모르겠네. 극 중 등장하는 동성애자 세 명은,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반신불수에 한 명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증의 정신질환자니까. 그나마 양성애자 한 명은 돈 잘 벌고 잘 살아서 다행이야... 데이킨 잘 살아...

 

 

  마지막 네번째, 이건 그냥 좀 사소한 것들인데...

 

  헥터가 대체 어떻게 가르쳤길래 학생들이 '예술작품은 다르게 생각할 수 없다구요!'같은 생각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어. 거의 반-인문학적인 생각인데... 그리고 어윈이 왜 헥터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문을 잠그냐고 물어볼 때, 학생 중 하나가 "현대의 망령이 들어오지 못하게"라고 해서, 대본집을 찾아보니 "현대성(Modernity)의 망령"이라는 표현이더라고. 근데 모더니티를 근대성이 아니라 현대성으로 번역을 했다고...? 물론 컨템포러리를 쓸 게 아니면 모더니티를 현대성으로 써도 상관은 없겠지만 보통 모더니티는 근대성이라고 번역하는 게 일반적일텐데 이건 좀 신기했음. 더구나 앞에 "진보의 동력"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근대성으로 번역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 싶은데 기회되면 제작진한테 물어보고 싶네...

 

  그리고 홀로코스트에 대해 토론할 때, 홀로코스트는 맥락에 넣어볼 수 없다느니 헥터가 이걸 그냥 인류사에 다시없을 비극으로 보자느니 하는 말이 좀 안 와닿은 게, 히보 배경이 80년대 아냐?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는 야만이다'라고 말했다가 철회한 게 60년대 이전이고 이스라엘이 아이히만 잡아와서 사형하고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책 써낸 게 60년대, 이후에 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는 나치에 대한 비판적 역사관이 거의 확립되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포스너는 죽일 듯이 노려보고 어윈도 한 발 물러서고 헥터는 그만하자고 하는 게 너무 어색하더라고. 물론 데이킨이 말한 논지는 너무 나간 거긴 해. 실제로 80년대에 그 비슷하게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가 하버마스한테 미친듯이 탈탈 털렸지... 하지만 일본의 진주만 카미카제 자살공격에 대해 파격적인 주장(그건 좀 논지를 들어보고 싶더라 너무 허무맹랑해서)을 내놓았다는 어윈이 그렇게 숙이고 들어간 건 좀 의외였어.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긴 하지만.

 

  아니 일단... 헥터가 좀... 발췌문 왜 이렇게 싫어해. 크리스테바가 '모든 텍스트는 인용구들의 모자이크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말한 게 60년대인데... 린톳이 자기 학창시절에서 업데이트 안 된 선생님들 까는데 거기서 헥터가 웃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더라고... 배경이 한국이라면야 한국은 유럽대륙보다 철학적 조류도 1,20년씩 늦어지고 이러니까 막 원서랑 논문 읽으면서 따라가는 거 아니면 약간 그렇다 쳐도... 저긴 영국인데... 프랑스 철학자라서 안 읽었나...

 

  그리고 어윈이 영국 제국주의 얘기할 때 애들이 반발하는 거 짜증나더라. 아니 어디 영국 놈들이 제국주의 얘기하는데 안 닥치고 떠들고 있어... 너네 지금 마거릿 대처 정부 시기잖아 너네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퍼뜨리고 네오콘 퍼뜨려서 전세계가 난장판이 된다고!!

 

 

  호인 구석이 아예 없는 극은 아니었어. 배우들이 하이 텐션으로 즐기면서 연기하는 걸 보는 건 즐거웠고(딱 전캐 찍음), 생각해볼만한 장면이 없었던 건 아냐. 여러 군데에 단서들을 쌓아놓아서 그것들이 최종적으로 어떠한 결말을 가리키는 게 재미있긴 했지만,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나 소수자를 소품으로 활용하면서 그에 대해 기만적인 태도를 취한 것들, 그리고 심지어 이를 연출적으로 해결하지도 않는 것을 보면서 대체 왜 이 극이 계속 올라와야 하는지, 올라온 건지 의문이 들었어. 지적 허세가 가져오는 비극적 결말-입시 위주 교육에 대한 경고- 외에 극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이 있는지도. 무언가를 경고한다기엔 너무 감상에 빠져있고, 감상에 빠지기엔 너무 위험하고, 생각하게 한다기엔 쓸데없이 교묘하게 중요한 부분을 은폐하고 있으며,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기엔 새로운 발견이 있는 것도 아닌 이 극이 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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