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 30주년 기념 공연 첫번째.
기억을 잃었던 윤서기의 행적을 역추적하며 현대사의 질곡과 지우고 싶은 인물의 과거를 끄집어내는 공연.
플래쉬백을 활용해 역으로 과거를 구성하는 추리극 구조지만 미래로 흐르는 역사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흥미로워.
순검이었던 할아버지의 죽음, 한국전쟁 시 포로들을 처리하기위한 방화, 참전용사가 불구된 사연, 한센병....
자전거가 유유히 지나가듯 역사는 흐르고 있음을..하지만 두개의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처럼 과거와 현재는 연결되어있고 반복됨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여.

무대 한 가운데를 차지하는 커다란 사각 홈은 마치 매장하기 직전의 무덤같기도 하며, 밭길 같기도 하지.
향토적인 분위기와 함께 죽음의 냄새를 풍기기도 해.공연에 망자들이 등장하는 지점에서는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물들의 동선은 구덩이 때문에 횡과 종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수직적인 역동성을 보여주는데
재미있는 장면은 북소리가 들리다 윤서기가 무언가에 충격을 받아 구덩이 바닥에서 튀어오르듯 올라와 쓰러진 장면.
희극적인 북의 리듬과 오브제의 수직적 상승, 윤서기의 상승과 하강.

과거와 현재 모두 방화가 일어나고 중요한 극적 행위로 작용해. 방화는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지우고 싶은 과거였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위한 행위였고 희생이 따랐던 점에서 커다란 죄의식으로 옮겨져. 우리의 근현대사는 그렇게 지속되어온 건 아닐까?

윤서기의 혼절 역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기제이며 기억을 지워버리는 행위란 점에서 방화와 동일한 의미처럼 느껴져.

대단원 구서기의 재구성에서 방화를 저지른 인물들과 희생당하는 인물들이 무대 위에 모두 조망되면서 마지막 구서기가 윤서기에게 던졌던 대사는 결국 관객에게 건낸 말은 아니었을까?
받아들이지 못해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는 우리, 함께 가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해 타인의 희생을 초래하고 그에 대한죄책감으로 미래를 채워가는... 우리도 동일하게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죽은 처녀가 누웠다 벌떡 일어나고 거위 모양의 베개가 우습지만 그로테스크한 액션의 도구로 바꿔지는 등... 오태석표 상상력이 여전히 재밌지만 살풀이와도 같은 대단원의 장면이 에너지가 예상했던만큼 나오지는 않아 조금은 아쉽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