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보 히보 얘기만 듣다가 처음 봤는데, 난 노네임의 노예가 맞나보다. 허리가 안 좋아서 긴 극은 종종 지칠때가 많은데 세시간짜리 필로우맨, 대사의 향연인 스테디레인, 그리고 히보까지 정말 다 취향이야... 1부 80분 2부 90분이었는데 1막부터 끝나는게 아쉬워서 손목시계 쳐다보고 뭐 이리 시간이 빨리가나 싶고 그랬어. 그래서 히보 표를 더 잡는다... 난 평일에도 기꺼이 히보를 볼꺼다.

대사 속에 등장하는 시인들, 예술가들, 그리고 역사적 배경들을 반은 모르고 봤는데, 몰라도 괜찮아. 알면 더 좋겠지만. 헥터가 아이들이 앞날을 살아가면서 보호막이 되었으면 해서 가르친 문학수업이 옥스포드나 캠브리지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만 변질되는 것에의 안타까움. 낭만주의자와 현질주의자의 대립. 누구도 누구의 절대적인 적이 되지는 않지만 팽배한 긴장감. 누구는 옥스포드를 나오고 돈 잘버는 변호사 검사가 되지만, 누구는 오두막을 짓고 때때로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약하지만 강한자로 헥터의 방어막을 그대로 두른채 살아가기도 하는 인생 이야기. 

포스너가 데이킨을 좋아하고 데이킨이 어윈을 좋아하고 또 그것을 숨기지 않고, 친구들도 호모새끼라고 따돌리지 않는 분위기. 고등학교를 1년 반쯤 영국에서 학교를 다녔었는데 영국은 미국이랑 또 달라서 학교분위기 자체가 아주 자유로웠어. 군사훈련이 빡세고 흑인이 전교에 달랑 하나밖에 없었던 아주 보수적인 군사학교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당시에는 담배와 술이 허용되는 나이가 영국이 만으로 16살이었고(지금은 모르겠다), 그래서 학년이 13학년까지 있는데 위 선배들은 학교 파티에 가서 선생님들과 같이 술도 마시고 그랬어. 쉬는 시간에 건물 뒤에서 몰래 담배를 피다가 선생님을 만나도 한번쯤은 그냥 넘어가주고 일년에 삼사일 반짝 해가 나는 봄날에 잔디밭에 누워 담배를 피면 저쪽 잔디밭에서 선생님들도 담배를 피우고있는... 뭐랄까... 미국은 그렇지는 않거든. 미국보다 히피같았어 분위기가. 그때 생각도 많이 나고... 헥터가 성기를 만지는 행위가 미국에서는 단칼에 베어질 수 있는 행동이라면, 연극에서는 동맹의식 같은 걸로 표현되었고, 아니면 할아버지가 어린 자식 꼬추한번 만져보자랄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더 있는 나라라서 분위기가 잘 이해되더라.

얀스너가 헥터를 좇는 그 눈길과, 은석데이킨의 맹랑하지만 매력적인 그 자신감이 묻어나는 연기 참 좋아. 얀코도 전에 좋게 봤었지만 사실 히보는 극 자체가 궁금한 거랑 명행배우 보고싶어서 간거였는데, 오히려 명행배우의 연기가 묻힐 정도로 다들 연기가 좋았어. 특히 은석데이킨. 사진만으로는 별로 호감이 아니었는데 데이킨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같다. 뭐니 이 배우. 홍일점인 린톳역의 추정화 배우, 교장과 헥터 사이에서 관객의 편이 되어주는 정확하고 맛깔스런 대사가 아가사에서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다. 모범생들에서 한번보고 참 진지한 사람인 것 같아 럿지역을 어떻게 했을지 궁금했던 임준식 배우, 번점에서 보고 두번째인 리피 안재영 배우 피아노도 잘치시고 체육선생님보다 리피가 좋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헥터 그 자체인 최용민 선생님 등등 다 참 좋다. 작년 락우드와 악타까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도 좋아.

무얼 위해 공부하고 시험을 보는지 확실하지 않으면서도 달리고, 정체성도 불안정하고, 솔직한 것이 좋은건지 아니면 솔직하지 않더라도 개성있는 것이 좋은건지 판별도 안되는 혼란스러운 십대. 그리고 그걸 막 거쳐온 어윈과 한참전에 지나온 헥터. 인생을 보는 시점이 이렇게 익어가는구나, 아니, 이렇게만 익어가면 참 좋겠다.

자첫이고 대사량이 많아서 다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진짜 좋았어. 근데 2부 시작에 어윈이 BBC 방송 녹화할때 포스너랑 말다툼이 있잖아. 그러다가 소리를 지르면서 난 헥터같지 않았어! 하는 부분이, 냉철하고 사회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어윈이라 그렇다고 이해하겠는데 그 화내는 강도가 너무 세서 좀 이해가 안된다... 그래서 난 막공까지 열심히 봐야겠다ㅋㅋㅋ

횡설수설 히보 첫감상ㅋㅋㅋ 오늘 히보세트로 디비디까지 다 사왔는데 영화도 봐야겠다. 끝으로 꿀자리 양도해주고 표까지 찾아서 맡겨준 양도자분 너무 고맙다 덕분에 곰손으로는 잡아보지도 못할 자리에 앉아서 진짜 잘봤어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