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번역] 여기는 비봉탐정사무소 홍마향편 2화

LaserBea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9.08 02:56:28
조회 2062 추천 16 댓글 13
														



(아마도) 주제가

   이 노래의 번역은 이쪽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touhou&no=5700888






누를 시 이동합니다.


프롤로그


홍마향편 1화









여기는 비봉탐정사무소(こちら秘封探偵事務所) 홍마향편 2화


글 : 浅木原忍


일러스트  : EO


번역 : Laserbeam


2화 원문 : http://longnovel.com/touhou/第2話-2/



viewimage.php?id=39b2c52eeac7&no=29bcc427bd8077a16fb3dab004c86b6f24b7e12241bb1d95de86fcc33eb53d9b7a68307c96cd7e2ded5c0cca2f9c655a0a0ea3e0c4e032f473242c28








 아홉 명의 작은 병정이 밤을 새다가

 한 사람이 늦잠을 자 여덟 사람이 남았다




 -3-

 우선, 쿵 하고 엉덩이에 충격이 가해졌다. 이어서 바사삭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내렸다. 단단하다. 아프다.

 이어서 먼지구름인지 연기인지 모를 것이 피어오르고── 마침내 침묵.

 "아야야야야……"

 정신이 들자, 책에 파묻혀 있었다. 아무래도 책장의 책이 우리 위로 무너져내린 것 같았다.

엉덩이와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나 렌코의 모습을 찾는다. "으윽-"하고 렌코는 책에 깔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괜찮아?"라고 말하며 내가 손을 뻗자, “으윽, 혼쭐났구만.”라고 불평하며 내 손을 잡고 일어난 친구는 책들 사이에 파묻혀있던 모자를 발굴해내 먼지를 털었다.

 “……있잖아, 렌코,”

 “응?”

 “여기, 어디야?”

 “엥? ──어라?”

 렌코도 그제야 간신히 상황을 파악했는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무수한 책이 담긴 책장,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있던, 우사미 스미레코 씨의 방이 아니었다. 심하게 어두운 것은 변함이 없지만 더 광대한, 도서관 같은 공간이었다. 천장이 어마무지하게 높아서, 어떻게 저런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내지 싶은 높이까지 책에 묻힌 공간이었다.

 천장에 매달려있는 어슴푸레한 광원과 책장 벽에 걸린 램프가 우리 주위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형광등도 아닌, LED도 아닌 어딘가 다른 이상한 빛이다. 발밑은 닳아빠진 융단으로, 잘 보니 책장 밑에도 책들이 쌓여있다. 우리의 발밑에 흩어진 것도, 그렇게 쌓여 있던 책들과 섞인 것 같다.

 어쨌든, 아무튼지 간에, 이곳은 내가 모르는 장소였다. 렌코도 똑같다. 스미레코씨의 방에서 의식을 잃은 거라고 해도, 우리가 왜 낮선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때 경계가 흔들렸던 느낌으로 미루어보아 답은 하나였다.

 “메리, 이건 혹시──우리들, 뭔가 이상한 경계를 넘어버리고 만 게 아닐까.”

 “……아마도.”

 그 순간 어떤 길로 들어가 버려서, 우리들은 그곳을 통과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은 평소에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기만 했던 그런 경계가 아니라, 좀 더 물리적으로 뚜렷한 방법이었다. 실존주의자인 친구도 말려들게 해버릴 정도로 물리적인.

 내 대답에, 즉시 렌코의 눈이 빛난다. 렌코는 달려 나가듯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우선 발밑에 흩어진 많은 책을 쌓아 정리했다. 아무래도, 나는 책이 바닥에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하는 체질인 것 같다.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런 버릇은 무의식적으로 나와 버리는 것 같다.

 펴진 책을 닫아 표지가 위로 향하도록 하여 쌓았다. 책장에 마음대로 넣어 놓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 책장이란 것은 소유자의 미의식의 덩어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시야에 들어오는 범위의 책을 모두 쌓고 나서야 주위를 배회하던 렌코가 돌아왔다.

 “휴대폰은 권외야. 시간 표시는 잘 되긴 하지만, 이곳의 시간과 맞는지는 밖이 보이지 않아서 알 수가 없…… 뭐야, 메리. 정리한 거야? 이런 때에도 성실하구만.”

 “오히려, 이런 때이기 때문이야. 섣불리 움직였다가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으니까. 또 키메라에게 습격당해도 모른다고?”

 언젠가 위성 토리후네에 둘이서 잠입했을 때의 일이지만, 그것은 또 다른 얘기다.

 내 말에 친구는 한 번 고개를 갸웃──“그러고보니 묘하군.”이라고 중얼거렸다.

 “메리, 그 때 내 눈에 손 댄 거 아니지?”

 “……그래. 그러니 여기가 경계 너머의 다른 세계라면 우리는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이번에는 렌코도 키메라에게 습격당해보면 어떻게 되려나.”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아무튼 그렇다는 건, 지금 이건 꿈이 아니라는 거네.”

 렌코는 몸을 부르르 떤다. ──평소에 경계 너머를 렌코와 들여다볼 때에는 내가 이 눈으로 포착해낸 영상을 렌코의 눈에 내가 손을 대는 것으로 공유하는 형식이었다. 렌코에게 있어서 그것은 꿈을 꾸는 것과 같은 느낌의 일이라는 인식인 듯했지만, 위성 토리후네의 키메라도 사실은 버젓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상을 입었고, 격리 병원에 입원하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있잖아, 메리. 그럼 혹시, 우리 못 돌아가는 거야?”

 “……이게 꿈이 아니라면, 말이지.”

 “우와악.”

 렌코는 위를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그러고 싶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스미레코 씨의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가 어딘가 낯선 장소에서 헤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보통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좋아. 그럼 메리, 우선은 여기가 어디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렇게 된다는 거다. 나는 무심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렌코, 너 혼자 위험을 향해 돌진하는 건 좋지만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

 “이런 곳에서 가만히 서 있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움직여도, 움직이지 않아도 괴물이 있다면 습격당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야. 그렇다면 스스로 움직이며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건설적이지.”

 “불필요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불필요한 재앙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옛 말에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그랬어, 메리.”

 결국 이렇게 굴러간다. 이런 흐름이 되었을 때, 나는 이 친구를 설득해서 흐름을 바꿔본 적이 없다. 이렇게 해서 나는 우사미 렌코에게 끌려가게 되며, 그것이 바로 우리 비봉구락부의 일반적인 형태이다. 그렇게 되면 나도 최악의 사태를 각오하고 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았어. 그 대신, 위험해지면 곧바로 렌코를 버리고 도망칠 거야.”

 “너무해, 메리. 우리는 일심동체, 둘이서 하나인 비봉구락부인데.”

 “마음대로 일련탁생(一蓮托生)을 만들지 마.”

 “뭐, 어느 쪽이든 이 도서관에 키메라가 없다는 건 분명해. 자, 가자.”

 내 손을 꼭 잡은 그 부드러운 손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정말, 이 손은 어떻게 뿌리칠 도리가 없다. 그것 또한, 우리들 비봉구락부의 바뀌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다 쳐도, 무서울 정도로 넓은 도서관이네. 어디까지 계속되는 걸까.”

 “아무리 책벌레라고 해도, 도서관에서 헤매다 죽는 건 싫은데.”

 우리는 손을 잡은 채 늘어선 책장 사이를 방황했다. 충분히 길게 돌아다닌 것 같기도 했지만, 휴대폰의 시각 표시를 보면 아직 수십 분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평범하게 생각하면 수십 분이나 돌아다녔는데도 건물의 끝에서 끝조차도 닿지 않았다는 시점에서 이미 충분히 이상하긴 한데──.

 “메리, 어차피 권외니까 휴대폰 전원은 꺼 놓는 게 어때?”

 “……그것도 그렇네. 충전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으니까.”

 렌코의 충고에 따라 휴대폰의 전원을 끈다. 시계 기능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 뭐, 밤이 되면 친구 녀석이 시계를 대신할 수 있긴 한데 친구의 눈을 이용한 시차 뺄셈이 이 세계에서까지 통용될지는 미지수이다.

 “여기,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어딘가의 창고일지도 모르겠어.”

 “도매상 말이야? 책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니 초 거대 고서점일까?”

 “음── 누가 있나 좀 불러볼까? 저기요, 누구 없나요─”

 그렇게 소리치는 렌코. 도서관은 잠잠하다.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를 사람도 없으니 용서해 주도록 하자. 렌코의 목소리는 반향도 되지 않은 채 공간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진다. 하지만 역시나 대답은 없──.

 “──어머나?”

 아니, 있었다. 그 목소리는 어딘가에서 반향된 것인지, 우리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나도 렌코도 아닌 제 삼자인 여성의 목소리.

 우리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머리 위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뻗은 책장과 램프의 빛 너머로 어둠에 잠긴 천장이 보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목소리는 도대체──.

 “죄송합니다, 거기 누구 있나요?”

 렌코는 또 다시 상대를 불렀다.

 “……침입자? 어느새? 드문 경우도 다 있네요.”

 이번에는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나른한 듯한, 희미한 여자의 목소리. 우리는 뒤돌아봤다──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확실히 경계를 넘어 낯선 세계에, 과학의 세기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곳에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소녀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니, 공중에 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보라색의 긴 머리, 병적으로 하얀 피부. 졸린 듯 가늘게 뜬 눈──그것은 분명 인간 소녀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논리적인 것이 아닌 본능적인 부분에서 내 안의 뭔가가 위화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다르다고, 이 소녀는──인간과는 뭔가가 결정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그것은 그녀의 푹신하게 부푼 잠옷 같은 옷자락에서 뻗어 바닥을 딛고 있어야 할 다리가 바닥 30센티 위를 떠 있었기 때문에──뿐만은 아니었다. 비록 그녀가 바닥을 딛고 서 있었다 하더라도, 나는 같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만큼 눈 앞에 있는 소녀는 뭔가가 우리와는 달랐다. 뭔가가──.

 두둥실 하고, 잠옷 자락을 펄럭이며 그 소녀는 바닥에 내려섰다. 그렇게 보자 우리보다 상당히 몸집이 작아 보였다. 인간으로 치면 중학생 정도일까? 인간으로 친다면──그 형용사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스스로를 깨닫고 나는 아연실색한다.

 즉, 나의 본능은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눈앞의 소녀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인간? 도대체 어디로 들어온 거지. 문지기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이 도서관에는 훔쳐갈 가치가 있는 장서는 없어.”

 옆구리에 두꺼운 하드커버가 씌워진 책을 안은 채 그녀는 지긋이 무례한 시선을 우리에게 던진다. 인간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역시나 인간이 아닌가? 그럼, 대체 뭐라는 거지?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소용돌이치고 있는 나와 달리, 이런 때에 먼저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마이페이스인 나의 친구라는 것이 정해진 공식이나 마찬가지다.

 “이거, 이거. 무단침입을 해버리고 말아서 죄송합니다만, 사실은── 저희들, 어디로부터 들어왔는지도 몰라서요. 여기는 대체 어디죠?”

 렌코의 말에 의아해하는 소녀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다. 그 때, “파츄리 님~”하고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방금 머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검은 날개를 흔들면서 우리의 머리 위에서 춤추듯 내려왔다.

 빨간 머리의 소녀였다. 검은 재킷 안쪽에 흰 셔츠를 입고, 빨간 넥타이를 한──이라고 서술하면 뭔가 학생 같겠지만, 그 머리의 양 관자놀이에서는 날개가 돋아나 있다. 그것이 톡톡 움직이며 몸 또한 공중에 떠 있는 이상,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닐 것이다. ──악마, 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친다. 그렇다면 상당히 귀여운 악마지만──.

 그 박쥐 날개의 소녀는 파츄리라 불린 소녀의 옆에 내려와 작은 소리로 뭔가를 귀띔했다. 파츄리 씨는 그 말에 미간의 주름을 더욱 좁혔다.

 “내가 연 결계의 구멍이? 바깥에서 그것에 개입할 수 있다니──동족으로 보이진 않는데. 당신들, 마녀야?”

 “마녀──아니. 아뇨, 그냥 사람이에요. 조금 이상한 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친구는 언뜻 내 쪽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연실색하며 마주 째려보았다. 시차 뺄셈을 능력이라 우기는 렌코는 내 능력을 이상한 눈이라든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이 없다.

 “흐응──어딜 봐도 바깥 세계 인간이네.”

 “바깥 세계?”

 우리가 이렇게 반문하니, 소녀는 갑자기 콜록콜록하고 기침을 시작했다. 마치 천식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파츄리 님.”

 “……괜찮아. 어쨌든, 설명이 골칫거리네.”

 박쥐 날개의 소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등을 토닥이는 것을 멈추며, 파츄리 씨는 고개를 들었다.

 “사쿠야, 여기 있어?”

 “──네, 파츄리 님. 부르셨습니까?”

 하늘을 나는,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소녀를 둘이나 보았다. 무엇이 나와도 이제는 놀라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일순간 텅 비어있었던 파츄리 씨의 뒤에서 갑자기 또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나자 나는 헛숨을 들이켰다. 말 그대로 갑자기 거기에 나타난 것처럼, 그 여자──또는 소녀는 그곳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메이드 복장을 한 소녀였다. 프릴이 달린 순백의 앞치마와 헤드 드레스, 화려한 은발을 얼굴 양 쪽에 땋아 녹색 리본으로 장식했다. 무릎을 꿇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아, 그 모습은 마치 동상을 떠올리게 했다.

 ──그 모습에, 나는 갑자기 기시감을 느꼈다. 나는 이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아니, 본 적이 있는 것만이 아니다. 만나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래, 그건 확실히.

 “인간 침입자 두 명을 발견했어. 외래인인 것 같네. 우리 아가씨에게 손을 대려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우선은 즉흥적으로 손님 취급해도 좋을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으면 레미의 파이로 만들든지, 작은 아가씨의 놀이 상대라도 시켜주면 되지. 레미와 네 판단에 맡기도록 할게.”

 “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잘 부탁해. 그리고 코아, 구멍은 잘 막아 두도록.”

 “알겠습니다~”

 박쥐 날개의 소녀는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갔고, 파츄리 씨도 살짝 뜬 채 책장 너머로 사라져갔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와 사쿠야라고 하는 메이드 복장의 소녀뿐이었다. 사쿠야 씨는 일어서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아 아아, 하고 숨을 토했다. 그래, 틀림없다. 그녀는 이전에 꾸었던 꿈에서 본 붉은 저택에서 나에게 쿠키를 주었던 그 메이드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내 얼굴을 보고도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산뜻하게 허리를 꺾어 인사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파츄리 님의 말씀에 의해 여러분을 우선은 손님으로 환대하겠습니다. 저는 이 홍마관의 메이드장, 이자요이 사쿠야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우사미 렌코입니다.”

 “네, 뭐, 마에리베리 한입니다.”

 공손한 인사에 우리는 당황해서 이름을 밝히며 답례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꿈속에서 만났을 때에도 서로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가. 이자요이 사쿠야── 정말 멜로드라마에서 나올 것만 같은 이름이네, 라고 나는 탄식했다. 애초에 이 메이드복 자체가 드라마에나 나올 듯한 것이며,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면 지금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 자체가 허구라고밖에 생각되지 않기는 한데──.

 “홍마관, 이라. 누군가의 저택인가요?”

 “그렇습니다. 저의 주인이신 레밀리아 스칼렛 아가씨의 저택, 홍마관입니다. 이곳은 지하, 파츄리님의 대도서관입니다. ──우선은 거실로 안내해드리도록 하죠. 우사미 님, 한 님. 이쪽으로.”

 휙 하고 우아하게 발걸음을 돌린 그녀는 소리 없이 걷기 시작했다. 나는 렌코와 얼굴을 마주보았다. 어쨌든, 지금은 그녀와 함께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허둥지둥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4-

 그렇게나 광대하게 느껴진 도서관에서 사쿠야 씨의 뒤를 따르자 순식간에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우에 홀린 듯한 기분을 맛보며 우리는 어두운 계단을 올라 관 복도에 발을 내디뎠다. 순간,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나는 아, 하고 납득했다.

 빨강. 아니, 진홍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벽도, 바닥도, 깔린 카펫도 선명한 진홍색으로 통일되어있다. 램프의 빛이 비추는 그 진홍은 깜짝 놀랄 정도로 눈부시게 보이는가 하면 마른 피처럼 어두운 어둠에 가라앉아 간다. 이 빨간색은 역시──그 꿈에서 본 그 저택이다.

 그때는 밖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문 앞에서 이야기한 것뿐이니까, 인테리어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보니 속까지 붉은 저택이었던 것 같다. 주인이라는 사람의 취미인 걸까?

 “붉은 관이라고 하면, 밀른의 고전 명작 미스터리인데.” (*1)

 “『붉은 저택의 비밀』이지?”

 그런 것을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우리는 사쿠야 씨의 뒤를 따라 발걸음 소리를 흡수하는 카펫을 걷는다. 도서관도 넓었지만, 복도도 충분히 길게 보인다. 어디까지 계속되는 걸까──하고 사쿠야 씨의 어깨 너머로 앞을 내다보려다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저기, 렌코. 이 복도─창문이 없지 않아?”

 “……그러고 보니, 없네. 아직 지하인 걸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복도 우측에 문이 줄이어있다. 왼쪽 측면에도 문이 줄지어 있다면 창문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왼쪽은 끝없이 벽만이 계속되고 있다. 군데군데 그것을 속여 보려는 속셈처럼 그림이 담긴 액자가 걸려있기는 했지만──복도 전체가 어두워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외부의 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는 이미 지상입니다. 창문이 없는 것은 아가씨께서 햇빛을 싫어하시기 때문이죠.”

 그렇게 대답하는 사쿠야 씨. 햇빛이 싫다고? 그건 마치──.

 “흡혈귀 같네요.”

 렌코가 농담 조로 말하자, 사쿠야 씨는 갑자기 멈춰서서 그 자리에서 휙 하고 우리를 돌아봤다.

 그 얼굴에 떠오른 미소에, 나는 왠지 모를 끔찍한 섬뜩함을 느끼고는 무심코 친구의 팔을 잡았다. 친구는 무덤덤하게 내 손을 맞잡아왔다. 

 “이쪽으로 오시죠.”

 사쿠야 씨는 렌코의 농담에 답하지 않고, 복도 문 하나를 열고는 우리를 들였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방을 들여다본다. 상당히 넓은 거실이다. 여전히 빨간색으로 통일되어 있긴 했지만. 가죽 소파, 마호가니로 보이는 테이블, 머리 위에는 샹들리에. 호화로운 저택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테리어가 그대로 재현되어있었다.

 “아가씨는 지금 휴식 시간이니까 잠시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홍차라도 내 드릴까요?”

 푹신한 소파에 앉은 우리에게 사쿠야 씨는 그렇게 물었다. 우리는 마주보며 “그럼,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알겠습니다, 그럼.”

 하고 사쿠야 씨가 우아하게 인사한 바로 그 다음 순간, 사쿠야 씨의 손에는 주전자와 컵이 실린 쟁반이 나타났다. 마치 마술처럼, 말 그대로 순식간에 허공에서 나타난 것처럼.

 “어, 에엑?”

 무엇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쿠야 씨는 컵에 홍차를 따르며 “그럼, 무언가 용무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는── 아니, 그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 모습이 방 안에서 사라졌다. 문을 여닫는 소리조차도 내지 않고.

 멀뚱히 사쿠야 씨가 사라졌을 문을 응시하고 있던 우리는 조심조심 컵을 들었다. 설마 독이 들어있거나 하지는 않겠지만──결사의 각오로 입을 대자, 풍성한 향기가 퍼지며 비강을 간질인다.

 “아, 맛있다.”

 “어머, 진짜네.”

 따뜻한 차를 입안에 대는 것만으로, 이제야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는 숨을 내쉰다. 그리고 다시 맞은편에 앉은 렌코를 향했다.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편안함은 있지만,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는 것투성이고 상황을 머리가 따라갈 수 없다. 아무튼 상황을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렌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나한테 질문해도 곤란하다구. 여기에 온 건 메리, 네 능력 탓 아니야?”

 “아니야, 그건──”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새긴다. 스미레코 씨의 방에서 발견된 노트, 거기서 떨어졌던 벌레가 들어간 호박석(琥珀石). 그 순간 결계가 크게 흔들렸고──.

 헉, 하고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그 벌레가 들어간 호박석은 어디에도 없다. 렌코도 빈손이다. 어딜 봐도 그 노트를 가진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건, 아마 원래부터 그 방에 있던 결계의 균열이 어떤 이유로 열린 탓인 것 같아.”

 “즉, 우리 작은할머니가 원인이라는 건가?”

 “글쎄, 뭐── 그래도, 아예 관련이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내 말에 렌코는 팔짱을 끼고 한 차례 신음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뺨을 짧게 꼬집었다. 너무 고전적인 꿈 확인법이잖아, 그건.

 “나는 지금, 실체로서 이 세계에 와 있는 거로군. 지금까지 메리에 의해 보았던 꿈들과는 다르게.”

 “렌코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지금까지의 그것들도 현실이었어.”

 “그 부분의 상대성 정신학적 논의는 지금은 보류해 두도록 하자. 아무튼 이것이 현실이며, 토리후네 유적 때처럼 귀환 수단이 없다면 우선 그 부분을 어떻게든 해야 해.”

 “어떻게든 이라, 어떻게 한다는 거야?”

 “그야 결계의 균열을 찾는 거지. 메리, 네 일이야.”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이 건물 안에 적어도 그런 큰 흔들림은 보이지 않아. 저택 전체에 뭔가 모를 위화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 도서관의 그 괴상한 넓이와 복도의 이상한 길이──그것들은 정말로 현실이었던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먼저 현실성을 의심해봐야 할 일들이 얼마든지 있기는 하지만.

 “위화감이라. 그 이전에 이상한 것투성이야, 이 관은.”

 친구는 머리 뒤로 깍지를 낀 채 천장의 샹들리에를 올려다본다.

 “작은할머니의 방에서 왜 우리는 이 건물의 지하 도서관으로 날아온 것이다. 파츄리라고 했던 공중에 떠 있던 그 아이와 박쥐 날개를 붙이고 있던 비행 소녀는 누구인가, 애초에 인간인가. 그 사쿠야 씨라는 사람은 묘한 마술을 사용하고──”

 “마술, 일까?”

 “요술 아니면 초능력이겠지. 텔레포테이션?”

 “……스미레코 씨는 초능력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뭣, 우리 작은할머니가 관계자? 아니, 아니. 설마.”

 렌코는 신음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아무튼간에 우선 아가씨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우선이야. 누구인지 모르겠지만──뭐, 그 아가씨라는 사람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겠지……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그 사람──파츄리 씨라는 사람이 뭔가 이상한 얘기를 했었지. 확실히──”

 ──레미의 파이로 만들어버린다던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친구는 미간에 주름을 보이며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레미, 라고 말했었지. 아가씨의 이름. 레미라는 건 애칭인가? ……파이로 만들다니, 뭘? 파이라는 건 과자 파이 얘기겠지?”

 “……우리를 파이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거, 아닌가?”

 “…….”

 고기 요리라든가 하는 게 아니라, 과자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 오히려 상상하는 것조차도 무섭도록 만든다. 도대체 이 관의 「아가씨」인지 뭔지는 어떤 존재기에?

 “무서운 소리 하지 마, 메리.”

 “지금 상황 자체가 냉정하게 생각할수록 더욱 무서우니까 어쩔 수 없잖아. 정체 모를 관, 인간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인간이 아닌 듯한 거주자들, 초능력자 메이드. 가련한 새끼양은 주문이 많은 음식점처럼 맛있는 음식이 되어 식탁에 내놓아져도 이상하지 않지.”

 “우윽,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적어도 아가씨가 얘기가 통할 사람이기를 기도해야겠어.”

 과장되게 몸을 떨어 보이는 렌코가 어디까지 진심으로 무서워하고 있는지,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은 그다지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여기서 헤매면서 아직 명확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느껴지는 이 ‘알 수 없다’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히 서서히 목을 옥죄어오는 것이다.

 “──있지, 메리.”

 “응?”

 “지금 생각난 건데……. 전에 붉은 저택에서 쿠키를 받는 꿈을 꾼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어머, 기억 나?”

 틀림없이 렌코는 잊어버렸을 거라 생각해서 말하지 않았는데.

 “혹시…….”

 “맞아, 쿠키를 준 건 사쿠야 씨였어. 틀림없이.”

 “──그래서 사쿠야 씨가 나타났을 때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거구나. 납득했어.”

 차를 들이마시며 렌코는 “하지만”하고 운을 띄웠다.

 “사쿠야 씨는 메리를 보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가……. 그렇겠지, 문 앞에서 쿠키를 받은 것뿐이니까.”

 “어쨌든, 그 꿈 이야기. 기억나는 대로 들려줄 수 있어? 지금 당장 뭔가 단서가 있다고 한다면, 메리의 꿈밖에 없어.”

 “기억나는 대로라고 해도 말이지──”

 나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오래전에 꾸었던 꿈의 기억 속을 헤쳐 보았다. 꿈이라는 것은 보통 눈을 뜬 순간에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지만, 그 무렵에 연달아서 꾸고, 거기서 뭔가를 가져온 그 꿈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꿈과 현실의 구분이 꽤 애매해져 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간에…… 그래, 처음에는 확실히, 어두컴컴한 숲 속이었다.




-5-

 ──어두운 숲으로 떨어졌을 때, 흰 안개가 내 시야의 전 방향을 감싸고 있었다.

 찰싹 달라붙은 듯 떨어지지 않는 안개는 시야는커녕 감각마저도 차단하여, 마치 내 세상을 하얗게 도배한 듯 보였다. 안개 속을 수영하듯 나는 다리를 움직였다.

 그 하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른 것은 새빨간 그림자.

 흐린 촛점 속에서 흐릿하던 그 빨강은 이윽고 큰 저택이라는 윤곽을 드러냈다.

 불현듯 바람이 불고 안개가 줄어든다. 나는 어느새 큰 호수의 언저리에 멈추어 있었다. 그 건너편의 붉은 저택은 고요함을 짊어진 채 서 있었다.

 산의 녹색을 등지고,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자욱한 하얀 안개에 뒤덮인 새빨간 저택. 아이의 그림 같은 그 원색의 불균형이 뭔가 역으로 풍경에 잘 어우러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조품인듯한 그 광경이야말로 꿈에 적합한 것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 저택에는 무엇이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저택으로 발길을 옮겼다.

 좀 들러 봐도 괜찮을까? 갑자기 방문하는 건 실례가 되는 게 아닐까? 애초에 눈앞의 저택이 나를 받아들여주기는 할까? 아니, 꿈 속인데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그런 자문자답을 반복하면서 문 앞까지 도착했다. 닫힌 철문은 침입자를 거부하는 듯 차갑고 단단하며 무거웠다. 잡고 흔들어 봤지만, 내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역시 즉흥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저택은 아닌 것 같네──.

 그 때 문 너머로 메이드복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현관홀에서 화려한 꽃이 만발한 화단 사이의 돌계단을 건너 이쪽으로 온다. 메이드인가?

 은색 머리를 땋은 키가 큰 여자. 소쇄라는 말이 떠오르는 우아한 그 행동거지는 이 커다란 저택에 적합한 것으로도 보였다.

 실례합니다, 나는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내 모습을 바라보더니 그 영리해보이는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그녀는 나에게 왠지 모를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문 철책 너머로, 이 저택의 주인을 뵙고 싶은데요. 라고 나는 부탁했다.

 죄송합니다만, 메이드는 고개를 젓고 나서, 아가씨는 휴식 시간이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창천 하늘의 햇빛이 눈부시다. 이런 낮에 자고 있다니. 아가씨인지 뭔지 하는 그 분은 상당히 높으신 분인 것 같다.

 오늘은 혼자이신가요? 라고 메이드가 묻는다. 조금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네, 그래요. 하고 끄덕인다. 내가 끄덕이자 가정부는 품을 뒤져 작은 주머니를 꺼내어 철창 사이로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시끄러운 것은 싫으니까, 자고 있는 동안에는 손님을 들이지 않도록. 이라고 아가씨께서 명하셨답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돌아가 주실 수 있을까요? 아가씨를 뵙는 것이 용건이라면 저녁에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

 미소 지으며 내 손에 주머니를 떨어뜨리고 메이드는 다시 미소 짓는다.

 손에서 잘그락 소리를 내는 주머니의 내용물은 아무래도 쿠키인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내가 조금 유감스러운 마음으로 수긍하자, 가정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께서도, 여동생님께서도, 여러분들이라면 환영하실 겁니다──.




-6-

 “그 쿠키는 결국 어떻게 되었더라.”

 “둘이서 먹었잖아. 이계의 음식을 입에 대면 돌아갈 수 없게 된다든가 나를 위협한 주제에 자기가 먼저 먹었잖아. 렌코도 참.”

 “아. 맞다, 맞아. 그랬었지. 맛있었어, 그거. 그건 그녀가 만든 거였구나.”

 납득하듯이 수긍한다. “설마 그걸 먹은 탓에 여기로 온건 아니겠지?”라며 렌코는 턱을 괸 채 중얼거린다.

 “아무리 그래도 시간이 너무 지났는데. 이제서?”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여기가 메리의 꿈이라면, 쿠키를 내가 먹은 것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하지만 그렇다 해서 작은할머니의 방에서 여기로 날아온 건 설명이 되지 않는데. 으음──”

 고개를 흔들며 렌코는 생각에 잠긴다. 나는 숨을 토하고 다시 한 번 방안을 둘러보았다.

 ──눈에 띈 것은 구석에 자리 잡은 책장이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그 책장에 다가갔다. 아까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의 미궁을 헤매었는데도 불구하고 책의 기척을 느끼자 그만 궁금해서 보러 가버린 것을 보니 역시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본성인 것 같다.

 책장에 줄지어 꽂힌 것은 역시 그 자체가 인테리어의 일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두꺼운 가죽 양서였다. 표지에 제목도 보이지 않는다. 사전이나 뭔가의 전집인가──하고 생각하며 책장을 둘러보자, 그 구석에 다른 책들과 어울리지 않는 책이 한 권 섞여있었다. 녹색의 오래된 하드커버였다. 그래서 눈에 띄어 그 책을 손에 들었다.

 “뭔가 재밌는 거라도 있어?”

 친구가 내 어깨 너머로 책을 들여다보고는 “어머”하고 소리를 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원서잖아. 『TEN LITTLE NIGGERS』.”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말이지. 게다가 1939년 영국 초판이야.”

 널리 알려진 세계 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 중에서도 대표작인 소설이다. 원레는 ‘AND THEN THERE WERE NONE’으로 되어있는 경구가 많은데, 그것은 미국에서 출판될 때 NIGGER가 차별적인 단어라는 이유에서 바뀐 타이틀로, 처음 영국에서 간행되었을 때의 원제는 이 ‘TEN LITTLE NIGGER’이다.

 “옛날 생각나네. 중학생 때 읽었었는데.”

 “메리는 역시 원서로 읽었겠지?”

 “아니, 아오키 히사에가 번역한 판으로 읽었어. 렌코도 역시 아오키 번역서로 읽었지?”

 “자랑은 아니지만, 오역 문제가 궁금해서 원서와 시미즈 슌지 번역서 등 세 가지를 읽고 비교했어.”

 “거 참 호기심이 남다르시네.”

 나는 기막힘을 담아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일본에서 번역되었을 때 시미즈 슌지 판의 오역이 지적되고 21세기에 개역되었다는 얘기는 나도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나는 아오키 역서로 한 번 읽어보고 끝이었다.

 “있지, 렌코. 만약에 이 건물의 거주자가 여덟 명이라면 우리까지 합쳐서 열 명이지?”

 “그리고 아무도 없게 된다고? 그렇게 무서운 얘기 하지 마. 애초에 이렇게 커다란 저택에 사는 게 고작 여덟 명이라니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생각해.”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까지 만난 것은 단 세 명뿐이다. 그 중 둘은 인간인지 여부조차도 의심스럽지만.

 “애초에 하늘을 날거나 순간이동하는 거주자가 있는 저택에서 본격 미스터리도 뭣도 없어.”

 “그렇게 말하면 니시자와 야스히코(*2) 씨에게 혼날 거야.”

 “공교롭게도, 우리는 초문위(*3)가 아니라 비봉구락부야, 메리.”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나타난 것은 사쿠야 씨였다. 우리가 책을 두고 뒤돌아보자, 사쿠야 씨는 문을 열고 나오라는 듯 손을 까닥거렸다.

 “아가씨께서 눈을 뜨셨습니다. 두 분과 만나시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무심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1) 『곰돌이 푸』로 유명한 앨런 밀른(Alan Alexander Milne)이 딱 하나 쓴 장편 추리소설이다.

(*2) 니시자와 야스히코(西澤保彦).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가. SF 신본격으로 유명하며 『맥주별장의 모험』,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등을 썼다.

(*3)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초문위(초능력자 문제 비밀대책 위원회) 시리즈를 말한다.

















개인적으로 집에 추리 소설을 꽤 많이 사서 쌓아두고 있는 지라 아는 이름들이나 작품들이 나오니까 주석을 달 맛이 나네요.


맥주별장의 모험이나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은 실제로 소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역자 본인이 본 번역 연재는 비정기적이며


원래 번역자(제가 속해있는 번역팀 호라이의 팀장)가 군대를 가서 번토라레를 해도 되는지 마는지 물어볼 수도 없을 뿐더러


2년 전에 홍마관편 1화를 마지막으로 번역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번역이 끊긴 것으로 보고...


아무튼 그래서 했습니다.


3화가 언제 올라올지는 저도 모릅니다. 개강도 했고...


늦어도 2주 1화씩을 목표로 해보겠습니다.







viewimage.php?id=39b2c52eeac7&no=29bcc427bd8077a16fb3dab004c86b6f24b7e12241bb1d95de86fcc33eb53d9b7a2d652ef8cf7929e85e0ca12c9c64637c1d880f278cf33f







추천 비추천

16

고정닉 11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예인 안됐으면 어쩔 뻔, 누가 봐도 천상 연예인은? 운영자 24/06/17 - -
AD 뉴진스, 배틀그라운드로 데뷔 준비 완료! 운영자 24/06/21 - -
AD 현물 경품 획득 기회! 아키에이지 지역 점령전 업데이트 운영자 24/06/20 - -
공지 동방프로젝트 갤러리 "동프갤 슈팅표" [47] 돌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4 11271 51
공지 동방프로젝트 입문자와 팬들을 위한 정보모음 [46] Chlori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7.27 101969 128
공지 동프갤 구작권장 프로젝트 - 구작슈팅표 및 팁 모음 [532] Chlori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12.03 101438 136
공지 동방심비록 공략 [57] BOM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12.18 85606 30
공지 동방화영총 총정리 [43] shm(182.212) 15.06.11 112184 52
공지 동방심기루 공략 [64] 케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10.12 122095 33
공지 동방 프로젝트 갤러리 이용 안내 [157368/7] 운영자 09.06.23 602816 523
8453405 낙성대 마이너 갤러리입니다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18 0
8453403 이 갤러리는 손미천이 점령한다 [1] SonBite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41 0
8453402 ❗❗상하이앨리스환악단 갤러리로❗❗ 갓경은진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21 0
8453401 여긴 이제 낙갤이 점령한다 [1] 유카링은소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40 0
8453400 대 광 삼 ㅋㅋㅋㅋ [1]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34 0
8453399 배드애플 뮤지카 진 5:19 에콰도르대학교전통석사교육학과차석입학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26 0
8453397 애미씨팔 그 새끼가 뒤지기는? 역시나 호들갑이었네 ㅇㅇ(211.197) 06.20 142 14
8453396 낙성대 마이너 갤러리입니다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48 0
8453390 2차창작 가이드라인 봐도 이해가 잘 안가서 그러는데 [1] ㅇㅇ(106.101) 06.20 63 0
8453389 6/20 퍼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15 0
8453388 모두 잠수준비!!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0 80 0
8453384 상하이앨리스환악단 뒷담갤입니다. [1] 백옥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9 64 0
8453382 이 갤은 투범 도배가 안올라와서 좋다!!! [1] ㅇㅇ(106.101) 06.19 122 0
8453381 동갤에서 가장 사랑받는 갤러 _(:3」∠)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9 37 0
8453380 손가락아파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9 23 0
8453378 아 개씨발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9 42 0
8453373 6/19 퍼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9 22 0
8453370 빵이랑 무므 쟤넨 도대체 뭐하는애들임 ㅇㅇ(220.93) 06.18 84 7
8453369 동갤에서 가장 사랑받는 갤러 _(:3」∠)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8 60 5
8453368 낙성대 마이너 갤러리입니다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8 173 0
8453361 6/18 퍼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8 30 0
8453359 에링 벌써 600만회 찍었농 [6]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7 133 0
8453357 우린 폭풍속에 들어섰어 Ptolemaio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7 79 0
8453353 아니 꺼져 좀 [2]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7 163 0
8453352 점심에 쿠우쿠우 가야징 [2]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7 67 0
8453351 솔직히 첨엔 불쌍했었지 [6] ㅇㅇ(106.101) 06.17 230 6
8453350 동갤구경개꿀잼이네 ㅇㅇ(106.101) 06.17 96 1
8453349 6/17 퍼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7 59 0
8453348 루나챠 성별이랑 나이대가 궁금해요 ㅇㅇ(118.235) 06.17 119 2
8453347 솔직히 누가 더 믿기냐고 하면 동갤러(106.101) 06.17 172 10
8453346 구경중인 상붕이면 개추 ㅋㅋ 동갤러(211.235) 06.17 128 12
8453345 불쌍한 놈은 아님 [47] 동갤러(182.227) 06.17 607 12
8453343 그래서 쟤 죽건말건 뭔상관임? [1] ㅇㅇ(118.235) 06.16 212 12
8453341 솔직히 난 아직도 이해가 안감 [2] 동갤러(125.183) 06.16 166 3
8453340 루나챠는 그림을 잘그리냐고? [3] ㅇㅇ(106.101) 06.16 204 9
8453338 동방 3D 액션 게임 뭐 있었지 [3] ㅇㅇ(61.80) 06.16 108 0
8453337 그만 하시"게" [4] 퍼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6 131 0
8453336 꺼져 [1]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6 334 0
8453335 루나차 죽었다는 59 17아 썰좀 [6] 동갤러(182.227) 06.16 190 0
8453334 플랑을 이렇게 변신시키고 싶다 [1] ㅇㅇ(115.138) 06.16 268 0
8453333 역시 집이 최고야 カナ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6 46 0
8453331 미마님 어디게세요 [1] =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6 52 0
8453330 미마님 어디계세요 [1] 무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6 53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