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대지에 다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카이반 쉬라이크는 지휘차량 ‘그림자의 지혜’에서 전투단 오메가의 기동 개시를 지시했다. 리만 러스 전차들을 중심으로 히드라 자주대공포, 와이번 자주박격포등이 섞인 엄청난 기갑차량의 대열이 일제히 전진하자 대지가 진동했다. 달빛이 비치는 사막을 배경삼아 전차들이 질주했다. 가끔씩 전투단 알파의 전장에서 조명탄이 치솟았다. 지휘차량에 탑승한 인간 참모들은 긴장감에 표정이 굳은 채, 예상되는 적의 움직임 및 그에 따른 대응책을 구상하며 화력 계획 및 항공지원을 조율하느라 부산했다. 제국군의 기갑차량 대열은 밤 동안 전진을 계속했다. 장시간에 걸친 야간 주행이 이어지자, 조종수들이 피로와 긴장으로 대형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카이반 쉬라이크는 작전 2일차의 일출이 두 시간 남은 시점에서 정지하여 약간의 휴식을 취하도록 지시했다. 전열을 정비한 기갑부대는 다시 전진하여 모래 폭풍을 무릅쓰고 타우군의 후방을 향해 전속력으로 전진했다. 산발적인 지뢰로 인해 잠시 전진이 지연되기도 하였으나, 여명 무렵에는 적진을 우회한 전 부대가 각자의 목표를 향해 일제히 돌진했다.

423연대의 최우익 대대의 소대장 미켈 중위는 중대 브리핑에서 전달받은 연대장 파스크의 지시를 되새겼다.

- 무조건 돌진하라. 적 배후를 차단해 포위하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 목표다. 제군들은 궤도와 엔진이 멀쩡한 이상 계속 나아가라. 기동 불가능하다면 화력으로 다른 전우들을 지원하라. 이번 작전의 핵심은 바로 속도다!

그렇게 돌진하던 도중 거대한 먼지구름이 지평선 저쪽에서 일렁였다. 적의 기동 예비일게 뻔했다. 쌍안경을 꺼내 그쪽을 바라보니,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에만도 희미하게 꿈틀대는 형체가 너무나도 많았다.

“하나…둘…열…스물…젠장! 더럽게 많군!”

그의 접촉 보고는 지휘 계통을 통해 파스크와 쉬라이크에게도 전달되었다.

- 연대장님! 연대 우익이 적 대규모 기갑부대와 접촉했습니다!

“드디어 나타났는가!”

파스크는 자신의 지휘 전차 ‘강철의 손’에서 흥분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이야말로 일대 결전의 순간이었다. 외계인들의 저항 거점을 분쇄하는 것 따위가 아닌, 작전의 성패가 달린 전투였다. 그는 즉시 지시했다.

“연대 좌익 대대는 우익을 증원하고, 선두대대와 후위대대는 즉시 적 기갑부대의 양 측방으로 전개하라! 73연대는 적의 배후로 우회 기동한다!”

오메가 전투단의 후방에서는 레이븐 가드 1중대의 기갑차량 대열과 더불어 무수한 자주포, 지대지 미사일 차량과 각종 지원차량들이 전진하고 있었다. 전투단 오메가의 접적 보고를 받은 ‘그림자의 지혜’ 내부에 흥분이 감돌았다.

“챕터 마스터, 전투단 오메가의 우측방에 적 기갑부대가 출현했습니다.”

“확인했다.”

카이반 쉬라이크는 ‘그림자의 지혜’ 내부의 전술 디스플레이를 주시했다. 외계인들의 대규모 기갑부대가 오메가 전투단의 우측으로 파고들려고 했으나, 그들을 맞이한 423전차연대는 교묘히 물러나며 적 기갑부대의 충격력을 받아들이는 한편, 73전차연대는 배후를 차단해 포위섬멸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각하, 전투단 오메가의 대응은 훌륭하지만, 외계인들의 전차는 아군에 비해 속도가 빠릅니다. 오히려 각개격파의 빌미가 되지 않겠습니까?”

인간 참모의 질문에 쉬라이크는 간단히 답했다.

“화력지원반장, 그대의 차례다.”

“이미 시행중입니다.”

사막의 지평선까지 가득 찬 것 같은 바실리스크 자주포와 메두사 공성포, 만티코어 지대지 미사일 차량에서 무수한 화염과 불꽃이 피어났다. 얼마 후, 전진하던 타우 기갑부대의 양 측면과 배후에 지옥과도 같은 폭풍과 파편의 장벽이 펼쳐졌다. 운 없는 해머헤드 건쉽 한 대가 지붕에 포병의 직격탄을 맞아 상부 장갑과 더불어 내부의 승무원들까지 넝마처럼 찢겨나갔다. 화염과 금속의 장벽에 옆과 뒤가 막힌 타우 전차병들에게는 인간들의 기갑부대와 정면 대결하는 방법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대열 내부에도 우박처럼 떨어지는 포탄의 충격과 진동에 제대로 된 전열 유지는 불가능했고, 원거리 고화력이라는 그들의 이점은 빛을 잃었다.

제국의 전차들은 압도적인 포병지원을 등에 업고 타우 기갑부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명중률과 유효 사거리, 위력 면에서 크게 불리한 그들에게는 죽기살기로 뛰어드는 인파이팅만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맹렬하게 돌진하는 423연대 전차들의 기세가 워낙 엄청났기에, 맹포격을 뒤집어쓰던 타우들은 제대로 된 유효타를 몇 번 내기도 전에 접근을 허용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선두의 리만 러스 전차들이 타우 전차의 1선을 돌파하고 대형 안으로 난입했다. 양군의 전차가 뒤엉키며 처절한 근접전이 벌어졌다. 저마다 포탑을 이리저리 돌리며 마구 주포를 발사하는 난전이 벌어지자, 타우 측의 정밀한 사격통제장비와 우수한 주포 위력이라는 장점은 의미가 없어졌다.

전차와 전차가 충돌하고, 방금 격파한 적 전차의 탄약 유폭에 휘말리는 사태가 속출했다.

423연대장 파스크는 자신의 직할 전차 중대와 함께 타우 기갑부대의 대형 안으로 난입했다.

“포수, 1시 방향 적 스키머 전차!”

“표적 확인!”

“발사!”

육중한 포성과 함께 포탑을 돌려 아군 전차를 노리던 해머헤드 건쉽의 조종수 관측창에 철갑탄이 정확히 명중했다. 포탄에 꿰뚫린 타우 조종수의 머리가 사라지고 시뻘건 파편이 내부의 모든 것을 난도질 한 후, 바로 불길이 치솟았다. 반중력 장치의 기능을 상실한 해머헤드 건쉽의 잔해가 사막에 널브러졌다.

바로 그 때, 또 다른 해머헤드 건쉽이 포탑을 이쪽으로 돌리는가 싶더니 섬뜩한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파스크의 바로 옆에 있던 리만 러스 전차 한 대가 그것에 얻어맞자, 포탑 구조물 전체가 뜯겨나가며 뒤로 날아갔다. 밖으로 드러난 포탑 바스켓은 전사한 승무원의 유해로 차 있었고, 탄약수의 손이 죽어서도 포탄을 움키고 있었다. 바로 다음 순간 그 포탄이 유폭하며 피와 육편이 사막의 모래 위로 흩뿌려졌다. 조종수와 측면 사수의 유해는 새어나오는 프로메슘에 젖은 채 차체 안에서 불타올랐다. 

사선에서 벗어나려는 해머헤드 역시 몇 미터 후진하다가 집중 사격에 맞아 시뻘건 불길을 내뿜었다. 화재와 함께 거대한 레일건이 달린 포탑이 뒤로 기울다가 지면에 나뒹굴었지만 차체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계속 후진했다. 다른 포탄이 차체를 꿰뚫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추었고, 부서진 파편과 불타는 연료를 흘리며 멎은 차체도 완전히 화염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