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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아침 기찻길

마리엔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1.30 19:12:35
조회 1886 추천 36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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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밝게 떴는지 여관 안으로 햇살이 따뜻하게 비쳤다. 츠카사는 완전히 곯아떨어진 듯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런데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타키를 찾았다. 먼저 일어나 씻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불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자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타키가 있어야 할 이불은 누운 흔적도 없이 어제 상태 그대로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어딜 간 거야.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타키의 메시지를 발견하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종이 위에는 머리카락이 한 올 떨어져 있었다. 여기서 잠들어 버린 걸까.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먼저 도쿄로 돌아가 주세요. 전 나중에 따로 돌아가겠습니다.]


어딘지도 가르쳐 주지 않고 먼저 떠나다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 * * * * * * * * * * * * * *


"그럼 바로 도쿄로 돌아가는 건가요."


"그래야겠지. 관광이라면 어제 많이 했고 여기서 딱히 할 일도 없잖아."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안경을 찾는데 오쿠데라 선배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선배는 타키가 남긴 메시지를 보여주며 타키가 어딘가로 먼저 떠났음을 알렸다. 밤새 렌즈에 먼지가 쌓였는지 앞이 흐릿하게 보였다.


어제는 누군가를 찾아간다는 타키를 따라서 기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었다. 하지만 타키가 찾는 사람은 3년 전 이토모리의 혜성 참사 때 죽은 사람이었다. 도서관에서의 일은, 타키에게도 그랬겠지만 한 번의 잠 정도로 지워지지 않았다. 사망자 명단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찾았을 때 충격받은 듯이 눈동자를 굴리던 타키가 마음에 걸렸다.


선배는 어젯밤 내가 씻고 있던 사이 타키와 약간의 대화를 더 했다고 설명했다. 타키가 습관적으로 손목에 차고 다니던 끈이라면 나도 알고 있다. 뭐냐고 물어보면 단순히 '행운의 징표' 정도로만 대답했었는데. 그 끈 이야기가 타키에게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는 것이 선배의 가설이었다. 더 이상 알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타키가 어딘가로 가 버린 시점에서 우리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우리는 가까운 역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도쿄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서 가만히 대합실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선배는 가방에서 트럼프 카드 한 세트를 꺼냈다. 오늘도 도둑잡기인가.


"어제 했던 말 있잖아. 내가 타키를 좋아했었다는 거."


선배가 클로버 6과 스페이드 6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마다 타키를 보고 생각하곤 했어. 저 아이가 나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요즘의 타키는 성격이 살짝 바뀐 모습도 보여주어서 더 호감이 갔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일을 같이 하는 사이였는데 최근엔 같이 저녁을 먹거나 하기도 했어. 그래서 데이트 약속을 했을 때도 내심 기뻤고. 여기까진 아는 얘기지?"


잠자코 듣고 있다가 네 하고 간단히 대답한 다음 선배가 내민 패에서 카드 한 장을 뽑았다. 하트 잭이었다. 나는 갖고 있던 클로버 잭과 함께 하트 잭을 내려놓고 패를 내밀었다. 선배는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불행하게도 데이트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 사실 언제부터인지 짐작도 가지 않아. 타키의 마음 속에서 내가 사라져버린 게. 여러 가지를 따져 보며 생각을 해도 결국 마지막엔 다른 누군가로 인해 타키와 나 사이의 거리가 더 멀어져 버렸다고밖에 결론이 나지 않았지."


일부러 맨 오른쪽에 두었던 조커를 뽑아 간 선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입술를 살짝 깨물어서 웃음을 참았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서 카드 게임을 하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퍽 기묘하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런. 좋은 걸 뽑아 버렸네. 어쨌든 가끔 타키는 다른 사람 같았잖아. 평소에는 진상을 부리는 손님과 싸워서 다치거나 하는 아이였는데 어느 날은 갑자기 내 스커트를 수선해 주기도 했지. 난 그런 여성스러운 면도 있는 타키가 마음에 들었거든."


그 말을 듣고 전구가 켜지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알 것 같아요. 타키가 가끔 여성스러워지는 날이라는 거. 학교에서 여자 말투를 쓰거나, 카페에 가자고 했는데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기뻐하지를 않나. 평소에도 매일같이 다니면서 말이에요."


좀 귀엽게 느껴졌다는 말은 뺐다. 선배는 손을 등 뒤로 넘겨 패를 섞었다.


"타키가 찾고 있는 미야미즈 미츠하라는 아이, 그 아이가 어떻게든 타키에게 영향을 줬었던 것 같아. 문제는..."


"...그 아이가 3년 전에 사라진 이토모리에 살았고, 지금은 죽었다는 거겠죠."


카드를 한 장 뽑았다. 다이아몬드 에이스였다. 원래 에이스를 갖고 있지 않아서 내려놓지는 못했다.


"타키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는 내가 방금 뽑았던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다시 가져갔다. 에이, 뭐야. 하며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슬슬 기차가 올 시간이네. 정리할까. 나머지는 기차 안에서 하지, 뭐."


선배는 갖고 있던 패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가방을 들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갖고 있는 카드를 대충 정리해서 뒤를 따랐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옷깃이 스쳤다.


* * * * * * * * * * * * * * *


"더 하고 싶었는데."


결국 마지막까지 나에게 남아 버린 조커 카드를 들고 옆 자리의 잠든 츠카사를 바라보았다. 어제 굉장히 바쁘게 움직인 데다 오늘도 일찍 일어났으니, 피곤할 법도 하겠지. 나도 나른함이 느껴져서 머리를 열차 좌석 등받이에 붙이고 편안하게 기댔다. 창 밖의 시골 풍경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눈동자에 힘을 지그시 풀었다.


옆에 잠들어 있는 츠카사는 나에게 어쩌면 마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고 설레발일 뿐이지만. 어쨌든 여자의 감각은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여관 휴게실에서 내가 타키를 좋아했었다고 처음 밝힐 때 츠카사가 지었던 표정을 생각하면 그 감각은 더욱 더 확실해지는 것 같았다.


그 육교에서 타키와 헤어진 이후 나는 데이트 중에 희미하게 사라져 가던 타키의 모습을 간신히 끝까지 지워낼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할 지 몰라도, 나에게도 아직은 어린애 같은 면이 있구나라고 느꼈다. 츠카사는 물론 좋은 아이였고 나와도 죽이 잘 맞았지만 나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이 모든 망상은 '츠카사가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으니 그게 아니라면야, 아무래도 상관없겠네.


"츠카사."


조용한 열차 안에 내 목소리가 은은히 퍼졌다. 츠카사의 작은 숨소리가 귀에 전해져 왔다.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대충 짐작해보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느껴졌다. 열차가 곧 어떤 역에 잠깐 정차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덕분에 나의 작은 목소리는 나에게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묻혀서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점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한 걸."


3년 전에 죽은 미야미즈 미츠하라는 아이와 무슨 일이 있었고, 타키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뀌었을까. 타키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아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뇌리에 스쳤다.


열차가 서서히 멈추면서 사람들이 물 밀듯이 흘러들어왔다. 나는 복잡한 기분으로 조커 카드를 카드 뭉치 사이에 끼워넣었다.


* * * * * * * * * * * * * * *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녹초가 되어 쓰러질 것 같았다. 우선 끼니부터 해결해야겠다 싶어 가까운 식당을 찾았다.


"타키는 지금 어디 있을까."


혼잣말인지 건네는 말인지 모를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는 어제의 쾌활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무겁고 어른스러운 분위기로 바뀌어 창 밖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별로 보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 시선을 따라서 나도 밖을 바라보았다. 보는 사람을 위협할 정도로 빽빽한 도쿄의 빌딩 숲이 위협적으로 솟아 있었다.


오쿠데라 선배를 처음 만난 것은 타키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가게가 어딘지 궁금해서 방과 후에 타키를 쫓아갔던 날이었다. 어쩌면 나는  만나면 눈인사 정도만 나누는 사이였던 그 때부터 선배에게 마음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타키를 사이에 두고 만날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친구의 친구 같은 사이였지만 그 점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감정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건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타키가 선배를 좋아한다는 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 녀석 성격에 그걸 숨기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아마 그 사실 때문에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 같다. 친구 때문에 알게 된 여자에게 반하다니, 삼류 드라마에서나 나올 뻔한 소재가 아닌가. 이후 선배와 그럭저럭 가깝게 지내면서도 타키가 잘 되기를 빌었을 뿐, 나의 감정을 인정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때의 나에게는, 보통 나 정도 나이대의 고등학생들이 그런지는 몰라도, 사랑보다는 우정이 먼저였다.


주문했던 메뉴가 식탁 위에 차려지고 내 신체 장기들이 앞다투어 열량을 요구했다. 음식을 먹는 중에도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식사를 했다.


소화도 할 겸 벤치를 찾아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선배는 가방에서 피아니시모 페틸 한 갑을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담배 끊을 생각이 없나 보네요."


"당분간은 이게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타키 때문이겠지. 담뱃불이 내 속을 타들어가게 하는 것 같았다.


"이것도 일종의 실연이려나."


누가 해야 할지 모를 우울한 그 말이 나에게 전해졌다.


지난 밤 오쿠데라 선배와 휴게실에서 했던 대화는 나의 감정을 확실히 정리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매개체였다. 그 동안 타키가 계속 선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타키의 마음 속에 또다른 사람이 자리잡았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말하자면 '서로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우정이라는 큰 틀을 부숴버릴 수 있는 망치가 사라진 셈이었다. 또 그 대화는 내가 선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나에게 각인시켰다.


타키가 그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을 때 선배와 함께 다니며 많이 가까워질 수 있어서 기뻤다. 선배가 타키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지기까지 했다. 선배가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마음을 다잡고 애써 외면했던 감정을 받아들였다. 타키와의 관계도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무엇보다 지금이 아니면 힘들게 정리했던 것들이 다시 산산히 무너질 것 같았다. 나로서는 지금이 가장 적절한 때였다. 그렇지만,


"선배, 저기..."


"가만히 앉아 있으니 지루하네. 카드 게임이나 할까?"


역시 선배에게는 아직은,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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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다에서 도쿄로 다시 돌아오는 츠카사랑 오쿠데라의 애프터 스토리인데, 커플을 바로 잇기보다는 두 사람이 느꼈을 감정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풀어내려고 시도해 봤는데 제대로 전해졌을지 모르겠다.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네.


내가 쓴 글들 찾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앞으로는 밑에 목록도 적어 놓을 생각. 클릭하면 이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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