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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잊힌 기억 (上)

마리엔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2.19 00:28:16
조회 1835 추천 55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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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그 때의 기억들을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이름은... 타치바나 타키."


"내 이름은... 미야미즈 미츠하."


계단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이 내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알아볼 수 있었고 이름도 확실히 기억했다. 미야미즈 미츠하. 또 잊어버릴까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우리는 매일 저녁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어도 기억을 잃어버린 이상 바로 교제 같은 것을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현재를 기준으로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지금의 미야미즈 미츠하는 27세의 회사원으로 나보다 세 살이 많고, 나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명확히 알 수는 없는 누군가를 찾는 버릇이 있고 나를 보자마자 내가 그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미츠하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교제를 시작했다. 미츠하는 나를 예전부터 알던 것처럼 대했고 나도 그랬다. 마치 같은 마을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성장한 소꿉친구처럼 우리는 빠르게 깊은 사이로 발전했다. 주말마다 데이트를 하고, 잠자리를 가지고, 서로의 부모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기도 하면서 내가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뒤에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문제가 있다면, 만나기만 하면 되찾을 수 있을 줄 알았던 기억이 잊힌 채로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게는 아직도 '미츠하와 공유하는 무언가 소중한 기억이 있었다'는 막연한 사실만이 남아 있었고 그래서 나는 미츠하에게 언제나 떳떳하지 못했다. 미츠하가 웃으면서 나에게 과거의 이야기들을 꺼내도 나는 늘 웃음으로 얼버무리거나 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길게 끌고 나가는 것을 피했다.


그 점이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유일한 걸림돌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살아가도 상관없겠지, 같은 멍청한 생각을 가졌지만 결혼 약속을 하고 반지를 나누어 낀 다음에는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던 밤이었다. 그 날따라 밝았던 달빛에 등을 떠밀리듯이 미츠하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미츠하, 꼭 말해야할 게 있어."


"으음... 뭔데?"


막상 미츠하 앞에 서니 생각한 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츠하는 장난을 치듯이 유머러스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내가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곧바로 목소리가 조금 어두워졌다.


"말할 게 있으면 말해도 괜찮아..."


"...난 지금까지 널 속여 왔어. 사실 나는 미츠하와 있었던 과거에 대해 하나도 기억하지 못해. 만나기만 하면 떠오를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그러지 않아서... 지금까지는 그걸 숨겨왔지만,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 미안해..."


그 말을 한 직후에 미츠하가 지은 상처받은 표정을 나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우리는 그 날 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미츠하는 다음 날 아침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 * * * * * * * * * * * *


"미츠하가 연락?"


"네. 혹시 나토리 씨에게 뭔가 말이라도 했나 싶어서..."


"전혀 없었어. 미안하지만 나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 정말 사라졌다면 실종 신고라도 해보는 게 우선 아닐까?"


역시 그래야겠지요. 나는 한숨 섞인 말로 대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미츠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 테시가와라 씨와 나토리 씨부터 직장 동료, 고등학교 동창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 봤지만 대부분 아무것도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유일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미츠하가 상사에게 부탁해 휴가를 지급받았다는 것 정도, 그 외에는 전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상처받은 미츠하의 얼굴은 계속해서 나타나 나를 괴롭혔고 나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후회감으로 마음을 가득 메웠다.


전화를 걸어봐도 받지 않았고 집에 찾아가도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간 이웃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츠하의 집에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종 신고는 하지 않고 반쯤 붕괴된 정신을 억지로 붙잡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 사실을 밝혔더라면 좋았을 텐데, 어째서 나는 곧 곪아 터지게 될 상처를 가만히 두기만 했던 것일까. 과거의 나를 찾아가 협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츠하라면 이해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 울적해져서 그런 상상은 금방 단념할 수 있었다.


다음 한 주는 내게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직장에서 근무를 하다가도 죄책감이 밀려들어와 집중력을 잃곤 했고 저녁 약속 같은 것도 전부 거절한 뒤 혼자 괴로워했다. 보다 못한 신타가 전화를 걸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나를 추궁했지만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당분간 혼자 있고 싶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향한 위로의 손길은 나에게는 너무 과분했다.


말하자면 나의 총알 같았던 그 말이 미츠하의 심장을 뻥 뚫고 지나갔던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말해야 했던 것이고 더 늦기 전에 말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행동을 했었지만 어쨌든 잘못은 전적으로 처음부터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얼버무렸던 나에게 있다. 매번 그런 생각으로 나 자신을 책망했다. 그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 흉터처럼 나를 끝없이 옭아맸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에 착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츠카사와 신타가 전철역 근처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못 본 체하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둘은 무언가를 작정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 이름을 불렀다.


"타키!"


"츠카사... 신타..."


몇 번 그래왔듯이 대충 핑계를 대고 다시 집으로 향하려고 했는데 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이 저절로 굳었다. 츠카사의 목소리도 평소답지 않게 어둡고 진지했다.


"타키... 너 요즘 이상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속에 삭여두기만 하면 일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우리에게라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지. 그렇지 않아?"


나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라도 가서 얘기해보자. 같이 와줬으면 좋겠는데."


셋이서 카페로 가며 두 친구의 낯을 보기가 부끄러워서 나란히 걷지 않고 몇 발자국 뒤에서 혼자 걸었다. 가로등이 만들어내는 길고 슬픈 그림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너는 결국 나를 떠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이런 거짓말쟁이와 함께하고 싶지는 않았을 거라고.


모카칩 프라푸치노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츠카사는 캐러멜 프라푸치노를 가지고 돌아왔다. 아마도 잘못 들었거나 주문을 할 때 실수가 있었겠지. 그런 사소한 일도 서운하게 느껴질 정도로 감정이 예민해져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츠카사도, 신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두 친구가 나를 위해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츠카사의 말대로 이렇게 나 혼자 괴로워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1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생각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다려줘서 고맙고, 이제 말할게. 나는 사실 미츠하와 내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전혀 기억나는 게 없어. 만나기만 하면 그 기억이 돌아올 것 같았지만 그러지 않아서... 그래서 미츠하가 옛날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고."


슬픈 마음에 목소리가 떨려서 잠깐 말을 멈춰야 했다. 친구들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킬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런 모습에 자신감을 얻었다.


"...한동안 미츠하에게 밝히지 않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빨리 말했어야 하지만, 어쨌든 일 주일 전에 내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고, 미츠하는... 상처받은 표정을 짓다가 다음 날 사라졌어. 여기까지야."


츠카사는 고개를 푹 숙였고 신타는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이 녀석들이라도 왜 그랬냐고, 왜 그 따위로 생각해서 미츠하를 상처받게 했냐고 나를 비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정도로 나는 죄책감과 후회에 시달리고 있었다.


미츠하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 특정하기가 힘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이유에 대해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펼치든 간에 마지막은 '미츠하는 나와 이별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로 귀결되었고 그렇게 결론을 내릴 때마다 나는 말하기도 힘들 정도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미츠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혀 놓고도 그런 식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나 자신이 치사하고 역겹게 느껴졌다.


정적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신타 쪽이었다.


"그래서 너는, 미야미즈 씨가 사라진 게 너의 그 말 때문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심 내가 얼마나 속 좁고 옹졸한 인간인지를 다시 느끼게 되어서 다시금 스스로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뭐라고 대답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었다.


"아니.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어."


"그럼 그게 뭔데? 말을 해야 우리가 도와줄 수 있어."


그 '다른 이유'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애당초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감정적인 도피일 뿐 진심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신타는 답답하다는 듯이 입에서 공기를 천천히 빼내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자연스럽게 신타를 따라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 때, 카페 앞 거리에 미츠하가 보였다.


"타키, 스스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우리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힘든 걸 혼자 극복하기는 어려워. 우리에게라도 털어놓아서..."


이미 츠카사의 말은 몇 번 왜곡된 음성처럼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평소에 입고 다니던 옷도 아니었고 머리끈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놀라움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갔다.


"타키?"


"미안해, 지금 꼭 나가봐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남기고는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신타가 내 뒤를 따라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지만 츠카사가 제지하는 것 같았다. 저 녀석 뭔가 찾았나 봐, 라고 말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카페 정문으로 내달렸다.


* * * * * * * * * * * * *


미츠하는 표정 없이 서 있었다. 급하게 가느라 숨이 차서 나는 그런 미츠하 앞에서 숨을 헐떡였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나서는 마음에도 없었던 온갖 변명들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미츠하, 미리 말해두지 않아서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는 거짓말쟁이고 이런 나를 떠나려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그렇지만..."


"그만. 제발... 그만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던지는 그 한 마디에 말이 끊겼다. 고개를 똑바로 들어 미츠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타키 군이 싫어서 도망친 게 아니야... 오해하지 말아줘."


"그럼 어째서...?"


미츠하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도... 타키 군과 있었던 일들을 기억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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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yourname&no=436848


쓰고 싶었던 주제로 간단히 적기로 함. 원래 장편으로 만들까 했는데 2부작으로 합의 봤다. 쓰게 된 계기는 별 거 없고 나도 평범하게 타키와 미츠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음. 그렇게 특별한 소재는 아님.


그냥 잠깐 시간 내서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계산기에 넣어 보니까 4천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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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팬픽 정리글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yourname&no=41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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