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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순수문학] 13번째 왕자 1-1

한-스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4.23 00:50:49
조회 910 추천 28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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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출항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문 밖의 시중이 재촉하는 말을 건네었다. 저 멀리서는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여럿 들려온다.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곧 나가겠다. 말을 준비하고 대기하도록 하여라.”


  시중을 보낸 뒤 빠진 짐은 없는지 확인을 하다 오래된 일기장이 눈에 띄었다. 모서리가 찢어지고 누렇게 변색이 된걸 보니 10년은 더 되지 않았을까. 문득 호기심에 사로잡힌 나는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뭉텅이로 훌렁훌렁 넘기다가 한 페이지에서 손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이미 색이 바라고 향기는 모두 날아갔지만 여전히 도도한 아름다움을 내뿜는 크로커스 한 송이가 있었다.
















 10월 15일 조금 쌀쌀했던 날씨


  오늘은 이웃나라에 연회 파티가 있었던 날이다. ‘아렌델’이라고 하는 이 나라는 국민들의 왕실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 왕실에서도 보답을 하기 위해 이런 연회파티를 자주 열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엔 어째서인지 파티가 열리지 않았다. 이번 파티도 정치, 외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실과 귀족들만이 참석하는 파티였다. 이웃나라들의 귀빈들은 조금이라도 건질게 있나 싶어 아렌델로 발을 돌렸다. 그러나 나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파티는 늘 지루하고 재미없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처음은 언제나처럼 같았다. 형님들은 모두 각자의 매력을 뽐내며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나는 늘 그래왔듯 과자와 초콜릿이나 잔뜩 집어 삼킬 뿐이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다른사람과 대화하는 사람들. 같이 춤을 추는 사람들. 주변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사람들 모두 나와는 별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연회장에 있어 봐야 별 특징도 없는데다가 왕실 서열 13위 왕자인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럴 때는 혼자 조용히 밤바람을 쐬며 별구경을 하는 것이 제일이다.


 조용히 걷다보니 왕실정원에 도착했다. 복도에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시중과 하녀들이 몇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드디어 혼자가 된 해방감과 약간의 쓸쓸함을 지닌 채 분수대 위에 걸터앉았다. 밤하늘을 보니 만월이 세상을 비추고 있었고 그 옆에는 시리우스성이 도도한 청백색 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혼자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나의 일상이었다. 나도 저기 저 달과 별들처럼 빛이 날수 있을까? 하늘 높이 떠있는 저들과 나의 거리감 만큼이나 나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 싫지만은 않아.


  혼자 상념에 빠져있을 무렵 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장갑을 낀 백금발 소녀가 놀란 눈치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넌 누구니? 왜 여기 있어?”


  소녀가 여전히 머뭇거리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두 가지 질문 중 어떤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지 잠시 고민을 했다. 생각을 마친 후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서던 제도의 왕자 한스야. 파티를 하다 잠시 여기로 나왔어.”


  나의 감정적인 이유는 쏙 뺏지만 틀린 말은 아닐테지. 별로 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구나. 응. 알겠어. 그럼 재밌게 즐기다 가.”


  내가 무어라 더 말하기도 전에 소녀는 자기 소개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눈앞에서 사라져 갔다. 순간 차가운 냉기가 온몸 구석구석을 찔렀다.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아쉬운 기분을 뒤로 하고 다시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복도를 지나쳐 연회장으로 다시 들어가자 문 앞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 이쪽을 향했다.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곧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갔다.

한결같이 똑같은 반응. 별 생각 없이 한 행동들이었겠지만, 마치 나에게는 무언의 의사표현을 하는 것 같았다.


‘너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




사람들은 여전히 파티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것보다는 조금 전의 소녀와 만난 뒤에 왠지 모를 오한이 들었기에 몸을 데울만한 수단이 필요했다.


몇 번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돌려보니 티팟이 시종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얼른 다가가서 밀크티를 요구하자 이 머리가 살짝 벗겨진 푸근한 인상의 시종은 격식 바르고 우아하게 차를 따라냈다. 

우유까지 깔끔하게 넣은 뒤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찻잔을 건네었다.

아무래도 풋내기는 아닌가 보군.




찻잔을 손에 들고 연회장에서 도망치듯이 테라스로 나왔다. 멋들어지게 받은 밀크티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으니 봄기운에 아지랑이 피어나듯 내 몸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밤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찻잔 속에 비친 달그림자를 보자 문득 조금 전의 그 소녀가 떠올랐다.


‘뭔가 분위기가 있는 신기한 사람이었어. 교양도 있어 보이고.......’


머리색이 백금발이었다는 것도 신비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한 몫 한것 같다.


‘그렇지만 조금 외로워 보이는 눈이었는데.......’


그 눈은 내가 거울을 바라봤을 때 거울이 비춰주던 눈이었다.

어딘가 정확한 표적 없이 허공만을 주시하고 있는듯한, 소중한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듯한 눈.





찻잔을 바라보자 어느덧 내용물이 사라지고 없었다. 밤바람이 싸늘하게 불어오는 것이 머리까지 느껴졌다.

상념을 휘휘 젓고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어머? 여기 선객이 있었네?”


화려한 드레스를 걸친 여자가 이쪽을 내려다보았다. 보기 드문 금속으로 온 몸을 치장한 것으로 보아 다른 나라의 공주이거나 높은 귀족의 영애이리라.


여기서는 모국을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자리를 피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렇게 다짐하고 있는 찰나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오 저런, 사과드립니다.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지 않았을까 염려되는군요. 저희는 다른 곳으로 가보겠......?”


사내가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나를 쏘아본다. 그 고드름 같이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은 언제나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는 작은 한숨소리와 함께, 나를 나무라는듯한 한마디를 툭 건넸다.


“한스, 파티는 내버려두고 왜 이런 곳에 있는 것이냐?”


넷째 형의 말한마디에 숨이 턱 막혔다. 옆에 있던 숙녀께선 처음에는 살짝 놀라는 눈치더니, 곧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와 같은 눈으로 우리 두 사람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냥.......”


입에서 쇳소리가 새어나왔다. 이게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그냥 바람 좀 쐬러 나왔다’라는 것이란 말이야.

하지만 넷째 형 앞에만 서면 어김없이 목이 잠겼다.


“후...... 이제 너도 이럴 나이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텐데.”


그 짧은 한마디가 심장을 후벼 파면서 들어온다. 무어라 항변하고 싶은 생각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곧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졌다.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낼 겨를도 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두 사람을 지나쳐 연회장으로 가는 문을 열어 젖혔다.


등 뒤에서는 레이디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돌연히 시야가 흐려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도망치듯 앞도 보지 않고 연회장 가운데를 내달렸다. 이곳저곳의 사람들과 부딪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냥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조금 전 왕실정원이 있던 출구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가 까맣게 변하였다.


“쿵!”


굉음과 함께 온몸에 충격이 가해졌다. 머리가 핑핑도는 느낌과 함께 손에서 바닥을 짚었다는 감촉이 전해진다. 잠시 충격을 받아들이고 살며시 눈을 떠보았다.


그곳에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갈색머리 소녀가 머리에 손을 갖다 댄 채로 연신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CUT-----------------------------------------------------------------


1. 토요일에 맛뵈기로 올렸던 것에 원래 예정분이었던 추가 뒷 내용까지 올렸습니다.


2. 부족했던 부분을 다듬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아직도 아쉬운 표현들이 많네요. 능력부족 ㅠㅠ


3. 가독성을 위해 엔터키를 많이 집어넣어봤는데 어떨지........


4. 분량은 이정도가 적당하나요? 분량조절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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