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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팬픽] 공소관의 일기 - 제25화 ~ Let It Go ~

YS하늘나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5.06 01:12:50
조회 1162 추천 31 댓글 7
														

[지난화 보기]

공소관의 일기 - 프롤로그

공소관의 일기 - 제1화

공소관의 일기 - 제1화 ~리부트~

공소관의 일기 - 제2화

공소관의 일기 - 제3화

공소관의 일기 - 제4화

공소관의 일기 - 제5화

공소관의 일기 - 제6화

공소관의 일기 - 제7화

공소관의 일기 - 제8화

공소관의 일기 SS - 제8.5화「꿈」

공소관의 일기 - 제9화

공소관의 일기 - 제10화

공소관의 일기 - 제11화

공소관의 일기 - 제12화

공소관의 일기 - 제13화

공소관의 일기 - 제14화

공소관의 일기 - 제15화

공소관의 일기 - 제16화

공소관의 일기 - 제17화

공소관의 일기 - 제18화

공소관의 일기 SS - 제18.5화「두번째 막」

공소관의 일기 - 제19화

공소관의 일기 - 제20화 (두번째 선택지)

공소관의 일기 - 제21화

공소관의 일기 - 제22화

공소관의 일기 - 제23화

공소관의 일기 - 제23.5화 (BAD END #03)

공소관의 일기 - 제24화


[공소관의 일기 외 다른 창작물/번역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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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이 헤이즐넛 스프 요리법에 대한 일장연설을 끝낸 것은 30분은 넘는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 사이 잉리드는 스프 세 그릇을 비우고 몸을 편안히 침대에 눕혔다. 창밖으로 꽁꽁 얼어붙은 바다가 보였다. 어제 이 시간까지만 해도 파도소리로 잉리드를 깨우던 바다가 지금은 얼음과 그 위에 쌓인 새하얀 눈 아래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수평선 저 너머에서는 막 동이 트려는 듯 어슴푸레한 빛이 비쳤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잉리드는 문득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대신회의가 있었던 시간이 몇 시였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느끼기로는 한참을 자고 일어난 것 같았지만 아직까지 해가 뜨지 않은 걸로 봐서 시간이 별로 지나지 않았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아렌델의 여름 해는 일찍 뜨고 늦게 진다. 하지를 지나면서 해는 조금씩 짧아지지만 7월 말은 아직 해가 길게 떠있을 때다. 요맘때면 오후 9시 반 가까이가 되어서야 해가 지고, 새벽 4시 반 정도에 해가 뜰테니 지금은 그 새벽 4시 반 언저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엘사가 사라진 것이 자정 무렵이니 그렇다면 엘사가 사라지고, 잉리드가 다친 후 쓰러졌다가 깨어나 대신회의에 무리해서 출석했다가 또 다시 쓰러졌다가 깨어나기까지 4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잉리드는 라푼젤에게 물었다.


“제가 얼마나 잠들어있었나요?”

“글쎄요, 아까 회의실에서 업혀 오셨을 때가 2시쯤 됐었으니까 한 두 시간 정도?”

“그러면 제가 아까 회의실로 갔을 때가 새벽 1시였단 건가요?”

“깨어나셨을 때가 1시였어요. 회의실로 가셨을 때가 1시 20분? 30분? 그 쯤이었고, 30분 만에 집사장님한테 업혀서 돌아오시더라구요.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아이고...”


그제야 잉리드는 자신이 말도 안 되는 무리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랫배에 난 상처는 피를 흘린 쇼크만으로 쓰러질 정도로 꽤 깊게 찔린 두꺼운 상처인데 그걸 간단히 지혈만 해두고 불과 한 시간 만에 걸어서 이동을 한데다가,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했으니 다시 쓰러지지 않는 게 이상할 노릇이었다.


“그러고보니 대신 회의 결과는 어떻게 됐죠? 혹시 들으신 내용이 있으신...”

“쉿.”


대신회의에 생각이 미친 잉리드가 거기에 대하여 물으려하자, 라푼젤이 검지손가락을 세워 입 앞에 갖다 댔다.


“의사 선생님이 아침까지는 푹 쉬시게 하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회의 결과 같이 잉리드 씨 신경 쓰이게 할 만한 어떤 것도 말하지 말라고요. 그러기로 약속했어요.”


예상치 못한 라푼젤의 묵비권 행사에 잉리드는 다시 캐물으려다가 포기했다. 의사가 라푼젤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라푼젤은 절대 가르쳐 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다 하셨으면 그대로 좀 더 주무세요. 아플 땐 잘 먹고 푹 쉬는 게 최고에요.”

“네에...”


살짝 부루퉁해져서 잉리드는 몸을 좀 더 눕히고 이불을 다시 뒤집어썼다. 묻고 싶은 것도 많고, 당장 해야 할 일도 산더미일 것이 분명했다. 특히 사라진 엘사와 안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두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당장 몸을 이끌고 찾으러 나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럴 수 없는 몸상태임을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잉리드는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회복해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것이 잉리드가 생각한 새로운 행동방침이었다.


조금씩 밝아지는 바깥의 빛을 맞으며 잉리드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엘사 여왕 실종 후 첫 번째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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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덮인 어둠을 빠져 나오자 눈의 나라였다. 밤의 끝자락이 하얗게 밝아왔다. 얼마나 달려왔을까. 엘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산 위를 덮인 눈이 하얗게 빛났고, 발자국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자 가파른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정신없이 도망쳤던지, 등 뒤로 펼쳐진 산과 능선을 보고서야 이제야 새삼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느껴졌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짙푸른 녹음으로 여름의 정취를 뽐내던 나무들은 눈으로 새하얗게 덮여있었다. 꼭 이 고립된 왕국의 여왕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지나간 아침에 아렌델의 여왕으로서의 대관식을 치르긴 했지만, 나라를 버리고 도망친 자신을 여왕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문득 엘사는 걱정이 들었다. 능력을 들켰을 때는 너무 당황해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전제군주국에서 여왕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뻔한 일이었다. 모자라고 부족한 여왕이라고 해도, 여왕이 사라졌으니 분명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으리라. 뒤늦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가슴 한켠에 소용돌이가 치는 듯 마음이 아파왔고, 그런 엘사의 마음을 대변하듯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쳤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엘사는 양손으로 몸을 감쌌다. 장갑이 벗겨진 왼손에서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그래, 이 능력. 이 저주받은 능력. 동생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신을 13년 동안 왕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든 능력. 그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언니로서, 여왕으로서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견뎌내지 못했다. 엘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하늘은 아시리라. 하지만 결국 능력을 들키고 도망친 순간 그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밀려드는 설움과 안타까움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마음을 열어서는 안 된다. 들켜서는 안 된다. 항상 그랬듯,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지난 13년간 이 말을 얼마나 속으로 되뇌었던가. 몇 번이나 안나에게 달려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달려가서 안나가 바라는 대로 함께 눈사람을 만들며 같이 놀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나뿐인 소중한 동생을 애써 외면하고 못 본 체 해야 하는 아픔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는 표현으로도 다 나타낼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래도 그만큼 소중한 동생을 다시 다치게 할 수는 없었기에 엘사는 그 아픔을 13년 동안이나 참아왔다. 능력을 감추면서, 능력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렇지만 이제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오른손을 바라보자 아직까지 손을 덮고 있는 장갑이 보였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제 모두가 아는데. 들켜버렸는데. 엘사가 그 장갑을 벗어 공중으로 집어던져버리자, 장갑은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가 사라졌다. 그것을 바라보던 엘사는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각이 엘사의 몸을 감쌌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것 같지만, 굉장히 그립게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심장에서 시작된 그 감각은 지금까지 엘사의 어깨에 얹혀있던 책임감과 중압감을 모두 놓아버리라는 듯, 손끝으로 점차 퍼져나갔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이대로 사라져주는 것이 왕국을 위해서 더 좋을지도 몰랐다. 분수가 얼어붙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과 그들이 지른 비명이 떠올랐다. 여왕이 괴물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것은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엘사를 괴물로 지목하고 거부한 이상, 그들의 뜻에 따라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리라. 3년 전 있었던 갑작스러운 선왕 내외의 붕어에도 능숙히 대처하고 위기를 수습해준 대신들도 있으니, 다시 한 번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고, 그리운 감각은 온몸으로 퍼져갔다.


그 감각이 엘사의 손끝에 닿았을 때, 엘사는 왼손을 활짝 펼쳐 보았다. 새하얀 눈송이들이 엘사의 손 위로 흩날렸다. 지금까지 엘사의 능력이 만들어냈던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나 차가운 서릿발 같은 것이 아니었다. 동화책에서나 봤던 아름다운 눈꽃이 엘사의 손끝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눈송이를 본 것이 대체 얼마만이던가. 그 눈송이를 보고 엘사는 깨달았다. 해답은 허무할 정도로 너무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동안 자신을 억눌렀던 것들을 모두 놓아버리자, 자신을 괴롭혀왔던 능력마저도 이제는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능력이 말을 듣기 시작한 것에 즐거워진 엘사는 이번엔 오른손을 펼쳐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눈꽃이 엘사의 손위에서 만들어져 흩날렸다. 눈꽃을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능력 때문에 안나가 다치기 전까지만 해도 엘사는 능력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다. 어쩐지 이 느낌이 그립게 느껴졌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면 안나가 좋아하는 눈사람도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엘사는 머릿속으로 13년 전에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눈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 때 지어주었던 올라프라는 이름도, 생겼던 모습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안나와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눈사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3단으로 된 몸에 팔과 눈썹, 머리카락 역할을 해줄 나뭇가지 몇 개. 눈과 단추 역할을 해줄 돌멩이 몇 개. 직접 눈덩이를 굴려서 만들려면 시간이 좀 걸렸겠지만 지금의 엘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손을 흔든 것만으로도 엘사가 원하던 모습이 만들어졌다. 반쯤 실험삼아서 달아본 짤막한 다리도 제대로 눈사람을 지탱하고 있었다. 만족스러웠고, 또 행복했다. 점차 새로운 마음가짐이 엘사의 마음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래. 가게 두리라. 다 잊으리라. 이젠 참지 않으리라.

가게 두리라. 다 잊으리라. 이제는 돌아서서 문을 닫으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자 능력은 더더욱 엘사가 원하는 대로 따라왔다. 엘사가 위를 향해 손을 펼치면 눈꽃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밤하늘을 수놓았고, 엘사가 손을 털어버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땅으로 툭 떨어졌다. 손을 모아 옆으로 밀면 눈송이들은 땅 위를 달리다가 경사면을 타고 날아올라 불규칙하고도 부드러운 그림을 그렸다. 눈꽃이 춤추는 것을 보던 엘사는 자신의 목을 죄고 있던 망토까지 풀어서 날려버렸다. 장갑보다 더 강한 바람을 맞은 망토는 지금까지 엘사가 걸어온 반대 방향 저 멀리로 높이 날아갔다. 몸을 무겁게 덮고있던 망토까지 날려버리자 엘사는 만족감, 행복감을 넘어 해방감에 젖어들었다. 이제 누가 뭐라고 하든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 기세를 몰아 폭풍이 몰아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추위 따위는 신경 쓴 적도 없으니까.


더 앞으로 걸어나가자 절벽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냥 마주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반대편 절벽이 이쪽의 절벽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도저히 뛰어서 넘어갈 수는 없는 거리,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돌아서 가는 편이 타당한 거리였다. 그렇지만 엘사에게는 오히려 그 먼 거리가 반가웠다. 엘사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는 그렇게 커보이던 산과 능선, 자신이 도망쳐온 길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아주 작게 보였다. 거리를 두고 보니 이렇게 작아보인다는 것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두려움에 가득차서 도망쳤던 그 길은 이제 엘사에게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았고, 한 때 엘사를 지배했던 두려움은 더 이상 엘사를 괴롭힐 수 없었다. 그 과거를 떨쳐내려는 듯 다시 앞을 향해 홱 돌아선 엘사는 절벽을 향해 달려갔다. 과거의 두려움을 떨쳐냈으니 이제는 이 능력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찾아볼 때였다. 한계를 시험하고 또 그것을 뛰어넘어서, 나만의 왕국을, 나만의 낙원을 만들리라. 엘사가 양손을 앞으로 뻗자, 눈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절벽 위로 놓였다. 한발 한발 다가선 엘사는 조심스레 그 계단에 발을 딛디뎠다. 그러자 계단은 맑은 빛을 내는 얼음으로 바뀌었다. 아직 반대편까지 완전히 놓인 계단은 아니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 엘사를 속박할 옳고 그름의 기준도, 규칙도 없었다. 자유였다.


생각대로였다. 엘사가 계단을 밟고 앞으로 달려나가면 계단은 계속해서 앞으로 이어졌다. 이대로라면 하늘 끝까지도 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순간 모든 것을 보내버리고 과거의 짐을 잊은 엘사는 하늘, 바람과 함께였다. 아픔을 모두 보내버리고 또 잊었으니, 이제는 옛날처럼 아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지도 않을 것이었다. 이 계단을 뛰어오르는 엘사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꼭 갖고 싶었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 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이 엘사의 얼굴에 가득했다. 엘사가 이렇게 행복하게 웃은 것은 꼭 13년만이었다.


어느새 반대편 절벽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엘사는 폴짝 뛰어서 계단을 완성하고 맞은편 땅 위에 발을 디뎠다. 엘사만의 성을 지을 터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렸다가 지우곤 했던 성의 설계에 딱 맞는 터였다. 엘사가 발을 딛고 머물 자리가 바로 이 자리에 있었다. 힘차게 오른발을 구르자 거대한 눈결정 모양을 한 얼음이 엘사의 발에서부터 퍼져나갔다. 얼음이 충분히 넓게 퍼진 것을 확인한 엘사는 이 곳에 새로이 폭풍을 몰아치게 했다.


설계는 이미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고, 이미 나라를 뒤덮은 추위를 가져온 엘사에게 성 하나를 올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엘사의 손짓 한 번에 얼음기둥들이 만들어져 솟아올랐다. 맑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기둥과 그 기둥을 감싸며 흩날리는 눈발은 한데 뒤엉켜 장관을 만들어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성의 기틀이 잡히는 이 장면을 건축가들이 보았더라면 감탄을 금치 못했으리라.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히자 엘사는 다시 한 번 바닥에 눈꽃 모양의 무늬를 새기고는, 다시 한 번 발을 굴러 각 기둥으로 능력을 쏘아 보냈다. 공기 중을 맴돌던 엘사의 능력이 땅으로 모이며 새하얗게 빛났다. 새하얀 냉기들은 기둥을 타고 오르며 엘사가 수년간 그림으로만 그려왔던 무늬들을 벽 위에 그려냈다. 엘사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기둥에서 얼음판이 뻗어져나와 ‘쿵’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가렸다. 그리고 그 지붕에서 새로 뻗어 나온 얼음들은 팔방으로 퍼지며 화려한 샹들리에가 되었다. 성의 건축은 마치 엘사의 영혼이 얼어붙은 반복된 문양들을 따라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순식간에 완벽하고도 말끔하게 이루어졌다.


자신의 뜻에 따라 완성되어가는 성의 모습을 보며, 엘사의 마음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칼바람처럼 확고해졌다. 다 잊으리라고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미련이, 샹들리에의 마지막 장식이 완성되는 순간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여왕이라는 작위, 그리고 이 능력. 둘 모두 엘사가 원해서 가지게 된 것이 아니었고, 공존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여왕이라는 작위와 그에 따르는 책임 때문에 능력을 감춰야만 했다. 하지만 능력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원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지금, 이 고독한 왕국의 여왕이 된 지금, 더는 ‘아렌델 왕국의 여왕’이라는 짐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엘사는 머리에 얹혀있던 티아라를 벗어들었다. 왕관에 박힌 파란 보석이 빛났다. 아주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엘사는 이내 마음을 굳혔다. 단 한순간도 엘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적이 없었던 이 자리에 얽매일 이유는 없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과거는 과거일 뿐. 그렇게 엘사는 스스로를 다잡고, 티아라를 성 한구석으로 던져버리고, 곱게 땋아올린 머리를 풀어헤쳤다. 마지막 남은 족쇄마저 던져버리고 나니 실로 통쾌했다.


이번엔 옷을 새로 입을 차례였다. 지금 입은 드레스도 결국 아렌델의 여왕을 위하여 만들어진 정복이니, 엘사에게는 무의미했다. 눈과 얼음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왕국의 여왕에게는 그에 걸맞은 옷이 필요했다.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도 하지 않고 엘사는 오른손으로 몸을 슥 훑었다. 그러자 눈꽃이 엘사의 몸을 감싸며 드레스가 아래쪽 끝부터 연하늘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엘사를 완전히 감싸고 원래의 드레스를 완전히 대체한 새로운 연하늘빛 드레스는 엘사의 마음에 쏙 들었다. 신발도 단화에서 새 드레스에 어울리는 얼음구두로 바뀐 것은 물론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과거의 모든 것을 보내고, 다 잊으리라고 다짐하며 엘사는 새로 지은 성의 발코니로 걸어나갔다. 걸어나가는 엘사의 뒤로는 눈송이 모양이 그려진 긴 망토가 따라왔다. 동틀 때의 해처럼, 엘사가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착하고 완벽한 소녀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발코니로 나오자 어느새 떠오른 아침 해가 밝은 빛을 비추며 엘사를 맞아주었다. 새 여왕의 즉위를 축하하듯 얼음에 반사돼 언제나보다 더 밝은 빛이 엘사를 비췄다. 항상 성 안, 집무실 안에만 갇혀있던 여왕이 이제는 아침 햇살 속에 당당히 서있었다. 부담감과 공포를 떨쳐버리고, 행복감과 해방감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 채로. 이 행복을 가져다 준 폭풍이 계속 되기를, 엘사는 진심으로 바랐다. 추위 같은 것은 두렵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듯 주위를 둘러본 엘사는 씩 웃음 짓고는 몸을 돌려 성 안으로 들어가 발코니의 문을 닫아버렸다. 새 왕국의 새 여왕이 되었으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즐겁고 행복하리라는 것이었다.


한때 아렌델의 여왕이었던 소녀는 이제 눈의 여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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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여왕님 등장! 첫 연재 때부터 벼르고 별려왔던 대망의 렛잇고 씬을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원래는 여기를 기점으로 제1막과 구분지으려 했는데 제1막이 생각보다 길어져버리는 바람에 여왕님 도피를 기점으로 갈라야했다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한장면 쓰고 가다듬는다고 연휴가 통째로 날아가버리긴 했는데, 이 장면을 위해 렛잇고를 수없이 돌려들으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원작의 가사를 어떻게 살릴까 정말 많이 고민했는데, 저 부분 표현 중간 중간에 적절히 영어 원문 해석 혹은 한국어 더빙을 섞어 넣는 쪽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렛잇고 파트 첫 문장인 "구름 덮인 어둠을 빠져 나오자 눈의 나라였다. 밤의 끝자락이 하얗게 밝아왔다."는 책 좀 읽으신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문장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민음사 번역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를 따온 것입니다. 공소관의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완독한 책이기도 한데, 첫마디가 렛잇고의 시작부분과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해 오마주했습니다.


그렇게 글쟁이의 혼이 갈려나간 렛잇고 씬은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 드디어 여왕님 실종 2일차로 접어듭니다. 여왕님 실종 60시간 중 이제 겨우 6시간 남짓 지났는데... 마무리 언제 짓죠, 하... 작년 이맘때만 해도 "이러다 프로즌 1주년까지 연재하는 거 아님?ㅋㅋ" 그랬는데 이미 1주년은 채웠고, 지금 연재 속도라면 진짜 프로즌 2주년하고 반 정도까지 연재하게 생겼습니다... 기필코 완결 짓는다고 여왕님 공주님 앞에 맹세해서 무르지도 못하고 이거... 초콜릿 한 박스 정도라면 용서해주시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중입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만, 이 다음에 생각해둔 다른 하이라이트 장면도 있으니 이제는 그 부분을 향해서 열심히 달려 나가야죠. 1차 반환점을 돌았으니 더욱 힘내서 달리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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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8932 엘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시 프로즌3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22 12 1
5488931 엘시이이이이 [1]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22 16 1
5488930 부산 대학가는 이 시간에도 불야성이네 [2] ㅇㅇ(118.235) 00:16 23 0
5488929 졌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3 9 0
5488928 안타를 너무 많이쳐서 기억도 안나네 [5] ㅇㅇ(223.39) 05.03 31 0
5488927 복귀갤러 안내글 솔직히 내가봐도 좀 양심에 찔림 [8] 멍붕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3 73 0
5488926 현재 2타수 2안타ㅋㅋㅋ ㅇㅇ(223.39) 05.03 16 0
5488925 코구 입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3 15 0
5488924 안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시 [1] 프로즌3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3 19 1
5488923 안-시 안-시 안-시 안-시 안-시 안-시 안-시 안-시 안-시 안-시 ㅇㅇ(118.235) 05.03 11 0
5488922 ansiiiii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3 15 1
5488921 부산 살 때 맹장 수술한 병원 지나고 있음 ㅇㅇ(118.235) 05.03 22 0
5488920 부산역 도착 [2] ㅇㅇ(118.235) 05.03 27 0
5488919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5] ㅇㅇ(223.38) 05.03 76 0
5488918 방금 티비 뉴스에 울 회사 최고 보스 나왔다 [1] ㅇㅇ(118.235) 05.03 43 0
5488917 기차 탔다 이번에는 무탈하겠지 ㅇㅇ(118.235) 05.03 22 0
5488916 오늘은 투수임 [2] ㅇㅇ(221.152) 05.03 30 0
5488915 아무튼 난 ㅇㅇ(118.235) 05.03 25 0
5488914 이럴수가 ㅇㅇ(118.235) 05.03 22 0
5488913 엘-시 ㅇㅇ(118.235) 05.03 21 0
5488912 갑자기 알앤디 예산을 늘려주다니 ㅇㅇ(118.235) 05.03 32 0
5488911 저녁 못 먹고 야식으로 [1] ㅇㅇ(118.235) 05.03 40 1
5488910 늦 엘-시 ㅇㅇ(183.107) 05.03 27 0
5488909 엘시이이이이 [1]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3 35 1
5488908 전타석출루ㅅㅅㅅ ㅇㅇ(221.152) 05.03 24 0
5488907 이제 마치고 집구석 들어왔다 ㅇㅇ(118.235) 05.03 31 0
5488906 이겼삼 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2 21 0
5488905 코구 입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2 19 0
5488904 이삿짐싸는거 힘들구만 [8]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2 55 0
5488903 안시이이잉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2 21 0
5488902 집옴ㅋㅋ [4] ㅇㅇ(221.152) 05.02 37 0
5488901 전식 ㅅㅂ 뭐 이딴걸 주냐 [7] ㅇㅇ(223.39) 05.02 60 0
5488900 현역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임무네요 ㅇㅇ(223.39) 05.02 29 0
5488899 얘네 꼴리네 [2] 오나홀(106.101) 05.02 67 1
5488898 전투화 너무 무거운데 이거 맞나요 [1] ㅇㅇ(223.39) 05.02 49 0
5488897 엘-시 [1] ㅇㅇ(118.235) 05.02 32 0
5488896 엘-시 엘-시 엘-시 엘-시 엘-시 [1] ㅇㅇ(118.235) 05.02 33 0
5488893 엘시이이이엘시이이이 [2] 아렌델시민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2 50 2
5488892 겨갤이 보트탔구나 [3] ㅇㅇ(221.152) 05.02 67 0
5488891 이겼삼 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1 34 0
5488890 나 이거 손목 얇은편임? [2] ㅇㅇ(220.120) 05.01 67 0
5488889 범두 멸망 ㅋㅋㅋㅋㅋㅋㅋㅋ *Jung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1 3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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