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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단편] 엘사의 고민

ㅇㅅㅇㄴ(61.82) 2019.12.11 00:45:08
조회 2185 추천 73 댓글 42


이두나는 평소처럼 엘사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동생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밖에서 마음껏 뛰놀지도 못하는 것은 이제 막 계절의 순환을 여덟 번 겪은 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하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착한 아이로 남아주는 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두나는 슬픔, 대견함을 느꼈다. 평소 엘사가 어느 정도의 괴로움을 참는지는 엘사의 세 배 이상을 살아온 이두나조차 헤아리기 힘들지만, 자장가를 불러주면 딸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잠들었고, 이두나는 잠든 딸의 표정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방을 나서곤 했다. 하지만 오늘의 엘사는 뭔가 이상했다. 자장가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이두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닫을 뿐이었다. 마치 말 못할 어떤 고민을 끌어안고 있는 듯 보였다.


왜 그러니, 작은 꼬마 공주님?”


비극이 닥치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어린 엘사의 생각은 가끔 이두나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깊고 성숙했다. 그런 딸아이가 자장가에 집중을 못할 정도면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리라.


엄마... ... , 아무것도 아니에요.”


공주님, 이렇게 우리 둘만 있을 때의 약속이 뭐였지?”


덜 숨겨라, 더 느껴라...”


맞아, 그러니 고민이 있거든 엄마한테 얘기해주지 않겠니?”


“...아빠에겐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엘사는 이불 밖으로 팔을 쏙 내밀어 새끼손가락을 세웠고, 이두나는 앙증맞은 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아렌델 왕비의 이름을 걸고.”


엘사는 안도한 표정을 짓고 이두나에게 손짓했고, 이두나는 딸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댔다. 귓속말을 들은 이두나의 표정이 무의식적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마법의 부작용이 생기는 것 같아요...”


“...!”


이두나는 깜짝 놀라 딸을 바라보았으나, 두 눈에는 평소의 딸아이가 비칠 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엘사?”


방에 있는 건 둘 뿐이었고 누가 들을 우려가 없음에도 자연스럽게 이두나의 목소리도 속삭이듯이 작아졌다.


앞니가 흔들려요, 엄마. 마법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가봐요.”


순간 이두나는 폭소가 터질 뻔했지만, 진지한 엘사의 표정을 보고 가까스로 웃음을 의식 저편으로 밀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어른스러운 딸아이에게서 여덟 살의 마음을 발견하고 더욱 큰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이걸 들려주면 아그나르가 얼마나 재밌어할까? 하지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엄마?”


아 미안, 공주님. 이빨이 흔들리는건 말이지, 너같은 아이들에겐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란다.”


정말요? 하지만 왜 흔들리는거죠? 엄마도 이빨이 흔들리나요?”


엘사, 너는 아직 이빨이 작고 약해. 그래서 어른이 되려면 새로운 이빨이 자라나야 하지. 지금 이빨이 흔들리는건 새로운 이빨이 날 자리를 만들어 주는거란다. 아빠가 먹는 고기가 얼마나 질긴지 너도 알고 있지? 너가 어른이 돼서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주려고, 이빨이 준비해주는거지.”


엘사는 표정을 조금 찡그렸다.


, 하지만 나는 초콜릿만 먹어도 되는걸요?”


공주님, 그런 것만 좋아하면 충치 생겨요! 이제 꿈나라로 가야지?”


이두나는 손가락으로 엘사의 코를 살짝 튕겼다.


엄마, 하나만 더요! 그러면 원래 있던 이빨은 어떻게 되나요?”


아가, 지금처럼 지내다보면 저절로 빠질거란다. 그러면 그 이빨을 베개 밑에 놔두렴. 이빨의 정령이 와서 이빨을 가져갈거야.”


정령이요?”


이두나의 말을 들은 엘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아이의 표정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기대와 설렘이 떠올라 있었다.


꼭 보고 싶어요! 이빨의 정령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두나는 아차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엘사를 다시 눕혔다.


정령님은 공주님이 잘 때를 틈타 몰래 이빨을 가져간단다. 그러니까 볼 수 없어요.”


정말요? 아쉽다...”


이 말을 할 때 엘사의 표정은 아쉬움과는 서던 제도까지의 거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부모님 몰래 안나와 눈사람을 만들 때의 표정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불을 다시 덮어주는 이두나는 이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잘자렴, 아가.”


, 엄마도 안녕히 주무세요.”





그 날 이후로 이두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엘사의 앞니를 확인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날이 밝았다. 아니, 어두워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자장가를 불러주기 위해 엘사의 방에 들어온 이두나는 엘사의 앞니가 하나 없다는걸 알아챘다. 이두나가 들어오자 엘사는 빠진 이빨을 들고 흔들며 자랑스러운 듯이 웃었다.


이제 이빨의 정령님이 가져갈 일만 남았어요!”


그래, 베개 밑에 넣어두렴.”


평소처럼 자장가를 끝마치자 엘사는 곤히 잠든 듯 보였다. 이두나는 살며시 엘사의 베개 밑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 때 갑자기 엘사가 번쩍 눈을 떴다.


엄마, 뭐하시는 거예요?”


“...!”


깜짝 놀란 이두나는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엘사, 이빨의 정령을 보려고 자는 척하고 있었구나?


이빨의 정령이라는건 사실 거짓말이죠? 전부 엄마가 지어낸...”


엘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울먹이는 딸을 본 이두나의 머리가 게일만큼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니야, 공주님. 이빨의 정령님이 이빨을 가져갈 수 있게 하려면 사실 조건이 있어.”


“...조건?”


바로 이빨을 베개 밑 정가운데에 놔두는거지. 이렇게 두지 않으면 정령님은 이빨을 찾지 못해. 엄마는 우리 딸이 이빨을 제대로 두었는지 확인하려 한거란다.”


정말이죠...? 이빨의 정령님은... 있는거죠?”


물론이지, 공주님. 엄마가 거짓말하는거 봤니? 너무 늦었네, 이제 진짜 잠자리에 들 시간이야.”


이두나는 엘사의 방문을 닫으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정령같이 보이도록 만들어달란 부탁을 하기 위해 이 오밤중에 여길 찾아왔다고요?”


, 맞아요. 가능하죠, 페비? 안개가 뭉게뭉게 끼게 한다거나, 화염이 주변을 감싼다거나...”


, 왕비님...”


페비가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왕비님, 혹시 모티브가 될 소재를 가져오셨는지요? 그림도 좋고, 인형도 좋습니다.”


아뇨, 그런건 못가져왔어요. 꼭 필요한가요?”


모티브가 없다면 변신 마법은 힘듭니다, 왕비님.”


그 때 금발의 한 꼬마아이가 마치 트롤처럼 데굴데굴 굴러와 이두나의 앞에 섰다. 그리고 뭐라 비유하기 힘든,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펭귄과 비슷한 인형을 내밀었다.


이걸 쓰세요, 요르겐비요르겐 경!”


크리스토프, 아직 안자고 뭐하는게냐!”


페비 할아버지, 그치만 왕비님이 곤란해하는걸요? 저는 새로 만들면 돼요. 어서요, 왕비님!”


이두나는 인형을 받아들고 페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한 나라의 왕비가 갖는 위엄과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가지는 자애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는 크리스토프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이두나와 페비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페비는 한숨을 쉬고 손을 휘저어 마법을 걸었다.


다음날 밤, 이두나는 평소처럼 자장가를 불러주기 위해 딸의 방에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엘사의 손에는 요르겐비요르겐 경이 꼭 쥐어져 있었다. 앙증맞게도 장갑으로 망토까지 달아놓은 모습이었다. 엘사는 입이 근질근질한 것 같았고, 이두나도 이번에는 엘사가 하고 싶은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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