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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밤/문학] 바다가 온다 (재업)앱에서 작성

이두나팬클럽회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26 21: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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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다시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무거운 적막이 흐르고, 아렌델의 여왕 안나가 마침내 입을 뗐다. 앙다문 입술 끝엔 작은 핏방울 하나가 맺혀있었다. 다시 침묵한 좌중들 사이 카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허나, 폐하. 그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하실 것인지요."

"숨길 것입니다."

"숨기다니요?"



티가 나지 않게 신하들은 서로를 빠르게 훑고 있었다. 필시 불안일것을, 안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안나의 어깨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언니는 그저 지병이 악화됐을 뿐입니다."



"적당한 변명일 뿐입니다. 여왕 폐하."

"백성들도 수군댈 것입니다."

"정확한 병명을 알리지 않는다면, 양측 모두가 혼란스러워 할 것이고."

"특히 노덜드라는 크게 동요할 것입니다. 다른 설득이 필요합니다."



안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아래로 내려 치맛자락을 꽉 부여잡았다.



"...저는."



수십 쌍의 눈동자가, 여왕을 응시했다. 안나는 숨이 점점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시야도 서서히 흐려졌다.



"저는,"



온통 암전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하죠?'



안나의 입 빡으로 나오려던 문장이, 채 목구멍을 넘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



엘사는 문자 그대로 '안 좋아'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나쁘게. 노덜드라 순찰을 다녀온 크리스토프를 통해 안나가 받은 편지는 그 사실을 가감없이 드러내었다. 엘사는 편지에 '사랑하는 동생에게' 라는 말머리부터 시작해 자신이 요즘 상태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는 요지의 글을 주절주절 써내려갔다.

방금까지 뒀던 물건의 위치를 잊지 않나, 주변 사람이 불러도 도통 들리지 않다 몸에 손이 닿고 나서야 알아차리질 않나, 심지어는 자주 썼던 단어도 까먹을 때가 많아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도 애로가 생겨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허나 확실한 건 자신의 마법이 이제는 진정한 사랑만으론 모두 통제하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편지를 손에 쥔 안나의 손이 미친듯이 떨렸다.



"정령화입니다. 폐하."



"그게 뭐죠?"



패비는 그 어떤 때보다도 무거운 표정으로 안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짧고 뭉툭한 손을 뻗어 허공을 향해 휘휘 저었다. 그러자 그때와 똑같은, 아른거리는 빛의 형상이 하늘에 펼쳐졌다. 얼어붙은 강이 푸른빛을 내며 일렁였다.



"폐하도 아시다시피, 아토할란은 엘사에게 과거의 진실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대가가 필요했죠."

"그래서 언니가 삼켜졌잖아요! 아니, 제 덕분에 그럴 '뻔' 하긴 했지만."



패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늘이 점차 붉어지고 있었다.



"안나, 그 대가는 엘사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엘사가 아토할란의 뜻에서 벗어난 '희생'을 자처했을 뿐..."

"다섯 번째 정령이 된 게 진짜 대가였다는 말이죠. 그리고, 다른 정령들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거고요?"



안나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다행히 곁의 트롤들이 부축해준 덕에 간신히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언니는 인간과 자연을 잇는 다리라고 했어요. 그럼...그럼 저런 상태가 되는 게 말이 안되지 않나요?"



안나는 거의 울먹이다시피 패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패비는 고개를 떨구려다 다시 하늘을 향해 몇 번의 손짓을 했다. 아토할란이 사라지고, 마법의 숲이 둥실 떠올랐다. 처음 볼 때와는 달리 어딘가 섬뜩해 보였다.



"노덜드라."

"...예?"

"노덜드라는 자연의 편입니다. 폐하의 말대로 다섯 번째 정령은 인간과 자연을 잇는 다리고, 온전한 정령이 아닙니다. 단순히 그 다리를 수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지금까지는 인간이었던 엘사가 자연의 편에 너무 오래 서있다 보니 조화가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정령화'라고 부르죠."



원소를 상징하는 네 정령들이 차례로 하나씩 패비의 환상을 덮더니 이내 엘사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엘사의 이전 모습을 되찾고 싶다면, 아렌델로 다시 데려와야 합니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안나의 치맛자락이 점차 구겨졌다.



"언제가 좋을까요. 언니를 데려오는 것."



"그것은 폐하께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한참을 망설이던 패비가 겨우 입을 열었다.



"엘사에게도 가봐야하지 않겠습니까?"



--

엘사는 노덜드라에 있는 것을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적어도 안나만큼은 그렇게 확신했다. 일주일 동안 안나에게 보낸 수십 장의 편지는 대부분 노덜드라에서의 즐거운 일상들이 쓰인 내용이었으니.

특히 노덜드라 부족들을 이끌고 혹독한 환경 탓에 그동안 개척하지 못했던 얼어붙은 땅에 가서 풍요를 주었다는 엘사의 자랑섞인 얘기는 안나로 하여금 엘사의 선택을 긍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것이 엘사의 진정한 행복이고 살아가는 데 중요한 가치라면 전혀 말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렵고 골치아픈 아렌델의 왕 노릇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서가 아닐까, 라고 일부 신하는 수군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니의 어깨 너머로 듣고 배운 걸 직접 체감한 지 일주일 만에 안나는 몸살로 꽤 오래 앓아누웠다. 얼마나 바쁜 건지 안부 편지만 전해질 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는 점은 안나에게 있어서 여전히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언니가 행복하면 그걸로 되었다라는 생각에 안나는 남들이 일주일동안 앓아누울 병을 단 사흘만에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아렌델의 국왕 자리에 빠르게 적응했다. 다수의 백성들에게 평탄한 내정, 주변국과의 외교 등에서 오히려 엘사가 통치하던 때보다 더욱 평화로워졌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었다.


특히 노덜드라와의 갈등이 봉합되고나서부터는 아렌델에 이런 치세는 없을 것이라며 칭송하는 이들도 있었다. 안나는 자신에 대한 그런 평가를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을 쉽사리 지울 수 없었다. 왕위를 물려받은 게 된 건 가장 먼저 엘사의 제의보다 전적으로 안나 자신의 의지가 더 강력한 동기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사람들은 언제나 비교하는 걸 좋아했고 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을 믿고 왕 자리에서 내려온 엘사를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아렌델의 위기를 몇 번이고 극복해낸 선대 여왕의 치적은 그 사실만으로도 안나를 압박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의 삶을 찾아 서로를 긍정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나날이 계속될 것이라고, 안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변수는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엘사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이 금방이라도 후-불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던 안나의 불안을 건드리고 만 것이다.  



안나는 집무실 의자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엘사를 보내고 자신이 왕이 되는 게 맞았는 지, 틀렸는 지는 안나에게 더 이상 논할 것들이 아니었다. 선택의 결과를 알게 된 이상 케케묵은 후회들에 불과했으므로.


무엇보다 패비의 말대로 엘사를 아렌델로 다시 데려오는 것은,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 갈라진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생각들.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아니 그보다 왕을 물려받고 엘사를 노덜드라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엘사도 알고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먼저. 그럼 왜 자신한테 먼저 말하지 않았는지. 안나는 머릿속이 착잡해졌다. 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의심의 새싹이 꿈틀거리며 자라났다.


그도 그럴 것이, 엘사는 이틀 전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마지막 편지를 끝으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급히 크리스토프와 스벤을 보냈지만, 이미 엘사는 노덜드라 주민들과 함께 새 터전으로 이주를 마친 상태라 행방을 찾기 어려웠다고 밝혀왔다. 안나가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안나의 입술에 맺힌 핏방울이 책상 위로 뚝뚝 떨어졌다. 



"들어와요."

규칙적인 노크소리와 함께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카이였다.



"상왕 폐하로부터의 전갈입니다."

"엘사요?"



안나는 화들짝 놀라 지혈하려던 것도 잊고 카이에게로 뛰쳐나갔다.



"아니, 그보다...왜 게일을 통해 안 보낸 건지? 언제 온 거예요?"



"제가 직접 가져왔어요, 안나."



안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무실의 열린 문틈 사이로 한 그림자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노덜드라의 전통 복장을 하고 전형적인 머리모양을 한, 낯익은 목소리의 여성이었다.



"여왕 폐하, 오랜만이에요."

"허니마린."



안나는 무의식적으로 엘사의 편지를 뒤로 숨겼다.



"미리 연락을 했으면, 마차라도 보내드렸을텐데요."

"아녜요, 안나. 저희 쪽 주민들이 북쪽으로 더 이동하면서...저만 따로 아렌델에 들린거에요."

"당신 혼자요?"



안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허니마린을 바라보았다. 허니마린이 싱긋 웃었다. 당췌 속을 알 수 없는 허니마린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안나의 눈썹이 조금씩 흔들렸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쉰 안나가 카이에게 고개를 한 번 까딱였다. 카이는 안나의 신호에 따라 문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어쨌든, 이렇게 갑자기 온 건 좀 당황스럽네요."

"그 점 미안하게 생각해요.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어요."



안나를 따라 맞은 편 의자에 앉은 허니마린이 커피를 홀짝였다.



"곧 노덜드라의 지도자가 바뀔 거예요."

"당신이군요. 축하해요."

"고마워요. 옐레나가 오랫동안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안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반이라뇨?"



안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엘사도 곧, 저희의 또 다른 지도자가 될 거거든요. 엘사도 동의했어요. 그리고 이 편지는..."



허니마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옷자락이 안나에게 꽉 붙들렸다.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무섭잖아요."



허니마린은 살짝 당황한 눈치였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커피잔을 마저 들었다. 순간 이성을 잃은 안나는 허니마린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허니마린은 안나의 붉어진 뺨을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말 그대로예요. 엘사는 이제 노덜드라의 사람이에요. 미안한 얘기지만, 믿기 힘들면 이 편지를 봐요."



허니마린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듯이 낚아챈 안나는 허둥지둥 편지의 인장을 뜯어냈다. 위조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편지의 주인이 엘사임을 나타내는 문양이 명백히 찍혀있었다. 떠는 손을 감추려 안나는 책상 아래로 편지를 내려 읽었다. 눈동자의 초점이 흔들려 다는 꼼꼼히 읽지 못했지만 몇 가지 확실한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게일이 한동안 보이지 않아 편지로 연락을 하기 어려웠다는 것과 더 이상 자신을 찾지 말라는, 쉽게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엘사의 마법만큼이나 차가운 말투였다. 어쩌면 그보다 더. 언니가 이럴 리가 없어. 안나는 편지를 다 읽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알고 있었잖아요."

"뭘요?"



커피를 다 마신 허니마린이 잔을 내려놓으며 모른 척 되물었다.



"엘사가 저렇게 되었다는 거, 당신도 알고 있었잖아요."

"안나."



허니마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하니 앉아 자신을 올려다보는 안나를 무표정으로 응시했다.



"그래서 엘사는 더더욱, 우리에게 필요해요. 엘사도 그걸 원하구요. 그래야 아렌델과 노덜드라의 평화가 이어질 수 있어요."



안나는 기어코 폭발하는 화를 참지 못하고 허니마린의 뺨을 내리쳤다. 그 때문에 털썩 주저앉은 허니마린이 벌겋게 부은 뺨을 붙잡고 안나를 노려보았다.



"무례하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폐하."

"당장 나가. 아니, 아니지. 나가기 전에 엘사가 있는 곳을 말해.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요?"



허니마린이 피식 웃으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불쌍한 여왕에게 되물었다.



"네가 여기서 못 나갈 줄 알아."



--



엘사는 상념에 빠졌다. 최근에 그런 생각을 깊게 해본 적이 있었나? 지금은 그저 마음의 소리를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걸어야 할 것 같으니 걷는 것이고, 먹어야 할 것 같으니 숟가락을 쥐는 것이었다. 자연은 일련의 물음들에 답을 해주지 않았다.


순리가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가 육체를 지배한 순간, 엘사는 거짓말처럼 그들과 같이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대신 엘사가 얻은 것은 생각이었다. 예컨대 길을 굳건히 막아선 통나무 더미를 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칠 무렵 땅이 한 번 요동치더니 나무가 저 먼곳으로 치워지는 일들.


대자연의 품 속에서, 굳이 말을 하지 않고도 생각만으로 모든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은 엘사에게 언어의 필요성을 조금씩 제거해나가기 시작했다. 엘사의 뜻과는 무관하게. 그러나 엘사는 그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아토할란의 가장 깊은 곳이 자신을 삼켰을 때, 더 자세히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안나에게 잊힌 진실을 전달해주었을 때를, 엘사는 생각했다. 아토할란은 정령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을, 그리고 그 대가는 누군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될 것이라는 걸 이야기해주었다.


얼어붙은 육체의 안에서, 엘사의 정신과 아토할란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정해진 운명이라면,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 엘사의 오랜 생각이었다.



'이곳이 곧 무너지겠군.'

'안나...'



엘사는 안도했다. 안나가 해냈구나. 물 속으로 가라앉으면서도 엘사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동생이 스스로 증명했다는 것에. 결국 이것 역시 운명이었다.



"엘사, 괜찮아요?"



라이더가 녹크를 탄 엘사의 옆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엘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글자마저 잊기 전에 안나에게 편지를 전한 것에 대해, 엘사는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엘사는 자연의 정기가 강한 북쪽으로 갈수록, 정신마저 정령에 동화되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아렌델에서의 기억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아토할란과 정령들이 엘사를 위해 해준 최후의 배려이기도 했다. 만약 이 기억마저 없어진다면, 엘사는 당장이라도 아렌델로 뛰쳐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엘사는 그렇게 아렌델, 안나, 올라프, 크리스토프, 스벤, 부모님, 그리고 사랑하는 백성들에 대한 소중한 기억들을 품고 노덜드라의 새 보금자리가 될 북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다, 다 잘될 것이었다.



"엘사!"



그 때 저 멀리서 엘사의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화들짝 놀란 엘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크리스토프?'



노덜드라의 순록일행에 따라붙은 크리스토프가 어느새 선두에 있는 엘사의 옆까지 따라붙었다. 엘사가 위아래로 크리스토프와 스벤을 훑었다. 얼마나 달려왔는지, 스벤이 지친 모습을 처음 보는 엘사였다.



"안나에게 소식 들었어요. 도대체,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



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은 거 맞아요?"

"이봐, 크리스토프. 지금 엘사는 불안정한 상태야. 내버려둬. 당신은 아렌델로 빨리 돌아가는 게 좋겠어."



라이더가 엘사에게 다가가려는 크리스토프의 앞을 거칠게 막아섰다.


"엘사?"



엘사는 라이더를 쏘아보며 뒤로 물리고 대답 대신 녹크에서 내려 크리스토프를 살짝 안았다. 크리스토프는 어정쩡하게 엘사를 안다가 소매 틈 사이로 서늘한 종이 감촉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엘사에게서 떨어진 크리스토프는 멍하니 엘사를 바라보았다. 엘사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크리스토프는 무언가를 알았다는 눈치를 엘사에게 건넨 후 다시 스벤에 올라탔다. 엘사는 떠나가는 스벤과 크리스토프를 바라보며, 라이더가 세 번이나 재촉한 끝에야 녹크에 다시 올라탈 수 있었다.



'미안해.'



--



"수고가 많아요."



안나는 경비병의 어깨를 몇 번 토닥여 준 뒤 굳게 닫힌 철문의 문을 열었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천장을 가로질러 축축하고 서늘한 쇠창살들의 지나 마침내 창살로 가장 촘촘히 세워진 어느 방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끝까지 말 안 할 거에요?"



안나는 쇠창살 안의 여성에게 느리지만, 차갑게 쏘아붙였다.



"이 사실을 안다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여왕 폐하."

"꼭 이길 수 있을 것처럼 말하네요."



철제 수갑으로 양 손이 묶인 허니마린이 안나를 노려보았다.



"엘사가 정말 어디있는 지 알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진작에 말해줬다면 여기 가두지 않았겠죠."

"그 전에, 이걸 풀어주면 생각을 해볼게요."

"지금 왕을 협박하는 겁니까?"



안나는 허니마린의 오만한 태도에 슬슬 화가 치밀어올랐다. 엘사를 인질로 잡은 것도 모자라서, 왕을 협박하다니... 안나는 당장이라도 왕실 회의를 소집해서 다음 행동을 논의하고 싶었다. 신하들은 아직 몰랐지만 일단 그들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당장 전쟁을 시작하자고 해도 시원찮을 양반들이 즐비할 것이었다. 여전히 노덜드라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할아버지 시대부터 자리를 지켜온 늙은 신하들이 눈에 불을 킨 채로 노덜드라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허니마린."



참아야 한다. 안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쪼그려 앉아 허니마린의 눈높이에 눈을 맞췄다.



"저는 하루 빨리 엘사를 아렌델로 데려와야 해요. 제가 지금 당신이랑 이곳에서 노닥거릴 여유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렵겠는데요, 그건. 그리고 저는 협상을 하러 온 거지, 감옥에 갇히려고 올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협상...? 지금 사람 하나를 두고 협상을 하자는 말이 나와요?"



안나는 다시 한 번 귀가 빨개져 쇠창살을 잡고 흔들었다.



"흥분하지 마요, 안나. 이건 저희의 생존과도 긴밀히 연결된 문제라구요. 엘사도 동의했고, 엘사가 저희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지..."

"노덜드라가 살고 나발이고, 빨리 데려오라고!"



안나는 쇠창살 안으로 손을 뻗어 허니마린의 멱살 부근 소매를 낚아챘다. 깜짝놀란 허니마린이 손을 뿌리치기 위해 버둥거렸다.



"지금 당장."

"그만해요, 안나."



얼마나 잡고 있었을까, 곧이어 감옥을 울리는 굵은 목소리가 들려와 안나는 그만 허니마린을 놓치고 말았다. 허니마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시 주저앉았다.



"크리스토프?"

"안나, 엘사를 찾았어요."



크리스토프가 무겁게 입을 열자마자 안나는 화들짝 놀라 크리스토프의 손을 붙잡았다.



"정말이에요? 어디, 어디에요? 빨리 데려다 줘요. 엘사를 지금 봐야겠어요, 빨리! 스벤을 데려와요!"

"안나..."

"크리스토프, 제발..."



허니마린은 그저 숨을 고르고 창살 바깥의 둘을 차갑게 응시했다. 안나는 초조하게 크리스토프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크리스토프는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안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다, 말없이 껴안아주었다.



"엘사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



"그냥..내가 다 망치고 있는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 언니만큼 잘하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침대에 나란히 앉은 안나와 엘사는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안나."

"응?"



엘사가 팔을 뻗어 다정히 안나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떨 것 같니?"

"제발 이상한 말 좀 하지 말아줄래? 제스처 게임 하나 못했다고 그렇게 뾰루퉁하기야?"



안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엘사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 언니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람. 엘사는 말 없이 안나의 손을 꼭 잡았다.



"있잖아, 안나. 정말 변치 않는 건 없다고 생각해?"



안나가 엘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음, 그건 아니지. 언니도 나도 언젠간 늙을 거고, 죽겠지. 크리스토프, 스벤도 마찬가지고. 올라프는...모르겠네. 언니가 죽으면 같이 죽게 되려나? 아무튼, 정말 변치 않는 게 있겠어? 그냥 우리는... 나는 그 시간을 오래 붙잡고 싶은 거지. 우리에겐 정말 많은 일이 있었잖아. 그냥 지금처럼만이라도 아무 걱정없이 사랑하기만 하면 안될까? 난 언니가 자꾸 떠날 생각을 하는게, 가끔은 불안해."



아주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엘사는 대답 대신 안나를 가만히 품에 안았다. 안나는 언니를 편안하게 안아본 적이 얼마 만인지 생각했다.



"응? 언니..."

"약속할게, 네 옆에 언제나 있겠다고."


아주 긴 밤이 또 흘렀다.



--



"안나는요?"

"이틀 째 나오지 않고 계십니다. 간편하게 드실 수 있는 식사를 넣어드리고 있지만...번번히 물리시네요."



크리스토프와 카이의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크리스토프는 걱정스럽게 여왕의 침실 앞을 서성일 수 밖에 없었다.



"우웅."

"스벤, 안나는 괜찮을거야. 지금 안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거 뿐이야."



안나는 베갯잇에 고개를 처박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누가 보면 죽은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눈물이 말라 얼만큼의 시침이 움직였나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속절없는 시간이 흘렀다. 베개는 눈물로 흠뻑 젖다 이내 전부 말라붙어 짙은 얼룩이 남았다. 안나의 옆에선 읽다 만 편지가 창가 곁에서 나풀거렸다.





'안나에게. 편지로만 안부를 전하는 나를 용서해줘. 내가 네 얼굴을 보게 되면 해야 할 일을 못 할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남겨.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을 네가 보면, 아마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도 나를 놔주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속상하기도 해. 이게 운명이었던 걸까? 어쩌면 끝끝내 이별에 다다를 것을 겨우 꿰매서 유지하고 있었던 건지 몰라. 안나, 우리가 헤어진다고 해서 내 마음이 변한 건 아니야. 네가 변한 건 더더욱 아니고. 어떤 이별은 그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래. 마법의 숲으로 떠나기 전날 밤, 내가 해줬던 말 기억나? 네 옆에 언제나 있겠다는 거. 네게 거짓말을 참 많이 했지만, 이것만큼은 꼭 지킬 수 있어. 만약 나무가 흔들리면 그대로 내 어깨에 기대는거야. 가끔 낙엽이 불 땐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줘. 전등에 불을 켤 때면 내 뺨에 얼굴을 부벼도 돼. 그리고 바다에 가면, 물 한 줌 떠서 그때처럼 나를 기다려줘. 우리 추억을 거기 두고 갈게. 너는 나보다 똑똑하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다 알 거야. 아렌델을 잘 부탁해. 여기서도 네가 항상 행복하길 바랄게. 그럼 안녕. 



너를 영원히 사랑하는 언니, 엘사.'



편지를 마저 읽은 안나가 미친 듯이 울음을 터뜨렸다. 창 밖의 파도가 크게 철썩였다. 






----



END.


많이 길고 많이 부족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니마린을 주깁시다 허니마린은 나의원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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