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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중편] 미래의 프붕이-아렌델로 가는 기계 (4)

프3존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08 00: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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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를 통째로 푹 쉬고 그 다음날 출근했다.


경영팀 김부장이 신나는 얼굴로 찾아왔다.

"사장님! 우리 가상현실센터 하루 흑자가 9백만원입니다! 오픈 2일차라 아직 사람이 좀 적어서 그렇지, 앞으로 2년치 예약이 꽉 찼습니다!"


"아주 기쁜 소식이군! 그나저나 그러면 남는 방이 없단 소린가?"


"네, 오늘부턴 그렇지요."


"아... 아렌델에 한 번 더 들어가고 싶었는데, VR 말고 그래픽팀 내려가서 그냥 모니터로 봐야겠구만. 예약취소분 나오면 알려주게나."


"네 사장님!"


나는 GPU 센터로 내려가 슈퍼컴퓨터에 연결된 모니터들 중 하나를 켰다. 그리고 내가 역사를 바꾼 아렌델 파일에 접속해 [하루를 분으로] 모드를 켰다.


매우 빠른 속도로 아렌델의 일상이 슉슉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명의 힘은 너무나도 강했다.


1938년 아그나르와 이두나는 외교를 위해 서던 제도로 향하던 중 위즐튼 반정부 해적세력에게 공격을 당해 배가 침몰하고 말았다.


역사는 바뀌었지만 운명은 그대로였다.


서던과의 악연은 계속되었다. 한스 왕자는 대관식에 왔지만, 엘사가 미리 경비병에게 말했기 때문에 금세 쫒겨났다.


대관식 다음 날, 엘사는 고의로 북쪽 산에 눈을 내리게 하고, 안나는 얼음을 싣고 산을 내려오던 크리스토프를 붙잡아 성으로 데려온다.

영문도 모른 채 얼음장수를 그만두기를 강요당한 크리스토프는 성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 안나와 연애를 시작한다.


반면 흑심을 품기만 했을 뿐인데 거짓말처럼 쫒겨나버린 한스는 복수를 위해 크리스마스 새벽에 아렌델을 침공한다.


산타를 기다리던 많은 아이들의 머리위로 포화가 쏟아진다. 하지만 잠이 깬 엘사가 한스의 해군 전체를 바다 위에서 얼려버려 몰살시킨다.


한스는 패배할 전쟁에 나섰다는 이유로 마구간 청소를 평생 하며 살아간다.


내가 아렌델에 다녀간 후, 안나도 제왕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안나가 어느정도 컸다고 생각한 엘사는 함께 마법의 숲으로 모험을 떠나고, 엘사는 정령이, 안나는 여왕이 된다.


노덜드라에서 살던 엘사는 어느 날 부모님이 등장하는 악몽을 꾸는데 꿈에 나왔던 비밀의 방을 찾아 들어가서 물약을 마시고... 마법을 잃는다.


그건 이두나가 최후에 상황에 사용하기 위해 엘사의 마법을 없애버리는 물약을 만들어 놨던 것이다.


난 이런 결말을 원치 않았다. 다시 아렌델에 들어가야만 했다.


얼마 후, 예약 취소된 시간대가 생겼다.







[가상현실 내 시간 : 1838년 3월 8일 오후 9시]

[도착 지점 : 아렌델 성]


나는 성에 소환되자마자 [리얼 모드]를 켜고 엘사와 안나의 방에 찾아갔다. 부고는 전달되었지만 장례는 시작되지 않았다.

둘은 서로에게 기대어 말없이 훌쩍거리고 있었다. 바닥엔 휴지가 뒹굴었다.


"어...?"

"프붕씨? 제가 힘들 때 찾아오겠다고 하더니 결국 오늘 오셨군요."


"죄송합니다 공주님, 역사는 바뀌었지만 운명까지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맺힌 눈물을 쓱 닦으며 말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가만히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잠자코 있었다.


"그래서...이제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나요?" 안나가 물었다.


"두 분은 원래대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역사가 또 바뀔 겁니다. 그땐 어떻게 바뀔 줄 모르죠.

전 먼 미래까지 미리 보고 왔습니다. 이대로 역사가 진행되도 괜찮을 겁니다."


나는 말을 아꼈다. 그리고 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엘사와 안나가 잠들자 나는 조용히 안개처럼 사라졌다.





현실로 돌아왔지만 조금 혼란스러웠다. 가상현실 내의 엘사와 안나는 그저 데이터 조각일 뿐인데, 내가 그들과 함께 울고 그들을 동정하고 감정을 나눈다는 것이 이상했다.


왜 내가 저들의 미래를 개선해 주어야 하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엘사를 또 만나러 가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헬멧을 썼다.






[가상현실 내 시간 : 1843년 11월 26일 아침 6시]

[도착 지점 : 노덜드라 야영지]


엘사가 악몽을 꾸고 있었다. 엘사는 꿈을 꾸면 눈꽃으로 그 형상이 다 드러난다.

이두나와 아그나르가 등장해 어린 시절 엘사를 연구하고 물약을 만들고 있다. 이두나가 엘사에게 물약을 먹인다. 엘사는 싫다고 발버둥친다.


하지만 이것이 너의 운명이라며 결국 물약을 먹이고, 엘사의 손에 열쇠 하나를 쥐어 준다.


그 순간 엘사가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쨍그랑 소리를 내며 눈꽃 열쇠가 단단한 얼음이 되어 땅에 떨어진다.


"헉...헉...허" 거친 숨을 몰아쉰다. 긴 악몽으로 엘사는 식은땀 범벅이다.


"오랫만이에요 엘사" 내가 열쇠를 주우며 인사했다.


"아 프붕씨 왔군요. 5년만이네요... 프붕씨는 전혀 늙어보이지 않아요. 혹시 마법의 힘으로 영생하나요?" 엘사가 덜 깬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처다본다.


"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생각해보니 엘사는 25살이지만, 나는 아직도 18살의 얼굴이다.


"프붕씨를 오빠라고 불렀던 과거가 부끄러워지네요. 이제 넌 내 동생이잖아?" 엘사가 호호 웃는다.


유치한 말장난에 대고 내가 현실에선 60대라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냥 프붕씨라고 부르시죠 엘사누님"


순간 '눈나'라고 하려고 했다가 2020년의 프붕이들을 떠올렸다.


"그래요 프붕씨, 그래서 왜 다시 온건가요? 저에게 불행한 일이 닥쳐오나요?" 엘사의 눈망울이 커지기 시작한다.


"네 그래요. 원래 역사에서는 오늘 당신이 아렌델 성으로 돌아가 비밀의 방을 찾고 이 얼음 열쇠로 문을 열어요. 그리고 이두나가 운명이라며 먹였던 그 물약을 스스로 먹게 되죠. 사실 그 약은 아렌델에 큰 문제를 생기게 할 정도로 마법이 통제가 안될 때 먹이기 위해 부모님이 비밀리에 만들어 두었던 거에요."


나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마법을 없애버리는 약이죠. 그 약을 먹으면 순식간에 마법이 사라지고, 다섯번째 정령 자격도 잃게 되죠. 아토할란에 다시 갈 수도 없게 되구요."


"오 정말 고마워요 프붕씨! 정확한 날에 와주셨군요." 엘사가 침대에서 일어나 날 가볍게 껴안아 주었다.


"그래서, 그 비밀의 방과 물약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그냥 저만 아는 비밀로 놔둘까요?"


"아뇨. 오늘 찾아가서 없애버리는게 낫겠어요. 또 비밀의 방에 가면 부모님의 기록들도 많이 찾을 수 있을거에요." 역사가 어떻게 바뀔지 확답할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러자고 제안했다.


엘사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게일, 나랑 같이 아렌델에 갈래?"


유쾌한 게일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물가에서 녹크가 뛰어나왔다.


"준비 됬어?" 엘사는 녹크를 얼려 백마로 만들었다.


"어...하지만 전 말을 타 본 적이 없는걸요?" 내가 당황하며 말했다. 그냥 순간이동으로 갈 수도 있긴 한데...


"이리 와요, 할 수 있어요!" 엘사가 안나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쳐줄 때의 장난기 많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결국 나는 엘사 뒤에 타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함께 아렌델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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