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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단편] 비오는 날의 연회

LibreSo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6.06 22:40:03
조회 635 추천 46 댓글 25



바위에 걸쳐 앉아 자연풍경을 바라보던 엘사에게 친근한 바람소리가 들렸다. 언뜻 들으면 새가 재잘거리는 소리 같기도, 혹은 어린 여자아이가 실실 웃는 것 같기도 한 소리였다. 나뭇잎을 동반한 바람은 엘사 주변을 살랑살랑 맴돌더니, 새 모양으로 접힌 쪽지를 그녀의 손에 떨구었다.

“언제나 고마워, 게일”

게일은 이 정도 쯤이야 하는 식으로 좌우를 왔다 갔다 하더니 저 멀리 하늘로 사라졌다. 엘사는 예쁘게 접힌 쪽지를 조심스레 펼쳤다.



안녕, 언니? 요즘 통 바빠서 편지를 많이 못 보냈어. 미안! 앞으로는 자주 보내도록 노력할게.

매년 아렌델에서 5월 말에 연회를 여는 거 알지? 언니 때도 종종 있었으니까 잘 알리라 믿어. 그런데 이번엔 좀 더 규모가 커졌어. 저 멀리 차토와 자리아, 코로나는 물론 로윰과 덴마크에서도 사절들이 참가할 예정이야. 위즐튼은 처음엔 그냥 거절해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참가시키는 쪽으로 했어. 물론 서던 제도는 허락 안 했으니까 안심해도 돼.

시간은 이번 주 토요일 밤 6시부터야. 아마 30분 동안은 고리타분한 축사만 이어질 거니까 6시 반 쯤에 도착하면 딱 맞을 거야. 그러니까 언니도 꼭 와서 같이 즐겨야 해, 알았지? 아, 물론 노덜드라 사람들도 전부 데려오라구! 어느 때보다 모두가 함께하는 최고의 무대가 될 거야!

거절 안 됨, 지각 안 됨, 여왕님 명령!



“세상에, 무슨 외국 사절들이 이렇게나 온담...”

쪽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엘사의 입에서 무심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자신이 성문을 개방하던 시절에도 연회야 수 차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연례행사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고 사절단도 코로나를 비롯한 두세 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편지의 내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올해는 안나가 맘을 단단히 먹고 국제적인 행사로 만들려는 모양새였다.

‘그러고 보니, 노덜드라 사람들에게 아렌델 행사에 꼭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마침 딱이네.’

언제나 말로만, 그마저도 물음표를 띄우며 이해를 못하는 표정들이면 마법을 부려 축제 이모저모를 설명해주던 노덜드라 사람들에게 드디어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해 줄 기회가 생겼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 감탄할 것은 물론, 아이들은 달콤한 과자와 사탕을 입에 한가득 물고 분수대 주변을 쉴 새 없이 노다닐 것이다. 엘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빨리 토요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쏴아아-

낮까지만 해도 맑고 청명하던 토요일 하늘에 점점 먹구름이 끼더니 기어코 굵은 빗줄기들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배수로를 점검하러 달려가는 장정들, 방수포를 덮으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낙네들, 서둘러 땔감과 물품들을 끌어안고 텐트 안으로 달려가는 아이들까지 노덜드라 부락은 혼비백산으로 변했다. 함께 아렌델로 내려가려던 엘사로서는 꽤나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어이쿠! 순록들 헛간에 데려오는 거 깜빡했네. 누나가 나머지 좀 정리해 줘!”

라이더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몰아치는 비 사이를 허둥지둥 달려갔다. 곁에 있던 허니마렌은 이를 어째야 하나 손바닥을 싹싹 비비면서 엘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기... 정령님? 모처럼 여왕폐하께서 초대해 주셨는데 아무래도 가긴 좀 힘들 거 같아요...정말 죄송해요.”

“아니에요. 갑자기 비가 내리치는데 터전이 먼저죠. 안나도 이해해 줄 거예요.”

“사실, 한 번 쯤은 가보고 싶었어요. 먹고 마시는 거야 여기서도 많이 하지만, 도시의 연회처럼 화려한 구경거리들은 말로만 들었지 살면서 볼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듣자 하니, 요즘 새롭게 유행하는 춤이 있다고 해서 꼭 한 번 아렌델로 가서 보고 싶었는데 솔직히 많이 아쉽긴 해요.”

허니마렌은 쓴웃음을 지었다. 날 때부터 산사람이었다고는 해도 그녀나 라이더 역시 새로운 것들에 한창 관심을 가질 젊은 세대였다.

“분명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거예요. 안나는 워낙 파티를 좋아하는 아이니까 여름 끝날 무렵에 또 열지도 모르죠.”

“제발,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시간이 많이 지난 거 같은데 저희 걱정은 말고 어서 가 보세요.”

“아차....”

체감 상 이미 6시 반은 한참 지났을 때였다. 그래도 녹크를 타고 쾌속으로 질주하면 5분 이내로 아렌델에 도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고마워요. 그럼 나중에 또 봐요. 게일? 미안하지만 노덜드라 사람들 좀 도와주겠니? 난 지금 빨리 아렌델로 가봐야겠어. 부탁해.”

게일을 볼 틈도 없이, 엘사는 바닷가를 향해 있는 힘껏 뛰어가기 시작했다.




*      *      *




환하게 빛나는 샹들리에의 광채 밑으로는 축제의 열기가 한껏 무르익어갔다. 하얀 식탁보가 덮인 테이블 위에 놓여 은은히 타오르는 고풍스러운 촛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기리는 듯한 여러 과일과 음식들. 그 사이사이마다 국가를 상징하는 정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여러 사절단들이 웃고 떠들면서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 분위기를 한층 더 높여주는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왕실이나 귀족의 연회에서 빠질 수 없는 관현악단의 연주였다. 홀의 한 끝에 자리 잡은 악단의 구성원들이 연주하는 악기의 음색 하나하나가 모여 절정의 하모니가 연출된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웅장함을 디딤발로 삼아 공중을 향해 날아오르는 부드러운 바이올린의 선율, 그와 함께 공간 전체를 너울거리는 현악기들의 중주. 마치 한 폭의 명화를 그려낸 듯한 아렌델의 궁성 연회는 그야말로 낭만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명화 속의 주인공은 아직까지도 처음 든 와인을 깨끗이 비우지 못하고 그저 앉은 채 잔을 계속 흔들고만 있었다. 투명한 유리잔 안에 비치는 붉은 색의 와인이 그녀의 불안한 마음처럼 좌우로 넘실거렸다.

“언니가...좀 늦네요.”

“비가 와서 그런 거 아닐까요? 이렇게 몰아치면 노덜드라 사람들을 데려오지는 못할 테고, 아마 도와주다가 혼자서 오고 있겠네요.”

“지각 안 된다고 편지에까지 써놨는데 정말...우리 언니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안 그래요?”

“언니만 착하면 모르겠는데 동생마저 착하니 탈이긴 하죠.”

“누구는 썰매 부숴먹었는데도 끝까지 얼음성에 같이 따라갔으면서?”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받을 때쯤, 두 사람에게 낯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어느새 메인 홀 중앙에는 남녀들이 쌍을 이루며 선율에 맞춰 서로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강약약의 4분의 3박자로 끊어지는 현악기들의 외침이 커질수록 춤추는 자들의 보폭과 움직임도 그에 맞춰 빨라졌다.

“늦은 건 어쩔 수 없고, 일단 무대로 나가셔야 하겠는데요 여왕 폐하?”

자리에서 일어난 크리스토프는 제법 자연스럽게 신사 포즈를 취하며 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언니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는데....”

“나중에 실컷 자랑하죠, 뭐.”

안나의 눈앞에 내밀어진 하얀 장갑을 낀 듬직한 손. 맨손이었을 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잡아끌던 투박하고 거친 손이었지만 하얀 장갑이 씌워진 손은 그와는 전혀 다른 부류처럼 다가와 저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나는 좌석에서 일어나 마찬가지로 예의를 갖춰 살포시 손을 얹었다.




*     *     *





“고마워, 녹크. 나중에 꼭 같이 북해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자.”

제대로 감사할 겨를도 없이 엘사는 서둘러 아렌델 궁성으로 향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전력으로 뛰어간다면 어떻게든 성 정문으로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멀리서부터 헐레벌떡 들어오는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영 체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엘사는 카이와 겔다를 비롯한 궁성의 몇몇만 알고 있는 성 뒤편 쪽문으로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곳에 비해 관리가 소홀한 편이라 낡고 좁았지만 통과하기에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쪽문을 지나면 메인 홀 입구까지는 단 몇 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엘사는 호흡을 가다듬은 후, 헝클어진 머릿결을 정돈하고 약간의 마법을 사용해서 비에 젖은 옷과 얼굴을 말끔하게 털어냈다. 손님의 입장으로 연회장에 들어서는 건 처음이라 꽤나 생소했지만 3자의 시선으로 동생의 모습을 보고픈 호기심이 곧장 차오르며 서둘러 연회장의 문을 열었다.





연회장에 들어선 엘사가 처음으로 마주한 감정은 ‘환희’였다. 낯익은 광경이었지만 자신이 보아왔던 연회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여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눈에 비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흥분과 설렘, 취기와 홍조가 한껏 차올라 있었다. 귓가를 감미롭게 울리는 관현악단의 혼심이 담긴 연주는 자신이 국왕이었던 시절에도 수없이 듣던,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와인을 홀짝이면서 내심 흥얼거리던 왈츠 멜로디였다.

엘사는 천천히 인파를 헤치며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나아갔다. 요리조리 사람들을 구경하던 시선이 중앙 홀에서 왈츠를 추고 있는 사람들에게 향하더니 이윽고 한 쌍의 커플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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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그 광경을 실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엘사는 그만 사고가 멈춰버렸다. 푸른 들판에서 짝을 맞춰 팔랑팔랑 날갯짓하는 나비 한 쌍이라면 이와 비슷한 모습일까. 금색 장신구들이 박힌 검은색 제복을 단정하게 갖춰 입은 국서와 검은 롱 슬리브에 청록색 드레스로 치장한 여왕이 서로 두 손을 잡은 채 관현악단의 연주에 맞춰 왈츠를 추고 있었다. 놀랍게도, 영 어색할 것만 같던 크리스토프의 스텝과 동작은 깐깐한 엘사가 보기에도 상당히 우수했고 그에 맞춰 부드럽게 품에 감겨오는 안나의 몸짓은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왼쪽으로 몇 걸음, 오른쪽으로 또 몇 걸음,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동작을 리드하는 남성과 그에 맞춰 몸을 의지하는 여성. 별다른 수식어로 꾸밀 필요가 없었다. ‘천생연분’, 그 단어 하나면 눈앞의 남녀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놀라움은 비단 엘사 뿐만이 아니었다. 구경하던 연회장 안의 모든 사람들 역시 무언가에 홀린 것마냥 정중앙에서 우아한 날갯짓을 펼치고 있는 국왕 부부를 쳐다보고 있었다. 멍하니 두 사람의 왈츠를 바라보던 엘사는 연주가 끝난 뒤, 둘이서 자신을 향해 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넋이 나가 있었다.

“아, 언니! 이제 왔구나?”

“으, 응? 아 맞아, 지금 막 도착했어. 미안해, 안나. 비가 와서 좀 늦어버렸네. 노덜드라 사람들은 역시 다음번에 오는 게 낫겠다면서 데려오지 못했어.”

“괜찮아. 비 내릴 때부터 힘들겠구나 생각했으니까. 그나저나 언니, 우리 둘이 춤 춘거 늦게나마 봤지?? 어땠어?”

안나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 표정이 마치 잘했다 칭찬 받으려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놀랐어...네 춤 실력이야 늘 최고지만 크리스토프는 언제 저렇게 늘었다니?”

“당연히 무진장 연습시켰지! 두 달 동안은 스텝 하나 제대로 못 맞춰서 진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저야말로 연습하느라 죽는 줄만 알았어요. 안나가 옆에서 얼마나 닦달을 하던지 어휴...높으신 분들의 춤이라고는 인생 살면서 한 번도 춘 적이 없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하랄드는 광장에서 저랑 잠깐만 춤췄는데도 금방 따라왔거든요?”

“그 청과물 가게 하는 하랄드요? 아니 잠깐만, 나 놔두고 걔랑은 대체 왜 춤 춘 건데요?”

“같이 추자고 해도 재능 없다면서 계속 피하기만 하던 사람이 누군데요?”

잠자코 둘의 투닥거리는 대화를 듣던 중, 문득 과거의 파편 하나가 엘사의 뇌리를 스쳤다. 꽤나 재미있는 소잿거리였는지 그녀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올라갔다.

“크리스토프. 우리 안나는 춤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사람 크게 안 가리고 잘 춰요. 심지어 어땠는지 알아요? 어느 나라 막내 왕자님이랑 눈이 맞아서 그윽하게 왈츠를 추더니 잠깐 테라스에 나갔다 오니까는 축복을 해 달라-읍!”

“아, 진짜 언니!! 그 얘기는 더 이상 꺼내지 말라고 했잖아!!”

안나가 다급하게 엘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표정으로부터 난감함과 창피함이 물씬 풍겨 나와 둔감하다는 크리스토프조차 쉽게 알아챌 정도였다.

“음...엘사. 처음 만난 사람에게 청혼당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글쎄요, 사랑이란 열린 문~하면서 노래라도 부르는 심정이겠죠?”

“하....알았어,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둘 다 그만 좀 해...”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안나를 보며 엘사와 크리스토프는 박장대소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세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아무튼 정말 깜짝 놀랐어요, 크리스토프. 이제 궁성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나 보네요.”

“그러지 않으면 살아날 수가 없는걸요. 정말, 이렇게 복잡하고 답답한 생활을 엘사와 안나는 대체 어떻게 견디고 살아왔는지 저라면 미쳐버렸을 게 분명해요.”

“이젠 익숙함을 넘어 자연스러워져야 할 거예요. 방금 왈츠는 완벽했지만 지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보니까 연습은 계속 해야겠는데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나가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답했다.

“물론 다음번엔 호흡조차 가쁘지 않을 정도로 연습시킬 거야. 앞으로 자주 추게 될 텐데 그 정도는 해야지 않겠어요, 내 사랑?”

“...예이 예이. 앞으로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정도로 잘 추겠습니다. 그나저나, 안하던 짓을 하려니까 많이 피곤하네요. 저는 쉬러 갈 겸, 올라프랑 스벤이 또 사고치는 건 아닌지 보러 갈 테니까 간만에 자매들끼리 달달한 케이크나 먹으면서 말들 나누세요.”

크리스토프는 엘사에게 미묘한 눈빛을 보낸 후 저만치 자리를 떠났다. 엘사가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순록밖에 모른데다 청혼 타이밍마저 하나같이 주옥같았던 이 남자가 반년 만에 ‘눈치’의 개념을 기민하게 터득한 점은 실로 엄청난 성과였다.

“세상에나...춤 실력만 늘은 게 아니네. 너 대체 남편을 그동안 얼마나 구워삶은 거야?”

“어허, 구워삶다니? 바로 사랑의 힘이라구 힘!”


만약 트롤 패비가 여왕의 남편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크리스토프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지 않을까? 반응이 궁금해진 엘사는 나중에 트롤의 숲에 놀러가서 오늘의 경험을 패비에게 말해줘야겠다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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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적이던 왈츠 무대가 끝나며 달아오르던 연회장도 차츰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엘사와 안나는 인파를 가로질러 중앙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 몇 시간 째 내리는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테라스를 포근하게 덮은 보랏빛의 등나무 꽃과 잎사귀들, 그 사이사이에 내려앉은 빗방울들이 늘어진 나뭇가지를 미끄럼틀 삼아 난간에 또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푸른 밤하늘 사이로 고개를 내민 달빛이 아렌델 성채를 비추며 연회의 화룡점정을 찍어야 했지만 보이는 것은 회색빛의 구름뿐이었고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는 땅바닥에 닿아 흩어지는 빗소리와 섞여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안나는 그 불협화음에서 왠지 모르게 색다른 생동감을 느꼈다. 활동적인 기질이 다분해서인지 정적인 세계로만 여겨지던 비는 영 좋게 다가오는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비가 내릴 때면 저도 모르게 창가를 후두둑 두드리는 빗소리가 마치 뜻하지 않은 노크소리처럼 들려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는 했다.

“꽤 칙칙하긴 하지만, 나름 묘한 운치도 있고 괜찮네.”

“어머? 안나 너 비오는 날 싫어하지 않았어?”

“지금도 별로 안 좋아해. 그런데 옛날만큼 싫어하지는 않는 거 같아.”

“그럼, 잠깐만 여기 앉아 있다 갈까?”

“좋아. 사람들이랑 이것저것 이야기한데다 춤까지 춰서 그런가? 좀 지치긴 했어. 사실, 보기 싫은 사람들이 말 걸러 오는 낌새가 느껴져서 좀 피해 있어야 하나 싶기도 했고.”

둘은 테라스에 놓인 야외용 테이블과 의자에 앉았다.

“예전에는 그렇게 성문 열고 나가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더니, 이제 언니 심정이 뭔지 좀 알겠어?”

“음...요즘따라 좀 느끼긴 해. 언니가 그렇게 감추고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모습을 이제야 알 것 같거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이야기하는 건 좋은데 정치적으로나 외교적 입장으로 만나는 건 영 꺼려져. 속으로는 시원하게 주먹 한 방 날려주고 싶지만 꾹 참고 억지로 웃어야 하잖아? 이게 생각보다 정말 힘들더라고. 특히나 위즐튼은 최근에 새로운 외교사절을 보냈는데 차라리 전에 그 가발 쓴 대머리 할아범이 나을 지경이야. 겉으로는 공손한 척 하면서 말 하나하나에 비꼬는 투가 얼마나 예의 없게 보이던지 하마터면 그 사람한테 꺼지라고 말할 뻔 했어. 아, 어디까지나 정치랑 외교가 힘들다는 거지, 파티 여는 건 언제라도 즐겁다구? 이것마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

그 말을 끝으로 잠시 동안 빗소리만이 공간을 울렸다. 엘사는 테라스 너머를 바라보는 동생의 옆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궁성 여기저기를 줄기차게 돌아다니며 흩날리던 양 갈래의 머리칼은 기억 속의 어머니처럼, 그리고 대관식 날의 자신처럼 단아하게 땋아 올려져 있었다. 복장도 평소 즐겨 입던 소박하고 편한 차림보다 이제는 왕으로서의 엄숙함을 드러내는 정갈한 드레스가 점점 더 눈에 익어갔다. 늘상 보아오던 생기발랄한 공주 안나의 모습은 머리를 짓누르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할 여왕 안나의 그늘 아래에서 서서히 옅어지기만 했다.

엘사는 과거 자신의 재위 시절을 회상했다. 매일 아침, 몸단장을 마치고 마주한 거울에서는 엘사가 아니라 아렌델의 여왕, 아그나르의 딸만이 비칠 뿐이었다. 엘사라는 사람의 외형을 그대로 모조한 인형의 탈을 뒤집어쓴 또 다른 누군가. 완벽한 연기를 해내기 위한 치밀한 변장. 일상의 첫걸음을 떼기 전, 철저하게 감정을 숨길 수 있는 견고한 가면과 탈을 뒤집어써야만 알현실에 도사리는 위협과 권모술수에 대항할 수 있었다. 이미 그곳은 온갖 가면을 쓰고 악취를 풍기는 욕망의 카니발이었다. 그와 같은 모습이 안나의 얼굴에서 홀연히 비치자 예전의 자신을 마주하는 듯한 애처로움이 피어올랐다.

“안나, 답답하면 머리 좀 풀어줄까?”

“응? 머리를? 이거 다시 땋으려면 시간 좀 걸릴 텐데?”

“땋아 올린 부분만 풀면 금방 다시 묶을 수 있어. 이게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생각보다 한결 편해. 내가 많이 해 봤거든.”

“헤에...언니 똑같이 묶어줄 수 있는 거야?”

“기본 뼈대는 겔다가 도와줬지만 나머지는 예전부터 내가 다 했어. 내 머리니까 누구보다도 내가 잘 손질해야 하지 않겠니?”

곧 다시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야 했어서 안나는 망설였지만 이미 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나의 등 뒤에 가 있었다. 아토할란에 입성한 뒤부터 행동거지가 망설임 없이 시원해진 엘사의 모습을 볼 때면 안나는 속으로 대체 이런 시원스런 본심을 어떻게 숨기고 다녔을까 혀를 끌끌 차고는 했다.

“....언니는 마법 없었어도 결벽증 있었을 거 같아.”

“시덥잖은 소리 그만. 지금부터 머리 풀 거니까 티아라부터 내려놔야겠다.”

“에휴, 언니 고집을 누가 꺾겠어.”

옅은 한숨을 뱉고 나서 안나는 머리끝에 씌워진 금빛의 티아라를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위에서 내려다 본 동생의 풍성한 적금발 머리숱을 더듬거리던 엘사는 새삼 집안내력이란 대단하구나 느꼈다. 정수리 부근을 쓰다듬던 손이 부드러운 머릿결을 타고 내려와 뭉특하게 튀어나온 머리 꽁무니에 닿았다. 왕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단단히 묶여 고정된, 투구와도 같은 머리다발이 서서히 느슨해지는 감촉에서 익숙하면서도 미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마법을 들켜 도주한 북쪽 산에서 왕관을 집어던지고 머리를 풀어헤칠 때 느껴지던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듯한 청량함. 그 때와 비슷한 감정이 약간이나마 솟아올랐다.

“난 언니가 머리 묶는 게 취향인 줄 알았는데 남의 묶인 머리 풀어주고 싶을 정도로 싫어할 줄은 생각도 못했네.”

“묶는 것도 문제지만 매일 그렇게 머리 꽉 틀어 올려서 몇 시간이나 있으면 얼마나 답답한데. 지금의 너라면 누구보다 잘 알지 않아?”
“하긴, 두 시간만 지나도 뻑뻑한 느낌이 들어서 꽤나 거슬리긴 하지.”
엘사는 지난날 자신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얼음성에서는 틀어 올린 머리를 시원하게 내렸고 아토할란의 입구에서는 대충 묶은 머리마저 완전히 풀어헤쳤다. 스스로도 해방감에 이리 목이 말라 있었나 놀라웠다. 그토록 방방 뛰어놀던 안나가 생각 이상으로 원칙과 형식을 잘 견뎌내고 행동 하나하나를 조신하게 움직이던 자신이 막상 자유의 몸이 되자 거침없이 자연스러움을 뽐내다니...사실 본심은 서로 정반대가 아니었을까 묘한 심정이었다.

“어때, 한결 낫지 않니?”

긴 생머리로 내려진 안나의 머리는 언뜻 보기에 마법의 숲으로 여정을 떠난 때의 스타일과 비슷했다.

“오, 확실히 머리가 좀 가벼워 진 것 같네.”

“그렇지? 전임자의 경험은 무시할 게 못 된다구.”

“저기 언니,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음? 뭔데?”

“설마, 복장도 언니 스스로 디자인한다든지 재단한다든지 그런 건 아니지? 아, 왕실 재단사들에게 요청 정도는 했으려나?”

“대관식 날 이후로 모든 옷들은 내가 직접 다 만들어서 입었는데?”

“자, 잠깐만, 뭐라고?”

안나는 벙 찐 채 그대로 엘사를 뒤돌아보았다.

“왕실 정복은 입기 영 불편해서 말이지. 내가 추위나 더위를 크게 타는 체질도 아니니까 내 몸에 딱 맞게 입고 싶었어. 물론, 내 스스로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기도 하고 말이야.”

‘완벽’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을 만큼 모든 면에서 뛰어난 언니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일상 영역 하나하나를 기어이 자신의 손을 대려 하면 주변인들이 더 불편하기 마련이다. 안나가 왕위에 올라 생각을 바꾼 것 중의 하나는, 국왕의 신분으로 이것저것 배려하고 도와주고 하면 오히려 주변사람들은 상당히 불편해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안나는 나름 명령할 땐 명령하면서 호의를 베푸는 데 약간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 겔다가 언니 드레스룸에서 나올 때마다 왜 그렇게 불평했는지 궁금했는데 드디어 의문이 풀렸어. 언니야, 이 정도면 농담이 아니라 진짜 결벽증이야 결벽증. 병이라고.”

“너도 뭐하면 만들어 줄까? 지금 당장이라도-”

“으악, 절대 사절이야. 언니는 분명 내 어린 시절이 그립다면서 유치찬란한 장식으로 도배할 게 뻔해. 다 큰 스물 두 살 여왕한테 실례야 실례.”

“다 크기는...협상 손해 좀 봤다고 토라져서 문 걸어잠근 게 누구였던지.”

“나 참, 크리스토프도 그렇고 왜들 이리 말빨이 세진거야?”

가볍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문 너머로부터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흘러나왔다.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고 다시금 왈츠의 행진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안나는 기지개를 쭉 펴며 아쉬움을 털어냈다.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들어가야겠다. 모처럼 맞이하는 파티인데 계속 비만 쳐다보고 있을 수야 없지.”

“벌써 그렇게나 됐나? 알았어. 고개 좀 돌려볼래? 머리 다시 묶어야지.”

“아니, 그냥 이대로 놔둬도 괜찮을 것 같아.”

“정말? 나야 좋지만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을까?”

“뭐 어때? 다들 술에 거하게 취한데다 모처럼의 연회니까 별 상관 안할걸? 수군거릴 거면 뭐 맘껏 수군대라지. 언니도 신경 안 쓰고 머리 계속 풀어 내리고 있잖아?”

그래, 이래야 내 동생이지. 실로 안나 다운 말이라며 엘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빈틈없이 날카로운 국왕보다는 늘 생기 가득한 얼굴로 씩씩하게 지내는 동생 안나의 모습이야말로 그녀가 인생 내내 바라던 바였으니까.

“그러면 지각했으니 첫 번째 무대는 어쩔 수 없고, 두 번째 무대는 같이 천천히 구경하도록 하실 까요, 다섯 번째 정령님?”

자리에서 일어난 안나는 크리스토프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엘사를 향해 예를 갖추며 손을 내밀었다. 그 동작은 기품 있었고 눈빛에는 즐거움이 한가득 깃들어 있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아렌델의 여왕이시여.”

서로의 손을 굳게 잡으며, 자매는 열기가 가득한 연회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사뿐히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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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요약

1. 노잼드라 따위 아렌델 연회 입성 안시킴 ㅇㅇ

2. 병풍 왈츠 잘 춤 + 눈치도 빨라짐

3. 엘사가 여왕안나 머리 풀어줌



길어서 끊을라 했는데 뭔가 끊으면 안 될 흐름이라 걍 이어버렸음

겨울왕국2 복장으로 춤추는 짤은 검색해도 없길래 걍 저걸로 썼으니 양해좀...


쓴거 보니까 개판이네 다시는 이런거 안쓴다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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