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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문참가/순수문학] Geminidene

KSP공돌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28 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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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멀리 떨어져 바라보던 그 날의 밤하늘 아래서 너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스치는 바람이 전해준 내 편지에 네가 얼마만큼 기뻐했을까.
며칠 뒤의 겨울밤에 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노라고, 편지에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담은 내 두근거림은 잘 전해졌을까.
그날 밤의 잠자리에서도 나와 만나기를 기대하며, 너 또한 밤을 지새웠을까.
내가 노덜드라의 숲을 거닐면서 이따금 널 생각한 것과 같이, 아렌델 성을 거니는 너 또한 이따금 피오르드 너머를 바라봐 주었을까.

하지만 여왕의 일이라는 무게가, 결혼생활의 기쁨이, 떨어져 지내는 무딤이 너와 내가 함께하던 시간을 낡고 오래된 것으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낡아버린 시간 위에서 네가 느낀 기쁨이, 두근거림이, 기대가 내가 바랬던 그것이 아니라면 어찌할까.
그래서 네 남편과 함께 노덜드라로 향하는 여행길을 불안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초조함으로 기다린 건 괜한 것이 아니었을까.

마차에서 뛰어내려 한달음에 내 품에 들어오는 너의 미소는 내가 그려온 그대로인데, 어째서 마음속에 차오르는 건 널 안은 기쁨보다 더 큰 불안함일까.
내 품속에서 너의 따스함을 느끼고, 네 재잘대는 지저귐을 듣고, 네 눈에 담긴 날 바라보면서도 내 마음은 진정되지 않는 까닭은 무얼까.

오늘 밤 우리가 함께 바라보게 될 밤하늘 아래서 너는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

"혹시 언니가 보여준다는 게 뭔지 힌트 같은 건 없어요?"
별이 잘 보인다는 서쪽의 초원으로 걸어가며, 안나가 호기심 어린 말투로 허니마린에게 물었다.
"음... 저희야 당연히 뭔지 알고는 있지만..."
"그걸 미리 말해버리면 엘사님이 저흴 가만두질 않을 텐데요~."
안나와 허니마린의 사이를 라이더가 순록을 몰며 끼어들자 걸음걸이를 방해받은 허니마린이 잠시 비틀거린다.
"괜히 말해줬다가 게일이 듣고 일러바치면, 저희를 얼음 조각으로 만들지도 모른다고요~."
걸음을 바로잡은 허니마린은 씩 웃으며 순록을 몰고 앞서나가는 라이더의 뒤통수를 째려보았다.
"왜 남자들은 저렇게 철없이 구는지 모르겠네요. 나이를 먹어도 하는 건 애들이랑 똑같아요."
허니마린이 짜증 내는 얼굴로 안나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그러게요. 저희 남편도 옷만 제대로 차려입었지 하는 건 애들이랑 다를 바 없어요."
"다 들리거든요?"
안나와 허니마린이 서로 바라보며 잠시 킥킥대었다. 짧은 웃음이 지나고 허니마린이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어갔다.
"흠. 하지만 일리는 있네요. 모르고 있는 게 나중을 위해 좋을 거 같아요."
약간 실망한 안나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허니마린 말이 맞아요! 선물이란 건 모르고 받았을 때가 더 즐거운 법이에요!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고요~."
허니마린의 반대편에서 안나와 나란히 스벤을 타고 가던 올라프의 말에 안나가 놀라듯 되물었다.
"뭐? 내가? 난 걱정한 적 없어, 내가 그렇게 불안해 보여?"
"불안해 보인단 말은 안 했는데."
능청스럽게 눈웃음 짓는 올라프에게 스벤을 끌고 가던 크리스토프가 맞장구쳐주었다.
"그래, 당신 좀 불안해 보이기도 하네. 바빠서 엘사 못 본 지가 벌써 석 달은 넘었나? 내가 애처럼 군다는 것만 빼면, 다른 사람들 말이 다 맞는 거 같은데?"
"그렇게 바쁜 거 아는 사람이 업무시간에 일이 힘들다고 스벤이랑 같이 성 밖으로 도망치는 건 어른스러운 행동인가 보죠?"
안나의 퉁명스러운 일침에 예상 못 한 듯 크리스토프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 음..."
"머뭇거렸다!"
올라프가 크리스토프를 가리키며 크게 웃었다.
"야! 그땐 니가 말만 안 했으면 안나가 알아채기 전에 돌아왔을 거였다고!"
"내 코! 이리 내놔 크리스토프!"
크리스토프가 올라프의 코를 휙 낚아채 버리자 올라프가 소리를 지르며 크리스토프의 얼굴에 들러붙었다.
올라프가 그 얇은 팔을 휘적이며 자신의 소중한 당근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자, 크리스토프가 팔을 앞으로 쭉 뻗어 당근을 멀리 떨어트리려 애썼고, 스벤이 자기 앞에서 흔들거리는 당근에 아슬아슬한 입질을 반복하는 우스운 모습을 안나는 약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런 안나에게 허니마린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을 건넨다.
"안나, 당신 정말 괜찮나요?"
"...네, 아마 괜찮을 거예요."

"어휴... 저 바보들. 늑대라도 나타나면 어쩌려고 저렇게 시끄러운 거야?"
멀찍이 뒤에서 벌어지는 작은 소동을 옐레나가 한심하다는 듯이 흘겨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내들이 철없는 건 여전한 거 같군."
"어...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오? 옐레나?"
매티어스가 한쪽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옐레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젊었을 적에 숲에서 한 짓을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걸?"
"뭘 했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으흠!... 그런 건 나중에 천천히 설명해 줄 테니까..."
"매번 그렇게 말하면서 말 안 해줬잖아요?"
헬리마의 물음에 매티어스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리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당신 남편이 안개를 뚫고 나가겠다고 온갖 기행을 펼쳤었지. 땅굴도 파고, 나무도 타고. 실패할 때마다 풀죽은 목소리로 '헬리마... 헬리마... 보고 싶소...' 하고 중얼거리는 게 어찌나 우습던지..."
"네?! 제가 잘 못 들은 게 아니죠?"
"자, 자. 그 얘긴 나중에 하자고..."
매티어스가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옐레나의 입을 막아서라도 말려보려 하지만 옐레나가 지팡이로 매티어스의 손을 가볍게 밀쳐내는 바람에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그중에 최고 걸작은 투석기를 만들어서 자기 자신을 안개를 향해 쏴버렸던 거야. 그런데 자기도 막상 무서웠는지, 안개를 향해 발사되면서 크게 소리를 지르더라고. '헬리마!! 내가 간다!!!' 하고."
"하하하!!!"
"으아아아아!!!"
헬리마의 웃음소리와 매티어스의 외마디 비명이 뒤섞여 잠깐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매티어스는 자신이 30년 넘게 지냈던 마법의 숲을 꼭 봐두고 싶다는 헬리마의 요청을 들어준 것이 약간 후회되는 기분을 느꼈다.
"매티어스! 그 정도면 순록들도 놀라서 달아나겠네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라이더가 예상치 못한 소음에 자기가 탄 순록이 놀라자 진정시키며 따라붙었다. 매티어스는 헬리마의 약간은 대견해하는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일 뿐 말이 없었다.
"너 같은 어린애는 알 일 없는 어른들의 순애에 관해 이야기 중이었지."
"옐레나, 제가 좀 철이 없는 건 인정하지만, 사랑에 관해서는 전문가라고요."
옐레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다 이내 그럴 가치도 없음을 느끼고는, 그냥 저 뒤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소동의 원인에 관해 물어보기로 했다.
"뒤쪽은 무슨 일로 저렇고 시끄럽든?"
"안나 여왕님이 허니마린한테 엘사님이 준비한 선물이 뭔지 힌트를 달라고 하던데요? 좀 불안해 보이던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매티어스는 약간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라이더에게 되물었다.
"불안해하다니? 엘사님이 준비한 선물이라면 분명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옐레나는 잠깐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뭔가 알겠다는 듯이 매티어스와 헬리마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이내 씩하고 웃었다.

==========

대열의 제일 앞에서 길에 쌓인 눈을 마법의 힘으로 치워가며 홀로 걷던 엘사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혹여나 늑대라도 나올까 젊은 사람들이 대열의 앞뒤를 맡아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대열의 주변을 돌며 혹시 모를 위협을 감시하던 녹크가 저 멀리서 달려와 엘사의 옆에 다가섰다.
"고마워."
엘사가 녹크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자신들을 지켜준 데 고마움을 표하자 녹크는 귀를 한번 쫑긋거리더니 이내 몸을 휙 돌려 눈 위를 터벅터벅 걸으며 멀어졌다.
숲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고, 시야를 가리는 높은 산도 없는 초원의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 저 멀리 펼쳐진 해안선과 그 끝에 걸린 수평선 너머로 거의 모습을 감춘 태양의 마지막 여명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작년, 같은 날에 녹크를 타고 노덜드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이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그날 본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안나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맹세했던 그 자리였다.
"안나! 이쪽이야!"
마법으로 주변의 눈을 치워버리고, 뒤돌아서서 대열의 저 뒤쪽에 처져 있던 안나를 큰 소리로 불렀다.
크리스토프와 올라프의 투닥거림을 이제는 웃으며 바라보던 안나는 한달음에 달려와 언니의 옆에 섰다.
"헉... 헉... 성에서 일만 하니까 체력이 약해졌나 봐. 조금 뛰었다고 힘드네."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숨부터 돌리렴."
안나가 숨을 돌리는 동안 다른 일행들도 엘사와 안나 뒤에 도착하고, 그사이 노덜드라의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며 무수히 많은 별빛이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봐! 하늘이 깨어났어!"
올라프가 큰소리로 외치며 가리킨 곳으로 일제히 시선을 돌리자 수평선을 따라 마치 아지랑이처럼 오로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와... 아름답다... 아렌델에서 보던 오로라보다 더 멋진거 같아요!"
분명 주변의 산과 피오르드로 가려진 아렌델의 밤하늘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맞아 올라프. 정말 아름답지. 하지만 진짜 보여주고 싶은 건 아주 조금 더 기다려야돼..."
엘사가 말끝을 흐리며 안나를 바라보았다. 안나를 바라보는 두 눈에 약간의 망설임을 담고.
"안나, 네가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엘사와 안나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안나는 천천히 두 손을 내밀어 엘사의 손을 붙잡고 어루만졌다. 짧은 침묵 뒤에 안나가 입을 열었다.
"언니가 주는 선물이라면 난 언제나..."
"우와~! 저거 봐!!"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올라프의 커다란 외침에 안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짜증 섞인 눈빛으로 올라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올라프와 크리스토프, 스벤이 바보 같은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어딘가를 바라보는 모습과 무언가 경이로운 것을 바라보는듯한 매티어스, 소녀처럼 눈빛을 반짝이는 헬리마를 보며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불타오르는 오로라가 은하수를 휘감고 별빛이 오로라를 따라 물결치는 서쪽 밤하늘.
수평선을 거니는 쌍둥이의 어깨 위에서 오로라의 물결에 지쳐 잠시 앉아 쉬던 별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듯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밤하늘의 저 끝까지 빛의 길을 따라 비처럼 흐르는 유성우.
땅 위에 반짝이는 두 눈빛은 그 광활함을 차마 다 담을 수 없어 흐르는 눈망울 아래로 나머지를 채워 넣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이 턱밑까지 흘러내리자 안나는 옷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유성우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문득, 안나는 자신의 눈에 새겨진 광경 속에서 한 가지 모자란 것이 있음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자 눈에 들어오는 건, 눈가에 눈물이 가득한 채 언제부턴가 자신을 바라보던 언니의 모습이었다. 쏟아지는 유성우 아래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언니가 있었다.
"언니."
"응."
"고마워... 정말 멋진 선물이야."
"...나도 고마워 안나."
"뭐가?"
"기뻐해 줘서."

==========

스벤이 싣고 온 땔감으로 모닥불을 피우고 준비해온 돗자리를 적당히 모닥불 주변에 펼친 후 다들 둘러앉아 밤하늘을 감상하고 있었다. 수평선에서 서서히 머리 위로 올라오는 쌍둥이자리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나가는 우성우는 마치 빛이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허니마린이 준비해온 따뜻한 차를 홀짝이던 헬리마가 나지막이 말했다.
"정말 아름답네요."
싱긋 웃는 헬리마를 바라보며 매티어스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멋쩍은 웃음을 짓고는 차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훌륭한 군인이지만 자신 앞에서는 이렇게 한없이 어려지는 매티어스의 모습을 헬리마는 언제나처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옐레나가 말한 건 전부 사실인가요? 숲에 있는 동안 제 이름을 그렇게 애타게 불렀다는 거요."
예상치 못한 헬리마의 질문에 입에 머금었던 차를 잘못 삼킨 매티어스가 잠깐 캑캑대자 놀란 헬리마가 매티어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모닥불 주변의 시선들이 매티어스를 향하자 매티어스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전 괜찮습니다... 차를 잘못 삼켰어요."
매티어스는 주위를 안심시키고 잠시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래. 뭐, 당신이 생각하는 그대로였소. 숲에 갇혀있는 동안 당신이 너무나 보고 싶었으니까."
자기가 한 말에 스스로 낯간지럽다고 느끼면서 매티어스는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런 모습을 헬리마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실없는 웃음을 짓던 매티어스는 무언가 생각난 듯 잠깐 뜸을 들이다 보는 사람들이 약간 느끼하다고 생각할만한 눈빛을 띠며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한 박자 빨리 먼저 말을 꺼낸 건 헬리마였다.
"아무리 분위기 좋은 곳이라고 하지만..."
나오던 말을 다시 삼키는 매티어스를 바라보며 헬리마의 얼굴에 소녀와 같은 장난기가 돈다.
"저 하늘의 별만큼 당신을 사랑해요... 같은 멘트를 듣는 건 좀 별로 일 거 같네요."
"뭐? 아니. 내가 언제. 아니야, 그런 말은 생각한 적 없는데..."
당황한 매티어스가 시선을 돌리고는 횡설수설하기 시작하자 헬리마는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돗자리를 짚고 있는 매티어스의 손등에 손을 포갰다. 마치 헬리마의 침착함이 전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매티어스도 입을 다물더니 자세를 고쳐앉고 손을 맞잡은 후 고개를 돌려 헬리마를 바라보았다.
"이럴 때는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헬리마가 맞잡은 손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요."
꼭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보태며 헬리마는 시선을 다시금 하늘을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유성우가 반짝이는 걸 보던 매티어스도 이해했다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
자신도 유성우를 올려다보기 위해 고개를 들던 매티어스의 시선에 서로 말없이 나란히 앉아있는 자매의 모습이 들어왔다. 모닥불을 등지고 서쪽하늘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그녀들을 잠깐 바라보며 정말 헬리마의 말대로라고 생각한 매티어스는 이내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까부터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기만 하는 자매들을 지켜보던 옐레나에게 허니마린이 다가와 차를 건넨다.
"더 드릴까요?"
"아니,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괜찮아."
옐레나는 허니마린을 향해 살짝 웃으며 들고 있던 컵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아직 반 넘게 남아있는 차에서 따뜻한 김이 피어나고 있었다. 옐레나의 왼편에 앉으며 허니마린이 말했다.
"엘사가 숲에서 지내게 된 후로 녹크를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닌 게 다 이유가 있었네요."
차를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허니마린에게 옐레나도 마찬가지로 하늘에 시선을 두고 담담히 답했다.
"꼭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
"흠...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난 잘 모르겠는데요?"
옐레나의 오른편에 앉아 코코아가 든 컵을 손에 쥐고 입가를 검게 물들인 올라프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옐레나에게 물었다.
"이런 멋진 선물을 준비하는 거 말고 숲을 돌아다닐 이유가 있나요?"
"네가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될 거 같은데."
"올라프, 엘사님이 라이딩을 즐기는 건 당연한 거라고~."
모닥불에 던져넣을 장작을 옮기던 라이더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뒤를 지나며 끼어들었다.
"순록을 타고 숲에서 라이딩하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모를걸? 하물며 저렇게 빠른 물의 정령을 타고 다니는 건 상상도 못 할 만큼 멋질 거야."
라이더는 녹크를 타고 숲을 누비는 자신의 모습을 잠시 상상하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모닥불 위에 걸어둔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내던 크리스토프도 맞장구쳤다.
"그래, 나도 아렌델 성에서 일이 힘들 때면 스벤을 타고 도망... 아니, 북쪽 산 이곳저곳을 누빈다고. 얼마나 재밌는데."
차가든 컵을 쥐고 다가온 크리스토프와 라이더가 주먹인사를 하며 서로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윙크했다. 그런 모습을 한심하게 흘기고는 다시 올라프를 바라보며 옐레나가 말한다.
"그래, 저 녀석들보단 네게 말해주는 게 더 낫겠군."
"그럼요! 크리스토프는 툭하면 도망 다니지만 전 항상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공부한다고요."
"야! 나도 열심히 하거든?"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올라프에게 크리스토프가 반박하는 모습을 보며 옐레나는 피식 웃었다.
"다시 떨어져 지내다 보니 둘은 서로 자기 자신의 감정에 의심을 품고 있던 거야. 엘사는 그걸 떨치고 싶은 마음에 숲을 방황한 거고."
"의심한다고요? 뭘요?"
올라프와 허니마린이 잠자코 듣는 가운데 올라프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자매를 바라보면서 옐레나가 말을 이어갔다.
"한쪽은 자기가 동생에게 해주는 것들에 동생이 기뻐해 줄까를, 다른 한쪽은 언니에게 자신의 고마움이 제대로 전해지고 있을까를 의심하는 거지. 쉽게 말하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그거 되게 바보 같은 생각이네요."
올라프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오자 약간 놀란 옐레나가 눈을 크게 뜨고 올라프를 바라보며 물었다.
"바보 같다고?"
"네! 제가 쉽게 설명해줄게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올라프가 설명을 시작했다.
"엘사가 그 어떤 멋진 선물을 준다 해도 안나에게는 엘사야말로 가장 소중한 선물일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걱정한 엘사는 바보인 거죠."
"그럼 안나는?"
옆에서 듣던 허니마린의 물음에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이 올라프가 대답했다.
"안나가 어떤 반응을 하던 엘사에게 안나는 언제나 소중한 동생인걸요! 안나가 뭐라 하든 엘사는 절대 자기 동생에게 실망 같은 거 안 해요! 안나도 이런 것도 모르고 있다니 정말 한심하네요."
무언가 결심한 듯 올라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손에 든 컵에서 코코아가 조금 흘러넘쳤다.
"안 되겠어요. 제가 가서 제대로 가르쳐주고 와야겠네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단다."
옐레나가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올라프를 한 손으로 막아 세운 것도 모자라 힘으로 주저앉히자 아까보다 더 많은 코코아가 컵 밖으로 넘쳐 돗자리에 떨어졌다. 올라프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옐레나에게 뭔가 말하려 하자 옐레나가 저쪽을 보라는 듯 손을 가리켰다. 옐레나가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올라프의 눈에 들어온 건 나란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엘사와 안나가 막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고 웃는 모습이었다.
"네가 말한 건 저 둘도 아까 전부터 알고 있을 거다. 굳이 가르쳐주러 갈 필요는 없어."
"네? 서로 말도 안 하는데 어떻게 그걸 안다는 거죠?"
"이상한 데서 바보 같은 눈사람이군."
"그래도 올라프, 너 오늘 뭔가 똑똑해 보이는데? 말하는 게 뭔가 지적인걸?"
뒤에서 듣고 있던 크리스토프의 칭찬에 올라프가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러게요, 떨어지는 운석들을 보고 있으니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가 봐요."
크리스토프의 옆에서 라이더가 크게 웃으며 올라프에게 말했다.
"하하하, 그래도 좀 더 공부해야겠는걸? 저건 운석이 아냐."
"네? 운석이 아니면 뭔데요?"
"저건 별똥별이야!"
"저건 혜성이야!"
크리스토프와 라이더가 동시에 무슨 바보 같은 말을 하느냐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뭐?"
"뭐?"
옐레나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으로 두 남자를 째려보았다.

==========

모닥불로 쓸 땔감도 다 떨어지고, 저녁 시간에 맞추기 위해 숲의 야영지로 돌아가는 일행들의 머리 위로 여전히 유성우가 하늘을 뒤덮는 가운데 땅에서는 두 남자의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건 혜성이라고!"
"별똥별이라니까!"
크리스토프와 라이더가 으르렁대는 사이로 올라프가 끼어들었다.
"에이~. 저건 운석이죠!"
"아냐! 혜성이라고!"
"좀 조용히 해! 별똥별이라니까!"
옆에서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스벤은 더는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혼자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남자들은 참...바보같네요."
"그러게요."
안나와 허니마린은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지으며 잰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아까랑은 다른 사람이 됐네요?"
"네?"
허니마린의 질문의 의미를 안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유성우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뭔가 불안해 보이더니, 지금은 세상 행복한 표정이잖아요."
말 그대로 안나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그러게요.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요."
안나는 다음에 할 말을 머릿속으로 잠시 정리했다.
"아까는... 듣기에 바보 같은 말일 테지만, 언니의 선물을 봤을 때... 제가 언니가 기대한 만큼 기뻐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라고 걱정했었어요."
이해한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짓는 허니마린에게 안나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시다시피 언니랑 저는 어릴 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어요. 언니는 그게 자기 때문이라는 자책을 자주 했고요. 그래서 떨어져 지내었던 동안 못 해준 것들을 다 해주고 싶어 해요."
안나는 시선을 멀리 늘어뜨리며 과거를 회상했다. 즐거웠던 기억에 작게 킥킥대며 웃었다.
"성문이 열리고 맞는 제 첫 번째 생일 때는 감기에 걸렸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싶어 했었죠. 그 뒤로도 무엇이든 저부터 챙겨주고, 저와 나누려고 해왔어요. 물론, 언니가 제게 해주는 그 모든 것들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지만..."
이윽고 안나의 시선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대열의 선두에 선 엘사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다시 떨어져 지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나 내가 느끼는 고마움이 언니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서 언니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몇 달 만에 만난 언니가 야심 차게 준비한 선물인데 내 고마움이 부족해서 언니를 실망하게 하진 않을까? 그래서 괜히 더, 더 멋진 선물을 준비해야겠다고, 더 좋은 걸 주고 싶다고 안간힘을 쓰게 만드는 건 아닌가... 그런 불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무언가 뜨거운 것이 양 눈을 감싸는 것을 느끼며 안나는 허니마린을 바라보았다. 허니마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죠?"
"...네. 그 말대로네요."
비록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됐지만, 안나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언니와 눈이 마주쳤을 때, 서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곧 그런 고민은 쓸데없다는 걸 알게 됐고요."
허니마린이 건네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 안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의 눈에 비치는 건 유성우보다 더 멋진 거였죠. 제게는 언니가 있고, 언니에게는 제가 있어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무엇에도 연연할 필요 없는 최고의 선물이에요."
한 줄기 바람이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는 것을 바로 하고 안나는 이내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런 선물을 받고 실망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매티어스와 헬리마는 서로의 한쪽 손을 꼭 맞잡은 채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아직도 유성우의 여운이 남아 감상에 젖은 모습이었다.
"정말 멋진 걸 봤네요."
"그러게... 예전에 숲에 갇혀 있었을 땐 안개 때문에 저런 걸 볼 기회도 없었지. 지금 생각하니 아쉬운걸."
헬리마가 의외의 것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매티어스를 바라본다.
"숲에 있었을 때 이야기를 처음으로 하시네요."
매티어스도 헬리마를 바라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고생한 이야기밖에 없는걸. 당신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어."
잠깐 서로 눈을 마주치다 부끄러워졌는지 매티어스가 먼저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주제를 돌리려 애쓰기 시작했다.
"흠흠, 으흠. 그런데 아까 라이더가 말한 것과는 다르게 여왕님은 불안한 모습 같은 건 전혀 없는 거 같지 않나? 옐레나?"
뒤쪽에서 걸어오는 안나 일행을 잠깐 고개 돌려 바라보고는 옐레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자네도 안개가 걷히고 아렌델에 돌아갈 때는 안나 여왕님이랑 똑같았었잖아?"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하자 매티어스는 옐레나가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싶어 불안한 말투로 되물었다.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헬리마의 기대에 못 미칠까 봐, 실망하게 할까 봐 애처럼 불안해하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구먼."
황급히 헬리마를 바라보는 매티어스의 얼굴에는 당황함과 부끄러움이 역력했다. 매티어스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 먼저 입을 연 것은 헬리마였다.
"아뇨. 내가 어떤 기대를 했든 상관없이, 당신은 내가 생각한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와 줬어요."
당황하는 매티어스와 달리 헬리마의 얼굴은 침착했다.
"물론 저도 30년간 당신을 기다리며 혼자 걱정하고, 혼자 기대하고, 혼자 불안해했어요."
헬리마가 잠시 걸음을 멈춰서서 매티어스의 뺨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당신이 제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그런 것들은 다 쓸모없어졌죠."
뺨을 어루만지던 손으로 매티어스의 고개를 끌어당겨 빈 뺨에 입을 맞추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당신으로 충분해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요."
헬리마는 싱긋 미소지으며 굳어버린 매티어스를 두고 옐레나와 함께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깐 굳어있던 매티어스의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이내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잘 들어봐! 혜성이란 건 저렇게 별이 떨어지면서 길게 늘어지는 걸 말하는 거라고!"
"그게 별똥별인 거잖아!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오! 나 그거 알아! 아이스크림 이름이지?"
"흑...헬리마!...사랑해!...끄흡...어흑..."
옐레나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긴 한숨을 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수많은 유성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옐레나. 조금 궁금한 게 있는데요."
흐느끼는 매티어스를 뒤로하고 어느새 옐레나 옆까지 온 헬리마가 물었다.
"제가 아는 유성우라는 건 이렇게까지 많은 유성이 떨어지지는 않는 거로 알고 있거든요. 이게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건가요?"
헬리마의 물음처럼 숲이 안개에 덮이기 전에도 유성우를 몇 번이나 봐왔던 옐레나도 이런 건 처음이었다.
"해마다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이 정도는 아니지, 당장 작년에도 이렇게 많이 떨어지진 않았으니까."
저 앞에서 혼자 앞장서 걷는 엘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옐레나가 말을 이어갔다.
"딱히 마법을 쓰신 것 같지는 않고... 그저 올해는 운 좋게도 유난히 많이 떨어졌다고 봐야겠지."
"엘사님도 이렇게 많이 떨어지는 걸 보면 놀랄 법한데도 그런 기색은 없으시던데요."
옐레나는 이번엔 고개를 돌려 대열의 제일 뒤에서 사내들의 말싸움을 보며 웃고 있는 안나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유성우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겠지."
어느새 일행의 머리 위까지 올라온 쌍둥이자리는 사방으로 빛을 뻗으며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

어젯밤 우리가 함께 바라본 별빛 아래에서 너와 나는 같은 생각을 했었구나.

네가 허니마린과 나눈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와 내 귀에 작은 속삭임이 되었을 때, 내색하진 않았지만 너의 그 고백이 정말 고마웠었어.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러나온 너의 진심이 두근거리던 내 심장을 차분하게 만들었거든.
그래서 그날 밤의 잠자리에서 난 너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편히 잠들 수 있었지.
내가 노덜드라에서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숲을 방황한 것처럼, 너도 불안과 초조함으로 아렌델 성을 배회했던 거구나.

서로가 짊어진 책임감이, 새로운 삶의 낯섦이, 떨어져 지내던 거리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잊게 했던 거야.
흘러가게 될 시간 속에서 너와 난 이제 더는 불안해하지도, 초조해할 필요도 없어.
서로에게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너와 나뿐이니까. 그보다 더 큰 건 바랄 필요도 없고, 그보다 더 큰 건 있지도 않다는 걸 이젠 알고 있으니까.

다음날 마차를 타고 막 떠나려던 네가 갑자기 뛰어내려 날 향해 웃으며 달려올 때, 난 너무나 기뻤어.
너의 품에 내 따스함을 나누고, 내 소곤대는 사랑을 들려주고, 내 눈에 널 한가득 담으면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을 또 한 번 받은 거야.

앞으로의 밤마다 우리가 함께 바라보게 될 별빛 아래서 너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할 테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밤하늘의 저 별에서 내가 너의 사랑을 느끼듯, 너 또한 그러기를. 그 별빛이 비처럼 내려와 너의 마음에 담기기를.

사랑해, 내 동생.








----------


작가의 말.


이 글은 처음엔 짧은 감성문학으로 시작했었습니다. 초본은 처음과 마지막 엘사의 독백, 중간의 엘사와 안나가 별을 바라보는 장면뿐이었고 일체의 대화도 없었습니다만, 감성문학에서 순수문학으로 변경하면서 주변 인물들을 추가했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하려다 보니 처음 생각했던 아련한 감성이 쓸데없이 늘어진 감이 있습니다.
제목의 'Geminidene'는 쌍둥이자리 유성우를 의미하는 노르웨이어이고, 중요한 듯하면서 별로 중요하지는 않은, '토끼발'과 비슷한 존재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배치해두었지만, 그저 상징일뿐입니다. 수많은 유성우 중에 굳이 쌍둥이자리 유성우로 설정한 것도 그냥 쌍둥이라는 어감이 맘에 들어서 그렇게 한 것이고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실제 유성우라는 것은 작 중의 묘사와는 아주 다릅니다. 분 단위, 잘해봐야 수십 초 간격으로 한 개씩 떨어지다 보니 '이제 더 안 떨어지나 보다.'라고 생각할 때 즈음 하나가 떨어지고, 다시 끝이 온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또 하나가 떨어집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띄엄띄엄 떨어지다 결국 시간을 넘어 길면 사흘은 내리 떨어지는 게 유성우입니다.
제가 처음 대관을 참석하러 갔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2014년 코엑스 메가박스였는데 그때 느낀 감정들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덕질을 해본적은 있었지만, 수백 명의 사람이 겨울왕국이 그저 좋아서 한자리에 모여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경험은 다시 할 수 없을 소중한 기억이었습니다. 지금은 기억의 한켠에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최근의 뉴스에서 유성우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문득 '아, 그때의 우리는 유성이 떨어지는 걸 바라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하나의 유성이 떨어졌을 때는 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수억의 사람들이 환호하고 열광했습니다. 겨울왕국이란 이름의 첫 번째 유성이 찬란한 빛을 내며 사람들 앞에 떨어졌을 때 세상이 변했고 저는 이 아름다움에 마음을 뺏긴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유성이 계속 떨어질 때마다 기록이 세워지고, 큰 상을 받고, 또다시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저는 마치 이 모든 영광이 영원하리라는 믿음 속에 그 찬란한 유성우를 눈에 담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와 같은 믿음을 갖고 하늘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의 무리가 보였습니다. 겨울왕국 갤러리라는 이름 아래 모인 무리 속에서 우리는 유성우의 빛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유성우도 끝이 있듯이 겨울왕국의 영광도 영원하지는 않다는 건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첫 번째 유성에 환호하던 수억의 사람들이 다음 유성에는 수천만으로, 그다음은 수백만으로, 수십 개의 유성이 떨어진 후에는 처음의 흥분도, 열광도, 관객들도 모두 사라진 뒤였습니다. 제 곁에는 그저 한 개만 더, 한 번만 더 그 빛을 보고 싶다고 애원하는 수백 명의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때의 겨울왕국 갤러리의 사람들이 대관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 대관이다.'라고 불안한 말을 하던 것은 유성우의 끝이 다가오는 것에 불안하였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세상이 하늘을 바라보지 않음에도, 저를 포함한 겨울왕국 갤러리 일동은 떨어지는 유성우가 끝나가는 것을 슬프게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갔던 대관은 인천 송도의 한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대관이었습니다. 그때의 저 또한 이미 겨울왕국을 처음 볼 때의 그 감정은 퇴색한 지 오래였고, 순전히 집과 가깝다는 이유로 참가했었습니다. 그 이후에 몇 번인가 대관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었지만 모두 참가하지 않았었습니다. 겨울왕국에 대한 제 감정은 이미 사그라든 것만 같았고, 이제는 일 년에 한두 개씩만 떨어지게 된 그 유성의 약한 빛은 제게 더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유성우의 끝이 찾아왔다는 사실에는 너무나도 큰 슬픔을 느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왕국2가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이미 제 마음속에 겨울왕국에 대한 감정은 없었을 터임에도 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그 많은 굿즈를 쓰지도 않고, 보지도 않을 거면서 보관함에 고이 담아 버리지도, 팔지도 않던 이유와 같고, 글이나 댓글을 남기지도 않으면서 겨울왕국 갤러리를 수시로 들어가 보던 것과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마치 전해지지 못한 편지가 먼 길을 돌아 오랜 시간 끝에 도착한 것처럼, 제 마음 한켠에 잠들어 있던 겨울왕국과, 그것을 사랑하던 모든 사람을 향한 환정때문이었을 것입니다.
6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한번 유성우가 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분명 유성우를 쫓으며 극장을 찾고, 대관을 참석하던 그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끝을 지나 그 너머의 시간은, 더는 겨울왕국이 극장에 걸리지 않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겨울왕국 갤러리를 찾는 발걸음이 뜸해진 후에도, 겨울왕국이란 이름의 별빛은 제 마음 한켠에 작지만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 한켠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 주었습니다.
2019년에 찾아온 겨울왕국의 두 번째 유성우 또한 저는 사랑합니다. 비록 그 유성우는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너무나 일찍 그쳤습니다만, 지금은 겨울왕국에 대한 사랑과, 겨울왕국 갤러리에서 겨울왕국을 사랑하고 즐기는 모든 분에 대한 추억이 제 마음 한켠에서 빛나고 있음을 알기에 예전처럼 세상이 끝난듯한 슬픔은 느끼진 않습니다. 물론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제 안의 작은 빛을 느끼는 것처럼,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도 겨울왕국과 그것을 즐겨온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사랑이 작게나마 빛나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유성우가 잠시 멈춰버린 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코로나와의 전쟁은 아직 계속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6년을 기다려왔고, 누군가는 처음 본 순간 마음을 빼앗겼던 2019년의 그 찬란한 유성우는 지금은 멈췄지만, 언젠가 다시 한번 작게나마 그 빛을 발하며 세상을 비춰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 유성을 보기 위해 우리가 다시 모였을 때는 여러분 각자의 마음속에 담긴 겨울왕국에 대한 애정이 더욱 밝고, 따스한 빛으로 빛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두 번째 유성우가 진정 끝을 고한 뒤에도 세상 어딘가에 자신과 같은 빛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추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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