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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밤/문학] 행복한 피서

ㅇㅇ(27.126) 2021.07.12 00:29:20
조회 258 추천 14 댓글 14

 라톨라이는 지루한 얼굴로 수면에 팔을 담갔다. 평소라면 어부인 아버지와 같이 낚시를 하는 걸 좋아했겠지만 오늘은 영 아니었다.


 정말 좋은 날씨다. 햇빛 속에는 온몸을 간질이게 만드는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눈과 바람에 파묻혀 살아가는 아렌델 인들에게 따사로운 햇살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그 때문일까. 저 멀리 보이는 해안선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예상하건대 돗자리를 펴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것이겠지.


 라톨라이는 피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누구는 휴일에도 일을 하고 있는데. 거 참.


 “라톨라이. 다른 데 보지 말고 찌나 잘 봐라.”


 반대편 뱃전에 앉아 낚싯대를 보고 있던 아빠가 불쑥 말했다. 라톨라이는 입을 비쭉 내밀었다. 또래에서 라톨라이보다 낚시를 잘하는 아이는 없었다.


 수면 아래에서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기포만 봐도 어떤 물고기인지, 있다면 몇 마리나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배를 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아빠. 그보다 뭐 잊은 거 없어요?”


 아빠는 뒤를 힐끗 보더니 주변을 훑어봤다.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밧줄, 튼튼하고 거대한 노, 간식으로 먹을 음식 등등. 잊고 온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물이라면야 이미 호수에 펼쳐 놓은지 오래였다. 이따 돌아갈 때 거두면 될 일이었다.


 “우린 왜 안 쉬냐는 거예요. 저기 보세요. 다들 마음껏 피서를 즐기고 있잖아요. 오늘만큼은 쉬면 안 돼요?”

 

 “쉬면 뭐 하냐. 다들 쉴 때 일해야 돈을 더 버는 법인데.”


 “그럼 일요일 때는 왜 쉬어요? 그때도 일하지.”


 “그땐 엄마 만나러 가야 하니까.”


 라톨라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엄마 만나봤자 재미 하나도 없었다. 비석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얘기하는 아빠를 보면 이해도 잘 안 갔다. 


 하지만 라톨라이는 속내를 얘기하지 않았다. 아빠가 들으면 화낼 게 분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도 왠지 나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라톨라이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 낚싯대를 손으로 툭툭 쳤다. 낚싯바늘에 걸린 미끼가 흔들리면 물고기가 잘 물기 때문이다. 해가 머리 위로 올라갔다.


 “잠깐 쉬러 가자.”


 마침내 아빠가 입을 열었다. 라톨라이는 볼멘소리를 내며 배 중앙에 앉았다. 아빠가 노를 저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아빠는 노질에 거침이 없었다. 그 오큰 아저씨와도 맞먹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었다.


 배가 시원하게 나아갔다. 수면에 주름살이 번져나갔다.


 배가 육지에 도달했다. 아빠가 말뚝을 쿵쿵 박고는 밧줄로 묶었다. 그리고 그늘진 곳으로 가더니 벌러덩 누웠다. 라톨라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옆에 앉았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톨라이는 반쯤 뜬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빠가 장쾌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저 멀리서 일광욕을 즐기던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볼 정도였다.


 라톨라이는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게 뭐야. 다들 쉬는데 우리만 일하고 있어. 나도 아빠랑 같이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고 싶다고!’


 마음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동굴에 퍼진 메아리처럼 점점 퍼져나갔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라톨라이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소중한 하루가 덧없이 지나갈 것 같았다.


 라톨라이는 아빠를 힐끗 쳐다봤다. 남의 속도 모르고 쿨쿨 잘도 자고 있었다. 라톨라이는 눈치를 보더니 자리를 박찼다. 그리고 도시를 향해 있는 힘껏 달려갔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아빠한테 걸리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도시에 들어서고 길거리를 거닐자 근심 걱정이 싹 사라졌다.


 “라톨라이!”


 누군가 라톨라이를 불렀다. 친구 에피네였다. 에피네는 부모님 손을 잡고 사탕을 핥고 있었다.


 “너네 아빠랑 같이 낚시하고 있지 않았어? 다 끝난 거야?”


 라톨라이는 눈동자를 굴리다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니 왠지 창피했다.


 “어, 응. 다 끝났지. 나도 이제 놀 수 있어. 같이 놀래?”


 “미안. 엄마 아빠랑 캠핑 가기로 했거든. 나중에 놀자.”


 에피네 부모님은 라톨라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라톨라이는 부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나도 캠핑 가고 싶다.’


 그 이후 라톨라이는 에피네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의 신난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그때마다 라톨라이의 피서를 향한 열망은 깊어져만 갔다.


 ‘돌아갈까.’


 아빠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돌아갈거면 지금 돌아가는 게 나았다. 그래야 덜 혼날지도 모를 테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봤자 결국 낚시 말고는 할 게 없을 거기 때문이다. 예상하기 뻔한 미래만큼 지루한 건 없었다.

라톨라이는 슬픔에 찬 얼굴로 바짓춤을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너도 바닥에 박힌 돌이 몇 개인지 세고 있어?”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쾌활한지 듣기만 해도 힘이 솟아났다. 뒤를 돌아본 라톨라이는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올라프!”


 라톨라이는 올라프를 꽉 안아주었다. 올라프가 특유의 웃음소리를 흘렸다.


 “나 안으면 차가울 텐데. 아니, 네가 안았으니 이제 따뜻하겠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


 “돌바닥에 박힌 돌을 세고 있었어. 지금까지 578개였고, 네가 밟고 있는 돌을 세면 579개야.”


 “그걸 왜 세고 있어?”


 “재밌으니까!”


 올라프가 이보다 더 재밌는 일이 어디 있겠냐는 듯 활기차게 말했다. 라톨라이도 같이 웃었다.


 “그럼 넌 여기서 뭐하고 있는데?”


 올라프가 물었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라톨라이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올라프가 놀란 얼굴로 등을 토닥였다.


 “말해 봐. 들어줄게.”


 “그게 있지···.”


 라톨라이가 근처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아 지금껏 있었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올라프는 땅에 닿지 않는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경청했다.


 “-그래서 이렇게 나와 있어. 아빠 몰래 말이야.”


 “음음. 그렇구만.”


 “하지만 이왕 나온 거 돌아가고 싶지 않아. 제대로 놀고 싶다고.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 올라프.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너라면 오늘 같은 날 재밌게 놀 수 있는 걸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아.”


 “좋아. 혼자 노는 것보다 친구랑 같이 노는 게 더 재밌으니까. 내가 널 즐겁게 해줄게!”


 올라프가 라톨라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라톨라이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갔다. 둘이 도착한 곳은 한 야채 가게였다.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는 라톨라이에게 올라프가 눈썹을 위아래로 들썩여 보였다.


 “잘 봐.”


 올라프가 외상으로 당근 하나를 가져갔다. 그러더니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흔들었다.


 “스벤! 여기 맛있는 당근 있다!”


 처음에 라톨라이는 뭘 하는 건지 몰랐다. 이게 뭐가 재밌는 걸까?


 그러나 저 멀리서 미친 듯이 달려오는 순록을 보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순록 뒤에는 금발 남자가 허겁지겁 쫓아왔다.


 “안 돼! 올라프, 내가 그거 하지 말랬잖아!”


 비명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라프는 라톨라이의 손에 당근을 쥐어주더니 팔을 잡아끌었다.


 “도망쳐, 라톨라이!”


 라톨라이와 올라프는 도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빨랫줄에 걸린 빨래가 얼굴에 걸리지를 않나, 외발자전거를 타며 곡예를 펼치는 곡예사를 떨어뜨리지를 않나, 아렌델의 깃발이 펄럭이는 동상 위에 올라가지를 않나.


 끝내 스벤이라는 순록에게 당근이 뺏겼지만 라톨라이는 너무 재밌어서 뺏긴 줄도 몰랐다. 그동안 따라다니느라 지친 금발 남자는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못된 꼬맹이들. 너네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끌어야 할 수레가 아직 한가득이란 말이야.”


 “미안, 미안. 크리스토프. 내가 나중에 안나 생일 때 이벤트 도와줄게.”


 “그거야 당연한 거잖아. 아무튼 당근 가지고 장난치지 마. 적어도 오늘은 안 돼. 알았지? 꼬맹아. 넌 가서 가족들이랑 같이 놀렴. 이 녀석이랑 놀면 사고만 저지르니까.”


 “꼬맹이 아니고 라톨라이예요. 어, 저, 그러니까···. 폐하? 아닌데, 어···.”


 크리스토프는 기운차게 웃더니 무릎을 쪼그렸다.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도 돼. 라톨라이.”


 “미안해요, 아저씨. 바쁘신 줄 몰랐어요.”


 크리스토프는 사과를 받아준 뒤 자리를 떠났다. 둘만 남게 된 올라프와 라톨라이는 마주 보았다. 올라프가 활기차게 말했다.


 “이제 뭐하고 놀까?”


 “음. 좋은 생각 있어?”


 라톨라이가 고민에 찬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올라프가 으흥흥 음흉하게 웃었다. 그 뒤로 둘은 사방을 돌아다녔다. 극장에 가서 연극 구경도 하고 오큰의 상점에 가서 사우나 체험도 했다.


 나중에는 성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그냥 들어가면 안 되니 올라프만 아는 비밀 통로로 통해서 갔다. 라톨라이는 걸리면 어떻게 하나 겁을 먹었지만 곧 아무렇지 않았다. 워낙 넓어서 잘 들키지도 않을 것 같았다.


 올라프는 라톨라이에게 성 구경을 시켜줬다. 액자로 가득찬 방에 들어가기도 했고 장식도 없는 굉장히 큰 방에 들어가기도 했다. 올라프는 큰 방 한가운데에 섰다. 마치 스케이트를 타는 것처럼 바닥에 미끄러져 갔다.


 “있잖아. 좋은 생각 났다. 우리 숨바꼭질 하자. 내가 숨을 테니까. 네가 찾아. 알았지?”


 “여기서?”


 “여기랑 저 복도. 자, 숨는다!”


 “자, 잠깐. 올라프 여기 너무 넓은···.”


 라톨라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이었다. 올라프는 문을 닫기 직전 손을 흔들여 보였다. 멍하니 있던 라톨라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혼자 있게 되면 길을 잃을 게 뻔했다. 무엇보다 올라프 없이 혼자 있는 걸 누가 본다면 바로 쫓겨날 것이다.


 라톨라이는 급히 쫓아갔지만 이미 올라프는 모습을 감춘 뒤였다. 소리내어 부르고 싶었지만 누가 올까봐 그럴 수 없었다.


 라톨라이는 괜히 허리를 굽힌 모습으로 살금살금 걸었다. 조심히 걸으려고 한 거였으나 다른 사람이 보면 도둑으로 오해할 만한 모습이었다.


 “올라프? 나 못 찾겠어. 그러니 나와줘.”

 

 애절한 부름에도 올라프는 나오지 않았다. 어찌나 잘 숨었는지 그 크고 기다란 코도 보이지 않았다. 같은 곳만 빙빙 돌던 라톨라이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라톨라이는 어쩔 줄 몰라했다. 이대로 들키면 끝이었다. 특히 아빠가 이 사실을 안다면 된통 혼이 날 게 분명했다. 라톨라이는 급한 대로 근처 방에 들어갔다. 방은 굉장히 넓었다. 그 중 침대가 눈에 띄었는데 두 사람이 누워도 충분할 만큼 컸다.


 저 침대 밑이라면 들킬 일이 없어 보였다. 문고리를 꼭 잡고 있던 라톨라이는 뛰다시피 움직였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올라프?”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라톨라이는 숨을 죽였다. 정말이지, 큰일이 날 뻔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들켰을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숨은 라톨라이는 두 손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바닥을 두드리는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두 주인은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그에 따라 라톨라이의 시선도 따라갔다.


 “이상한걸. 소리가 났는데.”


 구두 주인은 잠깐 서성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라톨라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밖으로 나왔다. 얼른 올라프를 찾아야 했다. 숨바꼭질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넌 누구니?”


 라톨라이의 몸이 굳었다. 몸뿐만 아니라 생각도 굳었다.


 분명 문이 닫혔었다. 그래, 문이 닫힌 건 사실이었다. 확실히 들렸으니까. 하지만 문만 닫았을 뿐 여전히 방에 있던 모양이었다. 라톨라이가 머리를 힘겹게 돌렸다. 그곳에 뒷짐을 지고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어, 어, 그, 여, 여···.”


 “여왕님?”


 “여왕님!”


 라톨라이는 허리와 목을 동시에 숙였다. 이게 예의인지는 모르지만 이것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라톨라이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 누구도 아닌 여왕 폐하께 걸리고 말다니.


 간신히 눈동자를 돌려 방을 확인한 라톨라이는 얼굴이 하얘졌다. 저리 멋있는 침대가 왜 여기에 있는지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다. 여왕 폐하의 방이 아니고서는 누가 저런 침대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네가 누군지 물었어.”


 목소리는 상냥했다. 하지만 라톨라이는 겁을 잔뜩 먹었다.


 ‘감옥에 갇힐 거야. 응. 갇힐 게 뻔해. 맙소사. 내가 왜 성에 들어왔을까?’


 “저, 전 라톨라이라 해요. 어, 여왕님.”


 “라톨라이. 고개를 들렴.”

 

 “하지만 어, 전···.”


 “여왕의 말을 어길 셈이니?”


 “아뇨!”


 라톨라이가 허리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어찌나 벼락같이 움직였던지 짐짓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던 여왕이 빙긋 미소를 짓고 말았다.


 “라톨라이. 여기서 뭐하고 있었지?”


 “죄송해요. 여왕님. 전 단지 그,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저, 올라프가 제 고민을 듣더니 같이 놀아준다고 해서 그래서···.”


 “하아. 그럴 줄 알았어.”

 

 여왕이 이마에 손을 댔다. 라톨라이는 무슨 말인가 싶어 눈동자만 굴렸다.


 “네가 처음이 아니란다. 올라프가 친구를 데리고 온 건.”


 “어···. 네?”


 “그냥 경비병에게 솔직히 말하면 개방해줄 수 있다고 말을 했건만.”


 여왕이 다가왔다. 라톨라이는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 멀리서 보기만 하다가 가까이서 보니 숨이 절로 멎었다. 저리 아름다울 수가. 부드럽지만 당찬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들었다.


 소박하게 입은 드레스는 발목 언저리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화려한 장식은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기품 있어 보였다.


 “올라프랑 숨바꼭질하고 있었구나.”


 라톨라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왕은 걱정어린 얼굴로 말했다.


 “근데 너무 늦게까지 논 게 아닌가 싶어. 벌써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거든.”


 “네, 네. 저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고민이길래?”


 “네?”


 “고민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니니?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논 건 줄 아는데.”


 라톨라이는 이런 것까지 여왕님께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여왕의 따뜻한 얼굴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술술 나왔다. 여왕은 쪼그리고 앉아서 들어주었다.


 “그랬구나.”


 말을 다 들은 여왕은 미간을 좁혔다. 라톨라이는 침만 꼴깍 삼켰다.


 “잠깐 이리로 와볼래?”


 여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했다. 라톨라이는 어리둥절했지만 뒤를 졸졸 따라갔다. 여왕이 간 곳은 방 안에 있는 테라스였다. 난간에 팔을 겹쳐올린 여왕은 노을빛 한숨을 내뱉는 지평선을 보며 중얼거렸다.


 “혹시 선왕 폐하가 누구인지 기억하니?”


 “네. 아빠 손을 잡고 봤던 기억이 나요.”


 “그분이 어딜 갔는지는 알고?”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기 협곡 보이지? 저 너머에 계셔.”


 라톨라이는 발꿈치를 살짝 올렸다. 굽이 친 협곡은 굉장히 가팔라 보였다. 여왕은 심회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긴 하지만 바쁘면 그마저도 못 와. 매일매일 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멀리 계시나요?”

 

 “응.”


 여왕은 턱에 손을 굈다. 노을빛이 여왕의 얼굴 한 면을 비추었다. 라톨라이는 왠지 그 모습이 쓸쓸해보였다.


 “물론 같이 있다고 해서 마냥 사이좋게 지내진 않아. 심하게 다툰 날에는 말 걸기 싫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있고 싶은 게 가족이야.”


 여왕은 라톨라이의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라톨라이는 머리를 쓰다듬는 상냥한 손길을 받아들였다.


 “알겠니, 라톨라이? 사실 피서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어. 그저 가족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만으로도 피서를 즐기고 있는 거야.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가는 게 피서잖아? 그건 불행을 피해 행복한 곳으로 간다는 의미와 같은 거야.”


 “가족의 품이 행복한 곳인가요?”


 여왕이 되물었다.


 “그럼 어디가 행복한 곳이지?”


 라톨라이가 눈을 크게 떴다. 아빠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니. 라톨라이는 문득 엄마의 무덤이 떠올랐다. 아빠와 같이 있어 행복하다면 엄마도 마찬가지 아닐까. 라톨라이는 왜 아빠가 매주 일요일마다 엄마를 보러 가는지 이제야 알았다.


 그곳이 아빠의 피서였기 때문이었다.


 “여왕님. 저 밖에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아빠한테 가고 싶어요.”


 “좋아.”


 여왕이 흔쾌히 수락했다. 라톨라이는 여왕의 손을 잡고 복도를 따라 나갔다. 여왕의 손은 포근하고 보드라웠다.


 밖으로 나가니 해가 저물어 있었다. 거뭇한 어둠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라톨라이가 여왕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작별을 하려는 참이었다. 누군가 성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아빠였다.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을 유지하던 아빠가 지금은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숨도 헐떡이고 있었는데 거대한 몸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아빠!”


 울컥 울음이 나온 라톨라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빠에게로 달려갔다. 아빠는 라톨라이를 힘껏 안아주었다.


 “미안해요, 아빠. 미안해요.”


 아빠는 말없이 등만 토닥거려주었다. 한참 동안 포옹하던 부자는 여왕에게로 다가갔다. 아빠는 정갈한 예를 보였다.


 “여왕 폐하. 고귀한 당신을 뵈옵니다.”


 “반가워요. 언제나 신선한 생선을 공급해줘서 고마워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아들 때문에 귀한 발걸음을 하셨으니까요. 그 크신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은혜 잘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갚으세요. 저 생선 요리 좋아하는 거 아시죠?”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곧 생신이시니 그때 다시 좋은 생선 들고 찾아 뵙겠습니다.”


 아빠는 연신 감사함을 표시했다. 저러다 허리가 끊어질까 염려한 여왕은 어서 가라고 재촉했다. 여왕은 떠나는 라톨라이에게 말했다.


 “나중에 아빠랑 어떤 피서를 보냈는지 꼭 말해주렴.”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여왕님!”


 부자는 배웅하는 여왕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등불에 불이 붙었다. 어둑한 그림자 사이로 은은한 빛이 풍겼다.


 라톨라이는 아빠 눈치를 봤다. 감격에 찬 재회의 순간도 지났고 여왕이 앞에 있는 것도 아니니 혼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혼내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그저 말없이 걸을 뿐이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라톨라이는 조심스레 말했다.


 “아빠. 화 안 나세요?”


 아빠는 집앞에 섰다. 문을 여는 대신 라톨라이를 바라봤다. 아빠는 라톨라이의 얼굴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얼굴을 엿볼 수 있었다.


 “미안해요. 아빠. 전 단지 답답해서 그랬어요. 사실 아빠랑 같이 있는 것만도 행복한 거였는데.”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던 아빠는 슬며시 아들의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퍽 어색한 손길이었다.


 “아니, 내가 미안하다.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을 것을. 내일이라도 가자. 어디로 가고 싶지?”


 라톨라이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말했다.


 “엄마한테 가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가지고 가는 거예요. 어때요?”


 아빠는 놀란 얼굴로 보더니 얼른 고개를 돌렸다. 왠지 반짝이는 무언가가 아빠의 눈가에 매달려 있는 듯했다.


 “그래. 가자.”


 집문이 열었다. 포근한 내음이 퍼졌다. 그 어떤 꽃보다도 향기로운 냄새였다. 라톨라이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아빠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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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조금 끄적거려봤어요.

엘사와 안나가 서로 꽁냥거리며 노는 걸 쓰고 싶었는데 실력이 부족해서 도저히 못 쓰겠더라고요. 

그래서 아렌델에 사는 어느 소년을 중점으로 써봤습니다. 입맛에 맞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참고로 올라프는 어떻게 됐느냐면.



 올라프는 숨죽여 웃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못 찾을 줄이야. 진땀을 빼며 자신을 찾고 있을 라톨라이를 생각하니 신이 났다.


 그렇게 올라프는 청소부가 청소도구함에서 대걸레를 꺼낼 때까지 밤새 그 자리에 계속 숨어 있었다.



 네...뭐. 그렇게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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