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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아이젠슈타인 호의 탈출 14장 (2) - [무너진 가슴]

Fr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2.16 16:01:14
조회 4775 추천 54 댓글 9
														

가로는 현기증과 고통을 억누르려 애를 썼다. 돈은 너무도 빨랐다.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의 톤수에도 불구하고, 돈의 움직임은 마치 번개와도 같았다. 만일 돈이 진심으로 가로에게 해를 끼치려 했다면, 분명 가로는 그의 공격이 날아오는 것도 보지 못했을 터였다. 가로는 조심스레 침을 삼키고는 고통스레 숨을 내쉬었다. "폭격이 있은 이후, 저는 사울 타비츠와 의논한 대로 테라에 경고를 전해주는 것 외에 제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룰고르가 죽은 뒤, 저는 제 부하들에게 아이젠슈타인 호를 점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크루제 중대장은 그 도중에 민간인들과 함께 아이젠슈타인 호에 승선하였지요."


"리멤브란서들과 석학 한 명이라고 했지." 프라이마크가 말했다. "호루스의 기함에 타고 있었다더군."


"그렇습니다, 전하." 크루제가 보충하여 말했다. "저의 배틀 브라더, 가비엘 로켄이 제게 그들의 안전을 위탁하였습니다. 그 중에 킬러라는 여성이 있는데, 그녀가...." 크루제는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녀가 제게 가로 중대장이 저희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권고했었습니다."


"로켄이라." 지기스문트가 말했다. "제가 알고 있는 자입니다, 전하. 벤지풀 스피릿 호에서 함께 만났었지요."


돈은 힐끗 곁눈질하였다. "귀관은 그를 어떻게 판단하였는가, 최선임 중대장?"


"전형적인 크토니아인이지요.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은 그 한 마디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약간 순진하기는 하지만 강인한 정신을 지니고 있지요. 그 자는 도의를 지키는, 믿을 수 있을 만한 인물로 보였습니다."


프라이마크는 지기스문트의 평가를 새겨들어두었다. "이야기를 계속하거라, 가로."


나타니엘은 턱에서 느껴지는 뻣뻣함을 무시하고 타이폰에게 신호가 전해진 것과, 테르미누스 에스트 호아이젠슈타인 호 사이에 있었던 추격전에 대한 것, 그리고 재앙적이었던 워프 항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가로가 죽은 그룰고르의 부하들이 괴물의 형태로 부활한 것에 대해 설명하자, 지기스문트의 부하들 중 한 명이 숨을 내쉬며 비웃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돈은 굳은 시선으로 그 전사를 침묵시켜버렸다.


"이마테리움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더 기이한 힘들이 도사리고 있다." 돈이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너의 말은 이성에 맞지 않는구나. 네가 말하고 있는 그 괴물들의 존재는 주술과 마법이라는 원시적인 사상에 위험할 정도로 근접해 있다."


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돈 전하. 허나 전하께서는 제게 제가 본 그대로의 진실을 말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가 본 그대로의 광경입니다. 워프 속의 무언가가 그룰고르를 되살려내었습니다. 그 무언가는 그룰고르를 사망케 한 질병 그 자체를 통해, 그의 오염된 시체를 움직였습니다. 제게 그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고 하시지는 말아주십시오, 전하. 제게도 그것들에 대해 설명을 할 도리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내게로 가져온 것이 바로 이것이었더냐?" 프라이마크의 분노가 마치 묵직하고 검은 연기처럼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황제 폐하의 아들들 사이에서 반역과 음모가 벌어졌다는 것을 에둘러 말하는 이야기에, 부정확한 정보들에 기반한 견해들과, 기초적인 감정과 명확하지 못한 사고로 벌인 경솔한 행동들만이 모여 있는 이것이?" 돈은 천천히 가로에게로 나아왔고, 뒤로 물러나지 않으려 했던 나타니엘의 용기는 바닥이 나버렸다. "만일 지금 이 방에 내 형제들, 모타리온과 펄그림, 앙그론과 호루스를 불러올 수만 있었더라면.... 그들은 너의 이야기에 대해 무어라고 했을까? 너는 그처럼 명백한 공상 이야기 때문에 네가 때려눕혀지기 전에 네가 숨 한 번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더냐?"


"받아들이기 힘드시리라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힘들다, 라고?!" ​돈은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고, 그로 인해 개인실은 진동하였다. "힘들다, 라는 단어는 굽이치는 미로나, 복잡한 항해 공식에나 쓰는 말이다! 그것은 우리의 신조 그 자체와, 황제 폐하께서 선택하신 전사들의 특성 그 자체에 반하는 것이야!" 돈은 활활 타오르는 시선으로 가로를 노려보았다. "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가로! 너는 스스로를 정직한 전사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만일 네가 반역자나 기만자가 아니라면, 나는 너를 광기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돈은 크루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니면 내가 백 보 양보해서 치매가 전염되는 것이었다고 인정해주기라도 해야겠느냐?! 워프가 너희의 정신을 혼란시키고, 너희 사이에 그와 같은 망상을 심어주기라도 한 것이더냐?!"


가로는 귓속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주변에서 모든 것이 잘못 돌아가며, 산산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이젠슈타인 호를 구조해줄 누군가를 찾고 경고의 메시지를 전할 길을 찾기 위해 서두르는 동안에는, 가로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말이 신뢰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로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내가 말을 할 때는 나를 바라보거라, 데스 가드!" 프라이마크가 사납게 외쳤다. "네가 나의 개인실로 가져온 이 거짓말들은 내게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구나. 네가 감히 나의 형제, 호루스처럼 비길 데 없는 인품을 지닌 영웅에게 감히 그따위 발언을 하였다는 것은 내가 차마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로 나를 분노케 하였다!" 돈은 거대한 손가락 하나를 가로의 파워 아머의 가슴팍 위로 가져다 대었다. "네가 자신의 정직함을 얼마나 가벼이 여기기에 그것을 그렇게 간단히 내다버렸더냐! 너처럼 명예를 모르는 자가 ⅩⅣ군단의 중대 지휘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니, 내 모타리온을 위해서 울어주고 싶은 심정이로구나." 돈의 손이 꽉 쥐어지며, 거대한 황동 주먹으로 변하였다. "잘 알아두거라. 내가 네놈의 중상모략에도 불구하고 네놈의 사지를 뽑아놓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내 형제들이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 학수고대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로는 자신의 군홧발 아래에서 바닥이 진창으로 변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그의 가슴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스에 꽉 죄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가로는 나비스 생토룸 바깥의 복도에서와, 외계종의 전쟁용 괴수의 손아귀에 붙잡혔을 때에 느꼈던 것과 같은 구역질나는 감각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로는 손을 뻗어 그를 이곳까지 인도하여 주었던 그 의지의 힘을 찾아내었다.


나의 믿음을.


"눈이 멀으셨습니까?" 가로가 중얼거렸다.


돈은 천둥의 화신 그 자체였다. "뭐라고 했느냐?"


"눈이 멀으셨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전하. 아무래도 전하께선 눈이 멀으신 것이 분명하신 것 같아 걱정이 되어서 말입니다." 그 말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었다. 심지어는 가로의 마음속 일부조차도 자신이 감히 내뱉고 있는 정신 나간 발언에 놀라고 있었다. "오직 그처럼 끔찍한 질병에 걸린 이들만이 전하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전하께서 걸리신 병은, 오직 형제들만이 걸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맹목증입니다. 전하의 예리한 판단력은 전하의 친족, 워마스터에 대한 전하의 탄복과 존경, 애정으로 인해 흐려지셨습니다."


로갈 돈의 엄숙한 표정에 금이 가는 것은 자주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돈의 표정에는 금이 가있었다. 신의 분노는 그의 표정에서 인간미가 사라져버리게 만들었고, 프라이마크는 자신의 강력한 체인 소드를 뽑아들어, 죽음을 울부짖는 금빛 칼날로 허공에 호선을 그렸다. "내 이전 발언을 취소하마." 돈은 노호성을 질렀다. "무릎을 꿇고 네 죽음을 맞이하여라! 아직까지 네가 아스타르테스로써 죽을 기회가 남아있는 동안에!!"


"돈 전하, 됩니다!" 한 여성의 목소리가 방안으로 가로질러 들려왔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의 파동은 개인실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멈칫거리게 만들었고, 심지어는 프라이마크 돈조차도 그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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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제는 고개를 돌려 킬러가 푸른 대리석 바닥 위를 가로질러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부츠가 바닥에 부딪히며 딱딱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신더만과 메르사디 올리톤, 그리고 총을 들고 사격 자세를 갖추고 있는 한 쌍의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원들이 있었다. 이악톤은 유프라티의 목소리가 자신의 몸속에서 메아리쳐 공명하는 것을 느끼며, 벤지풀 스피릿 호에서 모든 것이 지옥처럼 변해가고 있을 때, 그때 그녀의 양손이 자신의 가슴에 닿았을 때에 그가 느꼈던 신기한 온기를 기억해내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들이 이곳에 들어온 것이냐?!" 돈이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돈의 체인 소드는 여전히 가로의 목을 향해 날아가던 도중에 멈춘 그 자리에 매달린 채로 웅웅거리고 있었다.


"저들이 입실을 요청했습니다." 경비병들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녀가.... 그러니까 저 여자가, 그녀가...."


"그 여자는 가끔씩 아주 설득력 있어지곤 하지." 크루제가 지적하듯 말했다.


유프라티는 겁도 없이 앞으로 걸어 나와, 프라이마크와 마주섰다. "황금의 영웅이시자 석인(石人)이신 로갈 돈 전하. 전하께서는 지금 제국의, 이 은하계 그 자체의 역사의 전환점에 서 계십니다. 만일 전하께서 나타니엘 가로 님이 전하께 감히 정직하게 발언한 것을 이유로 그를 죽이신다면, 전하께서는 정말로 가로 님이 말씀하신 대로 맹인이 되고 마실 겁니다."


"너는 누구냐?" 황금빛의 인물, 로갈 돈이 거칠게 물었다.


"저는 63번 원정함대의 전 사진가이자 리멤브란서, 유프라티 킬러입니다. 지금의 저는 그저 그릇일 뿐이지요.... 황제 폐하의 의지를 담는 그릇 말입니다."


크루제는 올리톤이 훌쩍이며 신더만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는 소리를 들었다. 크루제는 킬러의 얼굴에 공포가 나타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대신 그녀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것은 슬픔과 동정의 표정뿐이었다. "로갈 돈 전하." 킬러는 돈에게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서는 전하께서 별들에게 비추시는 돌과 강철의 얼굴, 그 이상의 분이십니다. 전하께서는 마음을 여실 수 있으십니다. 진리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내가 곧 제국의 철권-임페리얼 피스트이다!!" 돈이 고함을 쳤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망치처럼 사방에 두들겨대었다. "내가 바로 공포의 화신 그 자체란 말이다!!"


"그러시다면 나타니엘 님의 말에 담긴 충성심을 봐주세요. 그분이 말한 진실의 증거를 봐주세요." 킬러는 올리톤에게 앞으로 나아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리고 그 여류작가는 석학 노인의 부축을 받아 그녀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 검은 피부의 여인이 마음을 가다듬고 평소의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자, 크루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는 리멤브란서, 메르사디 올리톤입니다." 올리톤은 정중하게 인사하였다. "만일 고귀하신 프라이마크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제가 전하께 이 사건들의 회상을 제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올리톤은 바닥에 설치된 홀로리튬 프로젝터 단상을 가리켜 보였다.


돈은 연기를 뿜어내는 체인 소드를 가슴께로 가져왔다. "내가 너희에게 관대함을 베푸는 것은 이번으로 마지막이 될 것이다."


지기스문트가 앞으로 나아와, 홀로리튬 장치로 메르사디를 안내하였다. 작가, 메르사디는 조심스레 자신의 드레스의 무늬를 구성하는 직물로부터 가느다란 케이블을 뽑아, 그것을 자신의 기다란 대머리의 매끈한 정수리를 따라 옮겼다. 이악톤은 메르사디의 피부 밑에 숨겨진 소켓에 케이블 와이어가 연결되면서 찰칵,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올리톤은 케이블의 반대쪽 끝을 단상의 인터페이스 판에 연결시켰다. 이 작업이 끝나고 난 뒤, 올리톤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고개를 숙였다. "저는 제 기억을 도울 수 있는 많은 수단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개의 기억 보조 임플란트 코일 장치들의 도움을 받아서, 기억들로 글을 쓸 수도, 이미지 스트림을 작성할 수도 있죠." 올리톤은 다시 한 번 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열겠습니다. 제가 전하께 보여드릴 것은, 제가 직접 목격하였던 것들입니다. 이 이미지들은 날조될 수도, 조작될 수도 없죠. 이것이...." 올리톤은 몸을 덜덜 떨며 머뭇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탁했고, 그녀는 거의 울 것만 같았다. "이것이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괜찮네, 메르사디 양." 신더만이 메르사디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용기를 내게."


"이것은 메르사디에게 있어서는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킬러가 설명하였다. "그 사건들을 겪으면서 느꼈던 감정의 반향도 함께 경험하게 될 테니까요."


홀로리튬 장치가 불투명하고 난잡한 이미지들과, 반쯤 형성된 형상들을 띄워 올렸다. 꿈결 같은 다수의 이미지들 사이에서, 크루제는 그가 알고 있는 얼굴들과, 또 그가 알지 못하는 얼굴들을 목격하였다. 로켄, 변질된 시인 카르카시, 아스트로패스 잉 매 싱과 페트로넬라 비바르, 그리고 그녀의 종인 빌어먹을 벙어리 마가르드까지. 잠시 후 그 이미지들의 안개는 모습을 바꾸었고, 올리톤은 잠시 방안을 둘러보았다. 홀로리튬 영상은 그녀가 보고 있는 것들을 비추고 있었다. 올리톤의 시선은 돈에게 고정되었고, 돈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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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홀로리튬 영상이 모습을 바꾸고, 가로는 영상이 재생되며 움직이는 모습에 집중하였다. 가로는 크루제의 설명을 통해 벤지풀 스피릿 호의 주 알현실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곳에서 그는 그 사건의 목격자의 시야를 통해 그 광경을 직접적으로 보고 있었다.


이스트반 Ⅲ 행성의 코랄 시의 전장에서 벌어진 도살의 현장들의 그들의 눈앞에 떠오르고, 올리톤은 작게 훌쩍거렸다. 가로와 크루제, 그리고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의 전사들은 전쟁에 있어 문외한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노골적이고 잔혹한 전투의 공포스런 광경은 그들마저도 움찔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가로는 지기스문트가 역겨워하며 표정을 찡그리는 것을 보았다. 잠시 후, 기록은 메르사디가 높은 연단 위에 서있는 워마스터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넘어갔다. 워마스터의 얼굴은 싸늘하고 무정한 결의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너희 리멤브란서들은 전쟁을 보고 싶다고들 했었지. 그래, 이게 바로 전쟁이니라.] 워마스터의 목소리에 즐거워 하는 기색이 담겨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꼭 필요한 전투를 수행하는 전사의 모습이 아닌, 피의 조류 속에 양손을 담구며 공공연히 만족스러워 하고 있는 자의 모습이었다.


"호루스?" 그 이름은 마치 유령 같은 속삭임으로 돈의 입술로부터 새어나왔다. 그러나 가로는 그 속에 의문과, 당혹감이 담겨 있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프라이마크 돈은 그의 형제의 태도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메르사디 올리톤의 눈을 통해, 그들은 이스트반 Ⅲ와 코랄 시에 폭격이 가해지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궤도상의 전함들로부터 쏘아진 은빛 화살의 파도는 마치 먹이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맹금들과도 같았다. 그리고 리멤브란서들이 아스타르테스들의 볼터에 맞아 쓰러지며 내지른 숨 막히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은빛 화살들은 목표를 타격하였고, 그곳으로부터 멈출 수 없는 죽음의 검은 고리들이 생겨났다.


"황제 폐하의 피시여." 지기스문트가 중얼거렸다. "가로의 말이 사실이었군. 정말로 자신의 부하들을 폭격해버렸어."


"저.... 저게 뭐야?" 메르사디가 기록 영상 속의 자신의 목소리와 동시에 물었다.


녹음된 킬러의 음성이 메르사디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이미 본 적이 있잖아. 황제 폐하께서 나를 통해 네게 보여주셨지. 저건 죽음이야.]


기록 영상은 다음 장면으로 건너뛰어 재생되었다. 빠르게 깜빡이는 재현 이미지들과 함께, 그들은 발진 구획에서 크루제가 변절한 경호원, 마가르드와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호루스의 전함으로부터 그들이 탈출하는 모습과 테르미누스 에스트 호의 공격,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이미지들이 재생되었다.


마침내, 돈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제는 되었다. 재생을 끝내거라, 여자여."


신더만은 조심스레 케이블을 홀로리튬 장치로부터 뽑아내었고, 허공의 이미지들이 사라지는 동안 메르사디는 마치 실이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비틀거렸다.


개인실 내부의 싸늘하고 맑은 공기가 긴장감으로 가득해지고, 프라이마크 돈은 자신의 체인 소드를 천천히 칼집에 집어넣어다. 돈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과 두 눈을 어루만졌다. "어쩌면.... 내가 눈이 멀었던 것인가?" 돈은 가로를 쳐다보았다. 그의 위대한 힘의 일부는 흐려져 있었다. "참으로 어리석도다. 내가 이토록 미쳐버린 진실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그 진실을 내게 전해다 준 사자를 거의 죽일 뻔하기까지 한 것이, 많이 이상한 일인가?"


"아닙니다, 전하." 가로는 돈의 의문을 인정하며 말했다. "저 또한 그 진실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저희가 무엇을 바라는가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법이지요."


지기스문트가 자신의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주군. 저희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가로는 최선임 중대장 지기스문트에게 동정심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 또한 그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원이 이 순간 느껴야만 했을 고통과 수치심이 어떤 것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전 중대장들을 소집시키고, 그들에게 현 상황에 대해 브리핑해주어라. 다만, 그 이상으로 이 진실이 퍼져나가서는 안 된다." 돈은 잠시 후 말했다. "가로, 크루제, 이 명령은 그대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아이젠슈타인 호의 생존자들의 입을 단속시켜라. 내 함대 내에 이 소문이 통제받지 않고 퍼져나가는 것을 허용할 수는 없다. 이 진실을 언제 내 군단에 밝힐 지는 내가 결정하겠다."


아스타르테스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하.""


돈은 걸음을 돌려 걸어 갔다. "이제 가보거라.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아야겠다." 로갈 돈은 마지막으로 지기스문트에게 시선을 던졌다. "내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 누구도 내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끔 하거라."


최선임 중대장, 지기스문트가 경례하였다. "전하, 만일 제 조언이 필요하시다면"


"필요 없다." 프라이마크 돈은 그들로부터 떠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개인실로부터 나온 이후, 가로는 지기스문트가 뒤쪽에 있는 개인실의 문을 잠그며, 그의 얼굴에 깊은 근심의 표정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로는 킬러가 문 앞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킬러의 뺨을 따라 한 방울의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언뜻 보았다. "어째서 우는 것이오?" 가로가 물었다. "우리를 위해서인가?"


유프라티는 고개를 저으며, 굳게 닫혀 있는 묵직한 해치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돈 전하를 위해서랍니다, 나타니엘 님. 왜냐하면 전하께서는 우실 수 없으시니까요. 오늘 당신과 저는 한 형제의 가슴을 무너트렸답니다. 그 상처는 그 무엇으로도 회복될 수 없을 거예요."



──


확실히 나도 번역하면서 설마 돈이 가로 말 안 믿고 죽이려 들 줄은 몰랐다. 호루스가 진짜 배신할 거라곤 생각도 못할 정도로 신뢰하고 있던 로갈 돈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로갈 돈이 저렇게까지 현실부정하는 거 보고 나니 마지막에 킬러 말이 진짜 가슴에 와닿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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