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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프 이화이트 레저 호텔

ㅇㅇ(59.15) 2024.04.17 14:57:37
조회 1973 추천 47 댓글 5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너는 한낱 고양이인가, 인간인가.



=========================================



지긋지긋한 대학교 기말 시험이 끝났고, 이제 남은 건 노는 것 뿐.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시간을 맞추고 행선지를 정한다.



바닷가 펜션은 이미 여름 방학때 다녀왔고, 해외 여행을 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거니와 유원지를 가기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러던 중 나온 호캉스를 가자는 의견.



여자애들이나 그런 거에 환장하는 거 아니냐며 웃어 넘기려 했지만, 마땅히 다른 대안도 없었고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의견이 맞춰지자 유명한 호텔 예약 사이트를 들어가서 매물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만만치 않은 가격들의 향연 중 한 호텔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프레이화이트 레저 호텔



서울의 5성급 호텔이 한 박에 50만원이라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호텔은 태어나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해 봐도 연관 없는 내용들만 뜰 뿐.



후기도 거의 없었지만 이런 사이트에서 사기를 칠 리 있겠는가



신장 개업이라던가, 최근에 생겨서 저렴하고 후기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친구들에게 돈을 걷은 뒤 나는 3박을 예약하였다.



=========================================



학수고대하던 그 날이 밝아왔다



어디보자, 사흘치 옷은 다 챙겼고 신형 게임기와 간식도 준비했다.



가방 하나에 모든 짐을 집어넣고 차량 뒷칸에 던져놓은 뒤 네비게이션에 프레이화이트 호텔을 검색했다.



'프레이화이트 호텔'을 찾을 수 없습니다?



네비게이션에 뜨는 건 완전히 다른 건물들이었다.



주소가 서울시 ㅁㅁ구라고 했던가, 직접 네비게이션에 검색해보기로 했다.



위성 사진으로 아무것도 없는 공터가 뜬다.



아, 씨발..



유명한 호텔 사이트라고 방심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미리 가 보던가 했어야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한 것일까



라고 생각하던 찰나



카톡.



나 먼저 도착함ㅋㅋ니들 언제 오냐



뭐야, 얘네들 먼저 간 거였어?



갑자기 밀려오는 안도감, 그리고 배신감.



기왕이면 친구들과 함께 가려고 차까지 가지고 나왔는데 저희들끼리 따로 가버렸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도 대체 어딜 간 걸까.



분명 네비게이션에 찍혀 있던 건ㅡ



안내를 시작합니다



이화이트 호텔



자동차에 내장되어 있는 네비게이션에서 갑작스럽게 목소리가 나왔다.



나온지 7년 된 구형 자동차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남은 거리까지 약 13Km.



도착 예정 시간은 오전 9시 00분.



체크인 시간과 완벽하게 똑같다.



차가 밀릴 걸 예상해 오전 7시에 나왔지만, 이 정도로 완벽하게 시간이 맞을 수는 없을텐데.



뭔가 이상하다



요즘 네비게이션은 차가 얼마나 막히는지 예상해 시간을 보여주는 기능이 있지만,



이 구형 자동차의 오랜 시간 전에 지원이 끊겨버린 네비게이션은



그런 기능 따위 존재할 리가 없었다.



지금 도착했다는 것도 이상했다. 아무리 들떠도 그렇지 30분도 아니고 2시간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친구는 그런 부류가 절대로 아니었다.



빠르게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이럴 때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연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걸까,



카톡.



나도 이제 도착함



너희 어딨냐ㅋㅋ



나란히 온 두 개의 문자.



차의 시동을 껐다.



문의 잠금을 풀었다.



가방을 챙기고, 문을 연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일까.



아파트 동으로 들어선다.



익숙한 철문으로 간다.



1301호



비밀번호를 누르고 내 방으로 달린다.



이 모든 것은 꿈일 거야, 꿈이여야만 해.



계속해서 되뇌이며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다.



=========================================



이상하리만치 눈 앞이 밝다.



내가 커튼을 걷어 놨던가.



분명 오늘은 친구들과 호텔을 가기로 했던 날이었지,



악몽을 꾼 것만 같다.



침대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해 본다.



익숙한 옷차림.



그와 대비되는 익숙하지 않은 배경



그리고 핸드폰에서 울리는,



다음 안내까지 500미터 직진하십시오.



믿을 수 없다.



내 시청각 회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나는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인가.



뺨을 후려친다. 고통이 밀려온다.



이토록 현실적인 꿈이 세상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휴대폰의 시각을 확인해본다.



오전 8시 50분.



체크인 시간이다.



네비게이션이 백그라운드에서 작동 중이다.



도착 예정 시간 오전 9시 00분



이화이트 호텔



그리고 카카오톡에 보이는



999+라는 뱃지.



친구 창에는 단 3명의 친구만이 남아 있었다.



나와 같이 호텔을 가기로 한 그 친구들.



그리고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채팅방



999개가 넘어가는 메시지들



나는 휴대폰을 꺼 버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 방을 나가서는 안 될 것 같다.



나가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치고 있다.



꺼진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울린다.



다음 안내까지 300미터 직진입니다.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내 옆에는 액정이 모조리 박살난 고철덩이와



거기에서 나오는 소름끼치는 목소리만이 남아 있다.



저 방문을 열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방의 시계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다.



창 밖을 확인해볼까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밝게 빛나는 햇살이 내 방을 가득 채운다



만물의 어머니인 태양이 보내는 따뜻한 햇빛이,



마치 나를 감시하는 조명등처럼 보인다.



절대로 이 그림자에서 나가면 안 된다.



그러한 직감이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체크아웃 시간까지는 나흘이 남았다.



나는 어떻게 버텨야만 할까.



=========================================



하루가 지났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햇빛은 이제 없다.



오직 형광등만이 내 작은 보루를 지키고 있다.



가져온 간식 중 하나를 씹고, 컴퓨터를 킨다.



어젯밤 적어놓은 메모장 하나.



하루 종일 이 방에서 관측했던 모든 것이 적혀있는 메모장.



해가 진 후에는 방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된다는 것과,



창문 바깥에선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방문 틈 사이로는 불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역시나 문을 열면 안 된다는 내 판단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제 거실 불을 켜 놨으니까.



암막 커튼이 쳐져있는 창문을 지나친다.



얼마 전에 산 신형 게임기를 킨다.



분명 방학 때 즐겁게 하려고, 큰 맘 먹고 구매한 게임기지만



작금의 상황에선 도저히 즐겁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게임기 우측 상단에 뜨는 인터넷 연결 없음 표시.



이 공간이 현실과 떨어져 있는 공간인 건가, 생각하며



인터넷 찾기 버튼을 눌러본다.



검색 중...



이화이트 호텔 1301호



단 하나의 와이파이만이 검색된다.



비밀번호가 걸려있는 그 와이파이.



문득 호텔을 예약할 때 받은 pdf 파일이 생각났다.



컴퓨터를 켜 다운받았던 pdf 파일을 확인해본다.



이화이트 호텔 안내 사항


저희 프이화이트 호텔을 찾아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호텔은 2103년부터 운영해 온 역사 깊은 호텔로서 항상 투숙객 여러분께 편안함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화이트 호텔에서의 즐거운 경험이 여러분들의 숙박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수 있도록 아래 사항을 충분히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식사 관련



조식은 오전 8시에서 10시 사이에 카페테리아에서 제공해 드립니다.


중식은 오전 12시에서 13시 사이에 카페테리아에서 제공해 드리며, 원하신다면 매니저가 직접 손님의 방으로 전달해 드릴 수 있습니다.


000)000-객실 번호 형식으로 미리 전화해 주시길 바랍니다


석식은 3층 뷔페를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3층 뷔페에선 정오부터 온갖 산해진미를 제공해 드리고 있으며, 오후 6시 이후에는 저희 프이화이트 레저 호텔의 특급 진미인 쓰게싸를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더 화이트 수영장


이화이트 호텔의 자랑거리인 초대형 수영장을 만나보세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는 프이화이트의 자랑거리 더 화이트 수영장은 세계 5성급 호텔과 비교해봐도 전혀 모자라지 않는,


국내 유일 최대 규모의 수영장입니다.


이 규모의 수영장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000000억원만큼의 유지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므로, 투숙객 여러분께서는


저희의 자랑거리인 더 화이트 수영장을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호텔 라운지


호텔 4층에는 더 화이트 수영장이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라운지가 있습니다.


추가 요금을 지불하시어 로얄 살루트 30년산, 샤또 몽패라 스페셜 등의 고급 주류를 안주와 함께 드실 수 있습니다.



-투숙객 안내 사항



소란을 피우지 마십시오. 다른 투숙객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방 정리를 깨끗이 하십시오. 정리 정돈 상태가 불량할 경우, 추가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세탁이 필요한 침구류의 경우 문 밖에 내놓으시면 세탁해 드립니다. 필요한 침구류는 000)000-객실 번호 로 전화하시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 매니저가 청소하러 올 수 있습니다. 청소가 불필요한 경우 매니저가 노크하였을 때 문을 열지 않으시면 됩니다.


방의 와이파이는 프이화이트객실번호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비밀번호는 TheWhite객실번호 입니다.




편안한 숙박 되십시오.



비록 내가 있는 곳은 익숙하디 익숙한 나의 자취방일 뿐이지만, 내 게임기에 뜨는



이화이트 호텔 1301호



가 이 공간이 나의 자취방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인터넷에 연결한 뒤, 게임기의 네트워크 창에 뜨는 친구들.



그리고 그 밑에 떠 있는



게임 중 표시.



...



이 모든 것이 나의 상상이었다는 것일까



친구들은 이미 모두 호텔에 도착해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면



나만이 혼자 과대망상에 빠져 방 안에서 처박혀 있었던 거라면



저 문 밖에는 그저 거실이 있을 뿐이고 내가 거실 불을 켜놨었다고 오해한 것이었다면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다.



분명히 내 직감은 경고하고 있다. 절대로 저 문을 열어선 안 된다고



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든다.



문의 잠금을 풀고,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는 찰나



문득 드는 생각



이 모든 상황이 내가 문을 열게끔 유도하고 있다.



이 생각이 들자마자



내 신형 게임기에서 진동이 울린다



-우리 게임 중인데, 너 비싼 돈 주고 호텔 도착해놓고선 왜 방에서 안 나오냐 ㅋㅋ



난 너희들과 호텔에 간 적이 없는데



문에서 도망치듯이 침대로 몸을 던진다.



신형 게임기에선 여전히 친구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표시된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다.



문을 열면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이 생각만을 계속 되뇌인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억지로 잠에 빠져들었다.



=========================================



눈을 떴다.



이불을 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몇 시간을 잤는지도 모르겠다.



불은 꺼져있는 듯 하다.



침대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 방에 바퀴벌레가 살았던가, 생각을 하며 이불을 걷고 일어나려던 찰나



철컥



문을 여는 소리









그리고


들려오는 구두 소리





분명히 내 방 문을 열었던 것이 틀림없다.



얼어붙은 내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고



숨조차 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40분 정도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몽롱해질 즈음, 그 어떤 소리도 밖에서 들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나는



억지로 이불을 걷어내어 방을 둘러보았다.



불이 꺼진 방, 그 어떤 빛조차도 들어오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



나는 벽을 더듬어가며 전등의 스위치를 찾았다.



어둠에 적응된 내 눈은 빛을 받기를 거부했고,



홍채의 수축이 이루어질 동안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모든 음식이 치워져 있는 방과



오른쪽에 열려있는 나의 방문이었다.



그렇다는 건,



내 뒤에 있는 건 문 밖의 세상이라는 것.



그리고



멀리서 구두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문고리를 잡은 후



온 몸을 부딪혀 문을 닫는다.



거대한 소리가 방 안을 메운다.



어쩌면 문 밖의 그것도 이 소리를 들었으리라ㅡ



=========================================




어제부터 계속해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



pdf에 적혀 있던 매니저의 청소라기엔, 문을 두드리는 주기가 너무나도 짧았다.



이상한 소리도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문은 잠겨 있고, 내가 아니면 열 수 없는 구조이다.



방 안의 책장을 가로로 세워 문이 열리지 않게 만들었다.



절대로 이 문을 열지 않으리.



어제 방 안의 간식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남은 시간은 이틀.



사람이 물을 마시지 않고 최대 3일 정도를 버틸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틀 정도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



어제 마셨던 음료수가 내 방광을 가득 채운 게 느껴진다.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데, 음료수 병에 싸려는 계획은 누군가 내 짐을 모조리 치워 버려 실패했다.



방의 구석에 가서 바지를 내린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밖에 나가면 화장실이 있고 거실이 있을 것이 분명한데, 왜 내 방에 냄새나는 오물을 남겨야 하는 것인가.



용변을 해결하기 전, 다시 인터넷 목록을 살펴본다.



인터넷 연결 없음



분명 어제는 인터넷이 연결됐었는데, 도대체 어째서일까.



분명히 프이화이트 호텔 1301호라고 적혀있지 않았던가,



애초에 이 호텔의 이름이 뭐였을까.



어제의 그 구두 소리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내 거실이 멀어져가는 구두 소리가 울려 퍼질 만큼 거대했던가.



궁금하다.



저 방문 바깥을 보고 싶다.



결국 방문 바깥을 보지 않는 이유는 하나뿐이지 않는가.



나의 직감



나의 선조가 나의 대까지 발현시켜 온



이 자연에서 죽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필수적인 감각



그저께 7시에 차량에서 도망치듯이 나온 것도



지금까지 방문을 굳게 닫고 있던 것도



열려있는 문 밖을 보지 않았던 것도



다 나의 직감 때문이 아니었던가.



다시 문 쪽으로 다가선다.



문의 잠금을 풀고, 문고리를 돌린다.



문을 열지 마.



내 머리속에 드는 하나의 생각.



이 문을 열면 죽을 지도 모른다.



나는 되묻는다



어째서



이 문을 열면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직은 문을 열면 안 된다.



어째서



아직은 이 문을 열면 안 되는 거지?



이유는 없다.



그냥 문을 열면 안 된다.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공방전.



끊임 없이 충돌하는 생존 본능과 호기심



지금 나에게 있어서 최악의 적은



인류를 이 위치까지 발전시켜 온



호기심이다.



=========================================



마지막 날



용변은 방 안에서 해결했다.



도저히 저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문에 다가가면 다가설수록, 문고리를 돌리면 돌릴 수록



내 머리속의 경보 장치는 끊임없이 커져만 갔다.



잠긴 문 밖으로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 온다.



나흘 째 아무런 연락이 없었으니, 어머니가 자취방에 온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침대 밖에서 나가지 않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추고, 다시 적막만이 흐르는 방 안이다.



주린 배를 달래며,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본다.



오전 3시 30분.



누군가 찾아오기엔 너무나도 이른 시각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게임기의 배터리는 다 되어 이젠 아무런 불빛도 내지 않는다.



컴퓨터를 킬까 했지만, 어제부터 도통 켜지지를 않았다.



방의 전등도 들어오지 않는다.



충전기도 먹통인 걸로 보아, 방 전체의 전기가 끊어진 느낌이었다.



운도 지지리 없네, 이런 날에 정전이라니



이런 생각을 하며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눈을 감고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회피해 온 단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그 누가 설명해 주었나



이 체크아웃 시간이 끝난다면



이 지옥같은 상황이 끝난다고



그 누가 보증해 줄 수 있는가



지금도, 아니 어쩌면 어제도 그저께도



이 방 바깥은 그냥 평범한 거실이었을 수 있다



내가 알던 동네였을 수 있다

문을 열면 안 돼


모든 것이 꿈이었을 수 있다

꿈이 아니야, 그건 현실이었어


나의 직감이 나를 속여왔을 수 있다

이제 9시간만 더 버티면 끝나


이 직감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제발 저 문을 열지 말아 줘


나는 단언할 수 있나

문 밖을 궁금해하지 마


나는 확신할 수 있나



나는



호기심을 이길 수 있나



다시 일어선다



문 앞에 선다



잠금 장치를 풀고



문고리를 잡는다



머리 속이 울린다



속이 메스껍다



식은 땀이 맺히고



오한이 서리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나는 방문을 열었다





이것 때문에



고작 이것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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