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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누가 거짓말쟁이 인가요?

바보멍청이라죄송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10.17 16:31:20
조회 11864 추천 30 댓글 9
														
머리가 아프다.
오늘따라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주제껏 눈치 보고 마셔야 하는데 들뜬 분위기에 주체하지 못하고 괜히 나댔다.

머리를 부여 잡으며 길을 걷는다.
신호등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저 멀리서 나를 비춘다.
빛이 각막을 가로질러 뇌까지 침입해 두통을 증폭시킨다.

클락션이 시끄럽게 울리며, 소란스런 빛이 점멸한다.
자동차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스턴트맨에 빙의된 것처럼 기민하게 몸을 비틀어 간신히 피해냈다.

'"살았다."

운전자가 황급히 문을 열고 나왔다.
당황에 물든 표정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

" 미친 새끼야! 눈 앞에서 당장 꺼져. "

평소였다면 몇 십분 동안 면전에 온갖 쌍욕을 토해내고 멱살을 붙잡았겠지만 머리가 너무 지끈거려서 몇 마디만 하고 지나쳤다.
진이 빠져 집을 향해 쓰러지듯 걸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 12층까지 올라갔다.
6자리 비밀번호을 입력하고 집문을 열고 침실을 향했다.
새로 장만한 메트리스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는다.

너무 피곤해서...

이대로 잠에...

내일...

...

.....

........

............


뇌가 고통을 호소한다.
위장에서 뜨거운 신물이 올라와 헛구역질을 유도한다.
서른 여섯의 고장난 몸뚱아리에 소주를 사발 들이붓듯 주입해서 그런가, 후폭풍이 장난 아니다.
술자리에서 야식으로 라면을 먹어서 그런지, 얼굴도 상당히 부은 거 같다.
눈꺼풀도 무거워서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아서, 왼손으로 미간 사이를 쥐어짜듯 짓누르며 겨우 눈을 떴다.

씨발 다신 3차까지는 안 간다. 가면 내가 사람 새끼를 포기하고  도로에서 개새끼처럼 짖으며 기어 다니겠다.
그런 잡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눈앞에 대뜸 수상한 화면이 보였다.

[ 안녕하세요. 태준씨 지금부터 당신은 진실 게임에 참여해야 합니다. 거짓을 얘기하는 사람을 선택하시고 다음 방으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부디 즐거운 게임이 되길 바라며,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
"이봐요 당신 괜찮아요!?"
"저기요 좀만 도와주세요!"
...?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함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컴퓨터와 책상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있고, 수백 권의 만화책을 모아둔 책장은 운치 있는 새하얀 빛을 발산하는 존나 큰 스탠드 램프로 대체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분명 내 집 침대에서 편히 잠들었고, 술에 찌들긴 해도 습관처럼 문단속은 제대로 했는데.
누가 몰래 집 문을 따고 침입해서 날 납치한 건가?
화면에서 빛이 점멸하며 다음 메세지를 띄었다.

[ 민지 -  나 정도면 존예지. ]
[ 도현 - 민지야 너 존나 못 생겼어. ]
[ 지우 - 난 아무런 말도 안 했어. ]
[ 소진 - 매화나무는 선비의 정신을 상징한대. ]
"119 불러 빨리... 사람이 쓰러졌어!
[ 거짓말 하는 사람의 수: 1명 ]
"머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어!"
이게 문제라고? 애초에 진실 게임은 혼자서 하는 게임이 아니고, 이런 자리보단 술 자리에서 어울리는 게임이다.
문제도 존나 이상해.
내가 이딴 걸 어떻게 맞추는데...?
소진이는 그렇다고 쳐도, 나머지 세 명은 일상생활에서 할 법한 시시콜콜한 이야기 아닌가.
진실, 거짓 같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닌 주관적인 대답인데.
오답을 택하면 벌칙 같은 게 있을지 몰라서 일단은 성급히 고르진 않았다.
혹시 몰라 침실 방문을 건드려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씨발. 뭐하는 새끼인진 몰라도 일단은 지시를 따라야겠다.
" 언제 도착하는 거야 진짜."
몇 십분 동안 고민을 하고, 끝내 '지우'를 선택했다.
민지, 도현은 주관적인 서술에 불과하고, 소진의 말은 아예 진실인 문장이다.
결국 문장 자체가 모순되는 경우인 '지우'를 택하는 거 말곤 길이 안보였다.

-딸칵

침실 방문이 열렸다.
방문을 나서면 바로 거실이어야 하는데, 막상 진입하니 똑같은 공간이 이어져 있었다.
화면이 또다시 점멸하며 다음 문제를 제시했다.


[ 민지 - 신은 존재해. ]
[ 도현 - 신은 존재하지 않아. ]
[ 지우 - 신은 모르겠고 신라면은 있네. ]
[ 소진 - 백합은 순결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헌신적인 사랑을 상징하기도 한데. ]
"부상자는 어디 있습니까?"
[ 거짓말 하는 사람의 수: 2명 ]
"여기에요! 여기!"
이번 건 그나마 쉬웠다.
민지, 도현이 대립하는 구도이고, 식물을 좋아하는 내가 알기론 소진의 말은 참이다.
그렇다면 지우의 말은 확정적으로 거짓이다.
남은 건 민지와 도현 중 하나를 택하는 건데, 마음이 동하는 건 민지다. 
신이 없는 세상이면 너무 각박하지 않나.
사회에서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인생인데 신이 없고, 사후 세계가 없으면... 

몇 분의 고민 끝에, 도현과 지우를 선택했다.

- 딸칵

문이 또 열렸다.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화면이 노이즈로 버벅거리며 다음 문제를 제시했다.

[ 민지 - 1억번째 소수는 2,038,074,743로 확인되었어.  ]
[ 도현 - π의 1,002번째 소수 자리의 숫자는 0이야. ]
[ 지우 - 두 개 전부 내가 알아낸 사실이지. ]
[ 소진 - 붉은 장미는 열정적인 사랑을, 푸른 장미는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란 꽃말을 갖고 있어. ]
" 이건... 응급 상황입니다! 비키세요! 탈 거 빨리 갖고 와!"
[ 거짓말 하는 사람의 수: 3명 ]

...?

다행이다.
예전에 여자친구한테 푸른 장미를 선물하면서 꽃말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
소진의 말은 무조건 참이니, 나머지는 몰라도 상관 없다.

나는 민지,도현,지우를 선택했다.

- 딸칵

문이 열렸다.

"콜록. 콜록."

목이 마르면서 피가래가 섞여 배출되었다. 
게임 진행자는 배려심 따위 없는 놈인지, 방엔 마실 거 하나 없었다.
기침을 하며 눈을 깜빡이니 화면은 그새 바뀌어 있었다.

[ 민지 - ■혼은 모든 사물이 지니고 있어. ]
[ 도현 - 영■은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아.  ]
[ 지우 - 그럴지도 모르지만 모든 생명체는 ■이 뭔지 자세히는 모를 거야. ]
[ 소진 - 세인트 폴리아의 꽃말은 '작은 사랑'이야. ]
"바이탈 체크! 혈압이 제대로 측정되지 않아! 심정지 상태 돌입!"
[ 거짓말 하는 사람의 수: 4명 ]
" 병원에서 에피네프린 투약하랍니다! 당장! "
씨발.
세인트 폴리아? 그것도 꽃인가. 어디서 들어본 거 같긴 한데.
실내에서 자주 양육하는 꽃이었나.
내가 식물을 좋아하긴 해도 단순히 꽃집을 가끔 들리고, 꽃 몇십 개를 기르는 수준이다.
나라고 모든 꽃의 꽃말을 아는 게 아니다.

그래도 다행이긴 하네.
4개 모두 거짓이니.
나는 민지, 도현, 지우, 소진을 선택했다.

- 딸칵

문이 열렸다.
그 곳을 들여다보니 온통 검게 칠해진 세상이 보였다.
눈을 깜빡인다.
풍경이 찰나에 역변한다.
허무할 정도로 새하얗고 끝없이 드넓은 미지의 땅이.
생명체도, 물질도 없는 공백의 세상이.
눈 앞에 펼쳐졌다.
수상한 화면은 오류라도 생겼는지 희미해진 상태였다.

[ 민지 - . ]
[ 도현 -   ]
[ 지우 -  ]
[ 소진 - ■은 죽음을 의미하지.. ]
"...보호자분 연락이 닿았습니까?"
[ 거짓말 하는 사람의 수: 5명 ]
"아니요. 최대한 서두르고 있습니다."
5명...?
4명밖에 없는데...? '

문득,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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