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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샬레의 선생과 결혼반지(1)

에이(221.154) 2023.08.21 23:11:23
조회 9919 추천 64 댓글 27
														

야심한 밤, 전등 하나 겨우 밝혀진 방 안, 두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지? 또 뭔 이상한 일을 꾸미는 건 아니겠지?”


“안심하시길, 선생께서 걱정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좀 힘들죠, 선생을 당황케 할만 한 일을 만드는 건 말입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럼 날 부른 이유가 뭐지? 설마 뭐 같이 술이나 마시자고 부른 거야?”


남자는 희미하게 웃음기를 띄며 말한다.


“뭐, 그렇다면 정말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아닙니다. 다만 비슷한 것이긴 합니다.”


“비슷한 거라고?”


“선생이 지금까지 제 호기심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충족시켜주었으니, 제가 보답을 해야겠지요?”


남자는 책상 위로 작은 케이스 하나를 올려놓는다.


“이게 뭐지?”


“열어보시면 알 겁니다. 제 선물이니 받아주시길.”


그는 남자의 선물을 받아들었고, 조심스럽게, 마치 갓난아이를 다루듯 그렇게 케이스를 열었다.


“........”


“마음에 드십니까? 제 안목이 틀리지 않았을....”


“........”


“선생?”


그때, 남자는 보았다. 자신이 그에게 지금껏 보지 못한 표정을. 그 표정은 마치 이 세상에서 제일 역겨운 생물체를 본 듯한 얼굴이었다.


“이게 뭐하자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죠?”


“질문의 의도를 알 텐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왜 케이스 안에서 반지가 나오는 거지?”


“그거는 당연히..... 잠깐. 이거 설마 그렇게 보입니까?”


남자는 바로 해명을 하려 했지만, 그는 어느새 멀찍이 뒤로 가 있었다. 그리고 방의 불을 키면서 남자에게 소리쳤다.


“이거 또라이 새끼 아냐! 날 그딴 눈으로 보고 있었어? 저리 안 꺼져?”

“선생, 선생? 진정하세요. 그런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진정하지 못했다. 그의 당혹스러움과 격노는 한층 한층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뭐 찬양이란 찬양은 다 했던 게 오늘을 위한 빌드업이었냐? 나쁜 놈인 줄은 알고 있었다만 이런 쪽은 생각도 못했네, 지금껏 키보토스에서 있던 날 중에 오늘이 제일 당황스럽다?!”


“선생, 침착하시죠.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짓을 했던 것은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이건 절대로 그런 의도가 아니...”


“으슥한 밤에 불러서 반지 케이스를 건네는 게 대체 무슨 의도가 아니라는 거야?! 몸도 마음도 양복도 다 시꺼먼 놈아!”


“자리에 앉아서 다시 이야기하시는게...”


“꺼져! 그 이상 다가오지 마라?!”


“이거 참.....”


그렇게 수 분이 지나고, 검은 양복은 겨우겨우 오해를 풀고 선생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선생 또한 식은땀을 흘린 채, 다시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내가 오해를 단단히 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일단 사과하지.”


“뭐, 전 괜찮습니다. 진귀한 구경을 했거든요. 웬만한 상황에서도 평정을 유지하던 선생이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은 처음 봤으니 말입니다.”


“시끄러워, 지금도 심장이 미치도록 뛴다. 아무튼, 그래서 이 반지는 대체 뭔데?”


선생의 물음에, 검은 양복은 책상에 팔꿈치를 받혀 턱을 괴고는 말했다.


“그냥 결혼반지입니다. 다만 반지를 끼는 사람끼리의 사랑을 더 두터이 해줄 뿐이죠.”


“그 말을 그냥 넘겨들을 수는 없는데. 뭐 반지에 이상한 장난질이라도 친 거야?”


“<큐피드의 화살>같은 거라고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왕 하는 결혼이라면 돈독해야죠. 중간에 마음이 갈라서면 얼마나 안타까운 인연이 되겠습니까?”


“배려심에 눈물이 다 나는군.”


“감사하군요.”


선생을 반지를 오른손으로 들고는 이리저리 둘러봤다. 티끌 하나 없는 새하얀 순백의 반지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뺏길 것만 같은, 그런 반지였다.


“예쁘긴 정말 예쁘네, 다른 사람들이 주는 거면 기쁘게 받았을 텐데 너한테 받으니 미심쩍은 마음만 드네. 일단 주는 거니 받기는 하겠다. <큐피드의 화살>이라는 말도 마음에 걸려서 다시 너한테 돌려주기도 그렇다.”


“마음대로 하시죠. 그건 이미 선생에게로 주기로 한 거니. 다만, 한 가지만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떤 걸?”


검은 양복은 히죽거리며 물었다.


“그 반지는 누구에게 줄 겁니까?”


“......뭐?”


“둘이 같이 손가락에 끼고 다녀야지만 반지는 빛을 발하는 법. 선생도 결국엔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겠지요? 과연 그 주인공이 누굴지 살짝 ‘호기심’이 들었을 뿐입니다.”


“당장 결혼 생각이 없어요, 이 친구야.”


“그럼 가능성이 높은 한 사람만 알려주시죠? 키보토스 학생들 중에 선생은 과연 누굴 선택할지....”


그 말을 듣고 선생은 표정을 한껏 꾸기고는 대답한다.


“미쳤냐? 걔네들은 이제 열여섯 열일곱하는 나이고, 나는 낼모레 서른입니다. 그리고 선생이 학생을 그렇게 바라보면 쓰겠냐? 난 사심으로 학생을 대하지 않을 거고.”


“매우 바람직한 마음가짐이군요. 과연, 선생은 실로 바람직한 지도자입니다. 그러면 반지의 주인공은 학생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건 맘대로 하시고, 근데 아마 ‘나’는 이 반지 평생 쓸 일은 없을 거야. 어쩌면 반지를 평생 끼울 일도 없을 것같기도 하고, 그렇게 알아둬.”


“그건 어째서죠?”


선생은, 자신의 왼손을 툭 떼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오른손도 검은 양복에게 펼쳐보았다. 그의 오른손은 결혼반지를 끼우는 약지 부분이 잘려나가 있었다.


“난 반지 끼울 손가락이 없거든.”


“아.”




시간이 지나고 오후의 샬레. 선생은 사무실 책상 위에 반지를 놓고는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받긴 했는데 이걸 어쩐다? 아름답긴 하지만...’


검은 양복에게서 받은 이 반지는 새하얀 눈같았다. 그 순백(純白)은, 마치 평생을 왕궁 안에서 살았던 어여쁜 공주를, 아직 세상의 풍파를 받지 않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선생은 그 모습을 보면 볼수록 마치 여우에게 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그냥 반지는 아니야. 뭔가 있어. 이건 요물(妖物)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평소에 귀금속류는 신경도 않는 내가 멍하니 반지를 바라볼 리가 없잖아?’


“선생님, 뭘 계속 그렇게 바라보고 있어요?”


선생의 옆에서 익숙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이곳에 올 때마다 반겨주는 바로 그 목소리, 선생은 그 목소리에 히죽거리며 대답한다.


“오, 아로나도 반지에 관심이 있어?”


“반지요?”


선생은 싯담의 상자에 그 새하얀 반지를 가져와, 아로나가 그 반지를 잘 볼 수 있게 했다. 순백을 본 소녀의 푸른 눈동자는 마치 바다처럼 빛났다.


“우와! 너무 예뻐요! 눈처럼 새하얗네?”


“그리고 반지는 이거 하나가 아니야. 두 개지.”


“우와아....”


반지가 보여주는 그 빛에 반하기라도 한 듯, 아로나는 그 반지에 눈을 떼지 못했다.


“결혼할 상대에게 손가락에 끼워줄 반지라던데, 난 잘 모르겠다.”


“결혼이요? 선생님 결혼하세요?!”


아로나가 갑자기 큰 목소리를 내자, 선생님은 웃으며 아로나를 진정시킨다.


“아로나, 난 결혼할 생각이 아직은 없어.”


“언젠가는 하실 거잖아요? 프러포즈도 하실 거고, 무릎을 꿇으면서 반지를 손에 들고 말하는 거죠. ”나와 결혼해줄래?“라고! 꺄~!”


“상상하니 부끄럽긴 한데, 어쨌든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니까 진정해, 진정.”


“그럼, 지금 한 번 여기서 끼워볼 수 있어요? 반지 낀 선생님도 궁금해.”


“그래, 어디 한 번 끼워볼까?”


선생은 오른손을 펼쳐봤다. 하지만 이내 선생의 마음에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약지가 있어야 할 부분이 텅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선생이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서글프게 웃자 아로나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우울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죄, 죄송해요. 제, 제가 괜히....”


“죄송할게 뭐 있어, 손가락 잘려나간게 아로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리고 반지 끼울 손가락이 약지만 있겠어? 다른 곳도 있지.”


선생은 오른손 검지에 반지를 끼우고는 말했다.


“짜잔, 어때?”


아로나는 반지를 낀 선생의 모습을 보자 다시 웃음이 돌아왔다.


“와아... 정말 예뻐요.”


“뭐, 결혼반지 느낌은 안 나지만 다른 느낌이 확실히 나지.”


“어떤 느낌이요?”


“절대반지.”


그리고 선생은 아로나를 향해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골룸 연기를 시작했다.


“마이 프레셔스!! 이하하하하~”


“뭐에요 그게~ 아하하하!”


똑똑.


“선생님, 들어가도 될까요?”


“어, 들어와.”


사무실의 문에서 남색 머리카락의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귀를 틀어막으려는 시늉을 보였다.


“선생님? 왜 귀를 막으시죠?”


“왠지 다음 대사가 예상이 될 거 같거든.”


“제가 어떤 말을 할 거 같은데요?”


“왜 지출이 전 달보다 배는 늘었냐고?”


“어떻게 아셨어요? 대단하시네요, 선생님.”


“나 천재인 듯.”


“아하하하....”


“하하하....”


“웃음이 나와요?”


그녀는 곧바로 표정이 싹 굳고는 바로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 거를 일일이 제가 간섭하지는 않겠지만, 왜 게임에 쓰는 지출이 점점 늘어가는 건데요? 그것도 한 달 식비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 뭐... 덜 먹는다고 죽진 않잖아. 일주일 굶어도 죽지는 않더라.”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허상에 눈이 멀어서 자기 자신의 관리를 소홀히 한다는게 이해가 안 되거든요?”


“클럽 말랑말랑이 허상은 아니....”


“시끄러워요!”


“히익.”


“그리고, 새로 생긴 이 지출들은 뭐에요, 사실대로 이야기해봐요.”


“뭐, 래빗소대나 아리우스 애들을 좀 챙겨주느라...”


“그게 한 달 월급을 다 탕진할 만큼 중요한 일이에요?”


“아이, 뭐... 다 내 학생들...”


“효율적으로 살라고 강요는 안하겠지만, 저축도 없이 이렇게 하루살이처럼 살면, 나중에 어떻게 살려고요? 금전감각이 이렇게 떨어지면 누가 챙겨주고 사는데요?”


“아, 알았어. 미안해. 다음 달부터는 게임 지출도 줄이면서 살게. 이번만 용서해주라.”


선생이 양손을 들어 올리면서 싹싹 빌자, 유우카는 그 모습에 한숨을 푹 쉬고는 말한다.


“정말, 제가 아니면 누가 챙겨주면서 살...?”


갑자기 말을 멈추고 뭔가를 바라보는 유우카에게 선생이 물었다.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쨌든, 앞으로는 좀 지출계획을 좀 세우세요.”


“알았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감사는 됐어요.”


그리고 그녀는 다시 몸을 돌리고는 사무실 밖을 나갔다. 선생은 진이 빠졌는지 의자에 널부러져 있었다.


“무서워... 다음 달에는 가챠를 관둬야 하나? 다음 달에도 지출이 똑같으면 잔소리로 안 끝날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솔직히 선생님이 낭비벽이 심하긴 해요.”


“아로나까지 그러기야? 뭐,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어쨌든 유우카하고 결혼할 사람은 금전문제 걱정은 없을 거 같네.”


“그럼 선생님은 결혼반지를 유우카씨한테 드릴 거에요?”


“모든 문제를 나의 결혼하고 맞추지 말아줘, 아로나. 학생을 상대로 어떻게 선생이 그러니.”


선생은 그리고는 다시 그 반지를 보며 웃음기를 띄고 응시했다.


“아무튼 반지는 참 예쁘다.”


한편, 샬레의 사무실 밖으로 나가 복도를 걸어가던 유우카는, 상당히 당혹스런 표정이었다. 선생의 책상 위에 있던 것은, 분명히 반지였기 때문이다.


선생은 귀금속류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꾸밈에 1도 관심없는 사람이라 옷조차도 사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이다. 근데, 그런 사람이 난데없이 반지를 들고 왔다.


‘대체 뭐지... 반지가 왜 선생님에게?’


복도를 계속해서 걸어가는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내 하나의 결론이 내려진다.


‘설마... 선생님이 누구에게 주려는 건가? 그걸? 반지를?’


선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반지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보고 또 봐도 정말 예쁘고 마음에 드는 반지였다.


“헤헤, 반지 예쁘당.”


하지만 선생은 몰랐다. 앞으로 이 반지 때문에, 자신의 가장 큰 흑역사가 생성될 것임을, 키보토스 학생들에게 한바탕 난리가 날 것임을, 아직 그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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