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선생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몸이 쑤시고 아프고, 계속 졸립기만 하고, 몸의 상태가 영 예전같지 않을 때마다, 한 몇 살만 젊어졌으면 좋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아직 서른 줄에 접어들지도 않은 선생이었지만,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식습관을 개선하거나, 수면의 질을 개선하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선택지를 택한다. 하지만 선생은 이런 선택지는 쿨하게 포기해버린다.
선생은 식사라는 것에 대해서 별로 크게 신경쓰지 않아, 우선순위를 한없이 낮춘다. 하루 세끼 컵라면만 퍼먹는 그런 인간이다. 후우카나 세리나같은 학생들이 이거에 대해서 노발대발할때마다 맨날 알았다 알았다 말은 반복하는 선생이지만, 딱히 식습관을 고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좋은 것만 먹여야 한다는 사람이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수면은 진작에 포기했다. 샬레에 들어선 이후부터 그의 수면시간은 대폭 줄어들었다. 블랙기업 뺨치는 업무량에 선생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렇다고 그가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보니, 정시퇴근이란 그에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툭하면 사건사고가 벌어지는 이 키보토스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일을 수습하는 것도 그의 일이었기에, 그에게는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다 보니 제대로 된 운동을 할 시간도 없다. 가끔 러닝을 하거나 등산을 하는 등의 운동은 하지만, 최근에는 골골대는 시간만이 더 많아졌을 뿐이다. 그리고 요즘엔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기보다는 남은 에너지마저 다 빨아간다는 생각까지 하는 선생이었다.
피부도 갈라지고, 다크서클도 판다마냥 내려오는 자신을 보며 한탄했다. 예전에는 나름대로 기운이 넘쳤는데, 요즘은 좀비가 다 되었다. 선생은 이를 해결하기는 해야 했다. 이대로 가다간 그냥 총 맞아 죽기 전에 과로로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휴식을 취한다 한들 일거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처리해야 할 일만 는다. 그래서 휴가는 쓰지도 않는다.
‘녹용이라도 사서 달여야 하나.. 아니지, 블랙마켓에 가면 뭐 오컬트적인 거라도 팔지 않을까? 뭐 좋은 방법이... 아니지, 있잖아! 이런 류에 아주 전문적인 애가.’
선생은 원래 나사가 여러 군데 빠진 인간이긴 했지만, 이날은 아예 분해된 수준이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정신 나간 판단을 해버린다. 선생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사야니?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그리고 선생은 이 날을 회고하길, 자신의 인생에서 한 두 세번째로 정신나간 판단이었다고 했다.
***
어느 날 아침, 샬레. 오늘의 당번, 하야세 유우카가 사무실로 향한다. 반지 사건 이후로 어느 정도 관계가 좀 어색해진 감도 있지만, 그녀는 선생과의 관계가 진전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준비를 열심히 한 그녀였다.
“선생님, 들어가도 될까요?”
“.........”
돌아오는 목소리가 없다. 설마 선생은 출근을 하지 않은 것일까하고 유우카는 생각했다. 그런데 문 손잡이를 잡아보니 문이 잠겨 있지는 않다. 그러면 뭘까, 혹시 지난번처럼 엎어져 자고 있지는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호통을 치면서 깨울 그녀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평소와 다르게 부드럽게, 그렇게 해주자 생각하며 유우카는 문을 열었다.
“들어갑니다, 선생님.”
그렇게 연 사무실 문, 그리고 늘 그랬듯이 반겨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 유우카!”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평소의 그 낮은 선생의 목소리가 아니다. 선생의 목소리라기에는 너무 밝고 명랑했다, 마치 아이가 내는 목소리처럼. 처음에는 그냥 선생님이 억지로 목소리를 끌어올려 장난이라도 치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몇 초 뒤, 그녀는 머릿속에 거대한 충격을 맞이하게 된다.
“어, 안녕! 아하하.....”
평소에 보던, 그녀보다 머리 하나 크고 훤칠한 그 어른은 온데간데 없고, 웬 꼬맹이가 서있다.
눈은 똘망똘망하고, 얼굴에는 젖살이 있으며, 머리는 삐쭉빼쭉하고, 팔도 다리도 짜리몽땅한 그런 꼬맹이. 고작 일곱, 여덟 살로 보이는 그런 꼬맹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왠지 선생하고 닮아보였다.
유우카는 잠시 뇌가 사고를 멈췄지만, 이내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누, 누구니...? 혹시 선생님하고 아는 사이니? 여기는 어떻게 왔니?”
“내가 선생이야.”
“네?”
“유우카, 내가 선생이라고.”
잠시 몇 초간의 정적, 그리고 그녀의 반응이 돌아온다.
“예에에에에?!!?!!??!!??!?!?!?!?!”
“오, 엄청난 리액션.”
그녀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샬레 건물 전부가 울릴 만큼,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진정했어?”
선생은 요구르트를 빨대에 꽂고 쪽쪽 빨고는, 태연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묻는다.
“네, 어느 정도는요.”
그녀는 다시 평정심을 유지하고는 꼬맹이 선생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어쩌다 그런 모습이...”
“음, 사람이 있잖아. 정신이 나가면 간혹 이상한 판단을 해버리는 거야. 그리고 그 결과가 이 모양인 거고.”
“돌려 말하지 말고 핵심만 얘기해보세요.”
“사야한테 어려지는 약 부탁했다가 약빨이 너무 잘 받았어. 한 7~8살 정도 어려질 줄 알았는 데 7~8살이 되어버릴 줄은. 헷.”
그렇게 말하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선생. 유우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더라도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피험체가 될 생각을 하다니, 평소에도 나사가 빠진 사람이었지만 이 정도로 나사가 빠진 사람일 줄은.
“선생님..... 대체 그게 뭔... 그 때 그 반지도 그렇고, 선생님은 대체 뭔 생각이신 겁니까?”
“에헤헤... 그냥 귀여운 실수로 봐주면 안 될까?”
귀여운 실수는 무슨 놈의 귀여운 실수. 평소의 선생이 그렇게 말했다면 유우카는 바로 폭풍 잔소리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전의 선생하고는 다른, 너무나도 어리고 귀여운 모습, 그런데 거기에 웃기까지 하니 그녀는 마음이 살살 녹는다.
‘귀, 귀여워! 선생님 어릴 때는 저렇게 생겼구나... 비슷한 것같긴 한데 완전히 딴 판이야...’
하지만 저 모습에 언제까지 정신이 팔릴 수는 없는 법. 유우카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선생님이 이렇게 된 거, 몇 명이나 압니까?”
“음... 총학생회는 내가 직접 연락을 했으니 알고, 사야도 알고. 뭐 아는 사람은 딱 이 정도?”
“린 부회장이 안다고요?”
“응. 나 보니까 뒷목 잡고 쓰러지던데. 하하.”
선생은 웃으며 말하지만 사실 정말로 뒷목 잡고 쓰러질 만한 일이 맞다. 키보토스에서 ‘선생’은 정말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총학생회장이 사라진 지금, 선생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근데 그런 ‘선생’이 제대로 된 업무처리가 불가능한 어린아이가 되었다? 린의 입장에선 없던 고혈압도 생겨버리는 것이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 아니지, 웃어도 되나? 귀엽다.’
“뭐, 아무튼, 불행 중 다행으로 정신까지 어려지진 않았어. 그러니까 린이 우려하는 대로 최악의 상황까지는 아니라는 거지. 그리고 원상복구하는 약도 곧 만들어진다고 하고.”
“약이 완성되기까지 어느 정도 걸리죠?”
“일주일 정도?”
일주일, 일주일 동안은 선생은 어린아이 상태로 쭉 있는 것이다. 유우카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선생에게 말한다.
“선생님, 솔직히 말해서 뭐 이게 자그마한 해프닝 수준은 아닙니다. 카이저 코퍼레이션이나 헬멧단같은 녀석들에게 이 소식이 알려지면 선생님 신변에 바로 위협이 갈 수도 있어요. 그리고 당장 그 몸으로 업무는 어떻게 보시게요. 그리고 그 상태로 지휘는 하실 수 있겠어요?”
“음.. 정신이 어려지지는 않았으니 뭐 어느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차피 어른이었을 때도 목숨 노려지는 건 여러 번 있었잖아? 그리고 어차피 총 맞아 죽는건 어릴 때나 어른일 때나 큰 차이가 없어.”
그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양쪽 손을 들어올리는 제스처를 취한다. 유우카에게는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에헤헤.. 귀여운데.’
그러나, 선생의 왼손을 보자 바로 그 생각이 날아간다. 의수가 끼워져야 할 자리가 텅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서, 선생님? 왼손은 어디에...”
“아, 그거? 어려져서 그런지 맞지가 않더라. 그래서 일단 빼버렸어. 당분간은 외팔이로 살아야 할 거 같은데... 새로 만들어달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선생님...”
표정이 다소 좋지 않아진 유우카에게, 꼬맹이 선생은 다가가 손을 잡으며 말한다.
“에이, 표정 그렇게 짓지 마. 난 괜찮아! 지금껏 잘만 살아왔는데. 나는 왼손이 없는 것보다 네가 표정 그렇게 짓는게 더 마음에 안좋아. 그러니까 웃어. 난 그게 더 좋더라.”
선생이 다시 그렇게 웃어보이자, 유우카도 그 모습에 다시 웃을 수 있었다. 꼬마애가 몇 살은 더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해준다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든 그녀였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선생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장하네요.”
“?? 유우카?”
선생이 놀란 듯이 그녀를 쳐다보자, 유우카는 자기가 순간 무슨 짓을 했는 지 자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손을 떼고는 바로 사과한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아니야, 뭐 죄송할 게 있어.”
선생은 유우카를 올려다보고는, 뒷머리를 긁적이곤 말한다.
“음, 내가 이렇게 되버려서 좀 이전보다 많이 도와줘야 하긴 할 거야. 그래서 염치없지만 부탁할게. 나 좀 제대로 도와줄 수 있겠니?”
저 꼬마아이의 부탁에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뭐, 원래도 하던 일인데요. 조금 더 일한다 한들 크게 문제 될 건 없죠. 우리 꼬마 선생님이 선생님 노릇 할 수 있게, 제가 제대로 도와줘야겠죠?”
“고마워!”
선생은 다시 한 번 빵긋 웃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유우카는 순간 머릿속에 끈 하나가 끊어졌다.
“선생님, 그러면 부탁 하나 해봐도 될까요?”
“? 뭔데?”
“안아봅시다.”
“네?”
그녀는 표정이 순식간에 얼굴이 풀리고, 마치 최애라도 본듯마냥 기뻐하면서 선생을 껴안았다.
“꺄아~ 너무 귀엽다! 정말 이게 선생님이라고요!? 인형같아!”
“뭐, 뭐하는 거야?! 자, 잠깐만! 유우카!”
“유우카가 아니라 유우카 누나라고 불러야지, 꼬맹아? 한 번 불러볼래?”
“무슨 소리야 그게?! 잠깐만 내려볼래?!”
“누나라고 해주면 내려주지~”
“유우카씨, 유우카님? 왜 이러세요?! 정신 차려!!”
“에헤헤~”
“내 말 안들려?!!? 유우카!!!”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쇼타에 눈뜬 유우카에게서, 선생은 겨우 누나라고 말하며 풀려날 수 있었다. 물론 끝나자마자 그녀는 바로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했다. 선생은 이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하하... 왠지 이번에도 순탄하진 않을 것같은데...’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이번에도 순탄하진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이번에도 키보토스 학생들을 또 발칵 뒤집어놓으리라.
-후기-
전에 쓰던 에피소드2는 폐기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봐도 너무 재미가 없어요. 원래 에피소드3로 구상하던 내용을 지금 당깁니다! 꼬맹이 선생의 활약을 기대해주세요! 이 에피소드는 <샬레의 선생과 결혼반지>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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