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뭐 귀멸에서 과거사가 비참하지 않은 인간을 찾는 게 더 빠르긴 하겠다만은

부모님이 죽고

하나 남은 언니가 죽고

카나오 이외의 후계자들도 전부 죽어버리고

그녀 자신도 미운 원수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죽어버리는(이건 차후 전개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 비참함이 참...어떻게 표현이 안 될 만큼 사랑스럽네

도우마가 '언니보다 재능도 없는데 노력했구나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기적이야' 할 때도 생각했지만

카나오가 시노부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언급에서 새삼 재인식했던 건데

시노부, 재능따윈 진짜 지독하리만치 없었던 거지.

그래서 언니도 복수일랑 관두고 그냥 전부 잊어버린 채 행복하게 살라고 했던 거겠지. 어차피 얘도 해봤자 자기처럼 죽을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시노부는 사랑하는 사람을 전부 잃어놓고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여자로 사는 일따윈 결코 할 수 없었던 거잖아

차라리 저도 죽으면 죽었지 그 어마어마한 분노를 도저히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던 거잖아

그러니까 대신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겠지

'살아남은 게 기적'이 되는 삶을 걷는 걸 택했겠지

그 결과 귀신을 죽이는 독도 발명하고

(솔직히 목을 베거나 아침까지 버티는 2택밖에 없는 귀신과의 싸움에서

상현에겐 통하지 않고 또 무잔에게 독의 정보가 흘러간다는 페널티를 감안하더라도

독살이라는 옵션을 추가한 건 생각보다 더 대단한 공적이라고 생각함

헤이안 이래 귀살대 천 년의 역사에서 '귀신을 죽이는 제 3의 방법'을 발명한 건 시노부가 최초일 걸

시노부가 나비저택을 총괄하며 의료 관계도 맡고 있는 걸 생각하면 검술은 뒤떨어져도 그 중요성을 보아 지주 자릴 꿰차고 있는 건 당연함

더 정보가 나와봐야 확실해지겠지만 타마요의 발언을 보면 타마요와 협업해 귀신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약도 만든 모양이고)

꽃의 호흡을 못 익히는 대신 벌레의 호흡도 만들고 어떻게 귀살대 지주까지 됐는데

그래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던 거야

그간의 노력따윈 전부 무가치했던 거야

도우마가 시노부를 죽이기 전에 울면서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노력하는 어리석음 덧없음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훌륭한 점이야' 말인데

그의 본성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는 과연 진심이었는지 텅텅 빈 사람 흉내였는지 아리까리해진 게 아쉽긴 하지만

당시 시츄에이션까지 합쳐서 참 좋아하는 대사야

시노부의 인생을 그대로 압축하고 있어

귀신을 그렇게 싫어하는 시노부가, 귀살대 일하느라 18세 꽃다운 나이에 연애는 커녕 남자 손도 잡아본 적 없었을 시노부가

바로 그 귀신(게다가 언니 죽인 원수)의 품에 꼭 안겨서 싫어도 그 차가운 피부와 체취를 느끼며

'영원히 함께'라니 둘도 없이 열렬한 사랑 고백 같고 본인은 순전히 선의로 말하고 있지만 잘 들으면 코쵸 시노부 18년의 인생을 깡그리 조롱하고 있는 최고의 모욕을 바로 귓가에서 들으며 죽어버린다는 게

...상상만 해도 시노부 얼마나 기 막히고 분하고 구역질나고 짜증났을까

시노부가 진짜로 칭찬받고 싶은 건 카나에였을 텐데 정작 울면서 칭찬하고 있는 건 그 언닐 죽인 도우마고

솔직히 그거 별로 칭찬도 아니고

근데 제일 짜증나는 건 그게 전부 사실인 거야

시노부가 쿄쥬로에 이어 지주 중 두 번째 사망자지만 

할 거 다 하고 근사하게 죽은 쿄쥬로하고 비교하면 정말 격이 다른...비참한 죽음인 거지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당당하게 '지옥에 떨어져라' 라고 원수에게 저주를 퍼붓고 카나오에게 수신호를 남기고 죽는 게 엄청 멋있어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결코 마음이 꺾이지 않은 거니까

지독하게 잃기만 한 인생에서 긍지를 위해 싸우고 긍지를 위해 죽은 그 모습이

끝의 끝까지 꼭 버러지처럼 비참하고 처참하고 무가치하고 무의미해서

그렇기에 더더욱 꽃처럼 아름답고 나비처럼 덧없고 지주답게 고결했던 것 같아

저승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언니에게 많이 많이 칭찬받으면 좋겠네

이젠 더 무리하지 않아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