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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 30대 전직 링크스의 퇴근길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3 22:45:53
조회 603 추천 12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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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다.


여사원의 퇴근길은 굽이진 골목길이다. 해는 빠르게 넘어갔고,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땐 이미 사방이 납빛이었다. 길 위로 가로등의 붉은 불빛이 쏟아지고, 싸락눈이 나풀나풀 떨어진다.

하늘엔 구름이 꼈다. 여사원의 취미는 퇴근길에 별자리를 찾는 것인데,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별과 별을 이으면 그림 하나가 늘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팍스 이코노미카 시대를 살아온 여사원에게 그 사실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 시절의 별은 일관성 하나 없이 그저 점멸을 반복하는 기분 나쁜 불덩어리였다. 그 반짝임이란 것은 햇살을 받은 쇠창살의 빛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 대부분이 인공위성이라는 소문을 떠올린 여사원은 피식하고 웃었다.

MSAC 홍보부서 사원으로서 주된 업무는 대중에게 인공위성과 어설트 셀은 다르다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괴소문 덕분에 끼니는 해결할 수 있게 됐다는 걸까. 여사원은 생각했다.


겨울바람이 불었다.

찬바람은 여사원의 안구를 훑고 지나간다. 눈이 몹시 따가웠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어째선지 안구 건조가 심해졌다는 사실에 여사원은 약간의 우울감을 느꼈다. 찬바람에 눈물 한 방울이 여사원의 뺨을 타고 흘렀고, 여사원은 귀찮다는 듯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여사원은 손가락 위에 남아있는 물기를 가만히 바라봤다. 눈물이 바람에 마르고 손가락이 시려온다.


여사원은 생각했다. 미인의 눈물은 도대체 뭘까.


여사원에게는 부사수가 하나 있었다. 그 부사수는 심지가 곧은 사람이었다. 심지가 곧다기보다는 좋게 말해 우버맨쉬, 솔직한 감상으로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철인이었다. 어딘가 어정쩡하고 우유부단한 구석이 있는 여사원과는 달리, 그녀의 부사수는 광석을 제련하여 사람을 만들어낸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단한 사람이었다.


여사원은 부사수를 보며 청동으로 만들어진 부조를 떠올렸다. 재미있게도, 청동과는 관련 없는 얘기지만, 부사수는 황금색을 꼬집어 항상 황동색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언젠가 여사원은 부사수에게 왜 황금색이 아닌 황동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부사수는 모두가 황금을 사랑할 때, 누군가는 하찮은 황동을 사랑해줘야 한다고 대답했다.


부사수는 왼손에 무거운 장검을 쥐고 있었다. 그 여자의 자그마한 몸과는 달리 징그러울 정도로 기다란 칼날이 푸르스름한 빛과 함께 번뜩였다. 여자는 왼손잡이도 아닌 주제에 항상 왼손으로만 칼날을 휘청거리며 휘둘렀다. 오른손에는 긍지를 꽉 쥐고 있었다. 옳은 것을 쥔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선 왼손을 더럽힐 필요가 있다. 그녀는 항상 칼을 휘두르는 왼손이 되기를 스스로 자처했다. 요람에 누워 사는 사람들은 그녀를 천박한 전쟁광 정도로만 보았다. 그녀가 누구를 위해 칼을 휘두르고 있는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군가는 맹세했다. 인류에게 황금의 시대를 가지고 오겠노라고. 하지만 그녀는 황금의 시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피로 제련한 황금이 아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황동이었다.

생존과 생명의 갈림길에서 선 그녀는 양손으로 장검을 쥐었다. 단 한 번도 놓아본 적 없는 긍지는 버려져 바닥을 굴렀다. 모든 이가 그녀를 비난했고, 비난한다. 기업의 창녀라거나 인류의 천적이라거나, 멍청한 여자라거나. 사람들의 말은 그녀를 난도질한다.


금속처럼 단단하던 여자가 무너지고, 자그마한 소녀 하나가 무거운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검은 무럭무럭 자라나 소녀의 힘으로는 들어 올리기 힘든 지경이 됐다. 소녀는 도무지 들어 올릴 수 없는 검 앞에서 주저앉아 양손으로 눈을 비벼가며 울었다고 한다. 눈물은 한 게으른 남자의 가슴 속으로 떨어져 거대한 파장을 일구었다. 남자는 검을 들 수 있도록 소녀를 단단히 부축해줬다. 갈림길에 선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생명을 향한 길을 걸어갔다.


여사원의 머릿속이 카팔스의 희미한 불빛으로 차올랐다. 여사원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콕핏이 녹아내린 레토나는 이제 생각하지 말자며, 여사원은 자신을 타일렀다. 생각은 생각을 물고 온다. 우울감의 기전도 마찬가지였다. 과거로부터 밀려오는 후회감에 가슴을 치지 말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속죄를 하자. 여사원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렇게 믿는 편이 편했다.


여사원은 목을 조르는 듯한 감각에 목도리를 허둥지둥 풀어냈다. 길거리의 CCTV가 회전하며 여사원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린다. 골목길엔 여사원을 제외한 그 누구도 없었다. 하지만 여사원은 모든 이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여사원은 누군가가 푸른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링크스 전쟁 종전 3년이 되는 해였던가. 해가 길어지는 초여름 저녁이었다. 훈풍이 불어오자 묘지 위의 풀들이 약하게 흔들렸다. 머리를 짧게 자른 선배는 쪼그려 앉아선 작은 묘비에 손을 얹고 있었다. 선배의 엄지손가락은 묘비에 새겨진 이름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땅에 묻힌 남자는 루마니아인 슈테판 마우레스쿠. 여러 국가를 코지마 입자가 덕지덕지 묻은 군홧발로 짓밟은 오만한 링크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손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조그마한 흙더미로 돌아갔다. 슬픔을 남기지 않는 죽음은 없다. 하루살이 같은 죽음이라 할지라도 남겨진 사람의 마음속에는 반흔으로 남는 법이다. 땅속에 묻힌 그 사람은 이 사실을 알았을까.


죽은 이의 이름을 한참이나 눈 안에 담고 있던 선배가, 슬픔이 담긴 푸른 눈동자로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덥게 느껴져 견디기가 힘들었다.


여사원은 겨울바람에 덥다고 생각했다. 여사원은 외투를 벗어서 손에 쥐고 제 걸음을 재촉했다. 가로등 아래의 그림자가 달아나듯 움직이고, 싸락눈은 비틀거리는 그림자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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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루트 이후 MSAC 말단 사원이 된 에이뿌=상

졸면서 쓴거라 글이 좀 두서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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