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주는 척박한 땅이다.

옛날에는 전국에서 가장 알토란 같은 땅이라 일컬었다고는 하나, 이 이야기는 풀을 뜯으러 나가는 목동 조차도 코웃음을 치며 믿지 않을 정도로… 이 지역의 농작물은 많이 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허구한 날 유목민만 털고 다닐 수는 없지."


오르도스 초원을 넘어서 약탈하려는 흉노 떼의 위협을 무찌르다 보면, 그들이 목숨 같이 여기는 군마와 약탈 집단을 따라온 그 식솔들의 가축과 노동력까지 굴러오는 때가 있긴 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어쩌다 한 번씩 걸리는 횡재였을 뿐. 진정으로 병주의 경영을 논한다면, 도적과 유목 약탈자를 털어먹는 일에 의존하는 건 어불성설.

이전 생의 아버지께서도 농업에 모든 정성을 쏟지 않으셨던가?

여포 또한 머나먼 옛날의 과오를 반성하고자, 그동안 묵히고 발효했던 비료를 군의 둔전과 농민의 땅을 깊게 파고 이를 섞었다.


푸르륵-

"오냐, 이번 구획만 갈면 끝이다, 끝! 말죽을 크게 쑤어 놨을 터이니 빨리 하고 끝내야 너도 나도 쉴 거 아니냐?"


훈련 된 병졸을 안장에 태우는 대신, 등에 쟁기를 얹은 채로 텅빈 밭을 가로지르길 반복했다. 군마가 아니더라도 유목 약탈자 무리에게서 얻은 말들은 끈기가 있고 영리하여 군졸의 지시를 잘 따랐다.


"아니, 형님. 병사가 훈련과 임무에 힘써야지, 이렇게 농사까지 맡으면 도적 떼는 누가 잡으라는 겁니까?"
"그래서 말하지 않았느냐. 추수를 하면 군자금으로 쓰일 것이나, 훈련과 부업을 모범적으로 행하는 이들에게는 성과급을 줄 거라고."
"뭣, 이걸 병주군 곡창으로 다 가져간다는 것이 아니라?"
"안 그래도 훈련이 고된 상황에서, 개인의 노동력을 또 쓰는 거면 마땅히 보답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마땅한 보상은 근로의욕을 샘솟게 하는 법.

예전의 꼰대들 처럼 '나때는 말이야~'를 시전하면서 불만을 살 바에야, 아예 병사들의 수입을 보장해주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하는 게 나았다.

그렇게 개간한 땅과 수리시설을 바탕으로, 초봄에는 콩과 보리를 심고 여름에 이를 수확하고 가을에 밀을 파종하는 방식으로 농경을 하자… 이 계획을 주도한 여포마저 깜짝 놀랄 양의 농작물이 나왔다.

여포가 말한 것은 이전 현대의 다큐멘터리와 잠이 솔솔 오는 유튜브. 그리고 고향의 아버지와 그 동네 주민들이 막걸리를 걸치고 두런두런 이야기 했던 일을 끈질기게 기억해내며 군졸과 주민에게 알려준 것이었지만.


"뭐지? 여 장군께서는 정녕… 그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고대 신농씨의 부름을 받고 힘이 그렇게나 장사라던 그거?"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끄는 쟁기부터 하늘의 때를 알고 농사를 지으라고 명령하신 게 어찌 이리 딱딱 맞아 떨어진단 말인가!"


오해였다. 어느 무협지의 우주검도 깨우치지 못한 여포에게 어디 그런 권능이 있겠는가? 허나, 평생을 땅과 하늘을 붙잡고 씨름하던 아버지의 몇몇 경험과 지혜는 무려 1천년 이상의 시간을 되돌아서 병주에 안착했으니…

당연하게도, 가을과 다음 해의 여름에 거두어진 산물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했고. 여포는 둔전을 경영하는 병사와 농민을 상대로 일컬었듯,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4할을 거두었다.

원래는 반절의 수확을 세로 거둬야 한다는 병주 문관의 지적에, 여포가 기겁하면서 '아무리 그래도 반절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부족한 건 내가 아껴쓰면 되니 4할로 줄여보자.'고 하였다.

콩과 보리, 밀의 수확 중 6할이 약속대로 생산자에게 주어지면서. 군졸과 농민들은 여포에 대한 충성심을 다시금 몸에 새겼다.

이 소식을 들은 정원은 또 여포 놈이 월권을 저질렀냐며 뒷목을 잡고 쓰러졌지만, 그건 병주의 백성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