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시대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낭만주먹의 시대를 그린 드라마. 깡패의 주먹에 낭만이라는 단어가 어울릴까는 질문은 차치하고 드라마에 빠지다 보면

연출의 힘이었겠지만 거친 남자들의 싸움에선 분명 낭만이 느껴졌다.

주어진 육신만으로 모든 걸 말하던 낭만주먹 시대가 사시미와 연장의 등장으로 끝나버렸다는 데서 아쉬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디씨에서 키배하는게 뭐가 그리 낭만적인지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키배란 나와 상대방의 화술, 주제에 대한 지식, 그리고 청중을 내편으로 끌어들이는 정치감각이 맞부딪히는 결투라고 생각했고

나도 지금까지 패드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감정조절에 실패할때가 아니면 패드립을 꺼려했던 이유는 

패드립을 사용한다는 의미는 '나는 너와 대화할 의지가 전혀 없다' 라는 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아닌 상대의 부모를 욕하는 행동은 대부분의 상황에선 뜬금없으며 논리와는 동떨어진 행동이기 때문에

'대화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 감정만 배설하겠다' '차단하던지 내 욕을 듣던지 둘중 하나만 해라' 이런 의미 아니겠는가?

당하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상대방과의 대화를 포기하는 이런 방식의 욕설이 흔하게 쓰이게 된 이후로 나는 갑갑함을 느꼈다.

내가 패드립을 싫어하는 이유는 감히 내 부모님을 욕해서, 저런 천박한 욕설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대화 자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화술, 지식, 정치감각이 쓸모가 없고 전혀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화조차 아니었기에 싸움이라고 볼 수도 없어서 개싸움조차 아닌, 그냥 개들이 짖어대는 꼴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갈고닦은 레벨과 장비, 컨트롤을 무색하게 만드는 치트나, 핵처럼 느껴졌다.

장갑을 던져 결투를 신청하고 레이피어를 뽑아들어 결투의 예를 갖추는데 상대가 갑자기 총을 꺼내서 쏴버리는 느낌?

쓰다보니 요즘것들은 쯧쯧 하는 꼰대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는데 아직 논리를 동반한 키배는 자주 볼 수 있으며

예전에 개새끼라고 하던 것이 요즘은 니애미가 된, 그저 사용하는 단어만 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변화를 크게 느끼는 까닭은 내가 아직도 십수년 전에 몸담았던 곳에 그대로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십년 넘게 흘렀는데 유행이 변하지 않았을까? 십년 전에도 형형거리고 반말하면 기겁하는 아재들이 있었으니 그것과 같겠지.

이천년대 중반쯤에 생각했던 패드립에 대한 생각이었는데 요즘은 패드립이 딱히 의미조차 갖지 못할만큼 흔하게 쓰이다보니

패드립을 통해 화술과 지식 정치감각을 겨루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낭만키배의 시대가 정말 가 버린 거라면 어쩌겠는가? 사시미를 갈아야지.

그래서 나도 조심스럽게 외쳐보려고 한다. 니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