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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eoe후일담/매움/번역 A Throne of Bayonets (3-2)

ㅇㅇ(14.6) 2021.05.14 21:20:04
조회 642 추천 21 댓글 8
														

수사관이 알고보니 쿠데타 일원이었는데 신지 수사에 임하는꼴보고 지가 라인 제대로 탄거 맞나 공포에 떠는 묘사 보고 감탄함ㅋㅋㅋ 작가가 이런쪽 글 많이 읽은건지...


진나이가 아스카 컴플렉스 이용해먹는거 신지가 눈치까고 뒤엎는 것도 짠했고 그 외에 쉽게쉽게 넘길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게 하여튼 전개 빠르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수작이라고 생각함


바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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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우리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이 되면 난 식사를 만들고, 아스카가 방에서 터덜터덜 걸어나와 아무 말 없이 그릇을 들고 갔다. 5일째 되는 날 난 슬슬 깨끗한 접시가 동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됐지만 차마 먼저 아스카의 방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감정적인 문제로 대화를 강요했다가 뭔 일이 벌어졌는지 뻔히 기억하고 있었으니.


가끔 나는 아스카의 방 문 앞에 앉아 게임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총성을 가만히 듣곤 했다. 아스카도 알고 있는 듯, 한 번은 내가 일어나 떠나기 전까지 게임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가끔 스쳐지나가며 아스카를 보는 것을 제외하면 이제 내 생활은 SDAT를 들으며 바비카가 날 잡으러 올거라고 생각하고 있는걸로 축소됐다. 난 매일 밤을 무슨 말을 해야 아스카는 쿠데타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수사관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연습하며 보냈다.


또 그렇게 진행하던 가상 심문이 낯선 물튀기는 소리에 끊겼다. 난 잠시 물소리가 뭔 대수길래 그렇게 느껴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스카가 그 날 이후 씻지 않았었단걸 생각해낸건 잠시 후였다.


나는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노크했다. 내가 듣기 전까지 얼마나 걸렸던걸까.


"아스카?"


첨벙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컥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스카! 괜찮아?" 나는 소리쳤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숨이 막힌듯 재채기를 하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아스카!"


나는 문에 몸을 들이받았다. 어깨에 충격이 전해져왔다.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고통을 무시하고 다시 들이받았다. 이제 아마 멍 들었을 어깨를 계속 나무 문짝에 갖다 박으며. 아무 효과도 없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이제 미약해지고 있었다.


제발 이렇게 끝나지 말아줘. 난 생각했다. 제발...


나는 문고리 바로 위를 걷어찼다. 고리가 살짝 느슨해졌지만 그 외엔 아무 일도 없었다. 절박해진 나는, 아마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을 했다.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문이 열렸다. 아스카는 나체로 욕조 안에 있었다. 팔을 휘저으며, 폐에 가득 찬 물 때문에 캑캑거리면서. 나는 잠깐의 투쟁 끝에 그녀를 욕조에서 꺼냈다. 한번 손가락이 내 눈을 찔렀다.


아스카의 얼굴이 푸른색이 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아스카의 입에 내 입을 갖다대고 숨을 불어넣었다. 아스카는 벌떡 일어나더니 물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난 어쩔줄을 모르겠어서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스카는 엎드린 자세로 계속 재채기를 했다. 나는 그 동안 수납장들을 뒤지면서 면도칼과 다른 날카로운 물건들을 긁어모았다.


이렇게 세번째 키스를 했군. 씁쓸한 생각이었다. 아스카는 슬슬 진정되고 있었다.


"아스카. 괜찮아?"


고개를 들어 날 보는 아스카의 얼굴은 마치 코너에 몰린 동물 같았다. 팔로 몸을 감싸면서 최대한 가린다.


"나가!"


나는 그 반응에 놀랐다.


"아스카가 괜찮은지 확인하려는거야."


아스카의 몸이 떨리고, 눈물이 차오르는 눈으로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내 손에 들린 면도날들을 보자 이를 악문다. 곧이어 나온 말은 아주 부드럽고, 위험한 톤이었다.


"나가, 서드 칠드런."


"아스카가 당장 어떻게-"


아스카는 샴푸병을 집어들고 던졌다. 내 머리에 직격했다.


"나가!" 찢어질듯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나는 나가서, 아스카가 다시 옷을 입을 수 있게 문을 닫았다. 문이 다시 열리고, 아스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아스카, 우리-"


문이 면전에서 쾅 하고 닫혔다.


나는 잠깐 문을 열고 들어가는걸 고려하다, 대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우린 죽은 목숨이었다. 지금쯤이면 아마 체포 영장이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들 뭘 한단 말인가. 아마 상태만 악화시킬 것이었다. 내가 무슨 수로 아스카를 위로한단 말인가?


그래, 카지가 죽었을때 미사토를 보면서 한 생각이지. 그래서 잘 한 짓이었어?


나는 문을 열었다. 아스카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노트북을 올려놓은 채로.


"맞춰보자. 대화가 하고 싶다고."


"그래야 할 것 같아." 내가 대답했다.


아스카는 나를 보며 비틀린, 분노가 섞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서드. 너 얘기 좀 해보자고."


"난 진지해, 아스카."


"나도 진지해!" 아스카가 소리쳤다. "서드 임팩트 뒤에 같이 지낸 시간 내내 넌 나한테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못했었지. 이제 기회가 왔으니 물어봐, 신지! 알고 싶은게 뭐야?"


"아스카. 난 널 도우러 온거야. 지금은-"


아스카는 벌떡 일어섰다. "헛소리하지마! 언제나 너 자신 때문에 그러는거잖아! 나 지금도 네가 나 돕겠다는 이유 알아. 4년 전에 바닷가에서 나 못죽인 이유랑 똑같은거야. 넌 내가 필요하니까, 촌충이 숙주를 필요로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아!"


"그렇다니까! 너한테 대화란건 결국 내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너한테 신경써줄때까지 앉아서 내 얘기 들어주는 척하는게 대화잖아! 인류보완때 네 머릿속에서 날 갖고 망상한 것들 보고 다 알았어. 오직 너만을 위한 아스카 인형. 병원에 누워있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 그치, 신지?"


아스카의 목소리가 갑자기 몇 톤 올라가 어린애처럼 앵앵대기 시작한다. "오, 나랑 하나가 될래, 신지? 널 안아줄게, 신지! 내가 널 위로해주고 엄마가 되주고 언제든지 원할때면 어떤 감정이든 다 받아줄게! 네가 나한테 원한건 그것 뿐이잖아!"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진정시키려는 의도였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아스카는 손을 쳐내고 날 밀쳤다.


"내 몸에 손대지마!"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다. "감히 위로하려고 하지마! 마마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동안에도 도와주지 않았던 주제에!"


"그렇지 않아!" 의도했던 것보다 더 크게 목소리가 나갔다. "내 에바는 베이클라이트에 굳어 있었어! 움직일 수 없었다고! 아스카도 봤을 거 아냐, 인..그러니까.."


"인류보완 중에? 그래, 나 다 봤어. 네 한심한 인생사 전부. 놓쳤던 기회 전부, 평생 느꼈던 넘쳐나는 자기연민들. 그거 알아?"


나는 너무 지쳐서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수천배는 안 좋았다. 나는 간신히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스카의 얼굴에 승리감이 떠오른다. "그때 난 깨달았어. 넌 너무 엉망진창이라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거." 아스카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나도 널 도와주려고 했었는데. 가만히 서있기만 했지, 무슨 좀비처럼 고개를 늘어트리고, 온 인류가 멸망하는 와중에도 나한테 매달리면서."


"그러고 아스카가 거부했잖아." 나는 말했다. "인류가 통채로 지워지는 한이 있어도 날 받아주지 않았잖아."


아스카는 마치 내게 얻어맞은 것처럼 움찔했다.


"아, 그래서 이제 내 잘못이다 이거지? 그 다음에 뭔 일 있었는지 너도 기억하지, 신지?" 아스카는 셔츠 목깃을 끌어내려 목덜미를 드러냈다. "빨리 해! 지금이라도 마무리 하라고!"


"난..."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이 쏘아져 내 뺨을 때린다. 나는 고통보단 충격 때문에 뒤로 물러났다.


"아직도 배짱이 없으시다 이거지? 상관 없어. 어차피 좀 있으면 바비카가 다 알아서 할거니까."


바비카! 잊고 있었다. 이 집은 분명히 도청되고 있을터였다. 방금 대화도 전부 들었을게 분명하다. 카메라까지 어디 구석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난 검지를 세워 입술에 갖다댔다.


아스카는 계속 소리치려는 듯 하다, 갑자기 멈췄다. 대신 내게 가까이 걸어와 귀에 입을 댄다.


"난 죽을거야. 어떤식으로든, 곧." 아스카가 속삭였다. "그러고나면, 신지. 넌 혼자가 되겠지."


아스카는 내 어깨를 두드려주더니 방을 나갔다. 난 아마 몇분쯤 떨면서 거기 서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해야하지? 난 고민했다.


내가 계속 남아 있으면 언젠가 아스카가 위험한 소리를 하고 둘 다 죽을 것이었다. 떠나면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알약, 칼, 기타 등등 무수한 방법으로 맘대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긴, 바비카의 고문실에서 죽는 것보단 그쪽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난 새 옷으로 갈아입고 현관을 나섰다. 비밀 경찰 호위 둘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 신지. 또 도망쳐봐." 아스카가 소파에 앉은채로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베를린은 산책하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특히 비가 쏟아지는 밤에는. 부족한 영어실력이었지만 주변 몇블록의 요새화된 구역을 벗어나선 안된다는 얘기를 알아들을 순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리가 텅 비었다는 점이었다. 거지와 포주들도 밤에는 나다니지 않았다. 통금을 위반하는 것이었으니까. 통금은 필요악이었다. 전력 부족으로 야간 활동이 불가능해진 사회에서 밤에 돌아다니는게 도둑 말고 누가 있겠는가.


나는 예전 외출때 눈여겨본 원형 정원으로 갔다. 아마 정부 소속 누군가의 사유지였던 것 같지만 주변에 가까운 집도 없었고, 경호원들 쪽에서도 별 말은 없었다. 썩 괜찮은 곳이었다. 꽃들은 대부분 아열대산이었다. 임팩트 이후의 기후변화로 유럽산 종들은 더 이상 잘 자라지 못했으니까. 나는 눈을 감고, 이제는 보기 드문 시원한 밤공기를 즐기고, 빗방울이 아마 베고니아일 꽃의 넓은 잎에 똑똑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돌 벤치에 앉았다. 물기가 셔츠와 바지에 스며들기 시작했지만 난 더 이상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충동적으로, 난 벤치에 발을 올리고 누워, 잔잔한 빗소리에 잠을 청했다.


깨어나자 공기는 차가워져 있었고 경호원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잠들기 전까지 떨어지던 빗방울은 이제 박무로 변해 있었다. 땅에서 안개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오랜만이야, 이카리군."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근원을 찾았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붉은 눈의 소녀가 안개 속에서 걸어나왔다.


"아야나미...진짜야?"


레이는 살짝 고개를 까딱했다. "이상한 질문이야, 이카리군. 내가 환상이라면, 나는 정확한 정보원이라고 할 수 없어."


"그렇겠지."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바라보는 동안 그녀는 차분히 기다려줬다. 내 기억보다 훨씬 어린 모습이어서 묘하게 불편했다. 레이의 추억은 내 가슴속에서 언제나 묘한 그리움과 결부되어 있었다.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 그런게 가능한 한도 안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가슴 속 그녀의 모습도 나와 함께 나이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열아홉살 청년이 된 내 눈 앞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열네살 소녀였다.


"도와줘, 아야나미."


"그럴 수 없어."


"어째서야?"


"이카리군은 선택을 했어. 나는 이카리군을 영혼의 고리로 받아줄 수 없어. 내가 지키는 문은 바깥쪽으로만 열리니까."


"아야나미. 아스카랑 난 죽을거야.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아마 금방. 우릴 받아달란 말은 아니지만...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부탁이야, 아야나미."


그녀는 작게, 슬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직 소류와 함께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아스카는 아직 날 싫어해."


"...흥미로운 일이야."


"뭐가?"


"인간은 보답받지 못하는 감정에 더 천착하는 경향이 보이니까."


나는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 내 인생 얘기네."


"내 이야기기도 해."


이해하는데 몇초가 걸렸다. 그 후에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교복이 물기에 젖는 와중에도 인내심 있게 내 답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옆에 앉을래?"


또 슬프고 멀리 가 있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알았어, 이카리군."


우리는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딱히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지난 4년간을 인류의 기억속에서 헤엄치며 지낸 마당이니 참을성은 자연스러울거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그녀였다.


"이카리군이 죽으면, 영혼을 회수할 수 있을거야."


"아스카는?"


그녀는 살짝 고개를 떨궜다. "...소류에게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어. 본인이 원한다면."


나는 아스카의 마음이 30억 인류에게 열린 순간 그녀에게서 느껴졌던 수치심을 기억했다.


"아스카는 아마 동의하지 않겠지."


"이카리군은?"


"모르겠어. 난 종종 자연스럽게 죽는게 더 나은 것 아닌가 생각해."


아야나미는 답이 없었다. 예전에 내가 아버지를 모욕해서 뺨을 때렸을 때의 그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고는 다시 풀어진다.


"그때가 되면, 이카리군에게 남거나 떠날 선택을 주겠어."


이 주제를 더 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나...기다리고 있을게, 이카리군."


"아야나미, 나-"


나는 다시 깨어났다. 누가 내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비도 계속 오고 있었다. 바비카 요원들도 사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죠?" 나는 브로큰 잉글리쉬로 더듬더듬 물었다. 요원이 이해하지 못해서, 나는 몇 번 느리게 반복했다.


"1~2분 정도." 요원이 답했다.


내 정신이 슬슬 원래대로 작동하자, 두려운 생각이 엄습해왔다. 만약 방금게 꿈이 아니었다면? 만약 내가 지금도 인류보완 상태라면? 지난 4년간의 '기억'이 가짜 기억이 아니란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마치 내가 인류보완 당시에 '기억'했던, 아스카가 내 소꿉친구고 아야나미는 활발한 전학생인 인생과 같이?


나는 몸을 떨며 그런 생각은 잊으려 노력했다.











돌아온 집은 어둡고 조용해서, 나는 잠시 아스카가 그 사이 죽어버린건 아닐까 걱정했다. 나는 그녀의 방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숨소리가 들려오는걸 확인했다.


아직은...난 생각했다.


난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나가기 전에 켜놓은 책상 램프가 침대 위에 놓인 새 SDAT를 비추고 있었다. 첫날밤 아스카가 준 물건이었다. 집구석에 방치되어 있어서 버리려던 고물이라면서. 난 일주일 전 날짜가 찍혀있는 가격표는 못본척 했다. SDAT를 조심스럽게 옷장에 집어넣고 침대에 눕는다.


머릿속에서 서드 임팩트의 기억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백번 반복됐다. 흰색 에바들이 아스카의 어머니를 난자하는 장면, 거대하고 빼빼마른 카오루가 내게 손을 내미는 장면, 내가 한마디로 인류를 멸망시키는 장면.


모두, 죽어버려.


그 뒤로 이어졌던 모든 일들, 찢어진 가족들, 기아, 원자로 멜트다운, 군벌들, 윈스롭의 독재. 모두 내 선택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아스카를 자살로 내몰고 있는 이 악몽 같은 세계는 내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만회해야해.


"네가 이겼다, 진나이."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책상서랍을 뒤져 연필과 종이를 찾아냈다. 조만간 둘은 수사망에 오를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용의자를 제공하자.



친애하는 아스카에게,


우리가 로켓 공격을 받고 헤어졌던 날을 기억하겠지. 네가 날 다시 찾아냈을때, 난 너처럼 공격자들을 피해서 숨어 있다고 말했었어. 그건 거짓말이야.


우릴 공격한 사람들은 세군다 루타가 아니라, 쿠데타군이었어, 아스카.



"너무 드라마틱해." 난 중얼거리며 전부 지웠다.



친애하는 아스카에게,


이 편지를 네 옷장에 숨겨놓는건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어서야. 세군다 루타의 공격은 위장이었어. 우릴 공격한 사람들은 쿠데타를 모의 중이었어. 네 직속상관, 작전부장 진나이가 그들의 수장이야. 진나이는 내게 에바를 조종해 정부를 전복시키자고 제의했고, 난 제의를 받아들였어. 네가 이걸 읽고 있다면 아마 우리가 실패한 뒤겠지. 미안해, 아스카. 너는 언제나 정부에 충성했으니 충격이 클거야. 날 용서해줘.



난 잠깐 진나이의 이름을 지울까 고민해봤지만, 그냥 남겨놓기로 결정했다. 이 꼴을 만든데는 진나이의 책임이 컸다. 실패한다면 최소한 죽기라도 해야할 것이다. 이제 남은건 아스카의 우울증과 자살 시도를 설명하고...내가 죽은 뒤의 다음 시도를 방지하는 것 뿐이었다.


P.S. 공격이 서드 임팩트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들어서 며칠 힘들었던거 알아. 건강하길 바래. 자기 자신에게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진심을 담아,


이카리 "바보" 신지


서드 칠드런



바비카가 아파트를 수색하면, 이걸 찾아내고 가담자는 나뿐이었다고 판단할 것이다. 아마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자살 방지책도 마련하겠지.


나는 종이를 몇번 접고 아스카의 방 문까지 살금살금 갔다. 숨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자는 것 같길래, 문을 열고 살짝 들어갔다. 책상을 찾아내는데만 1분이 걸렸고, 한번 클립이 담긴 박스를 쳐서 바닥에 쏟아 잔뜩 긴장도 했다. 다행히 아스카는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잠들어 있는 얼굴이 4년전 내 이불에 기어들어온 소녀의 얼굴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 눈을 떼기 힘들었다.


"이렇게 하면 한 명이라도 살겠지." 나는 중얼거리고, 내 방으로 돌아와 악몽이 기다리는 잠을 청했다.












성난 목소리에 잠을 깬 것은 새벽 세시 정각이었다. 내가 며칠 동안 두려워하던 말이 들려왔다.

"서드 칠드런을 네르프 센트럴로 호송하겠다."


나는 예상과 달리 공황이 오지 않는 것에 놀랐다. 무섭기는 무서웠다. 배에 힘이 빠질 정도로. 하지만 내가 주로 느낀 감정은 자포자기였다. 나는 침대에 일어나 앉아 운명을 기다렸다.


"허가서는?" 다른 목소리가 요구한다. "Scum-mouth 몇이 기어와서 이래라저래라 하면 그만이야?" 아마 내 경호 담당 중 하나일 것이다. 'scum-mouth', 쓰레기입은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들이 부르는 비칭이었다.


"허가서는 여기 있다." 누군가가 그 말과 함께 텔레비전을 켜더니 볼륨을 올렸다. 무슨 소린지 정확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특유의 어조에서 공공방송 비슷한 뭔가라는건 알 수 있었다.


"씨발놈들 이건-"


총성이 폭발하며 말을 끊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훌륭한 결정이었다. 몇 초 후 내 문을 뚫고 총알이 빗발쳤다. 총성은 귀가 멀어버릴 것처럼 시끄러웠지만 금방 끝났다. 이어진 침묵을 즐기기엔 귀가 미친듯이 윙윙거렸지만.


"신지?" 누군가가 부르고 있었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더니 검은 가죽 신발이 걸어들어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대 밑에 숨기엔 나이가 너무 많지 않아?"


"아오바씨?"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아오바님 본인이시다."


"그럼..."


"그래, 쿠데타 시작이야."



나는 잠깐 입을 벌린채 그를 바라보다, 거실로 튀어나갔다. 세 명의 바비카 요원이 카펫을 피로 절이며 널부러져 있었다. 한 명은 내 침실 가까이에 아직도 연기를 뿜는 기관단총을 꼭 쥔채로 쓰러져 있었다. 아마 내 문에 발사한 놈이리라. 유사시 날 처리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것이다. 티비는 아직도 켜져 있었고, 난 이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선언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지난 정부는 시민들의 존엄한 문화를 짓밟았습니다. 공금의 횡령이 난무했습니다. 우리, 4월 2일 혁명의 척탄병들에게 인류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우리가 회복시키기로 다짐한 미래입니다. 기존 정부가 맺은 조약은 모두 존중될 것입니다. 바비카 지휘계통을 제외한 모든 공직은 현직자로 유지될 것입니다. 비밀 경찰은 해산되어..."



아오바가 내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가야해, 신지! 훈련단은 한 시간 전에 출발했다!"


"뭐요?" 난 소리질렀다. "한 시간씩이나 이러고 있었다고요?"


복도로 잡아끄는게 얼마나 빨랐던지 난 바닥에 또 하나 쓰러져 있는 시체에 걸려 넘어질뻔했다.


"진정해. 모든 부대가 다른 시간에 출발해야 목표 지점에는 동시에 도착하는거다. 기습 효과를 극대화하는거지."


"뭐라고요?"


"그냥 닥치고 날 믿어."


계단을 뛰어내려가자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잠시 망설이자 아오바는 그대로 날 밀어넣고 문을 닫았다.


"기지에서 보자."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서야 난 뭔가를 깨달았다.


"잠깐! 아스카는 어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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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는 나올때마다 슬프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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